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6
회귀자 사용설명서 346화
엘프들의 도시 (1)
“기분이 좀 어떠십니까? 명예추기경님?”
“네, 편안합니다. 얼마 만에 이렇게 편하게 있을 수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당연히 반어법이었지만 엘레나는 내 말에 들어 있는 가시를 눈치채지 못한 모양. 기쁘다는 듯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온다. 듣지도 않은 신성력을 보내며 오늘도 보람찬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나병환자를 치료하는 것 같은 모양새. 그녀는 참아본다고 참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역한 기운이 사라지지는 않는지 천천히 입을 여는 모습이 보였다 밀폐된 공간에서 오랫동안 함께 있었으니 솔직히 이만큼 버티는 것도 대단하다.
나야 내 영혼이 어디가 역겨운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이쪽을 만나자마자 안에 있는 것을 모조리 게워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버틴 것도 용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잠, 잠깐 바람 좀 쐬고 와도 되겠습니까. 윽읍.”
“네 물론입니다.”
싱긋 웃으며 마차 안을 벗어난 이후에 들려오는 소리는 가관.
“우웁. 우웁.”
‘전부다 들려…….’
“우웨에에에에엑.”
‘전부다 들린다고…….’
“우우우욱… 우웨에에엑.”
“엘레나 님… 엘레나 님.”
“하아… 하아… 네.”
“괜찮으신 겁니까?”
“네. 괜찮습니다. 루드비히.”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루드비히. 저보다는 이기영 명예추기경님이 더욱더 힘드실 겁니다. 제게 주어진 사명인 만큼 열심히 임해야지요. 고작 이 정도 가지고는 힘들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하하…….”
“하지만… 엘레나 님, 그자는…….”
중간부터 방음 마법을 펼치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모양인지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나 다름없다.
‘나이팅게일이 따로 없네.’
들리지는 않지만 무슨 말을 나누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루드비히를 비롯한 엘프 수행원들은 그녀에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을 것이고 이상한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엘레나는 괜찮다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치료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신성력을 밀어주는 별것 아닌 과정이었지만 수행원들에게는 마치 뒤틀린 황천의 역병이 가득한 공간으로 자신들의 공주님이 발을 들이미는 것처럼 보였을 터. 하루에 몇 번씩이나 구토를 반복하는 공주님을 두고 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심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아마 저쪽은 더 심하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슬쩍 창문을 바라보자 끊임없이 뒤바뀌는 풍경이 보이기 시작. 마치 기차라도 탄 것 같다. 마차를 끄는 말에게 여러 가지 버프를 때려 박은 채로 달리고 있으니 빠른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심지어 마차는 흔들림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길드 내에 있는 마법사와 사제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장담컨대 그냥 행군하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하게 느껴질 것이리라.
‘이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다니까.’
물론 현 상황에서 내가 괜찮다는 말을 해봤자.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그 동안 건강해 진 것 같다고 수 없이 이야기를 꺼내왔지만 모조리 묵살 당했다. 사실 지금에 와서는 억지로 거짓말을 유지해야 하는 지경까지 와버렸다는 거다. 갑자기 멀쩡한 척하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에 이쪽은 아직까지도 이전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중.
물론 엘레나의 치료가 효과가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발작의 주기를 조금씩 늦추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색을 굳히는 이 엘프 공주 덕분인지 다른 길드원들 모두가 안심하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마지막으로 발작을 일으킨 것이 11시간 전.
최초 8시간에서 11시간으로 발작 주기를 조금씩 늦추고 있었으니 지금쯤 발작을 일으키는 것이 적절하리라. 왠지 모르게 아픈 느낌이었기 때문에 하기는 싫었지만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고 낑낑대는 목소리를 애써 목구멍으로 구겨 넣는다.
포인트는 들키고 싶지 않아 한다는 데 있다. 현재의 빛기영은 팀원들에게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최대한 숨기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비참한 비명소리를 억누르며 누군가 보고 있을 때처럼 온몸을 비튼다. 메이저 좀비영화에 출연해도 될 정도의 움직임. 나 스스로에게 연기대상을 수여할 만한 무빙이었다.
“아…… 아악…….”
물론 끝내 참지 못한 비명소리는 밖으로 새어 나가기 시작. 덜컹 문이 열리며 다시 한 번 엘레나가 모습을 드러내는 걸 보니 내 목소리를 확인한 것 같았다.
“이기영 님! 이기영 님!”
“아아아악!”
“루드비히! 명예 추기경님의 팔을 붙잡아 주세요.”
“네.”
“다시 한 번 침식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금만 참으세요. 명예추기경님. 제가 함께 있습니다. 제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으으윽.”
입술을 꽉 깨물고 눈물 몇 방울을 흘리는 것은 당연지사. 물론 엘레나 공주 자신도 눈물을 쏟으며 이쪽에게 신성력을 밀어 넣고 있다.
“이겨내실 수 있을 겁니다. 이기영 님. 싸우셔야 합니다.”
“끄윽…….”
“부디 포기하지 마세요. 받아들이지 말고 끝까지 저항하세요.”
“뭐요. 형님이 또…….”
“오, 오빠!”
내 연기를 직접 보기 위해 찾아온 갤러리들 역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방 안으로 들이닥친 것은 당연.
순도 깊은 신성력이 들어오니 보약이라도 먹은 것 같이 건강해져야 정상이겠지만 왠지 모르게 이 여자의 신성력은 고통스럽다. 저번에 느꼈던 것이 착각이 아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몇 차례나 치료를 받아보기는 했지만 왠지 모르게 아프다. 물론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에는 한계까지 신성력을 뽑아낸 엘레나가 헉헉 거리며 숨을 몰아셨을 때 겨우 진정하는 연기를 선보일 수 있었다.
“흐어어어엉…….”
“괜찮은 거요? 형님은 괜찮은 거요?”
하지만 이후에는 잠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몸이 노곤 노곤해진다. 땀으로 범벅이 된 엘레나와 눈물 콧물을 짜고 있는 박덕구와 정하얀과는 대비되는 그림. 오늘도 쓰레기 1스택을 쌓았다는 생각이 살며시 들기는 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게 최선이다. 일단은 이 거짓말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막 눈을 감고 잠에 빠지려고 했을 때 들려오는 목소리는 가관. 이쪽에 반가운 소식은 아니었다.
“조금은 괜찮아진 거요? 지금 주무시고 계신 거 맞는 거요?”
“네. 다행히 정신을 잃으신 것 같습니다.”
“거,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다니까. 지금은 조금 편안해 보이는데 발작 주기도 눈에 띄게 길어지고 있고… 일단은 응급처치라도 된 것 아니요?”
“아뇨. 저도 좋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주기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건 환영 할 만 한 일이기는 합니다만… 상태가 좋아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안은 오염되어 있고 제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뒤틀려 있습니다. 오히려 점점 더 제 힘에 저항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설마 이렇게까지 썩어 있을 줄은… 단순히 제 힘만으로는 완벽히 상태를 호전시키는 것은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네. 여전히 침식은 진행 중이고 아직도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어, 어떻게 해야 되는 거요?”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일단은 제가 힘이 닿는 데까지 노력해 보겠습니다.”
“거, 정말로 고맙소. 진심으로… 이거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게 좋을지…….”
“항상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그런 말씀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제게 주어진 일이니까요.”
“아! 그, 그리고 한 가지 더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말씀하셔도 됩니다.”
“시간, 시간은 얼마나 남았는지… 아직까지 여유가 있는 거요?”
“…그건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내일이 될지 아니면 1년 후가 될지. 지금으로써는 최소한 이기영 님께서 견뎌 주시길 바라는 수밖에 없겠지요. 모든 건 명예 추기경님의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 그렇다면 문제없겠구만. 다른 건 몰라도 형님은 정신력 하나는 강하니까. 침식이고 오염이고 나발이고 전부다 날려 버릴 거요. 아마 가만히 놔두면 10년도 거뜬 할거라니까. 분명히 그럴 거라니까… 이거 한, 한시름 놓을 수 있겠구만… 아암, 그렇고 말고…….”
“네. 분명히 이겨내실 겁니다.”
왠지 모르게 울먹거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박덕구의 목소리와 아직도 내 손을 연신 주물럭거리며 훌쩍이고만 있는 정하얀. 사실 저런 대화를 한두 번 들은 것도 아니건만 괜스레 부담스러워진다.
‘아니, 얼마 남지 않기는 뭘 얼마 남지 않아.’
당장이라도 일어나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무척이나 숙연한 분위기에 눈을 뜰 수조차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일이 일어나다보니 오히려 무덤덤해진다. 이제는 하루 일과가 되어버린 똥꼬쇼에 파란 길드원들은 하루하루를 마음 졸이고 있고 달리는 마차 안은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거, 오랜만에 푹 주무시고 있는 것 같은데…….”
“이만 자리를 피해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도착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으니 조금이라도 쉬게 해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정하얀 님께서도.”
“저는 여, 여, 여기 있을 거예요.”
“…….”
“여, 여기 있을 거야.”
“정하얀 님.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만.”
“여기 있을 거야… 히끅. 여기 있을 거예요.”
“거, 누님은 잠깐 같이 있게 해주쇼.”
“그렇지만…….”
“형님도 그걸 원할 거요. 어차피 몇 시간 있으면 도착이니까. 이러지 말고 어서 나갑시다.”
“네.”
도대체 내가 원할 거라는 건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한 번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슬그머니 몸에 힘이 들어간 것은 당연지사. 그동안의 경험상 이쪽이 자고 있을 때는 항상 정하얀이 심상치 않은 모습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옆에 눕는 것 말고는 다른 행동을 해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계속해서 끄윽 끄윽 거리는 목소리만 들려오기 시작한다.
“히끅… 흐어어엉…….”
‘아, 진짜.’
“히끅… 히끅…….”
‘울지 마…….’
이쯤 되면 아무리 나라고 해도 양심 한구석이 쑤셔오게 마련. 적막해진 방안에 계속해서 훌쩍이는 소리만 들려오다 보니 굉장히 부담스럽다. 노곤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한숨 더 때리고 싶건만 이 분위기에서는 도저히 잠을 청할 수도 없다.
“히끅… 아프면 안 돼요. 히끅.”
“…….”
“히끅…….”
“…….”
‘언제 도착하는 거야. 거의 다 왔다며.’
계속해서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았지만 소리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 감은 눈으로 세 시간 정도를 더 보내고 나서야 바깥이 분주해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좋아.’
어떤 상황인지는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정신없이 달리던 마차의 속도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에베리아 왕국에 가까이 온 것이다. 정신없이 울고만 있던 정하얀도 슬쩍 몸을 일으킨다.
정확히 뭘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창밖을 바라보고 있음이 분명. 어느 순간 마차가 멈춰 섰고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 누님. 아무래도 도착한 것 같은데 밖으로 좀…….”
“오빠는요?”
“아무래도 조금 만 더…….”
“아니다. 덕구야. 일어났어.”
“끄응… 조금 더 자도 되는데 뭐 벌써 일어나고…….”
“기왕 도착했는데 에베리아 왕국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구경해야지.”
몸을 일으키자 곧바로 정하얀이 내 팔을 붙잡았다. 박덕구 역시 아기 새 다루듯 이쪽을 다루기 시작. 결국에는 마차 밖까지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뭔가 언밸런스한 그림에 이쪽이 오히려 불편해 진다.
“에베리아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선두에선 김현성은 누군가와 악수를 나누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조혜진이나 다른 이들 역시 다르지는 않다. 사실 녀석들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현재 나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앞도적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와…….”
나도 모르게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