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314화 (313/1,590)

# 314

회귀자 사용설명서 314화

정하얀 사용설명서(8)

서둘러 그녀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계속해서 절뚝거리며 최대한 뒤처지지 않게 따라오려고 하는 한소라 때문인지 움직이는 게 너무 느리다.

‘놓고 갈까.’

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내 표정을 귀신같이 알아챈 한소라가 입을 열어오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놓고 가지 마세요. 최대한 빠, 빨리 달릴게요. 헉… 헉….”

“…….”

마음 같아서는 업어서 가기라도 하고 싶은 심정.

다만 그 광경을 정하얀이 또 보는 것은 아닌지 무척이나 무섭다.

그것보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도대체 뭐 하러 가는 건지 궁금할 따름이다.

일단은 자리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자신이 마무리 하지 못한 일을 마무리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이쪽에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혹시나 도시에 운석이라도 떨어뜨릴까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시 한번 카스가노 유노가 했던 말이 스쳐지나간다.

‘엄청 심각한 건가 이거….’

이런 일로 도시가 폐허가 된다면 어처구니가 없어 표정을 구길 수도 없으리라.

‘제기랄…. 제길.’

최대한 눈에 마력을 집어넣고 계속해서 정하얀을 쫒는다.

안 그래도 장내가 정리되지 않아 혼잡한 도시 안을 우다다 뛰어다니니 이쪽에서도 따라잡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일단 도대체 어느 쪽으로 달리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그나마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안 그래도 쑥대밭이 되어 있는 공화국 놈들이 있는 장소.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마무리 하러가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한소라도 한소라였지만 일단은 이쪽이 본인을 미워하고 있어서, 라는 감정이 먼저였던 모양.

마음의 눈이 제발 대상의 마음도 읽을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정하얀이 지금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답답할 지경이었다.

본래부터 정하얀은 평범한 사고방식으로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번에는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나마 가장 그럴 듯한 추측은 마법을 사용하러 간다는 것.

골목골목을 정신없이 누비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정하얀이 어디로 향하는지 윤곽이 잡히지 않는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계속해서 도시의 외곽으로 빠지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공화국 놈들이 묵는 장소와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의아해졌다.

한소라가 입을 열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디로 향하고 계신 건지 알 것 같아요.”

“어딥니까?”

“해변 쪽이에요. 일단 설명은 함께 움직이면서 드릴게요.”

굳이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버릴 마음은 없었지만, 한소라 자신으로서도 나름의 안전장치를 구축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마법진을 만들어 놓은 곳이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정하얀 님의 마력을 제 몸에 가두는 역할을 하기 위한 장치였지만 정하얀 님께서 제가 만든 마법진을 커스텀하셨거든요. 마법의 출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라고 하셨는데….”

“그걸 아직까지 지우지 않은 겁니까?”

“죄,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정하얀 님께서 혹시나 이후에 쓸 일이 있을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일이 실패한다면 다시 한번 와야 할지도 모른다고 일단은 1차 이후에 상황을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셔서….”

“제기랄. 아무리 그래도 흔적을 남기시면 어떡합니까.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곳입니까?”

“마법진의 장소는 찾을 수 없을 거예요. 복잡한 종류의 마력결계가 쳐져 있어서 정하얀 님과 제가 아니라면 들어갈 수 없어요. 물론 장소 역시 이중 삼중으로 꼬아 놓았기 때문에 문제는 없고요. 찾거나 파훼할 수 있는 사람은 경지에 들어선 마법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고….”

불행하게도 라이오스에는 경지에 이른 마법사가 한 명 더 체류하고 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일을 수습하고 공화국 쪽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꼬리를 잡지 못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런 게 남아 있다면 최대한 빨리 흔적을 지워야 하는 게 맞다.

그 고인물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다면 어쩌면 그 장소로 당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참 많이도 하셨네. 슈바…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마법 발현지를 물색한 것은 물론 트랩을 깔고 심지어는 그걸 이중 삼중으로 꼬아 놨단다.

내 기준에서는 준비만 생각해도 한 달을 넘게 걸릴 것이다.

정하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은 느낌.

머리가 좋은 편에 속하는 한소라 역시 도움을 줬으니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된 것은 물론.

말려주는 사람도 없으니 폭주기관차처럼 일을 진행시켰을 것이다.

지금 정하얀이 향하고 있는 장소가 그곳이 만다면 확실하게 다음 마법을 발현하러 간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물론 첫 번째보다 화력이 더욱더 클 것이라는 건 안 봐도 알 수 있는 이야기다.

‘빨리 가야 돼.’

적어도 정하얀이 마법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도착해야 한다.

“지름길은?”

“그런 건 잘 몰라요. 일단은 해변 쪽으로 향하시면 돼요.”

“조금 더 빨리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은 업히거나 안기시는 게.”

“그건 안 돼! 제, 제발…. 혹시나 정하얀 님이 보실 수도 있어요. 그건 안 돼요.”

다시 한번 발작을 일으키려고 하는 모습에 조금은 측은해졌지만 사실상 한시가 급한 상황.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띈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 형님! 형님도 여기 온 거요? 거, 누님이랑은 만났소? 잠깐 볼일이 있어서 돌아간다고 했었는데….”

‘나이스 타이밍, 박덕구!’

무너진 잔해를 정리하고 있는 박덕구였다.

봉사활동하기에 여념이 없었는지 얼굴에 덕지덕지 뭔가를 묻히고 있었는데 나와 한소라를 보는 얼굴에 반가움이 깃든다.

우리 역시 합류하기 위해서 찾아 온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절박해 보이는 우리 얼굴을 확인한 이후에는 그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모양.

“뭔 일 있소?”

“마침 잘 됐다. 여기 한소라 씨 좀 안고 따라와. 소라 씨는 덕구에게 아까 말씀한 장소를 말씀하시면 됩니다.”

“거, 무슨 난리라도 난거요? 무, 무슨 일이요? 이게.”

“일단은 따라와. 설명은 나중에 해줄 테니까.”

“누님은 어디 간 거요?”

“일단 아무 말하지 말고 뛰어.”

“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기야 하겠지만….”

“급한 일이니까 빨리.”

“알겠소.”

믿음직한 타이밍에 만난 믿음직한 지원군.

내 기대에 화답하듯 박덕구는 한소라를 번쩍 들어 올려 달리기 시작했고 나 역시 곧바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정하얀을 쫒으면 쫒을수록 점점 더 사람이 없어지는 곳으로 향하는 느낌이다.

하얀 모래사장이 있는 바다가 보였다.

언젠가 무조건 와보기로 한 곳이었는데 이런 상황이 되고 나서야 오게 되었으니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 감상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 리가 만무.

죽느냐 사느냐, 망하느냐 아니냐의 기로에 서 있는 걸 보면 노을이 지고 있는 바다도 예쁘게 보이지가 않는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거요?”

“소라 씨.”

“아, 거의 다 왔어요. 조금 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돼서….”

“여기서부터는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소라 씨는 길만 안내해 주세요. 덕구야, 몇 발자국 뒤에서 따라오는 게 좋을 것 같다.”

“거, 알겠소. 무슨 이 상황에 던전이라도 들어가는 거요?”

정답은 아니지만 기분만큼은 비슷하다.

사람이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외곽 해변에 야생 몬스터마저도 버려버린 동굴로 진입하려고 하니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아마 저 안쪽도 미로처럼 얽혀 있을 것이다.

아주 예전에 버려진 던전을 재활용한 셈.

한소라가 주문을 외우자 마력 결계가 희미해졌고 그 순간 박덕구와 나는 안쪽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마치 비밀번호라도 누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이쪽이 지나간 이후에는 곧바로 마력결계가 생성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말로 던전이라도 들어온 것 같은 느낌.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가 정하얀이라면 지금 이 파티원들로 공략을 실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어느 정도 안쪽에 발을 들이자 여러 가지 결계들이 보이니 한소라가 그때마다 비밀번호를 눌러댄 것은 당연.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야 한쪽 길로 이어지는 통로로 갈 수 있었는데, 한소라와 박덕구보다는 이쪽이 먼저 진입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함께 가자고 했던 한소라도 나보다 먼저 정하얀을 마주칠 생각은 없는 모양.

슬그머니 손짓하자 곧바로 고개를 끄덕여 왔고 나 역시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고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시야에 비치는 것은 마법진에서 생성된 빛이 쏟아지는 동공.

보통 던전의 보스 몬스터들이 자리 잡게 생긴 것 같은 외관이기는 했지만 아름답다면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리리라.

그 마법진 한가운데 있는 것은 당연 정하얀.

오랜만에 보는 산발이 된 머리카락과 핏발이 선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보였다.

“하얀아.”

“히끅.”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누가 봐도 심적으로 많이 몰려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조금 있으면 끄, 끝, 끝나요.”

‘뭐가 끝나는데….’

“이, 이번에는 확실히 할 수 있을 거예요! 그, 그러니까 용서해 주세요. 용서해 줘요. 이제 말 안 할게요. 히끅.”

‘용서하기는 뭘 용서해.’

“그, 그 사람이 잘못한 거예요. 저 이상한 여자 아니에요.”

“나는 이상한 여자라고 말한 적 없어. 방금 전에 한소라 씨랑 함께 있었던 것도 오해였고. 이리로 와야지.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이쪽으로 와야지.”

“오해라는 건 알아요. 그래도 오빠가 저를 바라보는 누, 눈, 눈빛이 달라졌단 말이에요. 나 진짜 그런 여자 아닌데…. 데이트도 많이 해준다고 했는데…. 전부 다 취소됐어. 히끅. 다 그 사람들 때문이야. 바다도 같이 가준다고 했는데 전부 취소 됐다구….”

“아니라니까. 그런 게 아닌데….”

“지금도 나, 나쁜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잖아요. 히끅. 그래서 안 만나 줬던 거잖아요!”

‘그런 게 아니야. 슈바….’

이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도대체 어디서부터 풀어줘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별 생각 없이 던진 말이 이렇게까지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킬지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게 왜 이렇게 되는 건데.’

아무리 생각해도 정하얀의 생각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예, 옛날에 덕구 오빠가 그랬단 말이에요. 한 번 의심하면 계속 의심하게 된다고…. 나도 그랬단 말야.”

‘박덕구 이 돼지 새끼. 쓸데없는 말 좀 그만해.’

“오, 오빠도 계속 의심할 거야. 그 나쁜 바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기 전까지는 계속 의심할 거야!”

“나는 의심 같은 거 안 해, 하얀아. 정말이야.”

“말로는 안 그렇다고 하면서 지, 지금도 의심하고 있잖아요. 가벼운 여자라고 생각하잖아요! 눈만 봐도 알 것 같단 말야. 히끅….”

“아니야. 그렇지 않아. 절대로….”

“맞아. 계속 의심할 거야. 계속 의심할 거라고.”

“아니라니까. 슈바….”

“내 순수를 증명해야 돼!”

‘증명할 필요 없다고…. 그만 좀 증명해.’

“지금 당장!”

동공이 우르르 울리기 시작한 것은 순식간.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마력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불바다 엔딩은 안 돼.’

카스가노 유노의 목소리가 마치 메아리처럼 번진다.

“정하얀!”

“순수를 증명해야 돼!!”

‘미친!’

쿠르르릉 하는 소리와 함께 위에서 흙먼지가 떨어진다.

마법진의 빛은 계속해서 정하얀을 비추고 사방에 있는 마력이 그녀에게 모이기 시작.

“하얀아, 그럴 필요 없어. 내가 얼마나 너를….”

“없어져야 돼. 그 바보들이 없어져야 돼!”

사랑한다는 미사여구를 계속해서 중얼거리지만 이미 맛탱이가 갔는지 마력은 조금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마법이 발현되면 틀림없이 의심당한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

라이오스와의 동맹은 물거품이 되고 오히려 대륙의 정적으로 찍혀 교국 멸망 시나리오가 실현될지도 모른다.

‘너무 방치했어.’

밀기만 하고 당겨주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심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던 것이다.

계속해서 마법이 고조되고 동공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어느 순간 귀를 찢을 것처럼 커진다.

마법이 발현되기 전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

아마 정하얀의 입에서 주문이 터져 나오는 순간, 장담컨대 라이오스의 일부는 폐허가 되어버리리라.

‘망했어. 시발. 망했다고….’

“아아아아아아아아!”

주문 시전자의 눈과 입에서 검붉은 색의 빛이 뿜어져 나오는 순간, 이쪽 역시 커다란 목소리로 마법의 주문을 외칠 수밖에 없었다.

“겨, 결, 결혼하자.”

순식간에 장내에 침묵이 가라앉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