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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22화 (321/1,590)

# 322

회귀자 사용설명서 322화

라이오스의 영웅(1)

도시에 검붉은 구체가 떨어지는 순간 마리나는 그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뭔가 커다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인지할 수 있었다.

사방에서 비명이 들려왔으니까.

“모두 지하로 들어가세요! 반복합니다. 모두 지하 대피소로 들어가세요! 실제 상황입니다. 훈련이 아닌 실제 상황입니다. 가까운 보호 마법이 펼쳐진 지정 건물로 들어가세요. 반복합니다. 지하대피소 혹은 보호 마법이 펼쳐진 지정 건물로 들어가 대기하세요!”

“꺄아아아아악!”

“신이시여. 신이시여.”

“뭐 하고 있는 거야, 마리나. 피하라는 말 안 들려? 지금 빨리.”

순간적으로 옆에서 들려온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꿈처럼 느껴졌던 주변 풍경이 여전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레아.’

내 딸.

집에 혼자 남겨져 있을 딸이 떠오른 것이다.

‘제발… 신이시여. 제발.’

뒤에서 계속해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멈출 수 없었다.

허겁지겁 뛰기 시작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지만 반도 이르지 못한 느낌.

반대쪽으로 도망치는 사람들 덕분에 나아가기 요원했다.

모두 대피소 혹은 아직까지 보호 마법이 유지되는 곳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으리라.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혼자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마리나!”

“놔! 놔요! 이거 놔!”

“일단은 대피소로 가자. 레아도 이미 몸을 피했을 거야. 빨리….”

“이거 놓으라고 했잖아요. 제발. 이거 놔요. 제발… 확인이라도 해야 돼요. 안전하게 피했는지 확인이라도 해야 한다고요!”

“제길. …여기서 기다려.”

“제임스?”

“최대한 빨리 다녀올게. 여기서 기다려. 아니, 안전한 곳에서 기다려.”

“아….”

황급히 반대쪽으로 뛰어가는 제임스의 모습이 보였다.

당연히 함께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 문제.

공포 때문인지 아무리 힘을 줘도 풀려 버린 다리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다.

“제발 무사하기를…. 사랑하는 레아와 제임스 둘 모두 무사하기를 제발….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발.”

기다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마치 수 시간을 기다린 것만 같다.

불안함에는 자꾸만 눈물이 흘러나왔고 턱과 다리가 덜덜덜 떨려왔다.

서서히 도시에 닿기 시작한 구체는 마치 모든 걸 집어삼킬 것처럼 대지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아주 조금 남아 있는 희망이 사라질 즈음에 저 멀리서 레아를 안고 있는 제임스의 모습이 비쳤다.

커다란 목소리로 입을 때려고 한 바로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앙!!

어마어마한 소리와 함께 검붉은 구체가 시계탑과 부딪친 것.

커다랗게 들려오는 굉음 때문에 귀가 아프게 느껴진다.

“위험해! 제임스! 위험!”

순간적으로 하늘을 바라본 것이 당연.

거대한 탑의 파편이 떨어지자 레아를 꽉 안은 채로 엎드리는 제임스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두 명이 순식간에 파편 무더기에 깔리는 그림은 상상하기도 싫다.

하지만 잠시 후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려고 한 비명이 차마 목구멍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마치 얼어버린 듯.

시간이 정지한 것 같다.

“아, 안 돼!!”

차마 두 눈으로 볼 수 없었다.

눈을 꽉 감고 울음을 터뜨리자 신기하게도 희미하게 딸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

“엄마… 엄마….”

‘뭐… 야.’

어떻게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천천히 눈을 뜨자 도시를 빛 무리가 감싸고 있는 것이 보인다.

탑에서 떨어진 파편 역시 그 빛 무리에 휩싸여 점점 더 밖으로 밀려나고 있었다.

찬란한 빛.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찬란한 빛이다.

레아는 조심스럽게 옷깃을 잡아당기고 있었고 제임스도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하늘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와주신 거야.’

기도가 닿았다.

신에게 드린 기도가 닿았다.

“기적이다. 기적이야.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레아…. 레아!”

“아니야. 마리나 기적이 아니야.”

“네?”

“기적이 아니야…. 이건… 기적 같은 게 아니야.”

레아를 꽉 껴안으며 저도 모르게 제임스의 시선을 따라간 것은 당연.

두 눈에 비친 것은 참혹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형님! 형님! 조금만 참으쇼. 조금만! 조금만 버티면 될 거요!

-아아아아아아아!!

-이 더러운 놈들! 제길. 제길! 형님!! 조금만 더 버티면 지원이 올 거요! 그때까지만 버티쇼. 너무 무리하다가 죽으면 안 되는 거 알고 있는 거요? 너무 무리하지 마쇼. 내가 경고했소. 너무 무리하다가 쓰러지면 내가 용서 안 할 거요. 내가 용서 안 해!

눈앞에 보이는 장면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 참혹함에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제임스… 저거….”

“어떻게 된 일인지는 나도 잘 몰라, 마리나. 하지만… 교국에서 온 이들이 악마와 맞서고 있는 것 같아. 지금 도시를 감싼 빛 무리 역시 그들이 만든 것 같고. 여신의 거울이라고…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정말로 보게 될 줄이야.”

“위험해 보이는 것 같….”

그 말 그대로였다.

누가 봐도 아슬아슬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수많은 악마들에게 둘러싸인 채 방패와 검을 휘두르는 덩치 큰 남자.

그는 자신의 안위를 챙기기보다는 뒤에 있는 이들을 지켜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크고 작은 이형의 괴물들을 방패로 후려치거나 검으로 베지만 주변을 가득 채운 어마어마한 숫자에 이미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지 오래.

저 상태로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정도니 다른 표현이 필요 없으리라.

점점 더 포위망을 좁혀오는 괴물들이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자 이제는 몸으로 공격을 막아섰다.

팔을 물어뜯기고 다리를 절면서도 자신의 안위는 걱정하지 않은 채 궁지에 몰린 동료들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조금만 더 버티쇼. 조금만. 이번에는… 이번에는 꼭. 이번에는 꼭 상처 하나 없이 데려갈 거요. 그때 같은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거요!

-아아아아아아아!!!

-지난번처럼 그런 식으로 마무리하게 두지는 않을 거요. 그렇게 무기력하게 가만히 있지는 않을 거요! 그렇게 멍청하게 바라보고만 있지 않을 거란 말이요! 이 더러운 자식들아!! 형님한테는 손가락 하나 못 댄다. 개자식들… 개자식들! 이쪽으로 와라. 이쪽으로 와!!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덩치 큰 청년의 눈에 한가득 고인 눈물이 고통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바보라도 알 수 있으리라.

저것은 불안감이라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그에게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자신보다 더 고통스러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불안이다.

그 말 그대로다.

눈에 보이는 상처는 방패를 든 덩치 큰 청년이 많은 것 같았지만 옆에 있는 검은 머리 여자 역시 정상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말라비틀어진 손으로 다가오는 이들을 향해 마법을 쏘아 보내고 있다.

누가 보아도 위태로워 보인다.

걸어 다니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을 것 같다.

온몸이 마치 악마에게 먹혀버린 듯 처참하다.

피부가 갈리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마치 기포가 터지는 것처럼 몸에 있는 피부들이 터져나가고 있는 것이 보인다.

-허억. 허억. 하아…. 조금만, 조금만 버티자. 조금만. 거의 다 끝났어. 조금만 더 버티자. 아직 쓰러지면 안 돼. 소라야, 넌 할 수 있어. 쓰러지지 말자. 절대로 쓰러지지 마. 아직 조금 더 할 수 있어.

저들이 어떤 힘을 사용하는지에 대해서는 당연히 알지 못한다.

하지만 혼잣말을 하는 저 여자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 이상하리라.

겉으로도 알 수 있을 정도.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으로, 그녀 역시 어떻게든 그 안에 있는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형님, 형님!

-잘되고 있어요. 모든 게 잘되고 있어요.

그들이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감싸고 있는 이들 역시 눈에 보인다.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

둘은 서로 두 손을 꽉 잡은 채 하늘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누구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저 둘이 지금 이 도시에 떨어지고 있는 검은색 구체를 막아서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그 누구라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도시를 감싼 찬란한 빛처럼 그 둘 역시 온몸이 빛나고 있었으니까.

-아아아아!!

입과 코에서 울컥 피를 토하며 빛의 방패를 유지하고 있는 여자.

-으아아아아아아!!

마찬가지로 가슴을 부여잡으며 함께 빛을 쏘아 보내고 있는 남자.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

그리고 방패를 든 덩치 큰 남자의 말에 현재 저들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무리하면 마쇼. 이대로 죽으면 정말로 용서 안 할 거요! 이대로 둘이 먼저 가버리면… 끄윽…. 정말로 용서 안 할 거요! 나도 따라 죽을 거라 이 말이요!

-아아아아아아아아!!

-힘들면 포기해도 된다니까… 아무도 형님이랑… 끄윽. 누님을 비난하지 않을 거요. 아무도 비난하지 못할 거요. 이미 할 만큼 했다니까. 끄으윽… 이미 할 만큼 했소.

-집중해, 덕구야. 집중해라. 쿨럭.

-혀, 형님.

설상가상으로 남자 쪽이 피를 토하기 시작한다.

-돌아보지 말고 집중해! 나는 괜찮아. 나는 괜찮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계속해서 피를 토하면서도 마법을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여자 역시 눈에 보인다.

-죽지 마쇼…. 제발 부탁이요. 제발… 제발…. 신님. 신님. 하느님. 부처님. 베니고어 여신님. 제발. 형님이랑 누님 좀 살려주쇼. 제발… 제발 있다면 끄윽…. 제발. 우리 착한 형님이랑 누님 데려가지 마쇼. 제발… 평생을 이렇게 산 사람들이요. 제발 이런 걸로 데려가지 마쇼! 이런 걸로 죽는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소? 너무 억울한 것 같다니까!!

-아아아아아아아!!!

-차라리 내가 대신 죽을 거라니까. 차라리 나를 데려가쇼. 차라리… 데려갈 거면 나를 데려가쇼. 끄으윽…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빛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덩치 큰 청년이 이제 포기해도 된다고 괜찮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를 가득 메운 빛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위, 위험한 건가요? 저분들이…. 제임스, 위험한 건가요?”

“죽을 수도 있어.”

“네?”

“아니…. 이미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야. 몸 안에 있는 모든 마력을 뽑아서 사용하고 있는 게 틀림없어. 나는 고블린밖에 잡아본 적 없는 하급 용병이지만… 그 정도는 알고 있어. 이건 인간이 발현할 수 있는 종류의 마법이 아니야. 아마도… 이 도시를 지켜낸다고 해도. 이 마법을 발현시킨 저 두 사람은… 죽을 거야.”

“어… 째서 그렇게까지….”

“나도 몰라. 나 같은 사람들은 평생을 가도 저런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왈칵 눈물이 튀어나왔다.

계속해서 소리치고 있는 덩치 큰 남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발….’

옆을 바라보자 살며시 손을 모으고 있는 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

옷깃을 잡아당기며 자신과 함께하자는 듯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기도하자는 것처럼 말이다.

조용히 하늘을 향해 손을 모으며 눈을 감은 것은 당연지사.

‘무사하기를…. 제발 저 숭고한 이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는 일이 없기를….’

그 직후.

분명히.

틀림없이 우연이겠지만.

기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광경이 시야에 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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