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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53화 (352/1,590)

# 353

회귀자 사용설명서 353화

김현아(3)

“오빠가… 여동생이 되어버렸어.”

너무 적절한 표현이라 뭐라 할 말이 없다.

조용히 주변을 응시하자 여전히 끔뻑끔뻑 김현성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실소가 튀어나온 것은 당연지사.

미리 이야기는 들었지만 현재 눈앞에 일어난 장면이 상당히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높게 잡아도 17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외관.

성별뿐만이 아니라 나이마저 변해버린 것만 같았다.

키와 팔다리가 줄어들었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생머리가 눈에 띈다.

윤기가 나는 흑발이라는 것은 이걸 두고 하는 모양.

마치 기름이라도 발라놓은 것 같았지만 신기하게도 바람에 흔들린 머리카락이 찰랑거린다.

외모는 본래의 김현성을 그대로 여자로 옮겨놓은 듯한 얼굴.

평소에도 잘생겼다고 생각했지만 성별을 바꾸니 엘프에게도 꿀리지 않을 것 같은 모양새다.

본인은 자각 못 하는 것 같지만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외모였다.

이건 주관적인 평가가 아니다.

힐끔힐끔 녀석을 바라보고 있는 파란의 파티원, 심지어는 엘프들 역시 신기한 듯 눈을 돌리고 있으니 다른 표현이 필요 없으리라.

더욱더 재미있었던 것은 녀석의 행동, 10대 후반의 소녀가 하기에는 조금 나이 든 것처럼 보이는 행동이 왠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예를 들면 턱을 쓰다듬는다든지,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인상을 찌푸린다든지 따위의 행동인데, 묘하게 어울리지 않은 느낌이 상당히 귀엽게 느껴졌다.

‘이 새끼 이거 너무 귀엽잖아.’

물론 두근거린다는 느낌은 아니다.

애초에 나이도 어릴 뿐더러 알맹이가 김현성이라는 사실은 누구보다도 잘 인지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한 번 정도는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으리라.

뭐라고 할 말이 없는 상황.

괜스레 엘레나를 바라보자 침착하게 입을 여는 모습 역시 시야에 비친다.

“일시적인 겁니다.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으실 겁니다.”

“아, 그렇습니까?”

“네. 기본적으로 요정의 숲이 아니면 마법이 유지되지 않을 뿐더러 요정의 숲을 벗어나거나 시간이 조금 지나면 금방 원래대로 돌아올 겁니다. 특이하게도 일반적인 디스펠은 불가능하지만….”

“이유가 뭡니까?”

“아마 마법의 구동 방식이 다르기 때문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요정들이 쓰는 마법은 애초에 마법인지 아닌지 그 경계도 굉장히 애매하니까요. 저 역시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한 가지는 단언해 드릴 수 있습니다. 크게 문제될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엘레나의 말에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이는 김현성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김예리나 조혜진은 대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중.

눈에 띄게 저런 행동을 보이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불안했던 모양이다.

김현성 역시 마찬가지라는 걸 생각해 보면….

‘여기 들어와 본 적이 없다는 거네.’

별일 아닌 척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제법 놀랐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들었던 이야기를 재확인한 이후에 작게 미소 짓는 걸 볼 수 있었으니까.

연기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김현성도 요정들의 장난은 처음 겪어 본 것이 맞다.

말인즉슨 이번 던전을 본인이 직접 겪어보지는 않았다는 것.

전설 등급 이상이라고 말한 것을 생각해 보면 피크닉을 다녀오는 것 같은 분위기로 원정을 진행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거다.

‘경험해 봤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하지만 자꾸만 몰려들고 있는 요정들 때문에 분위기가 흐려지는 것이 문제.

재잘거리며 여기저기를 싸돌아다니고 있는 모습과 진지한 분위기는 그다지 잘 어울리지 않았다.

다들 조금이지만 얼굴이 풀어진 것이 보인다.

김현성이 뭐라 한마디 쏘아 붙이려 입을 열려다 뭔가 결심한 듯 입을 꾹 다문 것을 보니 하루 정도는 이런 시간을 가져도 괜찮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휴식도 중요하니까.’

다른 이들도 암묵적으로 허락이 있었다는 걸 인지한 모양이다.

먼저 입을 열어온 것은 안기모였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이었군요. 정말 신기합니다. 길드 마스터도 그렇고 아, 예리 씨도… 마법의 영향을 받았군요.”

“뭐?”

“성별 말입니다.”

“기모 아저씨… 나는 그대로야.”

순간적이지만 얼굴이 굉장히 무서워진 느낌.

뭔가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안기모 역시 필사적으로 말을 돌리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제, 제가 눈이 삔 모양입니다.”

“…….”

“우, 우리 쪽에서는 현성 씨 말고는 변한 사람이 없군요. 뭔가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그냥 요정들 마음 아니요? 여기 와서 별 신기한 광경은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먼 것 같다니까. 현성이 형씨가 저렇게 변하는 모습도 보고…. 아무리 잠깐이라지만 거 이름이라도 바꿔야 되는 거 아니요? 김현아라고 하는 게 괜찮을 것 같은데.”

“무례입니다.”

“거, 혜진이 누님은 너무 딱딱해서 탈이요.”

“길드 마스터로 충분합니다.”

“큼. 그러니까 다 농담이라고 한 거 아니요. 그냥 쓸데없는 소리 한번 지껄여 보고 싶었소. 특별한 경험일 것 같기는 한데 왠지 나는 합류하고 싶지 않다니까.”

“그건 모두가. 마찬가지일걸.”

“저는 조금 보고 싶을지도….”

이상한 말을 하는 황정연의 말에 담긴 저의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보기 싫다는 김예리의 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나 역시 보고 싶지 않은 광경이다.

요정들도 눈이 있다는 걸 실감할 수 있는 순간.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한소라는 요정들에게 공격 아닌 공격을 받고 있는 중이다.

왠지 모르게 쟤는 조금 짠하다.

그 외 다른 여성 길드원들은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간단히 때울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조금 본격적이다.

김현아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는 것 같았는데 아마 내일은 던전 안에 들어갈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 뭔가 말하려고 하지 않았었나?’

고개를 돌리자 녀석 역시 이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온다.

나보다 조금 컸던 녀석을 내려다보니 조금은 묘한 기분. 내 어깨를 툭툭 치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그러고 보니 아까 대답을 듣지 못한 것 같았는데… 불편하신 건 괜찮아지신 겁니까?”

“네. 사실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만… 엘레나 님께서 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셔서 말입니다. 피해를 끼치기는 싫었는데….”

“아닙니다. 어차피 거의 다 도착한 참이었으니까요. 안 그래도 하루 정도는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모두 군말 없이 따라주긴 했지만 후위 분들은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겁니다. 하얀 씨도 희영 씨도. 소라 씨나 정연 씨도요.”

“계속해서 마력을 소모했으니… 현성 씨는 괜찮으십니까?”

“네. 물론입니다. 체력적으로는 문제가… 아, 혹시 지금 상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입고 있는 옷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별 문제 없습니다. 키가 작아진 것만 빼면 말입니다. 전투하는 데도 무리가 없어 보이고 외관만 달라졌을 뿐이지 신체 능력은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제가 덕구 씨나 아영 씨의 포지션이었다면 제법 불편했겠지만 오히려 몸집이 작아지니 유리한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어느쪽이 효율이 더 나올지는 금방 답이 나오겠죠.”

‘그걸 물어본 건 아닌데….’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섬세하고 날렵해진 느낌이라고 해야 될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아, 고맙습니다, 혜진 씨.”

제법 빠르게 식사가 준비됐는지 김현성 쪽으로 조혜진이 슬그머니 스튜가 담신 그릇을 넘겼다.

물론 이쪽에게도 한 그릇이 배달 된 것은 당연지사.

김현아는 입가에 수저를 가져다 대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아무튼 간에 조금 차도가 있어 보여서 다행입니다. 발작 시기도 점점 늦춰지고 있으니… 네. 정말로 다행입니다.”

싱긋 웃는 모습은 가관.

심지어 입가에 스튜 국물을 묻힌 채 입을 열고 있다. 잠깐 동안 바뀐 신체가 적응이 되지 않은 모양이다.

“정말 예쁘지 않습니까?”

“네?”

“이 장소 말입니다.”

“아, 동감합니다. 아마 지구에서도 볼 수 없는 광경일 겁니다. 하하.”

“네. 물론 그렇겠죠. 지구 어디를 찾아봐도 이런 곳은 없을 겁니다.”

“…….”

“…….”

“기영 씨.”

“네.”

“조금 뜬금 없는 소리지만 사실 저는 이곳에 온 걸 원망한 적도 많았습니다.”

“아마….”

“네. 아마 대부분 그렇겠죠. 영문도 모른 채 이곳으로 끌려온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퀘스트는 뭔지 도대체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울고불고 소리친 적도 많았습니다.”

“의외로군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는 않았습니다만….”

“다른 분들 앞에서는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근데… 사람이 참 간사하지 뭡니까. 어느새 이 장소도 정이 들었나 봅니다. 꼴 보기 싫었던 성벽이나 린델도 가끔은 보고 싶고 이런 장소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큽니다. 물론 기영 씨나 다른 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

“사실 이렇게 가까워질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기영 씨를 신뢰하게 될지도 몰랐고요.”

‘나도 그래, 인마.’

“웃기는 말이지만 오히려 요즘은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행 말입니까?”

“네. 여러분을 만난 게, 이렇게 인연이 만들어 진 게 말입니다. 뜬금없지만 앞으로 시간이 많이 지난 이후에도 이 광경을 함께 봤으면 합니다. 그러니… 우리 조금만 더 힘내 봅시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뻗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살짝 손을 맞잡은 것은 당연.

녀석이 날 일으키자 자연스럽게 일어설 수 있었다.

“조금 낯간지러운 이야기를 했군요. 하지만 진심입니다.”

“아뇨.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마침 노을 진 배경이 굉장히 눈에 띈다. 노을마저 녀석을 도와주는 듯하다.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정하얀이 뭔가 무서운 눈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건 바로 그때.

굉장히 오랜만에 입가가 비틀린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무섭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것 같다만 누가 봐도 기형적인 표정이다.

‘쟤 또 사고치는 건 아니겠지.’

순간적으로 김현아의 손을 놓아버린 것은 당연지사.

슬슬 손을 놓을 타이밍이라 이상하지 않았는지 녀석은 여전히 싱글벙글 미소 짓고 있다.

‘그만 웃어. 이 새끼야.’

멈추지 않는다면 진정한 의미의 괴수 대격돌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불안한 마음에 정하얀에게 손짓한 것은 순식간.

갑작스레 얼굴을 밝히며 이쪽으로 달려와 안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하하. 이거 제가 너무 시간을 많이 뺏은 모양이군요. 그럼 저는 잠깐 다른 엘프들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오늘 푹 쉬면 내일은 던전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기영 씨를 믿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잘 버텨주실 거라고요.”

“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까치발을 들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는 모습에 왠지 모르게 양심이 찔린다.

두 눈 가득 들어있는 것은 강한 신뢰와 믿음.

던전을 눈앞에 둔 목전이라 이번 일의 마무리가 더욱더 신경 쓰인다.

‘이거 진짜로 김현성이 오해라도 하면 큰일이겠는데….’

혹시나 가면쓰레기 진청을 이쪽이라고 오해한다면 큰일 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정말로 믿었던 사람한테 뒤통수를 맞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일은 없으니까.

물론 이쪽은 결백하지만 혹시 이번 치료가 듣지 않거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 경우를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저 귀쟁이가 문제야.’

김현성의 솔루션대로 녀석의 방법이 먹힌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만하다.

뭔가 찜찜하기는 했지만 영혼이 깨끗해진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경우가 가장 커다란 문제.

거짓말도 한두 번, 아주 작은 변수로도 상황은 충분히 꼬일 수 있다.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해결책을 찾아보고 있었지만 딱히 제대로 된 솔루션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 문제다.

처음에는 던전행 자체를 방해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기는 했지만 김현성이 최후의 저항 어쩌구를 입에 담았던 시점부터 그 계획은 아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던전은 클리어 되어야 하는 게 맞다.

그게 미래의 위협에 대응하는 방법이다.

‘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역겨워 보이는 건가?’

계속해서 고민 아닌 고민에 빠지고 있었던 바로 그때였다.

‘하얀이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치려나….’

이상할 정도로 김현아를 노려보고 있는 정하얀.

팔이 아플 정도로 나를 꽉 잡은 그녀를 바라보자 순간적이지만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왜 이걸 생각 못 했지.”

‘왜 지금까지 저 엘프를 물들일 생각을 안 해봤을까.’

그 말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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