# 303
회귀자 사용설명서 303화
범의 아가리(1)
‘운수 좋은 날도 아니고….’
내 눈이 옹이구멍이 아니라면 틀림없이 샤오린이다.
마음의 눈에 비치는 정보 역시 그녀가 이전에 내가 본 사람이 틀림없다는 걸 확인시켜 준다.
스탯의 성장이 있지만 기벽도 같고 직업이나 모든 부분이 완벽하게 일치한다.
항상 끌고 다니는 똘마니들 역시 여전하다.
똘마니들 중 한 명이 들고 있는 가방에는 틀림없이 전설 등급의 무기가 들어 있을 터.
거리에 있는 가게들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이제 막 별채를 나와 기분 좋게 라이오스를 산책하려고 했던 타이밍.
길거리에서 반갑지 않은 얼굴을 만났으니 곧바로 발걸음을 돌리는 건 자연스러운 행동이리라.
‘슈바.’
가까운 시일 내에 자리를 만들겠다는 조건으로 도움을 받은 이후 벌써 1년이 넘어버린 상황.
‘약속 꼭 지켜’라고 적혀 있던 편지가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정하얀이나 차희라와 비슷할 정도로 머리가 돈 강자였으니 뭔 짓을 해올지 알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
특히나 정하얀과 저 미친년을 마주치게 했다가는 중립지역에서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정하얀은 갑작스럽게 발걸음을 돌리는 내 모습에 조금은 놀란 얼굴로 두리번거린다.
깜짝 놀랐다는 샤오린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어?”
대놓고 놀랐다는 듯한 목소리가 길거리에 울려 퍼지는 것은 순식간.
정하얀은 조금 갈피를 못 잡고 있는 것 같았지만 미친 여자의 목소리는 귀에 똑똑히 들려온다.
‘눈치챘나.’
라이오스의 국민들과 관광객들로 꽉 찬 거리의 중심에서 유독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와 순간적으로 정하얀의 팔을 끌어당길 수밖에 없었다.
‘빨리 가자. 빨리 가.’
뒤만 바라보고 무조건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저쪽이 이쪽을 발견했는지는 눈치 못 챈 상태.
“오빠 방금….”
“지금은 굳이 다른 사람에게 방해받고 싶지는 않아.”
“아… 오, 오빠.”
공화국의 미친년과 밀회를 하기로 약속했다는 정보는 굳이 정하얀이 알 필요가 없다.
조금은 감동받았다는 정하얀을 이끌고 사람이 몰려 있는 지역을 빠져나오는 것은 순식간.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은 있었지만 괜스레 더 불안해진다.
‘반대쪽으로 돌아가는 게 좋나.’
아니면.
‘희라 누나를 바로 만나러 가는 게 좋을까.’
떨어질 수만 있다면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때.
정하얀이 속삭이듯 말했다.
“저, 오빠.”
“응.”
“사람이 붙은 것 같아요.”
“뭐?”
“저희를 뒤 따라 오는 사람들이 세 명 있어요. 정확한 위치는 가늠이 안 되지만 아까 본 사람이 데리고 있었던 사람들 같아요.”
“붉은용병의 그림자들이 아닌 게 확실해?”
“네. 그 아저씨들은 아니에요. 아까 그 여자가 데리고 있었던 사람들 같아요.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확실한 것 같아요.”
‘아….’
“어떻게 할까요?”
“일단은 그냥 내버려 둬. 천천히 따돌리면 되니까. 그 사람은?”
“그 여자는 안 보이는 것 같구요. 왠지는 모르겠지만 저 사람들도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아직도 거리가 조금 멀고요. 호, 혹시 아는 분들인가요?”
“조금….”
저쪽에서도 큰 문제를 일으키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것은 듣던 중에 반가운 이야기.
차라리 곧바로 찾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년도 제대로 돈 년이야.’
블랙마켓의 VIP였고 눈만 봐도 제정신이 아니라는 게 느껴지는 여자다.
기벽으로 자리 잡고 있는 ‘목 조르는 로맨티스트’라는 말이 뭘 뜻하는 건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이 나이에 목이 졸려 죽고 싶지는 않다.
제대로 된 생각이 박혀 있지 않은 것은 물론, 열이 오를 대로 올랐을 수도 있는 만큼 무언가 리액션이 있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정하얀은 그 리액션에 반응할 확률이 높다.
라이오스에 있는 걸 확인했으니 따로 연락을 해보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을 정리한 것은 순식간.
일단은 이쪽 역시 저쪽을 발견하지 못 한 척 빠르게 자리를 빠져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적당히 정하얀을 끌고 다니며 최대한 사람이 많은 곳으로 이동한 뒤에는 도시의 외곽을 돌아다니기 시작.
그 와중에 정하얀은 방해받았다고 느낀 모양인지 볼을 부풀렸지만 내가 이 데이트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정하얀은 이쪽을 미행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실황으로 중계하고 있었고 언제 채찍을 든 미친년이 나를 찾아올지 걱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정하얀 역시 상당히 날이 선 상태.
린델 테러사건을 떠올려 보면 그녀가 민감해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그때 당시에도 처음 시작은 이런 식이었으니까.
결국에는 이 가게, 저 가게 골목을 돌아다녔고 종종 정하얀의 마법에 도움을 받으며 미행을 떨쳐 낼 수 있었지만….
‘여기가 어디야.’
제법 멀리까지 와버린 것이 문제였다.
길을 잃은 것도 아니고 옆에는 가장 든든한 보디가드도 있는 만큼 당황하지 않았지만 돌아갈 길을 생각하니 막막하다.
라이오스를 제대로 즐길 생각에 기대하며 나왔었지만 괜스레 한숨이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대놓고 티를 내고 있지는 않았지만 정하얀 역시 조금 씁쓸해한다.
애초에 단 둘이 나온 게 굉장히 오랜만이다.
실제로 무척 기대하고 있었던 시간이었고 이번이 아니면 또 언제 시간이 날지 모르는 만큼 정하얀에게 오늘은 무척 소중한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행복했던 계획이 뜻밖의 불청객에게 방해를 받은 셈.
“다음에 또 나오는 게 좋겠다. 오늘은 조금 정신이 없었네.”
“네… 오빠.”
정리하자면 정하얀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준다는 최초의 목적은 이미 무너진 상태라는 거다.
괜찮은 곳에서 식사라도 하는 게 그나마 정하얀의 기분이 풀리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근처 괜찮은 곳 역시 전부 영업을 하고 있었고 때 마침 식사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정하얀의 손을 잡고 적당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희라 누나한테는 또 뭐라고 말하나.’
정하얀의 기분을 풀어줘야 하는 만큼 차희라에게도 시간을 쓸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프다.
적당한 곳을 결정하고 안으로 들어서자 시야에 비치는 내부가 꽤나 마음에 든다.
나름대로 고급스러운 느낌도 있었고 사람들로 꽉 채워진 좌석 역시 괜찮아 보인다.
조금 이상했던 것은 갈색 피부를 가진 라이오스 인들이 아닌 검은 머리를 하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는 것.
심지어 교국민들과는 조금 다른 듯 한 느낌의 백인들 역시 눈에 띈다.
‘이건 또 뭐야….’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는 것은 순식간.
불안한 내 마음을 대변하듯 마음의 눈은 재빠르게 반응한다.
[플레이어 발렌틴 알렉산드로의 상태창과 잠재 능력을 확인합니다.]
[이름-발렌틴 알렉산드로]
[칭호-로나프의 괴물, 로나프의 학살자, 공화국의 오호대장군]
[나이-39]
[성향-단순무식한 살인자]
[직업-로나프의 싸움꾼-영웅 등급]
[직업효과-기초 무투 지식 습득]
[직업효과-중급 무투 지식 습득]
[직업효과-고급 무투 지식 습득]
[직업효과-고급 마력 운용 지식 습득]
[능력치]
[근력-97/성장 한계치 전설 이상]
[민첩-89/성장 한계치 전설 이상]
[체력-91/성장 한계치 전설 이상]
[지력-31/성장 한계치 일반 이하]
[내구-87/성장 한계치 영웅 이상]
[행운-32/성장 한계치 일반 이하]
[마력-61/성장 한계치 영웅 이상]
[특성-분노조절-전설 등급]
[총평-낮은 마력이 아쉽기는 하지만 근력과 민첩, 체력이 훌륭하게 밸런스를 맞추고 있습니다. 성향과 기벽이 둘 다 별로 좋지 않습니다. 저런 사람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건 굳이 추천 드리지 않겠습니다. 플레이어 이기영이 빨리 죽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
‘미친….’
눈에 띄는 것은 박덕구만큼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는 백인.
아니, 앉아 있는 모습만 봐도 녀석보다 한 뼘은 더 커 보이는 느낌이다.
얼굴에는 길게 상처가 나 있었는데 안 그래도 험악한 인상을 더 쓰레기 같이 만들어 주고 있었다.
흔하지 않은 무투가인 것 같았고 직업 효과로 고급 마력 운용 지식을 가지고 있는 걸로 봐서는 이미 경지에 들어선 모양.
성향 자체도 위험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공화국의 오호 대장군이라는 칭호였다.
‘슈바….’
녀석 말고도 눈에 띄는 이가 한 명 더 있다.
테이블의 중심에 앉아 있는 녀석이었고 검은 머리에 나와 비슷한 체형을 가지고 있는 인물.
저쪽은 중국인이 틀림없으리라.
조금은 야비해 보이는 이쪽과 다르게 편안한 인상이 눈에 띄었지만 능력치 자체는 편안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플레이어 진청의 상태창과 잠재 능력을 확인합니다.]
[이름-진청]
[칭호-책사, 전장위의 현자, 공화국의 오호대장군]
[나이-30]
[성향-계획적인 전술가]
[직업-군단 마도사-전설 등급]
[직업효과-기초 마법 지식 습득]
[직업효과-중급 마법 지식 습득]
[직업효과-고급 마법 지식 습득]
[직업효과-고급 소환 지식 습득]
[직업효과-고급 마력 운용 지식 습득]
[능력치]
[근력-65/성장 한계치 영웅 이상]
[민첩-75/성장 한계치 전설 이상]
[체력-89/성장 한계치 희귀 이상]
[지력-99/성장 한계치 영웅 이상]
[내구-77/성장 한계치 희귀 이상]
[행운-67/성장 한계치 영웅 이하]
[마력-97/성장 한계치 영웅 이상]
[특성-열람이 불가능합니다.]
[총평-완벽한 밸런스를 가지고 있는 마도사입니다. 플레이어 이기영과 비교하는 것조차 미안해질 정도의 스탯과 잠재 능력이 눈에 띄지만 굳이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아쉽게도 마력 수치는 더 이상의 성장이 불가능해 보이기는 하지만 99의 지력 수치와 높은 기본 스탯이 그 단점을 상쇄시키고도 남을 정도입니다.]
남은 한 명 역시 공화국의 오호대장군이란다.
그 외의 떨거지들 역시 대충 봐도 상당한 실력자.
‘회식이라도 하는 거야, 뭐야.’
어서 빨리 이 장소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지사.
눈치 없는 정하얀은 이쪽의 얼굴을 보고서는 빨리 들어가자는 듯이 이쪽을 재촉하고 있었지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안 그래도 갑작스러운 손님의 등장에 이쪽으로 묘하게 시선이 쏠려 있는 상황.
박덕구보다 덩치가 커다란 러시아인도 그렇고 마법사로서 말도 안 되는 스탯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중국인 역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아보지 못하는 게 이상한 건가.’
어쩌면 알아보지 못할 거라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쪽의 얼굴은 생각보다 털렸을 가능성이 높다.
아니,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교국의 인물이라는 것 정도는 예상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가장 처음 몸을 일으킨 것은 커다란 몸을 가지고 있는 발렌틴 알렉산드로.
과장하지 않고 이쪽의 세 배는 될 것 같은 덩치가 눈에 띈다.
“제국인, 아니, 이제는 교국인인가.”
가래가 끓는 듯한 목소리는 듣기가 거북하다.
중국인 진청은 테이블을 툭툭 건드리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얼굴에는 재미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다른 이들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저 자식은 이쪽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낌새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정하얀이 서서히 마력을 풀고 있는 게 느껴져 일단은 손을 꽉 잡을 수밖에 없었다.
이쪽은 둘이고 저쪽은 다수다.
심지어 공화국의 오호 대장군이라는 게 두 명이고, 정하얀은 모르겠지만 당장 나는 전력으로 취급받기가 힘들다.
만약에 싸움이 난다면 무조건 죽는 건 이쪽이라는 거다.
‘중립 지역이지만….’
전투가 일어나지 않은 보장은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지어 뒤 쪽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
“병신 같은 새끼들. 그걸 놓쳐? 쓸모없는 놈들. 쓰레기 같은 놈들.”
‘제기랄….’
퇴로까지 완전히 차단당했다.
벌컥 문을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예의 그 채찍녀.
저쪽의 입장에서는 황당하겠지만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샤오린 님, 여기 계셨군요!”
“당신….”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모릅니다. 하하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말이다.
“아름다운 미모도 여전하십니다.”
오늘 하루 행복해야 할 정하얀이 사정없이 표정을 구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