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5
회귀자 사용설명서 335화
후유증(1)
‘아직 10분도 안 지났잖아!’
현재는 폐허가 된 그곳은 결코 이곳과 가깝지 않다.
말 그대로 이지혜가 사실을 전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왔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으리라.
안 그래도 높은 민첩 수치를 가지고 있는 녀석이 마력까지 사용 해가며 순식간에 달려온 셈.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온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빠르게 도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천천히 숨을 고르고 있는 김현성을 보니 무리한 게 확실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만큼이나 빨라질 수 있는 건가.’
민첩이 높은 인간들이 얼마나 빨라질 수 있는지는 악마숭배자 이토 소우타 때도 이미 느낀 바 있었지만 이정도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
아무튼 김현성의 모습에 마음 한 구석이 행복으로 꽉 찬 것은 당연지사.
어느 정도 액션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더 커다란 결과였기 때문이다.
‘한 점 부끄럼 없다!’
심지어 왕성 내부에 있는 이들보다 더 빠르게 도착할 정도였으니 다른 표현이 필요 있을까.
방금 전까지 이상한 걸 보고 있다 보니 괜스레 미안해지기는 했지만 어차피 이미 마음 속으로는 그 짓을 저지른 건 내가 아니라고 자기최면을 걸고 있는 상태.
쓰레기 같지만 현재의 나는 당당한 눈으로 김현성을 마주볼 수 있다.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군요.”
“콜록.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하 이상 없습니다. 잠깐 발작을 일으켰을 뿐입니다. …전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제가 일을 방해한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물론 알리기 싫었다는 뜻을 전하는 것은 당연.
기침도 섞어주고 당장에라도 죽을 것 같은 촉촉한 눈으로 녀석을 바라본다.
이 즈음에 대사 하나를 날려줘도 나쁘지 않으리라.
“저는 건강합니다. 일단은 하고 계신 일을 마무리 지으셔야죠.”
“아닙니다. 급한 일은 아닙니다.”
‘안 급하긴 뭐가 안 급해. 지금 그것보다 급한 일이 어디 있다고.’
하나 있기는 하다. 바로 절친한 친우가 병상에 누워 있다는 것.
‘현성아, 형도 네가 나를 이렇게까지 생각해 줄지는 몰랐다.’
튜토리얼 던전에 있었을 때와 비교해 보면 여러 면에서 변화가 있었다. 정하얀도 그렇고 나도 그렇다.
박덕구야 뭐, 변함이 없는 것 같기는 했지만 녀석 역시 조금은 달라진 점이 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달라진 사람을 손에 꼽으라면 당연 김현성이라 할 수 있으리라.
이지혜의 말처럼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녀석이 표정이 풍부해진 것이다.
지금처럼 절박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심지어는 웃음을 터뜨릴 때도 많다.
이 자식은 선천적으로 정이 많은 종류의 인간이다.
나 역시 ‘김현성’호에 합류한 동료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기는 했지만 오늘처럼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또 처음.
2회 차를 막 시작했을 때는 나름대로 큰 사명감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기야 했겠지만 사람의 본성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 자식은 기본적으로 호인이다.
‘1회 차의 일과도 연관이 있을 거야.’
조혜진뿐만이 아니라 많은 동료들을 잃었던 게 트라우마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는지 녀석은 다급하게 이쪽의 손을 잡아오기 시작.
“잠깐.”
“콜록. 정말로 괜찮습니다, 현성 씨. 단순한 발작입니다. 제 몸은 제가 제일 잘 압니다. 네. 이제는 정말로 괜찮습니다.”
타이밍 좋게 이지혜와 함께 의료진이 달려들어 온다.
그래봤자 사제 집단이었지만 순식간에 분주해진 병실의 분위기가 그럴 듯하다.
김현성의 표정도 짐짓 심각해지기 시작. 마력이 이쪽의 몸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아마 녀석 역시 딱히 발작의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애초에 발작 같은 건 없었으니까.
“저, 길드 마스터. 잠시만….”
“네.”
“저희가 상태를 지켜보겠습니다. 일단은 자리를 비켜주시는 게….”
“네. 알겠습니다.”
“이지혜 님, 혹시 상태가 어땠는지… 정확히 말씀 좀 부탁드립니다.”
“저도 정확하게는 몰라요. 갑자기 가슴을 부여잡으시더니….”
고위 사제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에 내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잠깐 발작….”
“네. 가슴 쪽을 부여잡으시더니 발작을 일으켰어요. 어째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도 너무 놀라고 당황스러워서…. 너무 고통스러워하시기도 했고요. 혹시 파란 부길드 마스터의 몸에 문제가 있는 건가요?”
“저희도 한번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만… 아마 후유증을 안고 계실 확률이 큽니다.”
“후유증 말씀이세요?”
“네. 흔한 경우는 아닙니다만.”
‘이건 또 무슨 새로운 설정이야.’
잠깐 멈칫 한 것도 사실.
하지만 걱정으로 가득 찬 김현성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후유증을 떠안고 있는 설정도 나쁘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애초에 김현성에게 짐을 집어 던지기 위한 작전의 일환이었으니 당황하기보다는 박수를 보내는 것이 맞다.
‘이 자식도 아픈 사람을 의심하지는 않을거야.’
안전장치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거다.
“마력회로가 망가진 것은 아니라고 판단해 이제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어쩌면 저희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는….”
“정확히 뭐가 어떻게 된 겁니까?”
사랑스러운 회귀자 역시 뜸을 들이는 고위사제를 비롯한 의료진의 표정에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사실 나도 도대체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저쪽에서 북 치고 장구 쳐주고 있으니 다물고 있는 게 맞다.
“너무 희귀한 경우라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할지…. 일단은 자리를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환자 분도 계시는 자리니까.”
“아뇨. 말씀해 주셔도 됩니다.”
“기영 씨.”
“괜찮습니다, 현성 씨. 제 몸이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는 알아야 하니까요.”
입을 꽉 다물고 있는 모습. 침통하다는 얼굴이 시야에 비친다.
잠깐 눈치를 보고 있는 사제단은 결심한 듯 천천히 입을 열어오기 시작.
교국을 대표하는 의료진답게 꽤나 그럴듯한 추론을 내세우고 있었다.
심지어 꽤나 예리하기까지 하다.
“혹시 명예 추기경님의 마력이 신성력의 성질을 띠게 됐다는 사실은 알고 계셨습니까?”
“네. 저는 어찌된 영문인지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전에 교황청에서 비슷한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었으니까요. 혹시 그게 문제가 되는 겁니까?”
“저도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애초에 마력과 신성력을 공유하고 있는 경우는 처음 있는 경우라…. 아마 전 대륙을 뒤져도 나오지 않을 희귀한 케이스일 겁니다.”
“네.”
“물론 신성력의 성질을 띠게 된 것이 나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명예추기경님의 몸이 빠르게 활기를 되찾아 간 것은 신성력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네.”
“하지만 보, 본래… 본래 명예추기경님의 몸과 마력회로가 완전히 망가져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가정한다면….”
“네?”
“완전히 망가졌어야 하는 몸이 정상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만약 신성력의 성질을 띤 마력 때문이라면….”
“아….”
“저희도 알지 못하는 부작용을 안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마 방금 전에 있었던 발작처럼 마력을 사용하거나 특정 행동을 동반했을 때 오는 후유증을 가지게 됐을 확률이 클 것 같습니다.”
당연히 그딴 후유증 같은 건 없다. 너무 쌩쌩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춤도 출 수 있을 정도.
하지만 저쪽에서 그렇다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완전히 망가져 가루가 될 뻔한 몸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마력의 성질을 띠고 있는 신성력!
이런 드라마틱한 설정이 또 어디서 굴러 들어온단 말인가.
이지혜는 잠깐 어처구니없다는 얼굴을 하기는 했지만 갑작스레 눈물을 쏟기 시작.
안기모나 김예리 따위는 씹어 먹을 수 있어 보이는 연기력이었다.
‘얘 진짜 장난 아닌데.’
김현성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린 것 같은 침통한 표정이다.
이 대륙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마력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저런 얼굴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대륙에서는 마력이 없는 것보다 팔이 없는 게 더 낫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니 지금의 내가 처한 상황은 마치 비극의 주인공 그 자체다.
“그럴 수가….”
“물론 아직 확답을 내릴 정도는 아닙니다. 일단 명예추기경님이 당장 마력을 운영하는 것에도 문제가 없어 보이고… 회로 자체는 멀쩡합니다. 물론 계속해서 마력을 사용하신다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가급적이면 최대한 사용을 자제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이번 같은 일이나 전처럼 격한 전투를 벌이시는 건 최대한 지양하셔야 합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뭔가 씁쓸한 내 표정은 이 분위기를 살리는 감칠맛 역할을 하게 되리라.
김현성은 굉장히 복잡한 얼굴.
눈물을 쏟지는 않았지만 부들부들 떨리는 팔이 녀석의 감정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이건 모험가로서는 사형선고나 다름이 없다.
이 긴 여정에서 낙오할 수도 있는 위기가 닥친 것이다.
슬쩍 이지혜에게 눈빛을 쏘자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눈치챈 모양.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제 역할을 다 해준 의료진을 데리고 방 밖으로 나가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물론 이쪽은 원래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슬슬 판을 깔기 시작.
지금 이 타이밍에 신파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하… 하하. 다행입니다. 몸에 큰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후유증이라고 해도 뭐 별건 아닐 겁니다. 애초에 몸이 약하기도 했고 사실 저는 마법에 재능이 있는 편도 아니었으니까요. 연금술에 마력이 크게 들어가는 것도 아니니 이전처럼 생활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물론 마법을 사용하는 데에는 영향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
“하하하. 예전처럼 활동할 수 있습니다. 현성 씨께서 많이 배려해 주신 덕분에 험한 일은 피해 오기도 했고… 몸이 조금 힘들 뿐입니다. 이전처럼 연금 마법을 사용하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네. 아예 마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니니까요.”
웃고는 있지만 현재의 내 표정은 꽤나 상실감을 안고 있는 이의 얼굴이다.
몰래카메라를 하도 한 덕분에 이쪽의 연기력도 물이 오른 느낌.
김현성이 침통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정말로 가슴 아픈 사람만 할 수 있는 표정이다.
심지어 눈이 붉어진 것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죄송… 합니다.”
‘아니, 니가 그렇게까지 하면 내가 너무 쓰레기 같잖아.’
“죄송합니다. 전부 제 잘못입니다.”
‘현성아, 이러면 내가 너무 미안해진다.’
“죄송… 합니다.”
“하하하.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 쪽에서도 단순한 추측이라고 말했고 몸은 금방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고개를 들어주세요, 현성 씨. 파란의 길드 마스터가 보여주는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른 길드원들에게 항상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셔야죠.”
“…….”
“당연하지만 오늘 있었던 일은 비밀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덕구나 하얀이가 알고 싶게 하지 않아요. 분명히 죄책감에 시달릴 겁니다. 아, 소라 씨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송… 합니다.”
“현성 씨 잘못이 아닙니다.”
아마 자신이 함께하지 못했다는 데 죄책감을 느끼는 모양.
이 자식은 뭐 별걸 가지고 다 죄책감을 느낀다는 생각도 든다.
‘이러니까 1회 차에 그렇게 뒤통수를 맞았지, 이놈아.’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은 얼마 남지 않은 양심을 사정없이 쑤셔온다.
한마디 해주는 게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당연.
이쪽의 엄살 때문에 녀석이 흔들리는 건 이쪽에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건 녀석을 더 단단히 해줄 수 있는 기회다.
본래 저런 주인공 같은 인간들은 동료의 희생 아닌 희생을 겪으며 성장하는 법이니까.
뭔가 상황이 묘해지기는 했지만 이건 말이 필요 없는 베스트 포지션 그 자체다.
“고개 들어, 이 자식아.”
잠깐 깜짝 놀란 듯한 얼굴을 하기는 했지만 내 말투를 굳이 꼬집어 오지는 않았다.
“조금 귀찮아졌을 뿐 달라지는 건 없다. 이전처럼 활동하는 데는 전혀 문제없다는 거야. 물론 여러 가지 제한이야 있겠지만 네가 고개 숙일 일은 아니야. 애초에 튜토리얼 던전에서 네가 아니었다면 난 죽었을 거다. 감사를 해도 내가 하는 게 맞아.”
오그라 들기는 하지만 이런 대사는 잘 먹힌다.
“…….”
“네가 뭔가 짐을 지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사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물론 네가 가지고 있는 짐이 우리를 위한 일이라 믿고 있고, 나는 뒤처지거나 낙오하는 게 아니야. 그냥 조금 늦게 걸어갈 뿐이야. 그러니까.”
“…….”
“어깨 펴.”
툭하고 어깨를 손으로 치는 것으로 마무리. 고개 숙이고 있던 자식이 슬그머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그럼, 길드 마스터. 잠깐 바깥 공기라도 쐬러 갑시다. 드릴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대충 판은 깔아 놨다.
무슨 이야기부터 하는 게 좋을지 아직 정리하지는 않았지만 나눌 이야기가 많다.
‘일단은….’
진청이 정하얀에게 추파를 던진 것부터 시작하는 게 맞으리라.
‘내 소중한 예비신부를 지켜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