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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64화 (363/1,590)

# 364

회귀자 사용설명서 364화

빛기영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노라(2)

맹렬히 회전하는 빛.

이미 키트를 벗어나 병 안에 들어간 결과물은 눈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의 찬란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금방 기분 좋은 소리가 들릴 거라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계속해서 빛만 뿜어대고 있는 녀석의 모습에 괜스레 불안한 마음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거 베니고어가 통수 친 건 아니겠지….’

혹시나 갑자기 터져 버릴까 불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존경해 마지않는 베니고어 여신님께서 독실한 신도이자 김현아의 자랑스러운 우군인 나를 버린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걱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시스템의 관리자라고 예상되는 초월적인 존재들 중에서도 틀림없이 쓰레기가 존재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엘룬 쓰레기처럼.

‘아니야. 그래도 우리 베니고어 여신님은 그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지.’

이미 많은 것을 희생하셨을 테니 여기서까지 독실한 신자의 뒤통수를 건드리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 신성력을 조금 더 주입하는 게 맞으리라.

불안하기는 했지만 갑자기 터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엘레나 님 신성력입니다.”

“네?”

“계속해서 이곳에 신성력을 보내주세요.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맡겨주세요.”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없다.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병에 신성력을 밀어 넣는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당연히 저게 터질까 봐 무서워 엘레나에게 토스한 것은 아니다.

내가 가진 신성력보다 엘레나의 것이 조금 더 농도가 짙은 것이 사실.

마치 황금 알이라도 받은 듯 녀석에 계속해서 신성력을 주입하는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조금 더 출력이 필요한 것 같아 나 역시 연료주입에 합세했다.

다시 한번 더 빛이 터져 나오기 시작.

가끔씩 격동적으로 흔들리는 녀석의 모습에 잠깐 겁을 집어먹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내가 원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역시 틀리지 않았어. 베니고어 여신님 만만세.’

[준신화 등급의 물약, 빛 폭탄 물약의 조합에 성공합니다.]

[마력 1이 올라갑니다.]

[빛 폭탄 물약 - 준신화 등급]

[빛의 연금술사 전용 소비 아이템-일일 사용량 제한(3/3)]

[준신화 등급의 직업, 빛의 연금술사만이 연성할 수 있는 고유의 물약입니다. 베니고어 여신의 배려와 엘레나의 희생으로 인해 만들어진 이 물약은 사용자의 신성력을 주입한 직후 사용자의 적과 아군에게 반응하는 거대한 빛 폭발을 일으킵니다. 아군은 중상을 즉시 회복하게 되지만 적군은 폭발의 영향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하루에 세 번 사용 가능한 물약입니다. P.S 쓰레기 같은 놈.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이다. 나도 더 이상은 한계야.]

나이스! 나이스! 개꿀! 개꿀!

“이기영 님, 된 것 같습니다. 해냈습니다. 저희가 해냈습니다!”

“네. 저도 보고 있습니다. 엘레나 님.”

“저, 정말로 이런 게… 이런 물건이….”

“모든 게 전부 엘레나 님 덕분입니다.”

“아닙니다. 이기영 님께서 이룩하신 결과물입니다. 네. 이 순수한 빛으로 둘러싸인 신성의 결정체는 이기영 님의 위업입니다.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정말….”

“과찬입니다. 저 혼자였다면 이런 물건을 만들지 못했을 테니까요.”

나 역시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힘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녀석을 한 손에 들고 춤이라도 땡기고 싶었지만 일단은 물약을 품 안으로 집어넣는 것이 최선.

조금 더 자세히 그 영롱한 모습을 감상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럴 여유가 없다.

물약의 내구도를 생각하면 단순한 충격으로 깨질 리는 없겠지만 혹시 모를 상황이라는 게 존재하는 만큼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김현성이 선물해 준 무한의 가방, 이곳이라면 안심할 수 있다.

곧바로 놈을 쑤셔 넣고 몸을 움직이자 엘레나가 나를 붙잡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보였다.

‘기분 좋아 보이네.’

얼굴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흥분이 감돈다.

이미 세상이라도 구한 것 같은 표정. 심지어 나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언뜻 존경심이 서린다.

‘그래. 그럴 만도 하지. 이해한다. 이해해.’

준신화 등급.

물론 신화 등급에는 한 단계 떨어지나 이 물약은 엄연히 신화 등급의 언저리에 걸려 있다.

대륙에서는 엄연히 규격 외라고 부를 수 있는 물건.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지만 단언컨대 화력은 내가 기대하는 것 이상이리라.

심지어 아군은 곧바로 중상에서 회복시켜 준단다.

조금 부족하기야 하겠지만 어쩌면 고위 사제의 신성력을 상회하는 성능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단점은 하루에 사용 한도가 정해져 있었다는 것.

베니고어가 막아놓은 것인지 아니면 규격 외의 물건이기 때문에 제한이 걸려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떻든 하등 상관없다.

‘적와 아군도 구분 가능하다는 건.’

어떻게 봐도 이 물건은 소리를 지를 만하다.

‘가즈아! 베니고어 여신님 만만세다!’

가장 어려운 미션을 넘었으니 이 다음은 사실상 식은 죽 먹기.

심장 쪽으로 들어가 내 품에 있는 녀석을 던지면 모든 게 해결된다.

밖에 있는 원정대원들도 해피하고 나 역시 해피한 상황.

이미 내 오염된 영혼은 치료가 완료 되어 있다.

더럽혀진 영혼을 다시금 정화한 새로운 힘을 얻은 빛기영의 위업에 모두들 입을 벌리게 되리라.

현재 이쪽이 처해 있는 상황이 제법 힘이 들기는 했지만 이후에 벌어질 훈훈한 결과물을 예상하자 자꾸만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물론 발걸음을 옮기기는 쉽지 않다.

아직도 밖에서는 격렬한 전투가 진행되는 도중. 아니, 솔직히 전투가 진행되고 있는지 맞는지도 확신할 수 없다.

녀석이 단순히 혼자 지랄발광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으니까. 어떻게든 밖에 상황을 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무척 아쉬울 뿐이었다.

‘여기 상황을 전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상황이 반전된 것은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있을 때였다.

어디에선가 조금 익숙한 마력이 느껴진 것.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게 내 착각이 아니라면 이 반가운 기운은 그녀의 것이 맞다.

‘정하얀?’

입가에 미소가 그려진다.

물론 엘레나를 품에 안고 있다는 걸 깨달은 이후에는 깜짝 놀랐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아마 이해해 줄 것이다.

조금 불안한 면이 없지 않아 있기는 했지만 내가 그녀를 안고 있다는 것보다는 내 생사를 확인했다는 것에 더 큰 의의를 두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천천히 주변을 바라보자 역시나 익숙한 눈이 시야에 비치기 시작.

‘아네모네의 눈.’

확실히 원정대가 이곳에 당도한 것이다.

커다란 눈이 쫄랑쫄랑 나를 따라오는 것이 눈에 보인다.

살리트의 저항력을 뚫고 들어온 것으로도 모자라 내 위치를 정확하게 찾은 것은 소름이 돋을 지경.

물론 외부나 내부를 공격하는 마법은 아니었기 때문에 저항력 판정이 평소와 달랐겠지만 그래도 이런 마법을 선보인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정확히 아네모네의 눈 쪽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 역시 고개를 끄덕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

‘예상이 맞았네.’

지금까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나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생각한 게 들어맞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 이 사단이 난 것은 원정대원 때문 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전투가 진행되고 있었던 것도 맞았었다는 거네.’

전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내가 그리 신경 쓰인 모양.

쓸데없는 마력을 사용할 시간에 좀 더 집중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도 든다.

이쪽이 원했던 대로 내 뜻을 외부의 인원이 받아들이기 더 편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최대한 묶어놔. 심장 쪽으로 달릴 테니까.”

“네?”

“그리고 여기 말고 바깥쪽에 집중하고.”

분명히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 틀림없으리라.

하지만 아직까지 아네모네의 눈은 나를 따라오고 있는 상태.

아네모네의 눈을 바라보며 손짓하자 내 뜻을 알아차렸는지 곧바로 마력이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좋았어.’

어느 정도 진행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내 뜻은 확실하게 전달했다.

녀석이 입는 충격이 이쪽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을 터.

하지만 사정 봐주면서 레이드를 진행시키기에는 적이 제법 강하다.

녀석의 내구력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정하얀과 김현성의 공격 외의 다른 공격은 제대로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물리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내부까지 공격이 닿지 않은 것이다.

덩치가 워낙 큰 만큼 현아의 칼질 역시 한계가 있는 상황일 터.

만약 끝장을 볼 수 있었다면 살리트는 벌써 땅바닥을 뒹굴고 있었으리라.

‘도와줘야 된다는 거네.’

절대 마무리 일격이 탐나서 이러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아주 좋아.’

정하얀에게 전달한 메시지가 효과가 있었던 것인지 확연히 움직임이 줄어든 느낌.

녀석의 움직임을 당장 억제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물리적 충격을 줄 수 있는 마법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 더 움직이기 편해진 것은 당연지사.

그 모습에 엘레나가 입을 열어오기 시작했다.

“이기영 님, 지금 혹시….”

“네. 원정대 쪽에서 현재 저희 위치를 확인한 것 같습니다. 아마 조금 있으면 신호가 올 겁니다.”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정말로.”

“하얀이가 저를 찾은 것 같습니다. 전투의 양상이 달라진 것을 보니 바깥쪽에서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 같고요.”

“잘… 되었군요.”

“빨리 움직이시죠. 아마 몇 분 이내로 신호가 올 겁니다.”

“네… 네!”

다시 한번 육중한 충격이 느껴진 것은 바로 그때.

잠깐 움찔하기는 했지만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무엇인가가 위에서부터 녀석을 누르는 압력이 느껴졌으니까.

발버둥 치는 것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놈은 확실히 어느 한구석에 고정되어 있다. 내부는 흔들리기는 하지만 위치는 변하지 않는다.

‘얼마 안 남았어.’

다리가 아프고 숨이 찬다.

하지만 막타를 향한 열정, 아니, 원정대원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없다는 각오 때문인지 안에서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솟았다.

괜스레 그 동안 고생한 것 역시 떠오르기 시작.

물론 살리트에게는 고마운 점도 많다.

녀석 덕분에 얻은 게 결코 적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어둠이 빛을 삼키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 됐다. 아쉽지만 녀석과는 여기에서 결별할 시간.

[살리트의 심장]

목적지에 당도했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이정표.

거대한 심장이 세차게 움직이는 장면은 압도적이기는 했지만 당연히 멍하니 녀석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게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사실 지금까지 받았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무한의 가방에 들어있던 것을 손으로 집어든 것은 순식간.

‘네가 날 먹을 수 있을 알았어?’

녀석이 소화시키기에는 빛기영이 가지고 있는 빛의 기운이 너무나도 찬란했던 것이 분명하리라.

새로 만든 빛 폭탄 물약에 신성력을 쏟아부은 것은 당연지사.

녀석이 내 손을 떠나자 순간 눈이 멀 정도의 찬란한 빛이 포션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시발….”

뭐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빛. 이 장면을 찍어 놓을 수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온 외침.

전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명대사였지만 꼭 한 번 외치고 싶어진다.

“빛이 있으라!!”

빛기영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노라.’

그 말 그대로.

[달성할 수 없는 위업을 달성합니다.]

[새로운 칭호가 생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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