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66
회귀자 사용설명서 366화
빛기영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노라 (4)
“쓰레기 자식.”
분명 검을 한 번 휘둘렀을 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저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는 마수가 옆으로 고꾸라졌다.
검에서 뿜어져 나온 기운은 뭐라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
인간이 저 정도의 참격을 뿜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은 것은 당연하리라.
눈앞에 있는 마수는 과장해서 말한다면 거대한 언덕이요, 산이다.
그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 마수가 한 인간이 휘두른 검에 균형을 잃었다는 것은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도 의구심이 남을 정도였다.
같은 길드원들 역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으니 다른 설명은 필요 없으리라.
지금까지는 힘을 숨겼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허억. 허억. 허억….”
계속해서 거친 숨을 쉬고 있는 마법사와는 다르게 눈앞에 있는 검사는 흐트러짐이 없다.
잠깐 동안 주먹을 꽉 쥐게 된 것은 당연지사.
한낱 인간이 이 정도까지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전율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절로 존경심이 들어선 것은 당연지사.
그가 들어선 경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대미지가 없나.’
공격을 받은 녀석이 멀쩡한 것이 문제.
아마 평범한 몬스터였다면 첫 번째 참격에 몸이 반으로 잘려나갔을 것이다.
아니, 첫 번째로 터져 나왔던 마법으로 이미 커다란 상처를 입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정도 공격으로도 녀석의 외피를 뚫어낼 수는 없었던 모양.
다시 한번 견제용 마법과 엘룬나이트들이 쏘아낸 화살이 날아들었나 커다란 효과가 있을 리 만무.
단순히 시간을 버는 게 고작이다.
물론 뒤에서는 예의 그 마법사가 다시금 캐스팅을 외우고 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딱히 효과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화풀이로 마법을 쏘아대 봤자 외피에 물리적인 충격을 주는 것이 고작이리라.
‘이건 아니야.’
어떻게 봐도 장기전으로 갈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는 상황.
정하얀이라는 마법사가 자신의 출력을 감당하지 못한 채 리타이어한다면 팽팽하다고 할 수 있는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현재 녀석의 외피에 상처를 줄 수 있는 수단은 그녀의 마법과 파란 길드마스터의 검.
고개를 돌리자 역시나 이성을 잃은 것 같은 마법사의 눈이 시야에 들어왔다.
‘안 돼.’
소리를 치려고 했지만 다시 한번 몸을 일으켜 몸을 날려 온 마수 덕분에 입술을 꽉 깨물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거대한 방어막과 함께 거대한 방패를 든 사내에게 여러 가지 보조 마법이 내려와 꽂힌다.
이미 입안 한 가득 포션을 머금은 전사는 몸을 가릴 정도로 방패를 치켜든다.
“덕구 씨! 보호 마법부터!”
“거, 알고 있다니까! 걱정 마쇼, 형씨! 여기서 죽지는 않을 거라니까!”
콰직!
원정대원들을 지킨 방어 마법이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
그 틈에 방패를 든 전사는 한 발자국 앞으로 들어가 마수의 머리를 빗겨 쳐낸다.
녀석의 경로를 바꾸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으리라.
힘이 있다고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말 그대로 절정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는 기예.
혹여나 버틸 수 있는 힘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는 했지만 때마침 날아든 마법이 힘을 보탠다.
“정연 씨, 나이… 커헉!”
“덕구 씨!”
만약 실수했다면 곧바로 전멸이었다.
황정연이라는 마법사가 마법을 쓴 타이밍과 방패를 빗긴 타이밍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았다면 장담컨대 방패를 든 전사는 방금의 공격으로 피떡이 되어버렸으리라.
방어에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패를 든 전사의 몸이 완전히 부서진 상황.
황급히 포션을 들이켠 동시에 전투사제의 회복 주문이 계속해서 날아 들어와 꽂힌다.
전위가 만들어 준 타이밍.
이후에 이성을 잃은 마법사의 마법이 들어와 꽂힐 거라 생각했지만….
“주문 취소. 하얀 씨는 기영 씨를… 찾습니다.”
“아! 아! 아아! 네! 네!”
아직 완전히 이성을 잃지는 않은 모양.
캐스팅하고 있는 마법을 취소시킨 그녀를 확인한 순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마법이 쏟아지지 않는다면 근접직군의 차례.
전위가 만들어 준 타이밍.
곧바로 달려 들어간 순간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는 버프들.
‘완벽해.’
무기에는 희미하게 신성력이 서린다.
선희영이라는 사제의 능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
나 역시 최대한 안에 있는 기운을 검에 몰아넣고 검을 내질렀지만… 공격이 들어간다는 감각이 없다.
압도적인 내구에 모든 공격이 막히고 있는 것이 틀림없으리라.
“대미지를 입혔는지 입히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원하는 것은 장기전.
한 사람이라도 실수하면 전멸.
이 팽팽한 상황을 유도해 주고 있는 이가 바로 파란의 길드 마스터.
무척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간다.
원정대는 계속해서 녀석의 공격을 버티고 있었고 녀석 역시 참격과 마법을 계속해서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상황.
불리한 것은 이쪽이었지만 그 절박함과 불안함이 완벽한 집중력을 끌어낸다.
아마 모두 나와 다르지 않은 상태이리라.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눈앞에 있는 마수를 마주하고 있는 규격외의 인간 같은 경우에는 홀로 다른 세상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
일종의 영역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법이 터져 나오고 검이 휘둘러진다. 보호막이 깨지는 동시에 회복 주문을 외우는 사제의 목소리가 들린다.
‘집중.’
“집중!!!”
“할 수 있소. 조금만 더 집중!”
나 역시 마찬가지.
입술을 꽉 깨물고 부족하지만 검을 휘두른다.
아무리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두드리다 보면 결국에는 깨진다.
지금 이 일련의 과정은 떨어지는 물로 바위의 구멍을 내는 작업.
그 한 번을 위해 수십, 아니, 수백, 아니, 수천 번의 견고한 탑을 쌓는 과정.
무너지지 않게 계속해서 균형을 잡아가며 위태위태한 것을 계속해서 독려하며 그렇게 탑을 쌓는다.
적에 대한 두려움은 가라앉고 실수에 대한 압박감은 점차 사라진다.
혹시나 발을 헛디디더라도 뒤를 봐줄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걸 깨닫고 있기 때문이리라.
상황이 반전된 것은 바로 그때.
“우, 움직임을 멈추게 해요.”
“그게 무슨 소리요? 누님.”
“오, 오빠가 말했어요. 오빠가… 분명히 말했어요. 최대한 묶어놓으라고. 심장 쪽으로 달리고 있다고.”
“그게 참이요? 형님이 살아 있는 거요? 괘, 괜찮은 거요?”
“네. 히끅. 살아 있어요. 멀쩡해요. 상처도 없이… 히끅. 흐어어어엉….”
“기, 길드 마스터 형씨!”
“이미 들었습니다. 작전을 변경. 최대한 녀석의 움직임을 묶어놓습니다.”
“거 알았다니까! 다들 기운내쇼!”
‘이건….’
반사적으로 마법사를 바라보자 고개를 끄덕여오는 모습이 보였다.
엘레나 역시 살아 있는 것이 분명.
저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어진다.
희망을 버리지 않은 보람이 있다.
진심으로 그렇게 느껴졌다.
기뻐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지금껏 계속해서 굳은 표정을 유지했던 파란 길드 마스터 역시 어느덧 입가에 미소가 들어가 있다.
누가 봐도 안심하고 있는 표정.
살아 있다는 건 계속해서 들어서 알고 있었겠지만 직접적인 소식을 듣자 기쁜 기색을 숨기기 힘들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곧바로 작전의 내용을 바꾸는 것 역시 그 여파일 터.
‘위험할 수도 있어.’
본래는 녀석의 갑옷에 금을 가게 한 이후에 내부로 화력을 밀어 넣는 상황을 염두에 뒀음이 틀림없다.
그렇게 하기 위한 장기전이었고 실제로 작전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는 도중.
지금 와서 갑작스레 노선을 변경한다는 건 사실상 무리수에 가깝다.
하지만.
‘믿고 있는 거야.’
이들은 서로를 신뢰하고 있다.
서로를 믿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고려하지 않고 임할 수 있는 것이 틀림없으리라.
묶어줬으면 한다.
단지 그걸로 끝이다.
그 어떤 부연설명도 없었던 그 말에 원정대 전체가 노선을 변경했다.
길드 마스터도 마법사도, 다른 이들 역시 그 어떠한 이견 없이 곧바로 방향을 선회했다.
평소였다면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음이 분명했겠지만 이들과 함께 한 시간을 떠올리자.
자신 역시 믿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기 시작.
무언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 자리해 있는 이들이 이토록 신뢰를 보낼 정도의 인물이라면 분명히 무언가 방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고개를 끄덕인 채 몸을 날린다.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기 위해 최대한 검을 꽉 쥔다.
“못에서 최대한 떨어뜨립니다.”
“알겠소.”
거대한 마력이 다시 한번 터져 나온 것은 당연지사.
안에 있는 마력을 전부 끌어온 것 같은 모양새.
앞은 신경 쓰지 않는다.
혹여나 자신이 공격당하리라는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최대한 녀석의 몸을 연못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창을 든 여전사와 단검을 든 소녀가 몸을 날린다.
녀석의 숨을 크게 들이 마신 것은 바로 그때.
‘브레스?’
정확히 주문을 외우고 있는 마법사를 향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기운.
맨 처음 달려든 것은 방패를 든 남자.
“위험합니다!!”
터져 나온 목소리에도 불구.
남자는 물러서지 않는다.
‘죽는 게 무섭지도 않은가!’
전사의 몸이 녹아내리는 끔찍한 영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을 때, 어느새 모습을 드러낸 파란 길드마스터가 녀석의 등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눈으로 가늠할 수 없는 속도.
사실 뭘 한 거지는 알 수도 없다.
하지만 목 부근에 갈라지며 피를 흘리고 있는 마수를 보며 그, 아니, 그녀가 검을 휘둘렀다는 사실만 추측할 뿐이었다.
균형을 읽은 녀석의 입이 공중을 향하고 거대한 기운을 담은 브레스가 뿜었다.
동공의 천장이 무너지고.
파편들로부터 원정대원을 보호하기 위한 마법이 실현되고 동시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쇠사슬이 녀석을 칭칭 묶어 나가기 시작했다.
촤르르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뻗어 나온 빛을 품은 쇠사슬은 말 그대로 마수의 몸을 꽉 잡아내고 쇠사슬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의 보조 마법과 바인드 마법들이 쏟아져 내렸다.
심지어는 근접직군들 역시 마력을 보내오고 있다.
“이이이이이익!”
마법을 유지하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판단이 서지 않는 상황.
잘못하면 지금 당장 쇠사슬이 끊어질 수도 있다.
‘얼마나 남은 거지?’
초조한 마음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혹시나 이번 일이 실패했을 경우에 일어난 일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믿어야 돼.’
저들이 자신의 동료를 믿는 것처럼 이쪽 역시 저들을 믿는다.
‘엘룬이시여.’
“이이이이이이익!”
‘엘룬이시여!’
기적을.
‘신이시여.’
기적을!!
“조금만 더 버티면 되는 거요! 조금만 더!”
기적을!!!
“엘룬이시여!!!”
기적을!!!!
“기적을!! 이들의 믿음과 숭고한 투쟁에 대한 보답을!!!”
“이이이이익!”
“엘룬이시여어어!!!!”
그리고.
세상이 빛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신께서 기도를 들어주신 건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엘룬의 이름을 외친 직후.
틀림없이 녀석의 안쪽에서부터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녀석의 상처 부위와 비늘을 사이로 계속해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마수는 계속해서 비명을 내지른다.
녀석이 울부짖음을 토해내는 아가리 속에서도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빛이 쏟아져 나온다.
감히 재단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거대한 신성력.
지금까지 얻은 상처들이 순식간에 아물어 간다.
“말도 안 돼….”
다른 수식어가 필요할 리가 없다.
‘빛….’
찬란한 빛 사이, 가슴속에 꽉 차 있는 말을 그대로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빛이… 있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