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6
회귀자 사용설명서 316화
빛의 이름으로(1)
“뭐라고?”
“누, 누가 찾아온 것 같아요. 바, 바깥에서 결계를 해제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확실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지금 확인할 수 있어?”
“한번 확인해 볼게요….”
정하얀이 천천히 주문을 외우는 것이 보인다.
아네모네의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려고 하는 게 틀림없으리라.
지금 당장 밖의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밖에 없으니까.
이쪽도 뭔가 조취를 취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천천히 감은 눈을 뜬 정하얀의 얼굴에 약간의 당혹감이 감도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야?”
“…….”
“빨리.”
“그, 그 사람이에요.”
“뭐?”
“그 사람이요. 그 공화국 사람들.”
“…….”
슬쩍 이쪽의 눈치를 보는 정하얀은 뭔가 내가 또 이상한 오해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
그렇지만 그런 오해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점점 더 이쪽도 불안해지기 시작.
겨우 수습한 불길이 다시 타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 것도 당연하다. 아니, 이제는 내부의 문제는 더 이상 문제도 아니게 됐다.
애초에 정하얀을 말린 이유는 이쪽이 흉수로 지목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대륙의 공적으로 몰리는 걸 회피하기 위해서였고 이쪽과 라이오스의 동맹을 성사시키기 위함이었다.
지금 이 꼴을 들킨다면 동맹은 허사가 되는 것은 물론 대륙의 정적으로 찍혀 주변국들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으리라.
‘왜 이렇게 빨리 온 거야. 슈바….’
그만큼 진청 그 녀석이 유능하다는 증거이리라.
이쪽의 흔적을 밟고 움직일 수 있는 만큼 마법적 소양이 뛰어나다는 것을 의미한다.
평범한 마법사로서는 흔적 자체를 느끼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정하얀이 이중 삼중으로 꼬아놓은 마법 발현을 탐색한다는 건 능력치가 90이 넘은 다른 마법사들도 불가능하다는 거다.
어쩌면 이쪽의 움직임 때문에 꼬리 밟힌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국 쪽이 빠르게 움직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이쪽의 꼬리를 밟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결과 이쪽이 궁지에 몰렸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순간적으로 머리를 붙잡게 된 것은 당연.
수많은 마력결계와 거대한 마법진.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정하얀이 마법의 발현자라는 사실은 지나가던 개도 눈치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어떻게 봐도 지금 이쪽은 궁지에 몰린 쥐나 다름없다.
‘망했는데. …어떻게 해야 되는 거지.’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스트레스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마법진 지금 지울 수 있나?”
“지, 지울 수는 있지만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아요. 어쩌면 흔적이 남을지도 모르고…. 그리고… 지금 첫 번째 결계를 뚫고 들어온 것 같아요.”
‘제기랄.’
“어떻게 할까요?”
“잠깐만.”
“두 번째 결계도 뚫은 것 같….”
“뭐?”
“세 번째에 당도한 것 같아요.”
‘뭐가 이렇게 빠른데?’
“혹시 다른 곳으로 나갈 수 있는 출구가 있나?”
“아니요. 그런 건… 하, 한번 찾아볼까요?”
“아니야.”
찾는다고 해도 없던 길이 생겨날 리는 없다.
‘제기랄, 제길….’
빼도 박도 못한 현행범.
살인 용의자가 현장에서 경찰에게 발각된 것 만큼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박덕구랑 한소라는….’
생각해 보니 아직도 동공의 밖에서 이쪽을 기다리고 있는 박덕구와 한소라도 신경이 쓰이기 시작.
일단은 둘에게 이번 상황을 알리는 것도 중요하리라.
허겁지겁 동공을 나오니 시야에 비친 것은 초조한 얼굴로 이쪽을 기다리고 있는 한소라.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박덕구는 덤이다.
“일은 잘 해결된 거요? 아니, 그보다는 여기에는 도대체 왜.”
“설명은 나중에 할게.”
“거, 아까부터 설명해 준다고 말한 거 아니요. 너무 궁금해서 미쳐 버릴 것 같다니까.”
박덕구는 정말로 궁금하다는 얼굴이다.
아마 내 표정을 보고서는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당연하지만 한소라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의 경우에는 대놓고 창백해지기 시작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뻔할 뻔자.
정하얀과의 일이 틀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으리라.
“이, 일은 잘 해결되신 거 맞죠?”
“네. 그쪽 일은 잘 해결됐습니다.”
“정… 말인가요?”
“네.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표정이 너무 좋지 않으셔서….”
“조금 다른 일이 생겼습니다. 일단은 안쪽으… 아니, 소라 씨만 들어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덕구야, 너는 일단 계속해서 경계. 만약에 일이 생기면 곧바로 부르마.”
전후 사정을 모르는 덕구 녀석은 일단은 제외.
녀석의 성격에 이쪽이 도시를 박살 냈다는 사실을 듣는다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예상하기 힘들다.
‘박덕구는 모르는 게 나아.’
이번 도시를 박살 낸 게 정하얀과 한소라의 콜라보라는 사실은 숨기는 게 맞다.
하지만 녀석의 답답함이 이미 한계치에 다다른 모양.
커다란 목소리로 입을 열어오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거, 진짜 무슨 일인 거요! 따라오라고 해서 따라왔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를 모르겠소. 아까까지만 해도 동공이 우르르 쾅쾅 홀롤로롤로로 소리를 내질 않나. 아니, 하얀이 누님은 안에 있었던 거요? 아까 그건 하얀이 누님이 한 게 맞는 거요? 막 소리를 지르는 것도 같은데… 대관절 이게 뭔 상황인지 설명을 해줘야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떠올려 보기라도 할 거 아니요!”
“조금 있다가 다 설명해 줄게.”
“혹시….”
“뭐?”
“혹시 오늘 있었던 일….”
‘이 돼지가 생각보다 눈치가….’
순간적이지만 가슴이 철렁한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이후에 나온 말에는 주먹을 꽉 움켜쥘 수밖에 없었다.
“꼬리라도 잡은 거요? 범인이라도, 아니, 그 힌트라도 잡은 거요? 그래서 마법사들끼리만 움직이는 거요?”
‘이 새끼….’
“그런 거 아니요?”
‘이 사랑스러운 돼지 새끼!!’
순간적이지만 번개가 머리 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기 시작.
어째서 이걸 생각하지 못했는지 당황스러울 지경.
커다란 힌트를 준 이 돼지가 사랑스러워진다.
‘너 이 새끼!!’
우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갓덕구의 추측에는 무릎을 탁 칠 수밖에 없었다.
‘그거야!!’
그림으로 그린 듯한 완벽한 해결책.
물론 여러 가지 변수가 있기야 하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현재로서는 이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맞다. 덕구야. 네 말이 맞아. 슈바! 네 말이 맞아! 어떻게 알았어?! 푸히하하핫!”
흐뭇한 미소를 보내는 것은 순식간.
정답을 맞힌 뿌듯함이 순간적으로 박덕구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정말이요? 아암. 내 그럴 줄 알았지! 그럴 줄 알았다니까! 형님 마음을 딱 하면 알아차리는 게 이 동생이 하는 일 아니요! 크으… 내가 바로 형님 동생 박덕구 아니요! 아니 근데 그 일을 내게 숨길 게 뭐가 있소! 퀴즈라도 낸 거요?”
“아직 라이오스나 다른 사람들에게 까지 알릴 만한 이야기가 아니야.”
“거, 나한테까지 숨길 이유가 뭐가 있소! 거참 섭섭하구만.”
“시기가 되면 말하려고 했어. 널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직까지 확실한 게 없어서 그래. 위험한 일이기도 하고. 아무튼 간에 들켰으니 어쩔 수 없네. 네 말이 전부 맞다, 덕구야. 푸핫. 네 말대로 우리는 정하얀과 나 여기 있는 소라는 오늘 떨어진 마법의 주동자를 찾고 있었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떤 결론에 도달했거든.”
“아니 그래도….”
“너무 섭섭해하지 마라. 전부 생각이 있어서였으니까. 일단 다시 한번 안쪽의 상황을 살펴봐야 할 것 같으니까 안의 조사가 끝날 때까지 누군가 오는 사람이 없는지….”
“경계라도 서라, 그 말이요?”
“그럼. 믿고 맡길 수 있는 게 너 밖에 없다. 덕구야, 할 수 있겠지?”
“당연히 할 수 있다마다! 그런 일이라면 맡겨주쇼! 이 동생이 개미새끼 한 마리도 접근 못 하게 든든히 버티고 있을 테니까! 아암 든든히 버틸 거라니까!”
“키야! 믿음직스럽다, 우리 덕구!”
“거 믿음하면 박덕구 아니요! 형님이 그렇게 말하니 어깨가 무거워 지는구만!”
사정없이 고개를 끄덕이니 방패를 치켜 올리는 박덕구의 모습이 보였다.
안기모나 김예리가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느낌. 박덕구 몰래카메라의 2탄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그럴 일이 없다.
‘이 새끼 바보 아닐지도 몰라.’
어떻게 이렇게 적절한 순간에 등장해 적절한 타이밍에 도움을 주는지 알 수 없다.
이곳으로 올 때도 그랬고 방금도 그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음의 눈으로 박덕구를 살펴봤지만 콧김을 뿜으며 방패를 들고 있는 녀석은 여전하다.
그 와중에 한소라는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애초에 일의 주동자 중 하나인 한소라는 저런 얼굴을 할 자격이 없다.
자꾸만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 느낌.
아니, 이미 슬금슬금 터져 나오고 있다.
서둘러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소라 씨는 안쪽에서 조사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네?”
“빨리요. 급합니다.”
“무… 슨 일인데요. 저, 정말로 아무 일도 없는 거 맞나요? 혹시….”
“생각하시는 거 아니니까 빨리요. 급합니다.”
“저, 저… 저, 어떻게 되는 건 아니죠? 마, 많이 화나신 거 아니죠?”
“그런 거 아니니까 빨리 들어오세요.”
“정말인가요? 정말? 저 희생되는 건….”
“그 일 때문에 부른 게 아닙니다. 일단 빨리 안으로 들어오세요. 이건 부탁이 아닙니다. 필요한 일이에요.”
“저, 정말….”
“거, 빨리 들어가 보쇼, 후배. 다 흉수를 잡기 위해서 필요한 일 아니요! 위험하다고 피하면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은… 아무튼 간에!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천인공노할 쓰레기 놈들은 없어져야 한다니까! 어디 사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형님 손에 걸려들었으니! 반드시 자기 죗값을 치를 거요! 아암! 그렇고말고! 완전 박살이 날 거라니까! 의인 이기영한테 걸려드는 순간 악당이란 악당 놈들은 벌벌 떨 거요!”
“그래. 반드시 흉수를 찾아야지. 그렇지! 덕구야, 그럼 부탁한다. 원래 범인은 꼭 현장에 돌아오게 되어 있으니까 여기로 다시 찾아올지도 몰라. 어쩌면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다는 걸 알고 있을 수도 있고.”
“괜찮으니까 맡겨주쇼. 하얀이 누님과 형님의 조사가 끝날 때까지는 단단히 버티고 있을 테니.”
박덕구의 문제는 일단락.
서둘러 한소라에게 눈빛을 보내자 정말로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동공의 안쪽으로 들어가자 초조한 모습의 정하얀을 봤는지 움찔 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나를 확인한 정하얀이 우다다 달려오는 모션을 취하자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하얀과 이쪽의 문제가 해결됐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살았어….”
심지어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기 시작.
그렇지만 여유 있게 내버려 둘 시간은 없다.
“살았어…. 다 해결된 거야.”
“전부 다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소라 씨.”
“네?”
“한 가지 일만 더 합시다.”
“무… 무슨.”
“소환 가능하죠?”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 이쪽을 바라보는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