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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19화 (318/1,590)

# 319

회귀자 사용설명서 319화

빛의 이름으로(4)

물론 녀석에게 개인적인 앙심은 없다.

다만 이쪽의 꼬리를 밟은 게 우연히 녀석이었을 뿐이다.

잠재적인 적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또한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사실 뭐가 됐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누구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지가 아니다.

이쪽이 궁지에 몰린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뿐.

지금 이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우선적인 행동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마침 적절한 타이밍에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 나타난 셈이다.

오히려 녀석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니 다른 표현이 필요 없으리라.

만약 녀석이 계속해서 활동한다면 이쪽이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다.

단기간 내에 이만큼이나 쫒아왔다.

만약 시간을 더 준다면 이 모든 일이 우리가 한 것이라는 알아차릴 것이다.

‘이놈이어야 해.’

차라리 여기 와서 다행이다.

그런 생각이 점점 머릿속에 생겨나기 시작했다.

일단은 입을 열었다.

천천히 워밍업부터 해야 되는 것은 당연.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몰아세우는 그림보다는 이런 그림이 더욱더 보기 좋다.

“정말로 당신이었습니까?”

“무, 무슨 소리를….”

얼굴에는 당황스러움이 감돈다.

이쪽이 도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는지에 대해 파악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아마 여러 가지 가능성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사항은 이쪽이 오해 아닌 오해를 하고 있다는 것.

뭐부터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입을 열어오는 게 눈에 보였다.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역시 흔적을 찾고 왔을 뿐입니다. 아니, 애초에 당신들은 어째서 이곳에… 어떻게 들어온 것인지 묻고 싶군요.”

“그게 정말입니까?”

“저희 역시 이곳에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습니까?”

“당신들을 믿지 못하는 건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기영 님. 어째서 우리가 이쪽에 있는지 묻기 전에 어째서 당신들이 이곳에 있는지부터 증명해야 할 겁니다. 당신들은 어떻게 이곳에 올 수 있었던 겁니까? 대답 여하에 따라서는 다른 방법을 동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무력을 동원해야 하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은 저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진청 님.”

‘확실해.’

아직까지는 이쪽으로 화살을 돌린 것이 아니다.

이런 종류의 연기야 자신이 있었지만 정말로 일이 생각대로 풀리자 내 자신이 자랑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물론 속으로야 교국을 의심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는 아니다.

녀석의 말대로 이쪽이 어떻게 여기에 와 있는지 설명이 되지 않으니 어느 정도 가능성을 열어두는 게 당연한 일.

뭐라고 입을 열기 전에 슬그머니 튀어나온 박덕구가 대놓고 녀석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정하얀 역시 마찬가지였다.

벌써부터 주문을 외우려고 하는 모습에는 누가 봐도 긴장감이 감돈다.

사실 나 보다는 박덕구의 연기가 더욱더 일품.

애초에 연기가 아니니 더욱더 실감이 난다.

처음 동공으로 녀석을 들어왔을 때 경악하다 못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으니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어떻게는 실수를 만회해야 한다는 정하얀의 비장함과 정말로 이 상황을 걱정하는 박덕구의 콜라보가 훌륭하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완벽해.’

만약 안기모와 김예리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더욱더 훌륭하게 미션을 수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덕구야.”

“형님.”

“일단은 경계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뭔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으니까.”

“그, 그렇지만… 일단은 경계를 푸는 건 아닌 것 같소. 혹시 저 사람이 이 커다란 괴물을 소환했을 가능성이 없지는 않으니까.”

“아니야. 함정일 가능성은 있지만 대놓고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을 거다.”

“그래도….”

“그럴 만한 사람은 아니야. 어쩌면 서로 오해가 있을 수도 있었던 것 같다. 일단은 경계 풀어. 이건 부탁이 아니다, 덕구야.”

“거, 형님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그 대신 딱 달라 붙어 있을 거요. 솔직히 이 장소에 형님을 오래두고 싶지 않다니까. 만약 저런 게 깨어나기라도 하면….”

“그, 그래요, 오빠! 악마도 그렇고… 저, 저, 저 나쁜 사람이 혹시….”

그 와중에 터져 나온 정하얀의 연기는 가관.

대놓고 그녀를 쳐다보자 입을 꾹 닫는다. ‘넌 말하지 마’라는 내 뜻을 알아차린 것이다.

얼핏얼핏 녀석을 향해 살의를 내비치는 것이 보인다.

어떻게 생각해도 정하얀을 전면으로 내세우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무튼 간에 이쪽의 발언으로 조금은 긴장이 완화되는 듯한 느낌.

내가 한 발 더 내딛자 그제야 진청 진영도 어느 정도 경계를 누그러트린 것 같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안전에 민감해하고 있는 것 같다.

마법사들은 주문을 중얼거리고 있었고 진청 역시 조용히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으니까.

‘저게 보통이지….’

내가 녀석이었어도 혹시나 이쪽이 자신들을 습격할 가능성은 있는지 고려할 것이다.

만약 이게 실제상황이고 우리가 저 악마를 소환해 놓은 것이라면 증거인멸을 위해 자신들을 습격하지 않을지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쪽이 원하는 건 녀석들의 죽음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

사실 박덕구가 아니었다면 이런 대화도 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연신 식은땀을 흘리며 악마를 두려워하고 있는 킹덕구의 모습은 정말로 우리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

“제길…. 거, 대화 나눌 거면 빨리 나누쇼. 아니, 그보다도 일단 이 자리부터 어떻게 해야 되는 거 아니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연 것은 당연지사.

물론 박덕구를 향해서는 아니었다.

“일단 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청 님. 저희는 대기 중에 떠다니는 마력의 흔적과 오늘 떨어진 마법에 남아 있는 흑마법의 잔향을 추적해 이곳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교국 차원에서 움직인 건 아닙니다. 아무래도 사안이 사안인 만큼 교국에서 파견된 조사단이 먼저 움직이기 전에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대기 중에 떠다니는 마력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일을 해결해야 했으니까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공화국 쪽에는 아직 알리지 않았지만… 마력 결계는 어떻게?”

“그건 말씀드리기 힘듭니다. 당신은 어떻게 이곳까지 다다를 수 있었습니까? 마력 결계의 파훼는….”

“저희 역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하나 한 가지 확실히 말씀드리죠. 이 일은 저희가 벌인 게 아닙니다. 지금 당장은 증명할 수 없으나 이후 본격적으로 조사를 한다면 흔적들을 읽을 수 있을 겁니다.”

‘본격적인 조사단이 오면 안 되지.’

“라이오스에는….”

“아직 올리지 않을 생각입니다. 아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일단 공화국 쪽에서 일을 처리하려고 했습니다만….”

“일이 달라졌겠군요.”

“네. 당신을 만날 거라고는 생각 못 했으니까요. 그보다… 이곳에는 언제 도착하셨습니까?”

‘떠보겠다 이거지?’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습니다. 당신들이 들어오기 불과 몇 시간 전이었고 봉인된 악마와 마법진을 발견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이쪽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걸 감지했고 저는 그를 이 사단을 낸 장본인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흔적과 어마어마한 힘을 품고 있는 존재를 소환된 채 사라질 이유가 없으니까요. 다시 한번 찾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

“오늘 있었던 마법으로 끝내지 못한 어떤 목적을 끝내려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전혀 다른 목적이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말해 공화국의 자작극일 확률에 대해서도 떠올려 본 것은 아니지만….”

“죽은 것은 공화국의 이방인들입니다, 명예추기경. 말조심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말실수가 있었군요.”

“단언컨대 공화국은 이번 일과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교국과 공화국의 싸움을 부추기는 제3세력이 존재한다는 가정이 더 설득력 있을 겁니다. 만약 정말로 당신이 주장하는 대로 이번 일과 교국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 말입니다.”

“제3세력.”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입니다. 하지만 마력 결계와 오늘 떨어진 마법 그리고 눈앞에 있는 악마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보면 이건 한 집단의 소행일 가능성이 큽니다. 단순한 추측일 뿐이지만… 흑마법사 클랜의 작품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설득력이 없지는 않군요. 흑마법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게 없지만 그래도 저희가 눈으로 보고 있는 대상이 보통 존재가 아니니….”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던 바로 그 때였다.

갑작스레 동공에 묵직한 기운이 내려앉은 것.

위험을 가장 먼저 감지한 것은 박덕구다.

정말로 깜짝 놀란 얼굴로 우리를 챙긴다. 아마 본능적으로 나온 행동이리라.

진청 일행 역시 크게 뜬 눈으로 일단 녀석을 바라보는 중.

혹시나 무언가 움직임이 있을지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커다란 악마의 감긴 눈이 천천히 떠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봉인된 게… 아니었…. 전투 준비! 전투 준비!”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땅 밑에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외관을 지닌 괴물들이 튀어나온다.

“제기랄….”

진청 역시 크게 당황한 표정이다.

박덕구는 정말로 놀랐는지 최대한 방패를 휘두르기 시작했는데, 혹시나 박연주 때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불안해하는 듯 보였다.

정하얀은 다소 과장된 연기로 입술을 꽉 깨물었고 이쪽 역시 호응하며 진영을 만들기 시작.

“함정? 진청 님, 일단은 이곳을 함께.”

“네. 그렇게 하는 게….”

“어….”

“어?”

둘 모두 깜짝 놀란 듯한 표정을 취한 것은 당연지사.

나는 연기였지만 녀석에게는 실제 상황이었다.

저렇게 의아해하는 것도 당연하다.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눈으로 보고 있다면 저런 감정을 표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확히 교국의 진영 쪽을 위협하고 있는 이형의 괴물들.

그에 비해 진청과 그의 똘마니들은 오히려 괴물들에게 보호받고 있는 듯한 모양새다.

“저… 정말로 당신이었습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아니….”

“이… 쓰레기 같은 놈! 네놈이 어떻게 사람의 탈을 쓰고 이런 짓을!”

잔뜩 흥분한 듯한 박덕구의 목소리는 덤.

“이게 무슨….”

“처음부터 이쪽을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이었던 겁니까?”

“그게 아닙니다. 뭔가 오해가.”

“정말로 라이오스에 마법을 떨어뜨린 것도… 당신이 한 짓이라는 겁니까?”

“오해입니다. 지금 상황은 저희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그렇지만 몬스터들이 공격하는 것은 우리뿐이다.

모든 게 다 연기였지만 제법 박진감 넘치는 표정으로 방패를 휘두르는 박덕구 덕분에 실감이 난다.

녀석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이번 사건 해결에 숨은 일등공신은 녀석이라 할 수 있으리라.

“제길. 전투 준비! 전투를 준비해!”

그와 동시에 눈앞에 있는 악마 군주 역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나의 계약자, 진청이여. 너의 바람은 이루어질 것이다. 어서 이 봉인을 풀어라! 그렇다면 더 큰 힘을 손에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거짓과 선동의 군주다운 타이밍 이었다.

그 이후에 튀어나온 것은 녀석의 욕설.

머리가 잘 돌아가는 녀석인 만큼 이쪽이 뭘 원한 건지 깨달은 것이다.

“이 쓰레기 같은 놈이!!!!!”

시작부터 끝까지 모든 게 즉흥이기는 했지만 마치 자로 잰 것만 같은 설계였다.

-힘을 원하는가! 진청! 네가 원하는 건 모두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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