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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27화 (326/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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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 327화

라이오스의 영웅(6)

모든 일은 완벽하게 마무리됐지만 뒷마무리가 조금 찝찝하다.

아니, 사실 짜증나는 마음보다는 기쁜 마음이 더 크기는 했다.

결과적으로 생각해 보면 진청을 놓친 것 말고는 모든 게 이쪽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악마소환사가 버젓이 살아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그렇고 라이오스의 국민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공화국에 정식으로 악마소환사 진청을 넘기라고 요청을 했지만 아직은 묵묵부답.

사태를 조금 더 긴밀히 파악하겠다는 말 이외에는 들려오는 이야기가 없다.

물론 정황을 긴밀히 파악하겠다는 공화국의 발언은 변명이요 개소리다. 저들이 뭔가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우리가 악마와 대적했던 그 장소는 이미 지도에서 지워져 있었고 빛 무리 이외에는 그 어떤 흔적도 남지 않았다.

심지어 라이오스에서는 공화국의 인사들이 넘어오는 것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

남은 증거라고는 이토소우타의 심증과 우리가 찍어놓은 여신의 거울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해도 저들이 정황을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소리를 지껄인다는 것은 어떻게든 진청을 보호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거라 해석해도 상관없으리라.

공화국이 교국만큼 흑마법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일어난 사건은 중립국 전체에 영향을 끼칠 만한 사건이다.

공화국의 이방인들 역시 죽었고 어떻게 보면 국제 문제로 얽힐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이런 모든 배경에도 불구하고 공화국은 일단은 진청의 이야기를 듣고 녀석을 보호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더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녀석은 이번 사건에 대해 해명하는 동시에 자신의 죄를 나에게 뒤집어씌우려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워낙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는 이쪽에게 폭탄이 떨어질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하지만 그래도 원한을 가지고 있는 상대가 살아 있다는 점에서는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는 상황.

물론 이쪽에서도 열심히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악마숭배자 이토소우타에게는 조금 미안하기는 하지만 최근 녀석의 이름이 자꾸만 거론되는 이유였다.

“악마숭배자 이토 소우타. 그리고 이번에는 악마소환사 진청이라니….”

“…….”

“혹시 명예추기경님께서는 뭔가 두 사람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아마… 없다고 하기는 힘들 겁니다. 둘이 언제 접촉했는지, 원하는 건 무엇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가 같다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요. 어둠은 이미 우리 대륙에 깊숙하게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흑마법사들로만 이루어진 집단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진청의 꼬리를 밟은 건 어디까지나 우연이었지만….”

“교황청에서 생각한 것보다 상황이 더 심각한 것 같다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거군요.”

“네. 아마 그들만의 소통 창구가 있을 겁니다. 현재 공화국에서 진청을 보호하고 있는 걸로 봐서는 공화국 역시 그 뿌리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최악의 경우에는 이미 완전히 물들었다고… 생각하는 게….”

“벌써 그렇게까지… 신이시여….”

“교국의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그 누구도 이토 소우타가 악마숭배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실리아에서 활동했던 그 오랜 기간 누구도 이토 소우타가 악마숭배자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토 소우타가 그대로 교국을 집어 삼켰었다면 저희 역시 지금의 공화국과 비슷한 포지션을 취할 수밖에 없었겠죠. 어쩌면 교국 역시 라이오스처럼 커다란 위협을 마주하게 됐을지도 모릅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군요.”

“공화국뿐만이 아닙니다. 각 국가나 도시에도 악마의 손길이 닿은 곳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네. 틀림없어요. 분명히 그럴 겁니다. 일단 제가 이번 일에 대해서 보고서를….”

“아! 명예추기경님. 그럴 필요 없으십니다. 마음만은 감사하지만 지금은 일단 명예추기경님의 몸을 회복하는 것 최우선으로 생각해 주세요.”

“네? 하지만….”

“교황성하가 직접 전하셨습니다. 명예추기경님께서 분명히 정신이 든 이후 곧바로 움직이실 거라고 하시면서… 절대로 무리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 가지로 걱정이 많으시다는 건 이해하지만 몸을 충분히 쉬게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명예추기경님께서 얼마나 교황청과 베니고어 여신님을 생각하시고 계시는 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런 상황에서 다시 여신님의 전선으로 뛰어드는 것은 여신님께서도 원하시지 않을 겁니다. 일단은 몸을 회복하는 게 먼저입니다.”

“…….”

그 와중에 조금 짜증 났던 점은 이쪽의 움직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

엄살을 부린 것으로 엄청난 효과와 이득을 챙기기야 했지만 이쪽을 과잉보호하는 이들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던 탓이다. 사실 이런 상황은 교황청 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오스칼 님.”

“둘이 있을 때는 아리스 시녀라고 불러주신다고 하셨잖아요, 명예추기경님.”

“아. 네. 아리스 시녀님. 제가 실수했군요. 하하.”

“어떻게. 차는 입맛에 조금 맞으세요? 다과도 조금 준비했어야 하는데 급하게 오느라 시간이 없어서….”

“하하. 괜찮습니다. 오랜만에 아리스 시녀님이 타주시는 차를 먹으니 벌써부터 몸이 회복되는 기분입니다. 그보다 중립국과의 동맹은….”

“네. 잘 진행되고 있어요. 일부 이 종족 왕국 역시 저희와 뜻을 함께 하는 걸 원하고 있기도 하고… 아니, 이건 잊어주세요. 지금 당장은 몸을 회복시키는 게 최우선인데 제가 또 일 이야기를 드렸군요. 명예추기경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지금은 안정을 취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지금 상황이….”

“못미더워하신다는 걸 알지만 저희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아리스 시녀님….”

“폐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서 일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주신다면….”

교국의 지도자 아리스 시녀, 아니, 오스칼도 마찬가지였고 심지어는 김현성 역시 이쪽을 아기 새를 보호하듯 보호하기 시작했다.

이번 일이 녀석에게도 충격적이었는지 간이고 쓸개고 전부 줄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성 씨, 이제 슬슬….”

“아닙니다. 기영 씨. 아직 조금 더 누워 계셔도 됩니다. 길드와 관련된 업무는 혜진 씨와 희영 씨가 함께 봐주시고 있습니다. 저 역시 힘쓰고 있고요. 그동안 너무 정신없이 달려오셨습니다. 조금 더 쉬셔도 됩니다.”

사랑스러운 회귀자가 따뜻한 눈빛을 발사하며 몸을 쉬라고 종용하고 있기는 했지만….

‘너, 정치 감각 제로잖아.’

걱정이 없이 지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나마 믿음직스러운 우리 조혜진과 선희영이 열심히 움직여 주고 있는 덕분에 현 사건과 관련된 사항들이 스무스하게 풀리고 있는 느낌.

사실 깨어나고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었지만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지는 성격상 여러 가지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누워 있는 와중에 영웅들을 기리는 동상이 라이오스의 광장에 올라가고 있었고 심지어 연금술사와 천재검사가 사랑하는 법 6권이 라이오스에 등장했다.

광장에 세워지는 동상이 점점 뚜렷한 모습을 되찾는 모습이 눈에 보일 때마다, 돌아다니는 라이오스의 시녀들이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됐다.

실질적으로 그리 많은 시간이 지난 것은 아니었지만 교국에서 유행하던 베스트셀러가 라이오스를 강타한 것을 보면 짧은 시간이 흐른 것도 아니다.

‘도대체 뭔 소설인 거야. 그렇게 재미있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하니 신기한 것은 당연.

아무튼 간에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이쪽을 둘러싸고 있는 일은 점점 변하고 있다는 거다.

사실 악마소환사의 다음 움직임이 어떨지에 대한 불안감은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공화국은 묵묵부답.

이 즈음에 나 역시 대외적인 일을 완전히 손에서 놓아버렸다.

‘교국이 그렇게 무능하지는 않지.’

이미 상다리 부러지게 밥상을 차려 눈앞에 대기시켜 놓은 상황, 만약에 이런 상황에서도 성과를 올리지 못한다면 내 미래를 위해서라도 다른 왕국으로 망명을 가는 게 맞다.

‘대신….’

외부보다는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준신화 등급, 빛의 연금술사라는 직업에 대해 파악하기 위해 연구일정을 잡은 것은 물론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우기 시작했다.

또한 사랑스러운 회귀자를 둘러싸고 있는 문제의 해결.

정하얀이나 차희라를 비롯한 관리가 필요한 인물들의 관리, 이지혜와의 좌담회 등등.

여러 가지 바쁜 일로 가만히 있을 수 없는 감정을 빠르게 해소시켰다.

물론 그 와중에도 처리해야 하는 중요한 일이 있었다는 것은 두 번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죄송합니다, 주인님. 죄송합니다.”

악마소환사의 동료가 될 준비를 마친 카스가노 유노가 바로 중요한 쟁점이었다.

“아무리 죄를 물으셔도 할 말이 없습니다. 주인님께서 좋지 않게 생각하신다는 걸 알면서도 이런 선택을 한 저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

“죄송합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흐으으윽! 버리지 말아주시옵소서. 제발 소녀를 버리지 말아주시옵소서.”

조용히 바라보자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는 모습은 가관.

어떤 이유로 카스가노가 녀석을 살려 보낸 건지는 벌써 몇 번이나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미래가 꼭 맞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이번 사건으로 확인한 나는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녀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이쪽이 기절해 있을 때 여러모로 챙겨준 것도 그녀였고 이후 뒷수습과 언론 플레이에도 가장 활발히 움직여 준 것이 바로 그녀다.

대놓고 미워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지혜는 정말로 카스가노 유노를 믿을 수 있냐고 물어오기는 했지만 내 입장에서 카스가노 유노는 충분히 매력적인 패다.

하지만 카스가노 유노와 이쪽이 1회 차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혹시 통수치려고 기 모으고 있는 건 아니겠지?’

충분히 걱정할 만한 이야기라는 거다.

결과적으로 1회 차, 검은색 쓰레기 이기영은 카스가노 유노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고 카스가노 유노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녀는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누가 봐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단순히 정신이 망가진 것뿐이다.

확률은 적지만 의심이 많은 나로서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는 상황.

‘1회 차의 복수를 설계한다기에는….’

여러모로 어색한 점이 많다.

일단은 그녀의 생사여탈권을 이쪽이 쥐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나 검은색 세계를 바라보다 나에 대해 다른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의심의 시선을 거두기 어렵다.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뭐, 다시 한번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제가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였으면 좋겠군요.”

“자세히는 설명할 수 없사옵니다. 허나 진청 그자가 그 자리에서 그런 식으로 최후를 맞이해서는 안 됩니다. 주인님께서… 주인님께서….”

“…….”

“주인님께서 위험에 처할 수도 있사옵니다.”

정말로 나를 걱정하고 있을 확률이 반 이상.

하지만 나를 지옥으로 보내기 위한 완벽한 설계를 머릿속에 담고 있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여러모로 머리가 아파지는 사안이라고 생각하는 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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