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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04화 (303/1,590)

# 304

회귀자 사용설명서 304화

범의 아가리(2)

샤오린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이 새끼가 왜 여기에 있어?’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

갑작스럽게 날아 들어온 아부성 멘트에 미처 반응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 황당한 모양이다.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덩치 큰 러시아인과 군단 마도사 진청 역시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나와 그녀를 관찰하고 있었다.

어디에선가 연을 맺은 적이 있다는 걸 눈치챈 것이다.

“손님인가.”

진청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발렌틴이 아쉽다는 어투로 혼자 중얼거리는 게 들려온다.

어째서 아쉬워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장소를 빠르게 빠져나가야 한다는 것.

진정하라는 듯 정하얀의 손을 꽉 쥐어주자 그제야 정하얀의 호흡이 조금 안정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질투하는 건 아니구나.’

그녀 역시 극도로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는 상태.

대충 봐도 자신과 같은 급이라고 할 수 있는 강자가 세 명이나 자리해 있었으니 혹여나 내 안전에 문제가 생길까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신경 쓰지 않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중얼거리는 것을 보면 무언가 이미지 트레이닝이라고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혹시나 일이 터질 상황을 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신….”

“연락이 조금 늦어서 죄송합니다, 샤오린 님.”

“연락이 늦었다는 정도로 말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지 않나?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요. 약속을 안 지키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물론 저 역시 연락을 드리고 싶었습니다만 아시다시피 지난 시간 동안 교국이 굵직한 사건들을 연달아 겪어서 말입니다. 어떻게든 해보려 해도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아서… 저도 참 힘들었습니다.”

“글세…. 아까 우리 마주친 것 같았는데 그건 제 착각이었나 보네요. 그리고, 숙녀를 만나러 왔으면 혼자 오는 게 응당 예의인데 옆에 여자를 끼고 들어오는 건 또 무슨 경우람? 게다가 내가 이쪽으로 올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았지?”

‘슈바…. 그건 또 생각 못 했네.’

첫 멘트를 잘못 쳤다.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모릅니다.’ 대신, ‘우연입니다’ 같은 대사를 쳤어야 했다.

이쪽이 공화국의 이방인들의 뒤를 캐고 다닌 것 아니냐고 책망하는 듯한 어조.

진청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린다.

‘미행당하고 있었나.’

라든지.

‘이쪽의 움직임을 신경 쓰고 있었나.’

따위를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으리라.

당연하지만 개뿔 그딴 건 없다.

정말로 우연히 들어왔을 뿐이었고 샤오린 역시 우연히 만났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도시 외곽에 있는 장소에 교국의 권력자가 들어왔다는 건 이들의 입장에서도 의심스러울 것이 당연할 것이다.

뭔가 목적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마 사람을 착각하신 모양입니다. 이곳을 찾아온 것도 우연이고요. 그나저나 항상 여전하십니다.”

“당신도. 입 하나는 여전하시네요.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갈 때의 태도가 다른 것도 여전하고. 그 많은 장소 중에 이곳에 딱 들어왔다는 게 우연이라고? 어떻게 이곳을 찾았고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한테는 별로 상황이 좋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죠? 반가운 손님이라도 너무 갑작스럽게 찾아오면 불청객이 되는 법이에요. 물론 나는 그다지 상관없기는 하지만 내 친구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궁금한데…. 당당하게 찾아온 것 치고는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 같고. 잡아먹어 달라고 스스로 걸어 들어온 초식동물을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확 잡아먹어 버릴까?”

‘슈우발….’

“누구지?”

“아. 발렌틴 님도 아마 아는 사람일 텐데….”

“그러니까 누구냐고 묻고 있잖아.”

“최근에 교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사람이잖아요? 린델에 자리 잡고 있는 파란의 부길드 마스터, 용의 선택을 받은 자, 신성제국에서 최초로 직위를 받은 이방인, 교국 8좌, 용병여왕의 정….”

굉음과 함께 녀석이 있던 한쪽 벽면이 무너져 내린 것은 바로 그때.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작스럽게 벽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반사적으로 소리에 반응한 정하얀이 곧바로 눈을 치켜뜨고 손을 움직인다.

수인을 맺고 있었지만 뒤쪽에서 검이 뽑히는 것은 순식간.

단검 하나가 정하얀의 목에 겨누어 졌지만 정하얀은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빠르게 입을 벌린다.

죽더라도 주문을 외우겠다는 생각인 것 같았지만 이렇게 어처구니없게 정하얀을 잃을 수는 없다.

“그만!”

움직임이 우뚝 멈추고 목을 향해 쇄도하고 있던 단검 역시 움직임을 멈춘다.

정하얀의 새하얀 목에서는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샤오린은 단검을 내린다.

“외웠으면 죽었을 거야. 여기에 있는 사람들도 반쯤은 죽었을 것 같지만…. 방금 건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흥분하지 않아도 돼요. 마법사 아가씨. 저 아저씨가 조금 다혈질 이거든.”

‘그러니까 왜 저러는 건데.’

“아아. 옛날에 그 붉은 고릴라랑 일이 좀 있어서요. 그때 처참하게 깨졌지 아마? 얼굴에 난 상처가 그 고릴라 작품이고. 용병여왕 이야기만 나오면 저런 식인데… 용병여왕 뭐시기는 말하지 않았던 게 좋았으려나.”

쿡쿡거리는 얼굴이 눈에 보였다.

단순한 장난치고는 수위가 꽤 높다.

안 그래도 터지기 직전의 폭탄 같이 보였던 녀석은 핏발이 선 눈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것은 물론 이쪽을 압박하는 기운 역시 쏟아지기 시작.

순간적으로 다리가 후들거릴 뻔했지만 약한 척하는 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양이 앞에 생쥐가 된 것 같은 느낌.

정하얀이 입술을 꽉 깨물며 내 손을 잡자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녀석이 사전 예고 없이 주먹을 휘둘러 온 것은 바로 그때.

‘개… 미친!’

풍압 때문에 주변에 있는 물건들이 전부 날아가 버리고 공기가 찢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정하얀은 입술을 깨물었고 이쪽 역시 손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뒤에 있는 샤오린이 신경 쓰이는 것은 당연.

‘맞으면 죽어.’

그대로 피떡이 되어 짓눌려 버리리라.

사실 믿고 있는 구석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죽음의 공포가 눈앞까지 들이닥치자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리려 기댈 수 있는 년을 찾게 된다.

하지만 샤오린은 이미 그 자리에 없다.

욕이 튀어나오기는 했지만 서둘러 수인을 맺는다.

정하얀 역시 다시금 마법을 외우려는 모습.

움직이려던 손가락이 멈춘 것은 우리들의 앞 쪽에 자리한 샤오린을 발견했을 때였다.

채찍을 두 손으로 감은 채로 녀석의 공격을 막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 것.

‘샤… 샤오린 최고다!!’

다시 한번 굉음이 들려오고 저 둘의 목소리가 이쪽에 전해져 왔다.

“뭐 하는 거야. 죽이려고? 내 손님이라고 말하지 않았나요?”

“이거 놔.”

“싫다면 어쩔 건데? 당신이야말로 떨어져. 성질나오기 전에.”

“너….”

‘여기도 개판이구만…’

어떻게 생각해도 분위기의 정리가 필요하다.

잔뜩 흥분해 있는 멧돼지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되었는데 샤오린 역시 정면으로 저 정도의 공격을 막는 것은 힘에 부치는지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애초에 그녀는 중장거리 타입이었으니 조금 무리해서 공격을 막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제발 누군가가 이 상황을 말려줬으면 좋겠다.

서서히 소변이 마려워졌기 때문이다.

다행히 저쪽에서 정상인 한 명이 끼어있는 모양.

그야 이 두 미친 연놈들을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목줄이 필요한 게 당연하다.

“그만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발렌틴 님. 샤오린 님. 이곳은 분쟁지역이 아닙니다.”

가장 뒤에서 간을 보고 있었던 녀석.

‘군단 마도사?’

진청이었다.

신기했던 것은 녀석의 말 한마디에 분노조절 장애와 미친 여자가 천천히 몇 발자국을 물러났다는 것.

여전히 덩치는 손을 떨고 있었지만 테이블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것으로 화를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샤오린도 군말 없이 몇 발자국을 물러나 옆에 있는 똘마니에게 팔을 치료받기 시작.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편안한 인상의 기생오라비는 이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더 이상 했다가는 저희도 안 좋은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그는 이방인 최초로 명예추기경의 칭호를 받은 이고…. 교국의 교황청에서 관리하고 있는 템플러들의 비호를 받고 있는 이들 중 하나입니다. 저도 그들이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샤오린 님이 막아서지 않았더라면 그들 중 하나가 막아섰을 겁니다.”

‘잘 알고 있는데….’

나도 그렇다고 말로만 들었을 뿐이지만 사실상 템플러가 정말로 튀어나오는지는 시험해 본 적이 없다.

템플러들 자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어떻게 이쪽을 보호해 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

단순히 위험에 반응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방금 엄청 위험했잖아…. 왜 안 튀어나온 건데.’

뚝배기가 터진 이후에 튀어나오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기는 한다.

“라이오스 내에서는 아직 교국의 사절단이 들어와 있고… 대륙법상으로도 중립지역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은 금기. 당연하지만 타국의 인사를 죽이는 것 역시 위법입니다.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는 건 이곳이나 저쪽이나 피하고 싶은 일이라…. 특히나 요즘 같이 민감한 시기에는 말입니다. 발렌틴 님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그는 용병여왕이 아니지 않습니까.”

“…….”

“이곳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기회는 있을 겁니다. 사실 제 입장에서는 그런 일이 터지지 않는 게 가장 이상적입니다만…. 아. 그러고 보니 소개가 늦었습니다, 이기영 명예추기경님. 공화국의 오호대장군 중의 하나이자 공화국 군사의 자리를 겸하고 있는 진청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야기는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사실 전해들은 적은 없지만 녀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온다.

뭔가 그럴 줄 알았다는 느낌이다.

‘지력 99.’

편안한 인상이기는 하지만 대충 봐도 생각이 많을 것 같이 느껴지는 타입.

단순한 지력 수치가 머리가 똑똑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지표는 아니지만 눈앞에 있는 이 마법사는 상당히 머리가 좋아 보였다.

칭호로 책사를 달고 있는 것도 그렇고 열람되지 않은 특성이 있다는 것도 그렇다.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신화 등급 급의 특성을 가지고 있거나, 카스가노 유노나 나와 같은 눈깔 사용자라는 것이 되니 호기심이 동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거다.

‘수준이 높네.’

조금 차분한 분위기에서 한 번 더 깨달을 수 있었던 사실은 이들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수준이 높았다는 것.

단순히 버텼을 뿐이었지만 저 샤오린은 차희라를 상대로 30분 이상을 상대한 적이 있었고 발렌틴 알렉산드로 저놈은 움직이는 폭탄 그 자체였다.

칭호도 그렇고 성향 자체도 그렇다.

사람 좋아 보이는 진청 역시 뛰어난 스탯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니 어떻게 봐도….

‘8좌보다 강한 건가.’

물론 8좌에도 차희라나 김현성 같은 괴물들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눈앞에 보이는 이들은 제국 8좌의 하위 스쿼드를 상회할 정도의 스펙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테면 다완의 궁수나 박연주, 천관위 같은 이들은 눈앞에 있는 녀석들을 감당할 수 없다.

스탯이나 특성, 무구의 상태 같은 눈에 보이는 것들로만 강함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격차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음…. 이곳을 찾아와 주신 이유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들어도 상관없겠죠. 일단은 인사를 하는 게 맞을 것 같군요. 아! 자리에 앉으시지요. 숙녀 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감사합니다.”

이쪽이 앉기 편하게 슬그머니 의자를 빼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정하얀은 녀석의 친절이 불쾌하다는 듯 살짝 인상을 구겼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정하얀에게 끼를 부리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져 온다.

‘개자식.’

정하얀 그녀가 세상에 둘도 없을 인재라는 걸 알아본 것이다.

남자로서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 됐든 이쪽의 기분이 더러워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녀석은 그런 이쪽을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음… 아직 식사를 하지 않으신 것 같은데….”

“네. 맞습니다.”

“이곳은 제법 시간이 걸리는 편입니다. 뭐 식사를 기다리시기 전에 잠깐 간단한 게임이라도 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조금은 뜬금없는 타이밍이었다.

‘갑자기 무슨 미친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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