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310화 (309/1,590)

# 310

회귀자 사용설명서 310화

정하얀 사용설명서(4)

한 번 눈을 비볐음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비치는 광경은 여전히 같다.

꿈이 아니다.

확실히 검붉은 커다란 구체가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게 맞다.

“저게 뭐야….”

샤오린 역시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

창밖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는데 나보다 더욱더 당황한 듯한 표정이었다.

어째서 그녀가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뻔하다.

‘저기….’

마법이 떨어져 내리고 있는 장소는 공화국에서 온 이들이 지내고 있는 장소였으니까.

‘미친….’

콰아아아아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력이 도시를 보호하는 보호 마법에 부딪치기 시작.

우리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던 이들은 그 어처구니없는 장면에 비명을 내지른다.

우지직, 우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도시를 지키는 기본적인 마법이 부서지고 거대한 마력은 순식간에 그 틈새로 빨려 들어간다.

이 모든 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이쪽까지 충격이 전해지지 않는다는 게 신기할 지경.

무슨 마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정확히 목표한 지점만 노리는 종류의 마법인 것 같았다.

원소 종류도 아니다.

뭔가 흑마법 같기도 했지만 그런 기색은 느껴지지 않는다.

단순히 공간을 그대로 집어 삼킨다는 표현이 어울리리라.

그야말로 밀도가 높은 마력의 응집체.

대놓고 화력이 높은 것보다 저런 식으로 주문을 완성하는 게 더욱 난이도가 있다.

도시를 보호하는 기본적은 마법이 순식간에 으깨진 것 역시 그런 연유 때문일 것이다.

‘미친… 미친!’

운석이 떨어지는 걸 보고 있는 공룡들보다 더 놀란 가슴을 부여잡게 된 것이 당연지사.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이곳을 도망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생각이 든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입장에서 저건 이해할 수 없는 자연재해나 다름이 없다.

‘정말 자연재핸가….’

쿠와아아아아아아아!

생전 처음 들어보는 것 같은 효과음이 귀에 울리기 시작.

특정 장소에 떨어진 구체는 맹렬히 회전하며 있었던 공간을 완전히 집어 삼키고 있다.

마치 종이를 스테이플러로 찍은 것처럼 보이는 깔끔한 단면만 남고 그 안에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다른 장소에서도 검붉은 마력이 떨어진다.

그렇게 많다고 할 수 있는 숫자는 아니었지만 도시를 아비규환으로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운이 좋았는지 무기물을 닥치는 대로 들어 삼키는 게 대부분.

직격한 곳은 저곳뿐이다.

쿠와아아아아아!

연쇄적으로 들려오는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난 이후에 보이는 광경은 그 어떤 마법으로도 본 적이 없는 풍경.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아니, 저게 뭐야.’

마법이 나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학문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지금 눈으로 보고 있는 건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는다.

인위적인 마력이 느껴지지 않았더라면 마법이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 버렸을 거다.

마력 폭풍처럼 대륙에서 일어나고 있는 특이한 자연현상 중 하나라고 단정 지었을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할 말을 잃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명을 내질렀던 식당 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적막만 흘렀다.

어디에선가 들려온 아기 울음소리를 시작으로 모두가 황급히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나가봐야겠어요.”

“같이 가겠습니다.”

잠깐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여 오는 샤오린의 얼굴이 보인다.

함께 가도 별 문제가 없다고 느낀 것이 틀림없으리라.

곧바로 식당의 바깥을 빠져나가니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는 주변 풍경이 보였다.

라이오스에서 파견한 조사단들이 헐레벌떡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고 수도사들과 고행자들이 혹시 모를 부상자를 찾아다니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뒤늦게 나온 마법사들 역시 일찍이 움직인 모양.

내 생각보다 더 반응이 빠르다는 건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여기는 마법사 수준이 낮아.’

저들이 뭔가를 알아낸다는 걸 기대하기는 힘들다.

아마 주변을 통제하고 뭔가를 하는 척하는 게 한계이리라.

그 와중에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민간인들.

사실 샤오린의 똘마니들 역시 저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대놓고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감을 못 잡는 느낌이다.

나도 저들과 별로 다르지는 않다. 지금 당장은 2차 폭격이 날아오지 않을까 걱정해야 했으니까.

구태여 샤오린에게 딱 달라붙어 있는 것은 그런 연유다.

빠르게 달려 첫 번째 마법이 떨어진 곳으로 향하는 것은 순식간.

‘개…….’

장소에 당도한 이후 눈에 비치는 모습은 장관이라면 장관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거 다 뒈진 거 아니야?’

안에 있던 사람들이 어떻게 된지는 모르겠지만 장담컨대 제대로 말려든 이들은 시신도 건지지 못했으리라.

‘고인물이랑 덩치도 뒈졌나….’

일이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왕이면 죽었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

하지만 몇몇 인간이 모여 있는 걸 보니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몰려든 인파를 해치고 나아가자 며칠 전에 봤던 고인물과 덩치 그리고 몇몇 이의 모습이 보인다.

살아남은 똘마니는 겨우 세 명.

나머지는 전부 죽었다.

어떻게 이 난리에도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한쪽 팔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방향으로 비틀려 버린 덩치를 보고서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녀석이 고인물을 구해낸 것이 틀림없으리라.

“제기랄…. 쿨럭. 제길.”

몰려든 사제들에게 치료를 받으며 연신 기침을 토해내고 있다.

곧바로 치료 마법을 받아 팔은 살릴 수 있겠지만 몸을 전부 회복하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한 것처럼 보였다.

한편으로는 저런 것에서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생각하긴 했지만 녀석 역시 무리한 모양.

진청은 다른 이들을 진정시키는 한편 깔끔하게 잘린 단면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다.

녀석 나름대로 분석을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이쪽이 한 일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불안해지기 시작.

하필 공화국 애들이 지내고 있는 곳에서 가장 커다란 피해가 났으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하리라.

“혹시나 해서 하는 이야긴데… 이거….”

“장담하건대 교국과 이번 일은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

“…….”

“정말인가요?”

“네.”

이번에는 정말 하늘에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도 없다.

조용히 나를 바라보는 샤오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이딴 짓을 저지를 정도로 이쪽이 멍청하지 않다는 걸 이해해 준 모양.

중립국 안에서 공화국에게 선제공격을 날렸다는 건 대충 생각해도 극도로 민감한 사항이다.

대륙법에 의거, 타국들의 질시와 질책을 받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일.

라이오스와 동맹을 맺기 위해 이 장소에 머물고 있는 우리가 이런 일을 저지를 이유는 단 하나도 없다.

물론 녀석들도 그렇게 생각해 줬으면 고맙겠지만….

‘발목 잡힐 여지는 있겠는데.’

꼬투리를 잡으려면 어떻게든 잡을 수 있다.

일단은 이쪽 역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 같은 느낌. 함께 오기는 했지만 서둘러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가서 이야기 나누시는 게 좋겠습니다, 샤오린 님. 저도 따로 상황을 살펴봐야 될 것 같아서….”

“네. 그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 덩치가 또 흥분하기 전에… 뭐가 어떻게 된 건지는 까봐야 알겠지만 당장은 당신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거든요. 그 정도는 이해해 주세요.”

“네. 물론입니다.”

‘이해는 개뿔…. 자작극이 아니면 다행이지.’

확률은 낮지만 그럴 확률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사망한 건 공화국 쪽의 인물들이었지만 저걸로 인해 더 곤란해질 쪽은 우리였으니까.

“멀리 마중은 안 나갈게요.”

“예.”

말을 끝으로 샤오린은 진청과 발렌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뭐라 뭐라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게 들려왔지만 잘 들리지는 않는다.

당장은 공화국 쪽으로 연락을 취할 테고 아마 곧바로 조사단이 파견 나올 것이다.

물론 교국 쪽 역시 조사단을 파견할 거라고 생각했다.

힘없는 라이오스는 조사단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무력집단이 나라 안으로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없을 거고 결국에는 상황이 더 복잡해질 것이다.

‘얘네 입장에서도 황당하기야 하겠지만….’

이미 사건은 터졌고 더 이상은 되돌릴 수가 없다.

지금쯤 라이오스의 국왕은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있을 것이다.

슬그머니 한 번 더 뒤를 돌아보자 벌써부터 다른 이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조사에 들어간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대충 봐도 교국 진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였지만 그래도 민감한 사항인 만큼 이것저것 알아봐야 하는 건 당연한 일.

정하얀이라면 뭔가 알아낼지도 몰….

‘시발….’

“제기랄.”

절로 혼잣말이 나온다.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계속해서 입가에서 맴돈다. 아직 확정지을 상황은 아니지만 혹시나 하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겠지.’

아니. 아니어야 한다.

만약 그녀가 범인이 맞더라도 정하얀은 범인이 아니어야 한다.

‘동기도 애매한데.’

사실 그렇게 애매하지도 않다.

99의 마력을 찍었을 때부터 무언가 사고를 일으키리라는 것은 이미 예견된 일.

당장 차희라 때문에 억눌려 있기는 했지만 정하얀이 언제든 폭주할 수 있단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최근에 무척 조용하기는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불안한 부분이 있었다.

공화국과의 사건이 생긴 이후로는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고 심지어는 식사도 제대로 한 적이 없다.

물론 간혹 만나 시간을 보내기는 했지만… 그게 정하얀을 케어해 줄 정도라고 단언할 자신은 없었다.

오랜만의 데이트는 엉망이 됐고 심지어는 이상한 오해도 받았으니 이 모든 게 공화국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충분히 극단적인 짓을 저지를 만하다.

옆에서 누군가 말려줄 사람이 없었다면 말이다.

‘아냐. 아닐 수도 있어. 아닐 거야.’

그렇지만 내 상식 내에서, 이 정도의 마법을 선보일 수 있는 사람은 한정되어 있고, 당연히 그중 1순위는 정하얀.

그녀다.

똥오줌 가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퍼뜩 생겨난 것은 순식간.

일단은 정신없이 교국 진영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제길. 제길!’

물론 속으로 올라오려는 욕지거리를 애써 삼켜 넘기면서.

허겁지겁 뛰어가자 확실히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이들.

이 난리가 났는데 밖으로 나와 보지 않았을 리가 만무하다.

아주 제대로 자리를 잡고 라이오스에서 온 이들 역시 다가오지 못하도록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숙소 근처에서 사고가 생긴 만큼 이쪽은 우리가 관리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대사관이나 다름 없는 장소.

이런 조치를 누가 취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판단은 완벽했다.

곧바로 겉옷을 집어 던지고 안으로 들어서자 붉은용병의 길드원들이 나를 안내했고 카스가노 유노와 함께 온 마법사들 역시 마력을 추적하거나 떨어져 나온 파편을 수집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늦었네, 자기. 어디에 있었어? 마법 떨어진 거 봤어?”

“응. 그거 보고 달려온 거야. 잠깐 다른 곳에서 상황 보고 있었고. 이거….”

“아니, 잠깐만 혹시나 해서 먼저 물어볼게 있는데. 이거 자기가 한 거야?”

“아냐. 나는 모르는 일이야.”

“확실해?”

“응. 진짜 아니야.”

어째서 내가 했는지 묻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차희라는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또 무슨 짓거리를 했다고 생각이라도 하는 모양.

차희라가 뭔가를 말해오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이쪽이 그녀의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순간 급한 건 그녀가 아니었으니까.

“하얀이 못 봤어? 누나?”

“저기 있잖아.”

내 질문의 뜻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이동시키자 이쪽을 등친 채 열심히 조사에 임하고 있는 정하얀을 볼 수 있었다.

‘네가 한 거 아니지?’

단숨에 이쪽에 안겨오지 않는 모습은 확실히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나는 정하얀을 불렀고 그녀는 조금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제발….’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