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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58화 (357/1,590)

# 358

회귀자 사용설명서 358화

쉬운 엘프, 쉬운 엘레나(5)

“다른 분들은 무사할까요?”

“무사할 겁니다. 함께 떨어진 분 빼고는 다른 흔적이 없었으니까요. 지금 분명히 저희가 있는 쪽으로 향하고 있을 겁니다.”

“네.”

“아마 이 몬스터가 뒤틀린 연못의 던전 보스일 확률이 높을 겁니다. 세계수를 썩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고요. 어째서 마지막에 있어야 할 던전 보스가 갑작스레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별다른 문제가 없다면 15일 안에 다른 원정대원들 역시 이곳으로 당도할 수 있을 겁니다.”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지만 어째서 던전의 보스가 갑자기 툭 하고 튀어나왔는지 예상이 간다.

단순한 가정에 불과하지만 아마 녀석이 자리 잡은 곳은 뒤틀린 연못의 중심부일 가능성이 클 터.

이곳이 던전화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던전에 있는 악마들을 유지하는 것에는 막대한 마력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대륙에 체류하는 게 불가능한 악마들을 이곳에 머무르게 해주는 비자가 바로 뒤틀린 연못이나 세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인 것.

네임드 몬스터인 살리트는 뒤틀린 연못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 녀석이 아무 계획 없이 갑작스레 던전 초입으로 산책을 나왔을 리가 없다.

우연히 이쪽이 발견됐다기보다는 처음부터 노렸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그 이후에 전투가 벌어진 것 같지도 않으니까.’

그냥 가마만 삼킨 이후 곧바로 내뺐다는 거다.

김현성이나 다른 길드원들이 미처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찰나였을 것이고 후위를 지키던 엘프들이 제대로 반응하지 못한 것이 원인.

물론 준신화 등급의 몬스터라는 걸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었겠지만 후위가 미처 대응을 하지 못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와중에 의구심이 생긴 것은 어째서 나를 노린 것인가에 대한 것.

물론 예상하는 답이야 있다.

악마군주인 벨리알도 내가 탐난다고 했으니 살리트 역시 내가 탐이 났으리라.

여기서 또 문제가 되는 것이 하나.

‘이 새끼는 도대체 왜 나를 삼켜 버린 거지?’

벨리알은 분명히 나를 죽일 의지가 없다는 것을 표현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했다.

악마에게 계약이라는 건 곧 실적.

심지어 꼭 한 번 다시 만나면 좋겠다며 호의를 드러냈을 정도였으니 다른 표현이 필요가 없으리라.

살리트가 나를 죽이기 위해 삼켰다는 건 내가 알고 있는 악마의 사고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사고가 불가능한 건가?’

본능으로 움직이는 종류일 수도 있다.

악마로 분류된 모두가 72군주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종류는 아닐 테니까.

조금 더 녀석의 정보를 확인하면 좋으련만 내게 주어진 정보는 고작 이 정도다.

아직 전설 등급인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게 아쉬웠다.

그나마 녀석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볼 수 있는 것 역시 내가 가지고 있는 직업의 영향 때문이리라.

“그보다… 저, 정말 다행인 것 같습니다.”

“네?”

“만약 이기영 님이 아니었다면 아마 저는 그곳에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나마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엘레나 님이 있었기 때문이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현재 저희가 몬스터의 안에 있다는 사실도 이기영 님께서 알아내셨고… 저는 아무것도…. 네. 겁만 집어 먹고 있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무척 겁이 납니다. 명예추기경님께서는 어떻게 그렇게 침착하실 수 있는지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라… 크게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할 뿐입니다.”

“하하. 저도 생각보다 용기 있는 사람은 아닙니다. 사실은 엘레나 님과 똑같습니다.”

“네?”

“저도 똑같이 겁이 많은 사람이라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글쎄요.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상황이 익숙하기도 하고.”

“…….”

“엘레나 님이 함께 계신 것도 영향이 있겠죠. 혼자였다면 아무래도 버티기 힘들었을 겁니다. 의지할 만한 사람이 있다는 건 그만큼 도움이 되니까요.”

“아… 그,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니라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마 엘레나 님께서 지금 제 손을 잡아주시지 않았더라면 벌써 쓰러져 버렸을 겁니다.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감사합니다.”

“앗.”

작은 통로를 타고 다니던 와중에 에메랄드 색 엘프가 짧게 소리를 질렀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보니 아마 한계에 다다른 모양.

그럴 만도 했다. 제대로 된 휴식 없이 이틀은 걸었으니까.

슬슬 나 역시 체력적으로 한계인 상황이다.

이런 행군 경험이 없는 그녀가 힘들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기본 스탯이 높은 편이니 여유 체력은 있을지 몰라도 발은 온전치 않을 것이다.

“잠깐 쉬었다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요. 그럴 수는….”

“마침 저도 힘들었던 타이밍입니다. 이틀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걸어왔으니까요.”

“…….”

‘나 진짜 힘드니까 그렇게 죄책감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 동안 주변을 둘러봤지만 마땅히 이상한 점은 찾지 못했다.

혹시나 체내에 다른 몬스터를 키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직까지는 별다른 특이점을 찾지 못한 상황.

만약 휴식을 취한다면 지금이 적절한 타이밍이다. 다음 기관으로 이동하는 통로의 안이었고 몸을 숨기기에 적절한 지형을 하고 있었으니까.

‘뭐, 그게 도움이 되겠냐만은….’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

살짝 자리에 주저앉은 뒤에 옆자리를 두드리자 조심스럽게 옆에 앉은 모습이 보였다.

고통스러운지 인상을 찡그리는 모습.

내가 생각한 그대로라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잠깐 발을 봐도 되겠습니까?”

“네? 아닙니다. 괜찮….”

대답을 듣지 않고 조심스레 장화를 벗기자 확실히 물집이 터져 엉겨 붙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장화에 피가 달라붙어 아파보이기는 했지만 고통보다는 부끄러움이 더 커다란 모양.

다시 한번 얼굴을 붉히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괘, 괜찮습니다. 제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시지….”

“걱정하실 것 같아서. 하지만 이, 이제 괜찮습니다. 이기영 님.”

“아니요. 신성력은 아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체력을 안배해야 합니다. 마침 제게 포션이 있으니 이걸로 치료를 하는 게 더 빠를 것 같습니다.”

“네?”

‘미쳤다고 이런 이벤트를 그냥 넘기겠어.’

최우선 사항은 당연히 이곳에서 살아서 나가는 거지만 작업 역시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고지가 코앞이라는 느낌도 있었고 생각보다 그녀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악마의 안에 있어서인지, 이미 내게 익숙해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구역질을 하거나 인상을 찌푸리지는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

천천히 발을 매만지는 와중에도 다른 거부 반응이 없다.

오히려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는 거다.

품에 있는 포션을 하나 꺼내든 뒤 천천히 그녀의 발 위로 쏟으니 익숙하지 않은 감각에 귀를 움찔거리는 엘레나의 얼굴이 보였다.

‘조금 농도가 짙기는 한데 뭐, 이런 게 더 괜찮겠지.’

상처 부위에 천천히 포션을 부은 이후에 천천히 발을 매만지기 시작하자 확실히 귀가 파닥거리는 게 보인다.

최대한 숨을 참고 있었지만 부끄럽기는 한 모양.

조금 과민 반응하는 것 같은 얼굴을 보니 엘프족 여성에게는 발을 보이는 게 굉장히 부끄럽게 여겨지는 것 같았다.

‘엄청 작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신체에 비해 발이 조금 작은 듯한 느낌. 어떻게 여겨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최선을 다해 그녀의 발을 치료할 수밖에 없었다.

기왕 하는 김에 종아리 쪽으로 손을 올렸지만 크게 당황하거나 저항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괜찮다는 표현인 것 같았다.

“근육도 함께 풀어 들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네? 아… 네. 그러실 필요는….”

“아마 근육의 피로를 푸는 데도 효과가 탁월할 겁니다.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제가 만든 포션은 여러 가지 효능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 상태로 조금만 계시면 괜찮아질 테니 기다릴 동안 짧게 식사라도 하는 게 좋겠군요.”

“네.”

“받으세요, 엘레나 님.”

“아뇨. 이렇게까지는 필요 없습니다. 저보다는 명예추기경님께서 드시는 편이….”

“저는 익숙합니다. 오히려 이럴 때는 많이 먹지 않은 편이라. 아까 먹은 걸로도 충분히 배가 부릅니다. 빨리 받으시죠. 보잘 것 없는 식사지만 짧게나마 허기를 달랠 수 있을 겁니다.”

“가,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실 필요 없습니다.”

살짝 웃어주는 것으로 마무리.

마지못해 내가 넘긴 것을 받아든 엘레나의 얼굴이 눈에 보인다.

이렇게 도움만 받아도 되는지 죄책감에 휩싸인 얼굴이기도 했지만 묘하게 기뻐하는 얼굴이기도 했다.

‘생각보다 너무 잘 풀리는 있고요.’

예상보다 차도가 빠른 게 의아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꼭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괜히 액션 영화나 공포 영화에 등장하는 커플이 클라이막스를 키스로 장식하는 게 아니다.

더 절박하고 더 위험한 상황일수록 호감을 느끼기 쉽다는 거다.

그게 긴장에 의해 빠르게 뛰는 심장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가슴 속에서 우러러 나오는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눈앞에 있는 이 순진한 엘프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계시에 매달려 있는 상태.

부자연스러운 행동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곳에서 조금 신경 써주는 것으로 호감을 얻는다면 당연히 이득.

원정대가 살라트가 있는 곳까지 도착한 이후에 맞부딪친 이후에는 곧바로 내 몸을 회복시키는 이벤트가 시작될 테니 미리미리 신경 쓰는 게 좋다.

‘오고 있는 거 맞겠지?’

아까도 먹었던 육포를 씹으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살살 드는 것은 당연지사.

혹여나 원정대가 사고를 맞이했을 때를 대비해서 녀석의 심장으로 향하고 있기는 하지만 일이 잘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외부뿐만이 아니라 내부도 단단한 녀석.

용 숨결 물약으로 대미지를 입힐 수 있을지조차 확언할 수 없다.

‘이 여자도 공격력이 높아보이지는 않고….’

뭐가 됐든 간에 안주하면 죽는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당장 놈의 위장에서는 빠져나왔지만 다른 기관에 있다고 하더라도 분해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내 손을 잡은 샤를리아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는 느낌을 받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얘 왜이래?’

조금은 긴장하고 있는 듯한 얼굴.

혹시나 무슨 상황이 터진 건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들기는 했지만 그런 얼굴은 아니다.

뭔가 굉장히 물어보고 싶다는 듯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었지만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는 듯한 느낌.

혹시나 또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지 기다렸지만 들려온 것은 전혀 의외의 이야기였다.

“저… 명예추기경님.”

“네.”

“혹… 혹시 말입니다.”

“네. 엘레나 님.”

“명예추기경님과 정하얀 님은 그… 어, 어떤 관계이신지….”

‘얘 봐라.’

드디어 물어봤다는 듯이 입술을 꽉 깨물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홍당무처럼 붉어진 얼굴.

‘요 당돌한 것 봐라.’

어쩜 이렇게 내가 기다리고 있는 말을 해줬는지 귀엽게 느껴진다.

한쪽으로는 일이 꼬였지만 다른 한 쪽으로는 일이 잘 풀리고 있는 듯한 느낌.

조금 불안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엘레나를 보며 나는 환한 미소를 보내며 입을 열었다.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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