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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54화 (353/1,590)

# 354

회귀자 사용설명서 354화

쉬운 엘프, 쉬운 엘레나 (1)

‘이걸 왜 지금까지 생각 못 했을까.’

조금은 심각한 표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계속해서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지만 괜찮은 해결 방법을 찾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김현아와 김예리, 김창렬이 함께 던전에 대한 단서를 얻어 온 이후에도 계속해서 헛웃음이 튀어나오는 상황, 앞쪽에서 무언가 떠들썩한 목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크게 집중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우리 현성이가 꼭꼭 숨기고 있었던 던전이 발견됐다는 소식이었을 테니까.

이쪽의 예상이 맞았는지 던전에 진입할 준비를 마치고 있는 길드원들과 엘프들이 시야에 비쳤다.

엘레나 역시 흥분한 표정을 보인 것은 당연지사. 나를 한 번 돌아보며 귀를 위아래로 움직이는 모습은 꽤 재미있다.

무척 순진하고 순수해 보이는 그녀를 바라보니 어째서 지금까지 이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

어떤 의미에서는 정하얀과 김현아에게 감사하고 싶어진다.

‘정말로 영혼이 깨끗해질 필요는 없지.’

그 말 그대로. 정말로 치료가 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내 상태를 볼 수 있는 건 그녀뿐이었으니까.

저 에메랄드 귀쟁이 엘프가 나를 불편해하지만 않으면 된다. 만약 김현성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더라도 그녀가 치료가 끝났다고 믿게 만들면 일이 풀릴 가능성도 있다는 거다.

‘만약에 기벽이 바뀐다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에 대해 궁금하다. 벨리알은 분명히 이쪽을 역겨운 영혼이라고 칭했지만 구토를 하거나 인상을 찌푸리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가진 기벽에 내재된 효과일지도 모른다. 현재의 엘레나 같은 이들에게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역겨운 영혼이겠지만 정하얀에게는 그렇게 비춰지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정하얀에게 엘레나가 가지고 있는 특성 따위는 없지만 만약에 가지고 있다 하더라고 구역질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엘레나의 기벽이나 성향이 뒤바뀐다면 나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바뀔 가능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조금 어렵겠지만 도전할 가치가 있어 보이는 작업, 마침 엘레나와 함께 있을 시간도 많다고 볼 수 있으니 한 번쯤은 시도해 봄 직하다.

‘이런 건 특기가 아닌데….’

물론 마음이 편치는 않다. 순수한 엘프 하나를 구렁텅이로 끌어들이라는 것은 다시 태어난 빛기영에게는 너무나도 어려운 주문. 심지어 이런 쪽은 내 특기라고 볼 수도 없다.

하지만 대의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이 순진한 엘프가 불의에 사고를 당하는 안타까운 사건까지 고려해 볼 정도였으니 그것보다는 이쪽이 싸게 먹히는 장사다.

물론 당장 계획을 실행시키기에는 여러 가지 애로사항들이 꽂히기는 하지만….

“오빠 혹시 어디 불, 불편하신가요?”

“아, 아니야. 하얀아. 잠깐 다른 생각 좀 하느라.”

“다, 다행이다.”

마침 그 애로사항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이제 막 던전에 진입할 준비를 마친 파티원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으니까. 계속해서 그럴듯한 스토리텔링을 준비하면서 걷다 보니 이렇게까지 당도해 있다는 것 역시 생각하지 못했다.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데….’

물론 그런 여유를 즐길 시간은 없다. 한시가 급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만큼 곧바로 진입하기로 결정한 것이리라.

출발하기 전부터 이걸 깨달았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기차는 떠난 뒤, 현재 내가 처한 상황 내에서 일을 잘 처리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이건 나에게만 주어진 시간제한이 부여된 퀘스트. 던전의 진입한 순간부터 던전이 공략되기 전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엘레나에게 진정한 의미의 빛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줘야 한다.

괜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기자 곧바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설 등급 던전 뒤틀린 연못에 입장하셨습니다. 인원 [23 / 34]을 확인했습니다.]

‘여전하네.’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은 분위기와 압박감. 이제 조금 익숙해질 때도 됐건만 이 묘한 분위기는 적응이 되지 않는다.

뒤틀린 연못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마치 공포의 정원 같은 분위기.

사실 식물이 있다는 것 빼고는 그다지 별다른 공통점도 없다. 지하를 통해서 들어온 이곳은 전체적으로 습기가 차 있고 축축했고 이리저리 뒤엉켜 있는 뿌리와 식물들이 모두 썩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녹색을 유지하고 있었던 정원과는 차이가 있다. 한동안 아무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상황, 본격적인 출발을 하기 전에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지 엘리오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말씀이 사실이었군요.”

당연히 대답한 것은 김현성. 에베리아의 레인저들도 찾아낼 수 없었던 단서를 어떻게 이토록 쉽게 찾았는지에 대해 설명할 시간이다. 어차피 운이 좋았습니다. 라고 말하겠지만 뭐 어떤가. 받아넘길 수 있기만 하면 그만이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요정들의 인도가 있었으니까요. 저 역시 이렇게 일찍 찾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 지역은 이미 조사를 마친 지역이었는데….”

“던전에 익숙하지 않을 테니 당연할 겁니다.”

“하지만… 정말로 놀랍군요.”

“거, 옛날부터 우리 길드 마스터가 던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는 거 아니요. 별로 이상하게 생각할 것도 없다니까. 소환된 이후로 찾거나 공략한 던전이 10개도 넘을 거요. 그렇게 자책할 일도 아니고… 던전 하나 찾아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이방인 중에서도 특출 난 경우니까.”

“…….”

‘커버 잘 쳐줬네.’

“덕구 아저씨. 말이 맞아. 예전부터. 현성이 오빠… 아니, 길드 마스터는 이런 곳 찾는 데는 선수.”

“그렇군요. 어째서 이곳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당신들이 이토록 성장할 수 있었는지 알 것 같습니다.”

“뭐, 사실 발견하는 것도 발견하는 거지만 공략하는 게 그것보다 더 중요하지. 형씨… 아니, 길드 마스터와 형님이 없었으면 우리 길드는 이렇게까지 성장할 수 없었을 거요.”

“그렇습니까?”

“아암. 그렇고말고 우리 길드가 던전 공략한 이야기를 풀면 하루 종일 떠들어대도 모자랄 거요. 끄응. 그래도 등급이 전설 등급이니까 조금 불안하기는 한데… 엘프 여러분들은 던전은 좀 익숙한 거요?”

“사실 익숙하지는 않습니다.”

“정말이요?”

“네.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물론 아예 가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들과 비교하기는 힘들 겁니다. 에베리아 왕국에는 던전이 많지 않으니까요.”

“또, 그건 모를 일이요. 지금 이곳처럼 여기저기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내가 생각해도 방금의 발언은 개소리였다. 누가 봐도 던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느낌. 조금 믿음직한 모습을 기대했건만 오히려 조금 어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엘프 측이었다.

‘쯧쯧.’

정말로 경험이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어째서 이만한 무력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 왠지 모르게 어색한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뭔가 말하기 애매한 어정쩡함이 있다.

‘기사단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되는 건가.’

이걸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교국이 보유하고 있는 교국 기사단이 던전 공략에 익숙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았다.

용병들이나 전문 트레저 헌터들과는 다르게 이런 이들은 던전 자체에 무지하다. 전쟁이나 대인전을 치루는 것과 던전을 공략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

이들은 전자의 스폐셜 리스트들이지 후자의 스폐셜 리스트라고 볼 수는 없다.

‘물론 기본기야 존재하겠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는 대처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숲이 아니니 움직임도 제한되어 있을 테고 뒤틀린 연못이라는 던전 자체의 탁한 기운 자체도 엘프들에게 맞지 않는 모양. 감시 아닌 감시를 위해 따라온 이들이었지만 어쩌면 이들이 방해가 될 가능성도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익숙하지 않으시다고 하니… 전체적으로 대형을 재편성하는 게 좋을 것 같군요. 괜찮으시겠습니까?”

“일단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기영 씨와 엘레나 님을 중심으로 대열을 만드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만… 엘리오스 님을 제외한 다른 분들은 후위에 서주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레인저나 정령사분들, 나머지 전사분들은 허리를 맡아주시고 전위는 저희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음….”

‘별로 마음에 든다는 표정은 아니네.’

나 같으면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것이다. 하지만 엘프 측에서는 온전히 전위를 맡기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 이 원정은 나보다는 세계수를 치료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원정이다. 엘프의 일이고 엘프들에게 주어진 과업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너무 파란 길드의 위주로 돌아가기 시작한 그림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개인이라면 앉아서 꿀 빨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들은 거대한 왕국에 속해 있는 집단. 여러 가지를 고려해 볼 수밖에 없다는 거다.

‘얘네도 생각보다 멍청하지는 않아.’

사실 진영이 어떻게 되든 간에 이쪽은 상관없다.

‘던전 공략은 현성이가 잘 알아서 해줄 테고….’

나는 내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공략에도 신경 쓰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능력도 없다. 당장 눈앞에 터진 일부터 해결해 보려 하는 게 맞다.

‘어떻게 방향성을 잡는가.’

아기 새를 바라보듯 바라보는 김현성과 길드원들의 감시망도 피해야 한다. 무엇보다 엘레나가 정확히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파악해야 한다.

작업을 치는 건 준비물이 전부 준비된 이후다.

‘얘가 진짜 문젠데.’

물론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정하얀. 개인 간호사라는 보호막을 두르고 있는 엘레나에게 마법을 날리지는 않겠지만 폭주한다면 무슨 모습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뒤틀린 연못에서 둘만의 뱃놀이를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 떠올려 본다면 백번 조심해도 모자람이 없다.

지금 당장 싱글벙글 웃으며 반지를 매만지고 있다고 한들, 언제까지 얌전하게 있어줄 보장이 없다는 거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어떻게든 단둘이 있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 그 어떤 것보다도 이게 최우선 사항이다. 대화를 하지 않으면 시작도 없다. 아무런 이벤트도 일어나지 않는데 무슨 사건이 일어날 리가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할 여지가 있어야 한다.

‘던전 공략에 걸리는 시간이 얼마나 되지?’

챙겨온 식량을 생각해 보면 보면 최소 10일은 넘게 걸리는 원정. 캠프 역시 10번 이상 만들어진다 가정해 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가슴을 부여잡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마침 걷는 것도 힘든 타이밍.

마차는 없지만,

인력거를 타고 가지 말라는 법은 없다.

남아도는 인력은 충분하니까.

“콜록… 엘레나 님 숨을 쉬기가….”

“네?”

“콜록. 콜록….”

시동을 걸자 자연스럽게 시선이 집중되는 기분, 냅다 들어 누워 버리자 다시 한번 장내가 떠들썩해졌다.

마치 장난감을 사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초등학생 같은 모양새. 이런 똥꼬쇼는 최대한 자제해야겠다고 일 전에도 다짐했지만 원래 인간의 다짐이라는 건 쉽게 깨지는 법.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본격적으로 개 거품을 물기 시작하니 발등에 불똥이라도 떨어진 듯 급해지는 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원래 뒤틀린 장소의 뒤틀린 공기는 순수한 영혼을 좀먹을 수밖에 없다.

외부와의 차단이 절실해지는 순간.

물론, 미녀 엘프 간병인이 함께여야 한다는 것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걷기 싫다. 이 새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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