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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52화 (351/1,590)

# 352

회귀자 사용설명서 352화

김현아 (2)

“대륙에서 볼 수 없는 것도 당연할 겁니다. 요정들이 살아가는 데는 환경이 굉장히 중요하니까요.”

“환경 말씀이십니까?”

“네. 저희의 오랜 조상님들이 활동하실 때에는 대륙 곳곳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지만… 현재는 에베리아 왕국 말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겁니다. 기본적으로 요정들은 오염되지 않는 숲에서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뭐, 멸종동물 같은 느낌인 모양이구만… 1급수 지역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 이 말이요?”

“예. 그 말이 맞습니다. 박덕구 님. 안 그래도 인간들의 무분별한 개발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이… 조금 더… 아. 죄송합니다. 이런 말을 드리려고 했던 것이 아닌데….”

“아닙니다. 틀린 말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역시!”

“하지만 엘레나 님. 꼭 그렇게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세계수의 보호를 받고 있는 엘프들과는 달리 인간들에게 주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목책이나 성벽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자원들이 전부 숲에서 나온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인류의 생존과 발전에 희생은 필수 불가결했을 겁니다. 만약 엘프들에게 세계수가 없었다고 가정해 보시면 일이 조금 재미있어질 겁니다.”

“아.”

“엘프들 역시 목책을 쌓고 성벽을 만들어야 했을 겁니다. 끝없이 열매가 맺히는 일도 없으니 많은 인구를 유지하기 위해 농사를 지을 땅이 필요할 수도 있었겠죠. 식수를 위해 수로도 만들어야 했을 테고 지금까지와는 많은 게 달라졌을 겁니다.”

“그,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물론 현재에 이르러서는 그게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들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인지 경계가 애매해졌지만… 만일 인간들에게도 세계수 같은 수단이 주어졌다면 지금까지와는 조금 달라질 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 부분은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환경이 달라지면 많은 게 달라지는 법이죠.”

“그렇군요.”

“쓸데없는 이야기가 조금 길어진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명예 추기경님.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주신 것 같아 편협한 시각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그보다 이제 슬슬….”

“네. 지금쯤 요정의 숲으로 들어서고 있을 겁니다.”

“벌써 도착한 거요?”

“꼬박 하루를 달려서 왔으니까요. 지금부터는 마차를 타고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니 내려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정하얀 님. 선희영 님도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정하얀과 선희영의 얼굴이 보였다.

‘쟤네 표정 안 좋네.’

재미있게도 정하얀은 조금 나은 편이다. 끊임없이 엘레나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폭발하지 않은 것을 보면 확실히 프러포즈가 효과가 있기는 있는 것 같았다.

물론 그녀가 현재 내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 결정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에 비해 선희영은 조금은 어두운 표정, 어째서 그녀가 저런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건가.’

사실 이 거짓 부렁쇼가 진행되기 전, 이쪽의 주치의 포지션에 있었던 것은 선희영이었다.

안 그래도 최근 떨어질 일이 많았었는데 자신의 할 일까지 빼앗기게 되니 기분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그녀가 나를 봐주는 일련의 과정은 그녀에게는 그나마 이쪽과 조금이라도 연관될 수 있는 끈이나 다름없었으니 저런 표정을 짓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물론 아직도 이전과 같은 상태인지는 잘 모른다. 알게 모르게 선희영이 이쪽을 관심을 표시하고 있는 것 같아 의식적으로 살살 밀어내고 있던 도중이었으니까. 어두운 표정을 계속해서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이쪽의 계획이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않은 것 같았다.

정하얀에 비해 극단적이지 않을 뿐이지. 쟤도 조금 이상해졌다는 걸 생각해 보면 행동을 자제해야 될 필요가 있다는 거다. 조금씩이지만 멘탈을 조금씩 이나마 해결해 줘야 할 필요가 있다.

살짝 미소를 지어주자. 조금 기분이 풀렸는지 입꼬리를 올리는 중. 무척이나 환한 미소가 눈에 띄었다. 항상 생각해 왔지만 확실히 외모는 이상형에 가깝다. 물론 외모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마차의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다른 마차에서 막 내리기 시작한 파티원들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사실 이런 광경이 익숙하지 않았다.

본래대로였으면 커다란 마차를 다 함께 타고 왔겠지만 아무래도 커다란 마차가 들어서기 힘든 도로의 특성상 조금씩 인원을 나눠 타고 왔기 때문. 물론 그 광경보다 더 시선을 자리 잡은 건 주변의 풍경이다.

“와….”

정하얀이 커다란 탄성을 내질렀고.

“아름답군요. 정말 아름답네요. 이곳은….”

선희영이 다음 말을 이었다. 물론 나 역시 입이 벌어진다. 에베리아에 처음 왔을 때도 같은 반응이기는 했지만 지구에서도 볼 수 없는 색깔의 꽃들이 바다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장관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곳에는 몬스터들도 살지 않는 겁니까?”

“네. 이곳 역시 세계수의 보호를 받고 있는 구역 중 하나니까요. 물론 야생동물들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그 아이들도 잘 찾지 않는 장소인 터라… 아까 말씀드렸듯 요정들은 장난이 조금 심한 편입니다. 아마 면역이 없는 아이들은 깜짝 놀라 피하게 됐을 겁니다.”

“가급적이면 조용히 다녀오는 게 좋겠군요.”

“네.”

이쪽이 잠깐 잡담을 나누는 사이에도 길드원들은 마차에 실린 짐을 풀고 행군할 준비를 마치고 있다. 김현성이 살짝 신호를 보내니 대형이 갖춰주는 것은 순식간, 엘프 측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다.

훈련이 잘되어 있는 있다는 건 실감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보니 또 느낌이 다르다. 심지어 마차 안에서 김현성과 따로 대화를 나눈 모양인지 두 대형이 제법 상호 보완적이다.

완벽하게 어우러졌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잘 버무려진 듯한 모습. 확실히 고개를 끄덕일 만했다.

힐러보다 내 안전을 더 중요시하는 게 그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 평소와 별로 다른 것 같지는 않았지만 이러나저러나 배려받고 있다는 건 기분 좋다는 거였으니까.

아무튼 그렇게 파티는 천천히 행군하기 시작했다. 물론 선두는 김현성, 이곳에 한 번 와본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곳 저곳으로 사람들을 안내하고 있다.

물론 발걸음은 상당히 조심스러웠는데 위험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귀찮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리라.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자 지루하고 힘든 것이 사실.

오랜만에 저주받은 체력이 원망스러워졌다. 스테미나 포션을 한 모금 들이킨 이후 살짝 표정을 구기자 곧바로 나를 바라보는 엘레나의 표정이 시야에 비쳤다.

“명예 추기경님. 좀 괜찮으십니까?”

“네. 물론입니다.”

“힘드시면 꼭 말씀을 해주셔야 합니다. 영혼이 쇠약해지면 신체가 망가지는 것처럼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니까요. 아니, 이럴 게 아니라 선두에 전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엘레나 님. 사실 그렇게 힘들지는 않습니다.”

“거절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슬슬 날도 어두워지고 있고 모두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니… 아무래도 말씀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정말로.”

하지만 이미 휴식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정하얀이 살짝 앞을 두드려 의사를 전하기 시작하자 선두에 서 있는 김현성에게 소식이 전해지는 것이 순식간, 엘프들 역시 발걸음을 멈추고 적당한 터를 잡기 위해 모두가 짐을 풀고 있다.

이제 막 날이 어두워진 타이밍. 살짝 눈앞에 빛이 반짝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

“오빠. 방금….”

“나도 봤어. 하얀아.”

뭔가 반딧불이 같은 느낌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조그맣게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는 것.

기본적으로 번역마법이 장착되어있는 이방인들도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다. 조금 의아했던 것도 잠시. 오늘 하루 종일 떠들었던 것에 대해 떠올리자 지금 눈앞에 있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요정이구나.’

상상했던 것과 비슷하게 생겼다. 손바닥보다 조금 다른 크기에 잠자리 날개에서는 계속해서 자그마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인간보다는 엘프에 가까운 듯한 외형, 기본적으로 굉장히 귀엽게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으리라.

이상하게 정하얀 근처로 많이 모여들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이들이 모이는 장소가 순도 깊은 마력이 모여 있는 숲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정하얀에게 모여들고 있는 장면이 이상하게만은 보이지 않았다.

무척이나 순수한 마련이다 보니 절로 요정들을 끌어당긴 것이다.

“다행히 많이 몰려들지는 않았군요.”

“아. 이게 많이 몰려들지 않은 겁니까?”

“네. 날이 어둡기도 하고 조용히 움직인 보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 기준으로 충분히 많기는 했지만 이들의 기준으로는 아닌 모양이다.

‘예쁘네.’

그 와중에 엘프들은 익숙한지 묵묵히 캠프를 차리는 중, 굳이 요정들한테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그와 반대로 대부분의 파란 길드원들은 주변을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까지 신기한 걸 많이 봐왔지만 이건 또 처음 보는 광경일 테니 시선을 빼앗길 만하다. 귀여운 걸 안 좋아하는 척하는 김예리는 완전히 빠져든 모습.

물론 벌써부터 이들이 주는 고통에 시달리는 이들도 존재했다.

김창렬은 항상 쓰고 다니던 붉은색 복면을 빼앗겼고 박덕구는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되어버렸다. 이상하게도 몇몇 요정들이 한소라에게는 작은 돌맹이들을 집어던지고 있었는데 아파 보이지는 않지만 본인은 제법 충격인 모양.

그녀 역시 여자인 만큼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 미움받는 게 반갑지 않은 것 같았다.

어째서 인지는 알 것 같았지만 별일 아닌 척하는 게 당연. 다른 이들은 두말할 필요 없다.

학자 모드로 돌아간 황정연은 눈이 휘둥그레졌는데 많은 요정이 그녀의 머리카락과 쓰고 있는 안경을 잡아당긴다.

유아영의 모습은 더욱더 가관. 꽤나 많은 수의 요정이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기고 있었던 것. 심지어 커다란 미드의 안쪽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하는 녀석도 있었으니 시선을 주기에는 꽤나 민망한 장면이었다는 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꺄악!”

“그만하렴. 이, 이제 그만하렴.”

물론 엘레나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요정 몇몇이 그녀의 귀를 트렘플린이라도 되는 것처럼 사용하고 있다. 커다란 귀에서 폴짝폴짝 뛰는 놈들의 표정을 보니 여간 행복한 게 아닌 모양이다.

‘얘네 정말 귀찮구나.’

때마침 이쪽으로도 몇 마리가 돌진해 오기 시작한다. 딱히 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지만 정말로 귀찮은 느낌.

“다가오지 못하게 할 수는 없는 겁니까?”

“아… 네. 쫓아낼 수는 있지만 만약 그렇게 한다면 더 많은 친구들을 불러올 거예요. 아마 아이들도 곧 잠들 시간이니 저녁 식사를 마치면 조금 잠잠해질 겁니다. 그 전까지는 ….”

라고 엘레나가 말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였다. 천천히 김현성이 이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 녀석에게도 많은 수의 요정들이 달라붙어 있었는데 아마 무언가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모양이다.

뭔가가 이상해진 것을 깨달은 것은 바로 그때. 착각이 아니다. 김현성의 체형이 점점 변하는 것이 보인다.

본인도 이상함을 감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개를 숙여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이 눈에 보였다.

“어?”

얇은 목소리.

“귀찮게 됐군요.”

어깨까지 내려온 긴 머리카락.

녀석들의 장난에 첫 번째 제물이 되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기영 씨. 혹시 불편하신 점은 없으십니까?”

‘그건 내가 너한테 칠 대사야.’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은 많이 봐줘야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오빠가… 여동생이 되어버렸어.”

김예리가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괜스레 크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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