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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23화 (322/1,590)

# 323

회귀자 사용설명서 323화

라이오스의 영웅(2)

‘할 만큼 했다! 완벽했다, 덕구야! 미안하긴 한데 네가 캐리했다!’

아무리 연기가 박진감 넘친다고 한들 진짜보다 생동감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정말 이걸 영화로 만든다면 박덕구는 남우조연상까지 노릴 수 있을 정도로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었다.

눈물이 글썽글썽 한 채 동료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인 모습은 그야말로 처절함 그 자체였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것이 조금 가슴 아프기는 했지만 워낙에 튼튼한 녀석인 만큼 며칠 안으로 체력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

오히려 문제가 되는 건 정하얀과 한소라다.

‘나도 문제가 있고.’

참으려고 해도 계속해서 울컥 울컥 피를 토하고 싶은 상황.

얼마 없는 마력으로 정하얀을 보조하려고 하니 이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리라.

사실 내가 준 신화 등급, 빛의 연금술사로 전직하지 못했다면 정하얀도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이쪽이 나누어 주는 마력이 그녀의 몸을 회복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하는 게 맞다.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몸 안에 있는 마력을 소진한 것도 모자라 생명력까지 소진하고 있는 셈.

마력을 소비하면서도 마력을 회복하는 정하얀의 괴물 같은 친화력도 친화력이었지만 신성력의 성질을 띠게 된 내 마력이 아니었다면 이미 내부가 완전히 망가져 리타이어했을 거라는 거다.

‘아니 그 이전에….’

저 벨리알이 완전하게 소환된 형태였다면 이미 도시 안으로 마법이 떨어지고도 남았을 터.

아무튼 간에 중요한 것은 나와 정하얀이 진청의 부름을 받아 소환된 악마의 마법을 훌륭하게 막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흑마법에 대해서는 쥐뿔 아무것도 모르지만 악마군주가 현세에 머무르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누가 봐도 슬슬 마무리를 해도 괜찮은 타이밍인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

슬그머니 벨리알을 바라보니 녀석 역시 은근슬쩍 고개를 끄덕여 오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형님, 너무 무리하지 마쇼. 조금만 더 버티쇼.”

그 와중에도 폭풍 눈물을 쏟으며 방패를 휘두르는 박덕구의 모습은 내가 봐도 숭고하게 느껴진다.

아무튼 간에 빛 무리에 휩싸인 나와 정하얀을 진청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보았다.

이미 이쪽을 제거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는 상황.

악마에게서 도시를 구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정하얀과 내 모습이 미디어를 타고 나간 순간, 이미 이 설계는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차라리 제발 공격해 줬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벨리알이 쳐놓은 어둠의 장막 때문인지 공격 마법 역시 캐스팅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자신들을 호위하는 이형의 괴물들 때문에 바깥으로 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 무척 난처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 극한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진청의 이름을 외치고 있는 악마군주 벨리알의 찾아가는 서비스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계약자여, 아직 부족하다. 아직 부족해. 빛에 지지 마라, 계약자여!

“제기랄. 제길….”

이제 슬슬 끝내야 되는 타이밍이라는 걸 서로가 인지한 것은 순식간.

이미 하늘이 뚫려 동공이라고 부를 수 없는 장소도 천천히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증거라고 걱정했던 모든 것이 빛 무리에 휩싸여 터져나간다.

정하얀과 한소라가 만든 이 장소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박덕구를 끈질기게 괴롭히던 악마들 역시 빛의 영향을 받아 허물어지고 심지어는 우리가 밟고 있는 땅바닥 역시 움푹 파인다.

어마어마한 마력의 영향인지 몸은 공중으로 살짝 떠오르고 빛은 어둠의 장막을 걷는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

뭐라 표현하기 힘든 소리.

‘빛의 용사네. 빛의 용사야 아주.’

“아아아아아아아!!”

마지막 남은 한줌의 마력까지 모조리 정하얀에게 털어 넣자 정하얀 역시 조금 더 출력을 올린 것은 당연지사.

하늘을 감싼 검붉은 색의 마력이 빛의 방패의 영향을 받아 갈라진다.

‘키야. 장관이네. 장관이야.’

찬란한 빛이 어둠을 집어 삼키는 장면은 마치 신화 속에서나 나오는 아름다운 광경.

이쯤 되면 모두가 이 모습을 보고 기도를 올리고 있으리라.

라이오스는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교국에서는 커다란 함성과 함께 지지 말라는 목소리가 튀어나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러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써먹어야 할 대사를 일발 장전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

하늘을 수놓은 찬란한 빛이 점점 검붉은 구체를 집어 삼킬 즈음에 정하얀은 내 손을 꽉 잡고 다시 한번 소리를 질러댔다.

사실 이쪽은 소리를 지를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일단 장단에 맞춰주는 것이 좋다.

“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

마무리가 다가왔다는 걸 눈치챘는지 벨리알 역시 최후의 연기를 선보인다.

박덕구 못지않은 처절함이었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이놈들이… 감히! 네놈들이 이 나를! 이 악마군주를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냐! 계약자 진청이여, 어서 남은 힘을 쏟아 부어라!

여기서는 잠깐 당황한 악마소환사의 얼굴을 클로즈업.

도시를 노리는 공격이 힘을 얻는 장면 또한 한 번 더 클로즈업.

열정적인 카메라우먼 한소라의 화면 전환 능력이 포텐이라도 터진 것처럼 자연스럽다.

-우윽…. 더러운 빛의 졸개들이. 제기랄…. 제길! 제길!! 감히 인간 따위가!!

“아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최후의 힘을 폭발시키는 듯한 강한 연출.

나 역시 정하얀의 손을 꽉 잡은 채 한계까지 내 몸을 몰아넣는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찾아온 정적.

이후에 하늘을 가득 메운 것은 폭발적인 빛.

말 그대로 빛의 폭발이라는 단어가 아닌 것으로는 저 광경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들 지경.

천천히 되돌아온 시야에 검붉은 구체는 이미 없다.

대신 자리한 것은 중립국 라이오스로 떨어지기 시작한 빛의 가루들.

정하얀은 추욱 늘어지기 시작했고 이미 오래전에 한계를 넘어선 한소라 역시 피를 토하며 부들부들 발작을 일으켰다.

박덕구는 방패를 들고 혹시 모를 진청의 공격에 대비한다.

나 역시 쓰러지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조금은 더 서 있어도 될 것 같은 분위기.

적어도 눈앞에 보이는 상황을 완벽하게 마무리하기 전까지.

긴장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된다.

하지만 도시 전체를 울리는 커다란 함성에는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간다.

여론이 완전히 이쪽에 자리 잡은 것이다. 그 함성에 벨리알 역시 천천히 역소환의 과정을 겪으며 마지막 대사를 치기 시작했다.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인간.

물론 나에게 따로 들리는 목소리는 덤이다.

[오늘 일은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역겨운 인간. 조금 더 화려하게 일을 끝내기도 했고 결과적으로는 네게 좋은 일이 된 것이 아닌가. 명색이 거짓과 선동의 군주가 뒤통수를 맞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조금 장난을 친 거라고 알아줬으면 좋겠군.]

장난지고는 그 정도가 조금 심하기는 했지만….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야. 정말로 수고하셨습니다. 위대하고 존경스러운 벨리알 님. 언제 시간이 나신다면 자리라도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데….’

[끄응…. 점점 더 탐이 나는군.]

‘저도 벨리알 님과 함께할 날만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암요. 그렇고말고요.’

[영웅 등급의 퀘스트를 생성됩니다. 악마군주랑 말 섞지 말라고 했지.(0/1)]

[그럼 나는 이만 들어가 보겠다. 현세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적기도 하고… 아무튼 네 말처럼 정말로 다시 만날 날이 왔으면 좋겠군.]

‘편안한 밤 되십시오, 벨리알 님.’

-나는 다시 찾아올 것이다. 잊지 마라, 인간들이여. 오늘이 마지막일거라 생각하지 마라!

끝까지 화려하게 마무리해 주고 계신 벨리알의 모습은 열일하는 사장님의 정석이다.

빛의 휩싸인 채로 역소환 당하는 모습 또한 굉장히 장엄했다.

그 와중에 도시를 응시하는 타오르는 불길의 눈동자도 공포감을 심어주기에는 충분.

일단은 고마움을 표현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아마 이번 사건으로 인해 저쪽 역시 얻는 게 있었을 것이다.

거짓과 선동의 악마가 전 대륙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데 함께 했으니 녀석의 말대로 실적이라는 게 올라갔을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이미 떠나버린 악마군주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규격 외의 존재에게 감금 아닌 감금을 당하며 이 상황을 시청하고 있었던 눈앞의 진청이 이제는 더 중요해졌다.

‘슬슬 사람들이 올 때가 됐는데.’

빛의 진영은 완전히 리타이어 직전의 상황.

그나마 박덕구가 방패를 들고 최대한 우리를 보호하려고 하지만 녀석 또한 위태롭다.

그와 대비해서 어둠의 진영은 상대적으로 말끔한 모습을 선보이고 있으니 지금 이 타이밍에 공격을 받는다면 위험한 것이 당연하다.

악마소환사 진청은 그 여파에도 불구하고 마력을 소진한 기색이 없다.

‘저거 잡아 처넣으면 모든 게 끝나.’

때마침 들려온 것은 다수의 발자국 소리.

붉은용병 길드와 차희라, 요조라 길드와 카스가노 유노가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후에 일이 어떻게 될지 절로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

물론 공화국에서 파견 온 조사단 쪽도 악마소환사 진청 쪽으로 헐레벌떡 달려오기는 했지만, 이미 라이오스 안에 있는 녀석들은 독 안에 든 쥐다.

예상대로 꽁무니 빠지게 도망가려는 뒷모습이 보인다.

나였어도 라이오스에서 조사를 받는 선택지는 피하고 싶었으리라.

이토 소우타와 마찬가지로 악마관계자들의 마지막은 항상 도망치기.

이것이 빛을 등진 저주받은 어둠의 최후라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온다.

“악마소환사가 도망친다! 악마소환사 진청이 도망친다! 푸핫. 악마소환사가 도망친다!”

가슴 속에서 토혈이 올라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

울컥 하는 소리와 함께 튀어나온 혈액.

순식간에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제대로 들리지가 않는다.

삐이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이 멍하다. 마치 렉이라도 걸린 것처럼 몸도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어어어?”

슥슥 코를 닦으니 코피가 흘러내리기 시작.

“제기랄…. 놓치… 지 마…. 악… 사….”

심지어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아프지는 않다.

‘이러다가 뒈지는 건 아니겠지.’

무리하게 마력을 사용한 출력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

아마 며칠 후면 푹 쉬고 일어날 수 있으리라.

“혀, 형님! 형님! 형님!!”

울부짖고 있는 박덕구의 얼굴도 흐릿하게 보인 것은 당연지사.

“하얀이랑… 한… 소라… 따로 챙겨. 카스가노 유노한테… 맡….”

“알겠다니까. 말하지 마쇼. 알겠으니까 말하지 마쇼!”

“악마 소환사… 꼭 잡아….”

녀석의 목소리뿐만이 아니다.

차희라와 카스가노 유노의 목소리도 섞여서 들려온다.

“주인… 정신을… 차리….”

“괜찮아? 자기? 괜찮… 은 거 맞아?”

삐이이이이 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리기 시작. 이제는 진짜 한계다. 정말로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이거 쓰러질 때도 잘 쓰러져야 되는데….’

일단은 목에 걸려 있는 로자리오를 꽉 쥔 것은 당연.

바젤 교황은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되리라.

선 채로 기절하는 연출도 선보이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하기는 했지만 역시나 그건 너무 과하다.

나름 괜찮은 것 같은 선택지는 정하얀을 보호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것.

함께 빛에 휩싸인 동료인 만큼 이건….

‘먹히겠지.’

주변이 조금 시끌벅적해지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이후에는 그마저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전설 등급의 퀘스트가 완료.]

[위기에 빠진 라이오스를 구해 최대한 빨리. 이 나쁜 놈.(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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