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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40화 (339/1,590)

# 340

회귀자 사용설명서 340화

후유증(6)

“기뻐 보이십니다, 엘레나 님.”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작게는 라이오스를, 크게는 대륙을 구한 영웅들을 뵙는 일입니다. 여신의 거울로만 접하던 그분들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아! 저기 보세요, 루드비히. 동상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게 정말이었나 봅니다.”

“네. 그렇군요.”

“가장 앞에 서 있는 전사 분이 박덕구 님, 마법사님이 한소라 님, 가운데에 계신 두 분이 바로 정하얀 님과 이기영 님이십니다. 루드비히도 알고 있지요? 그 날 떨어진 악마의 마법을 막아낸 영웅들 말입니다. 아아. 저토록 장엄한 모습이라니. 저희 왕국에서도 저분들의 업적을 기려야 할 겁니다. 아버님과 어머님에게 요청 드렸지만 고려해 보겠다는 말씀만 하실 뿐, 딱히 생각이 없으시니…. 아! 그거 알고 계십니까? 루드비히? 이기영 명예추기경님은 말입니다. 그 신앙이 얼마나 독실하신지 베니고어 여신님께서 대륙을 위해 내린 사람이라는 평이 자자합니다.”

“네.”

“교국 교황청에서 직접 발표한 글에서는 이기영 명예추기경의 삶을 어둠과의 투쟁 그 자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악마를 숭배하는 이방인, 이번에는 직접 악마를 소환한 공화국의 간악한 계획을 저지했으니 정말로 베니고어 여신님이 내리신 사도일 가능성도…. 아니! 어쩌면 베니고어 여신님만이 아니라 엘룬 님께서 내리신 사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유야 어찌됐든 저희 역시 그분과 인연이 닿지 않았습니까. 물론 공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생각해 보면 볼수록 그럴 고개가 끄덕여지는 추론이었다.

“어머님과 아버님이 삼국동맹의 추진을 직접 명하셨다는 게 믿겨지십니까? 결과적으로 생각해 보면 이기영 명예추기경님이 다리가 되어주신 겁니다. 운명. 마치 운명처럼 말입니다.”

“엘레나 님, 들뜨신 것은 이해가 갑니다만….”

“네. 당연히 어머님과 아버님이 해주신 말씀은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하나 가급적 사적으로 그들과 얽히는 일은 지양해야 합니다.”

“네. 잘 알고 있습니다, 루드비히. 하지만….”

“하지만이라는 건 없습니다, 엘레나 님. 부디 왕성 안에서는 얌전히 행동해 주시고 그들과 접촉하는 것은 최대한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영웅들이라고 한들, 그들 역시 인간이라는 사실을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저희 아이들은 이기영 명예추기경께 구원받….”

“하아….”

“인간이라고 다들 같지는 않습니다, 루드비히.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저는 믿습니다. 그들 중에도 깨끗한 영혼을 가진 이가 존재할 겁니다. 모두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 날 라이오스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려 보세요. 그들은 겁에 질리지도, 도망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두 발로 똑바로 선 채, 악마의 위협을 정면으로 마주 섰습니다. 그 어떤 엘프나 이종족도 그들처럼 행동하지는 못할 겁니다.”

“…….”

“무엇을 걱정하시는 압니다. 하지만 대륙을 지킨 영웅들마저 함부로 폄하하시는 건 좋지 않습니다.”

“제가 실수한 것 같습니다, 엘레나님. 죄송합니다.”

“아뇨. 저한테 사과할 일이 아닙니다. 그보다 이제 곧 도착이로군요.”

“네.”

“드디어 그분들을 뵐 수 있겠군요. 정말 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네.”

긴장하지 말라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몸이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심장이 자꾸만 쿵쾅거린다.

대륙을 구한 영웅들을 마주하는 일이다.

떨리지 않는 게 이상하리라.

‘정신없어.’

딱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 어울리리라.

왕성에 도착하고 라이오스인들과 교국의 중요 인사들에게 환대를 받았지만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차분하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자꾸만 목이 말라온다.

심지어 주변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

루드비히가 걱정된다는 듯 입을 열어오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엘레나 님, 괜찮으십니까?”

“괘, 괜찮습니다, 루드비히. 무언가 마실 게 있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금방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혹시 지금 제 모습이 이상해 보이지는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평소대로의 모습입니다, 엘레나 님.”

“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아니 빛의 영웅들은 어디쯤….”

“현재 접견실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그, 그분들을 기다리게 했다는 말씀이십니까?”

“예상보다 조금 더 일찍 자리를 잡으셨던 터라.”

“당장 접견실로 향해야겠습니다. 그분들을 기다리게 하다니, 이런 무례가.”

“네.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 것은 당연지사.

다시 한번 심장이 빠르게 뛰었지만 더 이상 그분들을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

접견실 문이 열린 이후에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

어떻게든 마음을 컨트롤하려고 하기는 했지만 실상은 자신이 무슨 말을 쏟아내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동경하던 영웅들은 상상했던 그대로였으니까.

수많은 악마들을 막아내던 박덕구 님, 몸이 문드러지면서도 주문을 외우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한소라 님, 저 뒤에 있는 두 사람은 정하얀 님과 이기영 님이 분명하리라.

박덕구 님의 커다란 덩치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차근차근 인사를 나누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으니까.

‘어떻게 이렇게 순수한 사람이 있을 수가 있을까.’

박덕구 님을 봤을 때는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티 없이 맑은 느낌이다. 또한 우직하고 투명하다.

마치 때 묻지 않은 어린 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실제로 뜬금없는 질문을 해왔을 때는 조금 놀랐지만 곧바로 사과를 해오는 모습에는 작게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한소라 님 같은 경우에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기는 했다.

‘유약해.’

무척이나 작고 유약하다.

결정적으로 겁을 집어 먹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당장에라도 무너질 것처럼 위태위태한 느낌이었고, 순식간에 허물어 질 것처럼 불안정했다.

‘어떻게 그런데도… 저런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쉽게 내던질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저렇게 작고 유약한 영혼을 가지고 거대한 악마에게 맞설 수 있었을까.

그 누구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리라.

그녀가 악마에게 맞서는 데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애써 부여잡고 정면으로 악마들을 마주하던 모습을 떠올리자 나도 모르게 왈칵 하고 눈물이 튀어나올 정도.

하지만 이후에 보인 영혼에는 커다랗게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정하얀 님!’

그분이다.

빛에 둘러싸인 채 왈칵 피를 토하며 마법을 사용하던 대마법사.

여신의 거울로 마주했을 때 역시 놀라움의 연속이었지만 실제로 본 정하얀 님은 더욱더 놀라운 사람이었다.

‘말도 안 돼….’

사랑으로 꽉 차 있는 영혼은 무엇인가 고장 난 사람을 보는 것 같은 느낌.

그만큼 거대하고 압도적이다.

이런 종류의 영혼은 지금껏 느껴본 적 없었다.

다른 것들은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질투, 분노, 행복, 슬픔, 같이 사람이 느낄 수 있는 원초적인 감정이 거대한 하나의 정신으로 묶여 있다.

나도 모르게 경외심이 솟아난 것은 당연.

수 만년 동안 정신을 단련한 성인이라도 저런 종류의 영혼을 가지고 있을 수 없으리라.

저 사랑이 어떤 사람을 향하고 있는지는 뻔할 뻔 자.

‘이기영 명예추기경님. 이기영 님이야. 정말… 실물이야.’

휠체어에 앉아 있는 모습에 가슴이 철렁했지만 몸은 정상이라는 말에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만나고 싶었다는 말에는 가슴이 두근거렸을 정도.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표현한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 없다.

혹시나 해서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살펴보기는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무척 평범하게 느껴진다.

의아함을 느낀 것도 잠시. 악수를 나누기 위해 발을 옮긴 순간 느껴진 것은….

‘이게 뭐야.’

“우웨에에에엑.”

속 안에 꽉 차 있는 역겨운 영혼의 덩어리였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저런 성인이 이런 영혼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공포스럽다거나 사악하다는 종류가 아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순수하게 역겨운 영혼이다.

등에 소름이 돋는다.

나도 모르게 자리를 피하고 싶어졌다. 최대한 참으려고 했지만 참을 수 있을 리가 만무.

곧바로 허리를 굽혀 토악질을 해대고 있었던 바로 그때였다.

“콜록… 콜록.”

“기영 씨.”

“콜록. 콜록콜록. 저, 저….”

“기영 씨. 괜찮으십니까?”

“사, 사제를… 부탁….”

“기영 씨! 지금!”

“혀, 형님. 가, 갑자기 무슨 일. 빠, 빨리 희영이 누님이라도!”

“오빠, 오빠!”

눈앞에 있는 이가 갑작스레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지기 시작한 것.

숨을 헐떡거리는 그 사람 주변으로 다른 이들이 몰려들었다.

“발작! 발작입니다.”

“흐어어어어엉. 오빠아…. 히끅. 오빠아!”

“건드리지 마세요, 하얀 씨. 몸을 만지면 더 위험해집니다. 혜진 씨는 빨리 의료진부터 불러주세요.”

“발작이라니. 그게 뭔 소리요? 응?”

“후유증입니다.”

“그게 도대체….”

“지난 번 악마 소환 사건 이후에….”

“그러니까! 갑자기 그게 뭔 소리요? 후유증은 또 뭐고! 형님이 저번에 아프다고 한 건 별거 아니라 하지 않았소!”

“기영 씨가 알리는 걸 원하지 않았습니다. 설명은 나중에 드리겠습니다, 덕구 씨.”

“이, 이렇게 가만히 놔두면 안 되는 거 아니오? 마력이라도 주입해야….”

“단순히 마력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싫어! 싫어! 오빠, 오빠아!!!”

“괜찮을 겁니다. 틀림없이 괜찮을 겁니다.”

순간적으로 벌어진 상황에 어안이 벙벙할 따름.

역겨운 영혼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처럼 강하게 느껴진다.

‘이게 도대체….’

그 와중에 접견실에 사제를 비롯한 의료진들이 들이닥친다.

눈물을 펑펑 쏟고 있는 정하얀 님과 불안하게 보이는 한소라 님.

박덕구 님과 김현성 님 역시 무척이나 침통한 표정.

경과가 좋아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통스럽게 신음을 흘리는 이기영 님은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마음속 한 구석에 작은 추론이 떠오르는 것은 순식간.

어쩌면….

“시, 신성력이 듣지 않습니다. 몸 상태는 분명히 정상이실 텐데….”

“당신 사제 아니요? 빠, 빨리 어떻게 좀 해보쇼! 어? 우리 형님 좀 살려보란 말이오!”

“몸은 틀림없이 정상입니다. 이, 이런 종류의 발작은 처음이라….”

“흐어어어엉. 오빠아…. 흐어어어어어어엉.”

어쩌면….

자신이 빛의 용사들을 만나게 된 것은 엘룬 님의 계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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