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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50화 (349/1,590)

# 350

회귀자 사용설명서 350화

엘프들의 도시 (5)

이들이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을 조금만 생각해 봐도 답은 금방 나온다.

에베리아 왕국이 지금까지 폐쇄 정책을 유지하면서 부유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이유 자체가 바로 세계수 때문이라는 것.

이제야 뭔가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대륙의 자원은 무한하지 않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에베리아 왕국이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자원이 끝이 없다는 거네.’

어떤 매커니즘으로 도시가 돌아가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대다수의 엘프가 세계수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토양이나 식수 역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방어 체계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적으로도 에베리아 왕국은 끊임없이 외부의 위협에 저항해 왔다. 지금이야 이종족 노예거래 금지법을 채택하고 있는 국가가 많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권위 있는 귀족들은 대부분 엘프 노예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심지어 국가 단위나 영지 단위로 에베리아 왕국을 침공했다는 전례마저 있을 정도였으니 그때의 상황이 어땠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세계수는 이들의 생활은 물론 왕국의 존폐에도 깊게 관계되어 있다.

한데 그런 세계수가 썩어가고 있단다.

‘망하기 일보 직전이라고 봐도 되는 거네.’

이들의 입장에서는 빠르게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 만약에 이대로 세계수가 무너진다면 에베리아의 미래야 불 보듯 뻔하다.

자원에 허덕이게 되고 외부의 위협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조금 과장해 본다면 사방에서 이들을 물어뜯기 위해 군대를 보낼지도 모른다.

그게 현실이 될지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지도층들을 불안하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때마침 라이오스 악마 소환이 터져준 셈. 교국은 여전히 강국으로 분류할 수 있는 나라였고 중립국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라이오스의 이미지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무조건 이쪽과 합류하는 게 자신들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을 거라는 거다. 외부와 교역할 수 있다면 한정적인 자원의 상황을 벗어날 수 있고 심지어 다른 위협까지 예방할 수 있다.

물론 이들이 흑마법에 부정적이라는 것 역시 선택을 부추기는 데 도움을 줬겠지만 본질적인 이유는 자신들의 위기에 있다.

고개를 살짝 엘레나를 바라보니 짐짓 심각한 표정이기는 했지만 동맹에 정치적인 이유가 숨어 있을 거라는 건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았다.

‘순진하네.’

그에 비해 엘리오스는 이 모든 걸 염두에 두고 움직였을 것이 분명하다.

혹여나 교국에서 이걸 빌미로 늘어지지는 않을까 걱정하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교국에서도 에베리아는 놓치기 싫은 먹잇감이다.

이들과 함께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대외적인 이미지도 그렇고 숲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들도 많았으니까.

물론 이들의 자원이 바닥나기 일보 직전이라는 걸 알았다면 이렇게 동등한 조건으로 동맹을 진행시키지는 않았을 거다.

어떻게 보면 사기를 맞은 셈. 뒤통수가 지끈거릴 정도가 아니었지만 소소한 피해를 입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세계수의 뿌리.”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징후를 발견한 시점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원인을 직까지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썩어들어간 면적이 아주 협소했지만 현재는 뿌리의 1/3가량이 완전히 오염된 상황입니다. 침식 속도가 굉장히….”

“빠르군요.”

“네. 심지어 계속해서 가속화되고 있기도 하고요.”

“얼마나 남은 겁니까?”

“길게 봐도 30년입니다.”

‘아니, 너무 빠른데….’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 현성 씨는….”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형씨가 말이요?”

“네. 아직까지 아버님과 대화 중이실 겁니다.”

“혹시 제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여러분들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일단은 국왕 폐하와 아버님께서 대화를 마치실 때까지는 이곳에 함께 계셔주셨으면 합니다. 절대로 여러분들을 믿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다만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시다는 것만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죄송해하실 일이 아닙니다.”

혹시나 이쪽이 뿌리를 노리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나 역시도 녀석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오히려 이 정도라면 과하지 않은 처사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처음이 조금 꼬이기야 했지만 겨우 격리조치라는 건 저쪽에서도 충분히 배려심을 보이고 있다는 증거다.

물론 이후에 일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의 경우가 궁금해지기는 한다.

‘김현성이 말을 잘하는 편은 아니니까.’

이러나저러나 김현성이 이쪽으로 돌아와야 정확한 일의 정황을 파악할 수가 있다. 때마침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 것은 그때였다.

순간적으로 반가운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애써 표정을 굳힐 수밖에 없었다.

‘저 새끼.’

아무리 나를 위해서라고 한들 이쪽에 한마디도 없이 일을 벌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모습을 드러낸 것은 당연히 김현성이다.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는 얼굴에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감돌고 있었다.

‘성공한 건가.’

최소한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몇 명의 엘프와 함께 방으로 들어온 김현성은 들어오자마자 길드원들에게 설명 아닌 설명을 하는 중.

함께 들어온 엘프 역시 엘리오스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떻게 봐도 제법 화기애애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에는 괜스레 침이 말라온다.

이번에도 혹시 속으로 꿍쳐놨다가 갑자기 일을 터뜨릴까 걱정된 것은 당연한 일. 처음부터 이랬어야 했다.

표정을 굳히며 녀석을 마주치지 않고 곧바로 방문으로 들어가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지만 녀석이 꿍쳐놓은 비밀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너는 내가 왜 화났는지 모르겠어?’

조혜진 때 이후로 정말로 오랜만에 써먹는 것 같은 스킬. 잠깐 뒤를 돌아보자 김현성과 살짝 눈이 마주쳤는데 잘못은커녕 자신이 해냈다는 듯 해맑은 미소를 지어오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표정을 찡그린 것은 당연한 일. 그제야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허겁지겁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이제 막 닫히려고 하는 방문을 붙잡고 이쪽을 따라 들어오는 꼴은 가관. 다른 길드원들은 이게 무슨 영문인지 궁금해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김현성이 따로 제지했는지 함께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저 기영 씨.”

“…….”

“기영 씨….”

“…….”

가볍게 나를 부르는 목소리는 무시하는 게 맞다.

“엘리오스 님에게 대충 전해 들었다고… 다행히 이야기가 잘 풀린 것 같습니다. 물론 조금 더 생각해 본다고 하시기는 했지만 빠르면 내일 안으로 확답을 해주신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긍정적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했고요.”

“그렇군요. 잘됐습니다.”

“저도 이야기가 이렇게 잘 풀릴 줄은 생각하지 못했지만….”

“아… 네. 그렇군요.”

표정을 싸악 굳히며 기분 팍 상해부렀스 스킬을 시전하자 저번과 같이 조금 초조해하는 얼굴이 보였다.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성과를 내면 칭찬이라도 해줄 줄 알았던 모양이다.

어처구니없어 헛웃음이 튀어나올 것 같은 상황. 어떻게 말을 꺼내는 게 좋을까에 대해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을 때 곧바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죄송합니다.”

“네?”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본래는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조금 충동적으로 일으킨 일이라. 또… 몸도 안 좋으신데 여러 가지 생각으로 부담을 드리기 싫었습니다.”

‘아 이러면 또 내가 민망해지는 데….’

잘못한 걸 알고 있는지 사과부터 해오는 모습은 녀석 역시 내성이 생겼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조금 더 짜증을 부리고 싶기는 했지만 반응을 보니 그럴 필요까지도 없을 것 같다.

“후우….”

“정말로 죄송합니다.”

“현성 씨. 적어도 저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되지 않겠….”

“죄송합니다.”

마치 비 맞은 강아지 같은 표정.

‘약해지면 안 돼.’

라고 생각은 해봤지만 축 처진 어깨에는 결국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분위기는 대충 만들어졌으니까. 더 이상 녀석을 압박할 필요도 없다.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자 이쪽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조금이나마 풀린 내 표정에는 안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째서 현성 씨가 이번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줄은 모르겠지만 일단 카스가노 님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대충 둘러댔습니다.”

“아!”

“저도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어떻게 현성 씨가 이 문제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경위가 아닙니다. 적어도 저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알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해준 게 얼만데.’

물론 녀석이 변명을 만들 시간이 부족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이 문제에 대해 쉽게 이야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자신이 회귀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 것 같았으니까.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아뇨. 사과를 받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네. 절대로요.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

‘이 눈치 없는 새끼.’

숨기고 있는 게 있으면 빨리 자진 납세하라는 표현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한 모양이다. 순간적으로 표정을 굳히자 다시금 비 맞은 강아지의 표정을 선보이는 녀석이 눈에 보인다.

한 번 더 직접적으로 말을 해야 알아들을 수 있는 것 같았기 때문에 다시금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최소한 저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들을 자격이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

“…….”

“하지만….”

“…….”

조금 고민하는 듯한 표정을 선보이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이야기를 꺼내는 게 옳다고 생각한 모양.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김현성의 얼굴이 눈에 보인다.

“어디까지 들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성 씨가 에베리아가 겪고 있는 현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까지 들었습니다.”

“네. 이유에 대해서는 대충 알고 있습니다. 물론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 추측에 불과하지만….”

‘추측은 무슨.’

김현성이 입 밖으로 내뱉는 말이 곧 정답이다.

“아마 던전의 영향을 받고 있을 겁니다.”

“네?”

“저주받은 신단 때를 떠올려 보시면 이해하기 쉬우실 겁니다.”

이해하다마다. 모든 던전이 그렇지는 않지만 특정 던전은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영향을 미친다.

간단히 추측해 볼 수 있는 것은 에베리아 왕국 내에 던전이 생성됐다는 것. 던전이 세계수를 오염시키고 있는 건지, 아니면 양분을 빨아들이고 있는 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던전의 보상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인지는 모르겠지만 셋 중에 뭐가 됐든 꽤 높은 등급을 가지고 있을 확률이 크다.

녀석이 위험하다고 표현한 것은 아마 이런 연유일 것이다.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는 겁니까?”

“정확하지는 않지만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제가 이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는 묻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네.”

“던전의 이름은 뒤틀린 악마의 연못입니다. 주력 몬스터들은 악마들이 대부분이고 네임드 몬스터도 마찬가지 일 겁니다. 등급은 전설 등급 이상입니다. 던전 공략은 네임드 몬스터 처치를 비롯한 연못의 정화이며 아마 그곳에서 기영 씨의 몸을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

‘세 번째구나.’

자세한 정황은 아직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세계수를 치료해 줄 수 있는 연못이 내가 가진 질병 역시 치료해 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군요. 뒤틀린 연못이 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시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이거 분위기가 꽤 좋은데.’

조금 압박을 주었다고 해서 이렇게 술술 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간단한 정보만 알 수 있다는 생각했지만 현재의 표정이 꽤나 볼만하다.

입술을 계속해서 달싹달싹 움직이고 있는 김현성의 얼굴이 보인다.

뭔가를 고백하고 싶은데 제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모양. 녀석이 뭘 고민하고 있는지 뭘 고백하려고 하는지 깨닫는 것은 순식간.

‘그래. 현성아. 마음껏 다 털어놔도 된다. 형 이해심 넘치는 거 알잖아.’

“묻지 않으시는 겁니까?”

“뭘 말입니까?”

“어째서 제가….”

“이 모든 것들을 알고 있는지 말입니까?”

“네.”

“괜찮습니다.”

“네?”

“거기까지는 말해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그야 궁금하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굳이 현성 씨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게 정답이지.’

나는 너를 믿는다.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라는 눈빛을 쏘아 보내는 것은 당연. 언뜻 감동받은 듯한 녀석의 표정이 보인다.

심지어는 죄책감에 둘러싸여 있는 얼굴. 이렇게 무한한 신뢰를 주는 나에게 계속해서 거짓말을 해도 되는 게 옳을까라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쪽을 바라보는 눈빛이 왠지 끈적하게 변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홀로 고개를 끄덕인 녀석이 입을 연 것은 바로 그때였다.

“기영 씨.”

“네.”

“그러니까….”

‘빙고!’

“미친 소리처럼 들리시겠지만. 사실….”

속으로 환호성을 내지른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형님!! 형씨!! 거 좀 나와 보쇼!”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한 적절한 훼방꾼.

‘저 새끼는 진짜….’

절로 모르게 주먹에 힘이 들어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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