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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61화 (360/1,590)

# 361

회귀자 사용설명서 361화

엘룬 쓰레기(2)

생각해 볼수록 그럴 듯하다.

아마 엘레나가 생각하는 계시와 내가 생각한 결론은 거리가 멀겠지만 그녀가 받은 계시는 나를 치료하라는 종류임이 틀림없을 터.

나 역시 그 정도의 내용이 끝이라고 생각했다.

시스템이 내려준 직업, 빛의 연금술사와 엘레나 와의 관계에 연관성이 있다는 가정은 상상해 보지도 못했다.

‘생각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지. 누가 이걸 상상이나 했겠어?’

전설 등급의 직업 엘룬의 수호자.

유일무이의 하이엘프.

단순히 수식어로 설명하자면 짧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하이엘프와 신의 사도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다.

세계수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마력의 영향을 받아 태어난 존재가 하이엘프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더욱더 그렇다.

애초에 세계수 자체가 준신화 등급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현재 우리를 삼키고 있는 악마를 현세에 머물도록 유지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에베리아 왕국 전체를 감싸고 있었으니까.

그 세계수의 영향을 받고 엘룬에게까지 선택받았단다.

존재 자체만으로 전설 등급 이상의 판정을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거다.

말하자면 그녀는 엘룬의 딸이며 엘룬의 분신.

엘룬이라는 작자가 소중하게 키운 자신의 딸을 넙죽 넘기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이 새끼가 이렇게 비정한 쓰레기일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초월적인 존재도 완벽하지 않다는 건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

하지만 나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딸까지 팔아먹는 쓰레기도 위에 있을 줄이야. 생각지도 못했다.

악마라고 봐도 모자람이 없는 자식.

이정도면 엘레나가 불쌍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비정한 쓰레기.’

단언컨대 녀석 같은 쓰레기는 지상에도 흔하지 않으리라.

물론 녀석이 어떻든 간에 이쪽과는 하등 상관없다.

오히려 환영하고 싶다.

정황이야 어떻게 됐든 나에게 이득이라면 과감히 받아들이는 게 맞다.

어차피 초월적인 존재 역시 내가 김현성에게 더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의미로 선물을 던진 것이 분명.

이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겠지만 녀석들이 퍼주는 것에도 전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단 이번 일로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시스템을 관장하는 이들이 한 놈이 아니라는 것.

대륙에서 신이라고 불리는 놈들이 하늘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엘룬 이 쓰레기도 시스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거구나.’

당연히 이 모든 건 내 상상이다.

아직 정확한 것은 정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것 하나는 나와 김현성이 녀석들의 비호를 받고 있다는 것.

자신의 딸을 가져다 바칠 정도니 거의 무조건적인 호의라 생각하는 것이 옳다.

‘이딴 걸 도와주지 말고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상황이나 도와주지.’

물론 아쉬움에 터져 나오는 불평불만.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볼 때 초월적인 존재들이 인간의 죽음이나 삶에 크게 관여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정말로 불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엄청난 페널티를 부과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아무튼 확실한 것은 초월적인 존재가 나와 김현성의 사이가 갈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엘레나가 빛의 연금술사가 사용하는 연금술의 촉매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

후자가 사실이라면 소리를 질러야 함이 옳다.

계속해서 히죽거리며 엘레나를 바라보자 무슨 영문인지 나를 올려다보는 그녀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뭔가 흠칫 하고 몸을 잠깐 떤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혹시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으신지요.”

“방금 전에 도움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생각나서 말입니다.”

“네. 당연히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조금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괜찮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굉장히 실례되는 부탁일 수도….”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설마 자신이 연구대상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하는 모양.

사실 그녀의 동의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만약 내 추측이 맞다면 이건 시도해 봐야 하는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래도 기왕이면 살살 구슬리는 게 조금 더 일하기 편하다. 상황도 상황이었고 그녀가 어떻게 나에게 협력해 주느냐에 따라 연구에 질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어떻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본론으로 들어가는 게 맞다.

그녀의 손을 다시금 꽉 잡은 채로 입을 열자 묘하게 얼굴이 붉어진 그녀의 엘레나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제가 엘레나 님의 몸을 한번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네?”

뭔가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

영문을 모르겠지만 마치 홍시가 된 것 같은 얼굴 때문에 다시금 자세한 설명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최대한 핵심만 전달한다고 생각하고 이야기를 진행시켰으니까.

말하는 내내 엘레나는 고개를 끄덕여왔고 때로는 탄성을 냈다.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아무래도 그녀 자신이 나와 조금 더 강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쁘게 다가온 것이리라.

“말씀은 이해했습니다, 이기영 님. 한데 어떤 식으로 도움을 드려야 할지에 대해서는 잘….”

‘그게 문제야.’

초장부터 피검사를 하거나 벗어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

물론 그 이후의 일 역시 문제로 다가올 수도 있다.

디아루기아의 촉매를 발견하고 연구하는 데 들어간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 이곳에서 새로운 종류의 물건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다.

소지하고 있는 장비와 촉매 역시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것은 당연지사.

용 숨결 물약과 강화의 혈청은 수많은 가설과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자산의 산물이다.

수백 개가 넘는 연금키트로 수천 번이 넘는 실험이 있었기 때문에 단기간에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했다는 거다.

‘슈바…. 나는 천재가 아닌데.’

아무 것도 없는 시점에서 곧바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무리.

이론을 정립하는 데만 몇 십 년이 걸리고 실험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엘레나가 옆에 있기야 하지만 그녀를 보조해 주는 다른 촉매들의 숫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많아야 네 번, 혹은 다섯 번이면 가지고 있는 재료가 모두 소진될 것이 분명.

조금은 다른 방향을 생각해 봐야 했다.

살라트의 몸을 촉매로 사용하는 것은 무리. 타액 역시 가공이 불가능하다.

[살리트의 타액-준신화 등급]

[연금술의 촉매로 활용할 수 없는 소재입니다.]

혹시나 해서 챙겨오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준신화 등급의 몬스터를 촉매로 활용하는 것은 무언가 조건이 걸려 있는 모양.

빛의 연금술사가 하이엘프 엘레나를 촉매로 활용하듯 이쪽 역시 특정 직업을 얻어야 촉매의 활용이 가능해 질지도 모른다.

‘확 전향해 버릴까?’

물론 방법 따위는 알지도 못하고 한소라가 없으니 시도 자체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벨리알이라면 어쩌면 이쪽의 목소리에 반응해 줄지도 모른다.

마법진도 대충 외우고 있고 애초에 자리한 곳이 살리트의 안이라 할 수 있으니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엘레나가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납득시킬 수 있겠지 뭐.’

하지만.

‘빛의 연금술사를 버리는 건 조금 아깝지….’

물론 아깝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도 전부 살아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 계속해서 녀석의 안쪽을 탐험하다가는 이쪽이 먼저 지치게 생겼다.

김현성을 기다리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함부로 개입할 수 없다는 건 이해하지만 이쯤 되면 위에서 뭔가 액션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닐까 싶다.

‘이 새끼들 이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한 거 아닌가?’

그동안 빛의 진영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바쳤건만 돌아온 건 겨우 준신화 등급의 직업.

베니고어 여신 교단의 명예추기경으로 헌금은 얼마나 냈었지? 하는 생각도 훅 하고 들어온다.

단언컨대 지금껏 나보다 많은 액수의 헌금을 낸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물론 현재는 그 헌금의 대부분이 나에게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신의 이름 앞에 헌금을 붙이기야 했다.

‘맞아. 그렇지. 백 번 생각해도 그렇지.’

라이오스 사건은 또 어떤가.

조금 사소한 위기가 있기는 했지만 그 사건의 파급력이야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을 정도.

전 대륙으로 내가 선보인 기적이 방송을 탄 것은 물론 통계적으로도 베니고어 여신교도가 크게 증가했다.

아니, 증가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미 천장을 뚫었다.

악마가 계약으로 실적을 올리는 것처럼 하늘 위에 있는 존재도 신도에 의해 실적을 채우는 것이라면 내가 교단에 어느 정도 기여했는지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희귀 등급의 강제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적자야. 이 쓰레기 새끼야. 적자라고. 네가 저지른 패악질 때문에 수습하느라 적자고 파산했다고 제기랄…. 완전 난리도 아니라고.(0/1)]

그것뿐만이 아니다.

베니고어 여신을 민주투사로 만든 것 역시 빛기영의 위업.

여신의 거울로 베니고어 여신에 대한 찬양가가 전 대륙에 울려 퍼지지 아니한가.

[희귀 등급의 강제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너 미친 거지? 그걸 위업이라고? 니가 지금 여기 상황을….(0/1)]

그뿐인가.

항상 김현성의 옆에서 녀석을 보좌한 것은 물론 목숨을 바칠 기세로 충성을 다했다.

그 충성에 대한 대가가 겨우 이것이라면 차라리 벨리알 쪽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희귀 등급의 강제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지상의 일에 크게 개입하는 것은 금기야. 우리 이러지 말자. 마음은 이해하지만 너라면….(0/1)]

그건 내 알 바 아니다.

이미 마음의 쓰라린 상처를 입은 상황.

기왕 악마에게 먹힌 김에 아주 영혼까지 깔끔하게 전향하는 것도 나쁘지….

[희귀 등급의 강제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이봐, 기영이. 우리 이러지 말자. 지금은 상황이 좀 안 좋아. 나도 여건이 없어. 신력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여기저기에서 빌려야 되는 상황이야. 이미 많이 빌렸고 더 이상은 정말 불가능해.(0/1)]

나는 지금 죽기 직전에 상황이다.

식량도 5일치밖에 남지 않았고 다리도 퉁퉁 부었다.

김현성과 함께하는 길은 영광만이 함께할 줄 알았건만 너무나도 춥고 배가 고프다.

믿음에 대한 대가가 겨우 배고픔과 목숨의 위협이라니.

여신을 등진 이들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당연히 이곳에서 꺼내달라는 소리 같이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강림해서 모든 상황을 해결하라는 건 들어본 적도 없다.

절대로 이런 걸 바라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조금 더 편한 길을 갈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권리를 가지고 있는 이들의 책임이 아닐까?

여기까지 했는데도 말이 통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타협은 없다.

녀석도 비정한 쓰레기 엘룬을 조금 더 본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알아들어? 정말로 타협 같은 건 없는 거야.’

[희귀 등급의 강제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쓰레기 새끼(0/1)]

‘어쩔 수 없….’

[준신화 등급의 강제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오른손 들기(0/1)]

[퀘스트 완료 보상]

[빛 폭탄 물약 레시피-준신화 등급]

믿음에 대한 답.

‘베니고어 여신 만만세.’

역시나 하늘은 믿는 자를 내치지 않는다.

다시 한번 여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올라서는 순간.

마음이 빛의 기운으로 가득 차는 듯한 기분이었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희귀 등급의 강제 퀘스트가 발동합니다.]

[넌 진짜 쓰레기야. 진짜.(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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