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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68화 (367/1,590)

# 368

회귀자 사용설명서 368화

쉬어 가는 유니콘(1)

상황이 대충 정리되기가 무섭게 박덕구가 입을 열어왔다.

정확히 말하면 행군 내내 입을 쉬지 않고 있는 중.

여느 때의 파란 길드와 같다.

문제는 녀석이 조금 시끄러웠다는 것뿐이었지만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니까 내가 말하지 않았소. 우리 형님은 사막에 혼자 떨어져도 살아남을 사람이라니까. 크으… 사실 지금에 와서야 하는 말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불안하다. 불안하다. 했을 때도 나는 눈 하나 깜빡 안 했다니까! 당연히 살아 있을 줄 알았지. 우리 형님이 어디 보통 사람이요? 거, 무사히 있는 걸로 모자나 그놈의 심장을 박살 낼 줄이야. 크으.”

“운이 좋았지. 예전에 디아루기아에 대해 조금 알아봤던 게 도움이 됐을 뿐이야. 여러 가지 도움도 있었고….”

“역시나 같은 파충류라서 내부 구조가 같았던 거요?”

“그런 건 아니지만….”

만약 디아루기아가 박덕구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틀림없이 이를 갈았으리라.

‘아니. 아예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아니지….’

잠깐 동안 속으로 녀석을 힐난하기는 했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다.

디아루기아 본인이야 굉장히 기분 나빠하겠지만 어느 정도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이야기.

사실 파충류라기보다는 상위의 존재의 구조라고 생각한 것이 내 개인적인 추론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

아직 확정된 이야기도 아니었고 나도 다른 존재들의 신체를 탐험해 본 적이 없으니 무어라 확답을 내릴 수가 없는 만큼, 어쩌면 박덕구의 개소리가 개소리가 아닐 확률도 존재한다.

둘의 구조가 비슷한 게 이세계 파충류라는 커다란 틀에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는 거다.

만약 살리트와 디아루기아가 일말의 공통점이 없었다면 심장으로 도달하는 시간이 더욱더 길어졌을 터.

‘그렇게 생각해 보면….’

정말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그뿐만이 아니지. 몸도 회복하고 세계수도 치료하는 걸로 모자라 새로운 위업을 달성한 거 아니요? 형님한테 흘러나오는 빛의 기운에 욕심이 생기거나 위협을 느낀 게 틀림없다니까. 그러니까 냉큼 물어가 버린 거지. 아. 그러고 보니… 이제 정말로 몸은 이제 괜찮은 거요?”

다음 질문에 대답한 것은 내가 아닌 엘레나.

애초에 박덕구가 주시하고 있는 대상이 내가 아니니 그녀가 대답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네. 물론 아직까지는 완벽하게 치료가 됐다 확답을 드리기가 힘들지만 적어도… 영혼의 오염으로 인한 신체의 붕괴를 걱정할 시기는 지났다고 봅니다.”

“오! 그게 정말이요?”

“네. 틀림없습니다. 다만 앞으로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는 치료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아암. 전문가가 그렇다면 그렇게 해야지. 아무튼 간에 거… 모쪼록 잘 부탁합니다.”

“잘, 잘,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고, 고마워요. 엘레나 공주님.”

“아… 닙니다, 정하얀 님. 이건 제게 주어진 일이니까요.”

말을 더듬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정하얀을 보니 뭔가 양심 한구석이 찔리는지 귀가 축 내려가 있는 엘레나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사실 양심이 찔리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

정하얀이 저런 반응을 보여줄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가장 중요시 하는 게 내 안전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본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표시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아예 적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네모네의 눈으로 나와 그녀가 찰싹 달라붙어 있는 걸 목격했었으니 당연히 보여줄 수 있는 반응.

그녀를 흘겨보기도 했고 나를 억지로 자신 쪽으로 잡아당기기도 했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내가 그녀에게 가까이 가지 않기를 표현한 것이다.

의외로 이런 부분에서는 눈치가 빠른 만큼 엘레나가 미묘한 반응을 보이는 것 역시 눈치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하얀이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확실히 박수를 보낼 만했다.

최근에 연달아 일어난 사건이 얼마나 그녀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는지 알려주는 대목.

본의는 아니었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메소드 연기를 수백 번 넘게 보여준 것이 유효했다.

현재의 엘레나가 내가 완벽히 치료된 사실에 대해 입을 열 리가 없다.

어떻게든 숨기고 함께 있으려고 할 거라는 거다.

빛 폭탄 물약의 물자 조달은 어느 정도 안심.

정하얀의 반응도 그레이트.

이 귀환 길은 어떻게 봐도 승자의 귀환길이나 다름없었다.

‘우리 현성이와의 뜨거운 우정도 확인했고.’

왠지 모르게 미묘한 엘프들의 존경을 얻어내는 것에도 성공했다.

새로운 직업에 걸맞은 능력을 얻었고 제일 머리 아픈 정하얀의 문제마저 무난해지고 있다.

어떻게 생각해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맞으리라.

그중에서도 가장 최고라고 꼽을 수 있었던 것은 김현성이 나를 얼마나 아끼는지 확인했다는 것.

개선 길 임에도 불구하고 사방을 경계하며 나를 중심으로 방진을 짜주고 있는 모습을 보면 더욱더 그렇게 느껴진다.

혹시나 전과 같은 상황이 일어났을 때 자신이 손을 쓸 수 있는 거리에 나를 자리 잡아 놓은 것 같다.

정하얀 같은 경우에는 아무 생각 없이 옆에 찰싹 달라붙어 걷고 있었지만 그녀를 제외한 다른 길드원들은 길드 마스터의 특명으로 경계를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는 엘프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구태여 다른 말이 필요할 리가 없다.

물론 분위기가 그리 무겁지는 않다.

박덕구는 계속해서 이것저것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었고, 조혜진의 입가에도 묘한 웃음이 들어서 있다.

힘든 원정을 마친 유아영, 한소라, 김창렬 역시 어딘가 조금은 풀어진 표정.

어디까지나 본인의 맡은 바 임무를 괄시하지 않았기에 터치를 받지 않는 것뿐이다.

풀어줄 때 풀어주고 조여줄 때 조여 줘야 한다는 것은 김현아도 알고 있는 사실.

지금 이 상황에서 녀석이 길드원들을 조이는 것은 나에게도 반가운 소식은 아니다.

‘슬슬 요정의 숲이네.’

이미 던전 안을 벗어났으니 사실상 위협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

김현성 마저 애매하게 잡고 있던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고 그렇게 다시 한번 즐거운 분위기가 원정대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 형씨는 언제까지 김현아 버전으로 있는 거요?”

“김현아가 아니라 길드 마스터입니다, 덕구 씨.”

“아… 혜진 누님은 너무 딱딱해서 탈이라니까.”

“무례….”

“아니요. 괜찮습니다, 혜진 씨. 악의가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아마 곧 벗어나게 될 겁니다. 아무래도 뒤틀린 연못이 요정의 숲 안에 자리하고 있었던 터라 장소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효과가 끝날 때가 됐으니 아마 곧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엘리오스 님?”

“아… 네. 요정의 숲을 벗어나면 금방 원래대로 돌아오실 겁니다. 그나저나 묘하게 조용한 것 같습니다. 곧바로 요정들이 몰려들 줄 알았는데….”

“거, 우리 말고 다른 사람들이 들어와서 그런 거 아니요? 전부 다 그쪽으로 몰린 게….”

“요정의 숲은 철저히 통제되고 있습니다. 저희가 예상보다 던전을 일찍 빠져나오기도 했고… 마중 나올 엘프들도 아직 소식을 전해 듣지는 못했을 겁니다. 먼저 간 레인저들도 아직 왕궁에 도착하지 못했을 거고요.”

“으음….”

“어….”

당연히 귀찮은 녀석들은 튀어나오지 않았으면 싶다.

던전에서 나오자마자 녀석들에게 시달림을 당하지 않아도 되니 기분이 좋은 것이 사실.

더 이상 돌멩이를 맞지 않아도 되는 한소라는 대놓고 웃음 짓고 있었으니 다른 말이 필요 없으리라.

‘이거 혹시….’

뭔 일 난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솟아난 것은 당연.

완전히 외부와 단절하고 있었던 지난 10일 무슨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

물론 이지혜를 비롯한 실권자들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혹시나 공화국과의 일이나 협상이 잘못됐을 경우를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올 지경.

김현아나 조혜진도 비슷한 걸 생각하고 있는지 인상을 굳히고 있었지만 이윽고 들려온 소리에는 조금 안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 저기….”

이윽고 한 무리에 요정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

심지어 저번에 만난 숫자보다 많다.

“아… 안 돼.”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는지 한소라가 중얼거렸지만 주변을 가득 메운 요정들의 숫자를 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점점 모여들고 있는 중.

요정들에게 맞는 돌멩이가 고통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제법 귀엽다고 할 수 있는 아이들에게 매도당하는 기분은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분명.

한소라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만약 한소라에게도 귀가 달려 있었다면 지금쯤 축 쳐져 있을 것이 분명하리라.

“저번보다 많은 것 같은데….”

“이건… 하하.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인가 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엘프 양반.”

“유니콘인 것 같습니다.”

“네?”

“요정들이 저 정도로 모여 있는 걸 보면 아마 유니콘이 틀림없을 겁니다. 간혹 요정의 숲에서 모습을 드러낸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볼 수 있을 줄은….”

“그게 정말이요? 거 유니콘인지 뭔지 하는 게 진짜로 있는 거요?”

“덕구 아저씨는 바보. 드래곤도 있는 곳인데… 유니콘도 있다고 이상 할 건 없지.”

“아 그, 그렇구만.”

김예리와 엘리오스에게 말에 눈이 크게 떠진 것은 박덕구뿐만이 아니다.

한소라에게 돌팔매질을 감행하는 요정들을 기다리고 있던 나 역시 눈을 커다랗게 뜰 수밖에 없었다.

조금씩 눈에 마력을 집중하니 확실히 말 같은 형체가 보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하얀색으로 빛나는 것은 물론 이마에 기다란 뿔을 달고 있는 것은 내가 상상하고 있는 그 동물의 것이 맞다.

‘진짜야.’

[유니콘 라리사-전설 등급]

[요정의 숲 어딘가에 서식하고 있는 전설 등급의 몬스터입니다. 지성을 가지고 있으며 세계수의 잎과 세계수의 연못을 마시며 살아갑니다. 순결하고 순수한 사람에게 커다란 호의를 느낍니다.]

[전설 등급의 네임드 몬스터 유니콘 라리사의 상태창을 확인합니다.]

[이름-라리사]

[칭호-요정의 숲의 신수]

[나이-3,473]

[성향-순결한 이상주의자]

[분류-유니콘]

[능력치]

[근력-94/성장 한계치 전설 이상]

[민첩-104/성장 한계치 전설 이상]

[체력-100/성장 한계치 전설 이상]

[지력-99/성장 한계치 전설 이상]

[내구-82/성장 한계치 전설 이상]

[행운-112/성장 한계치 전설 이하]

[마력-99/성장 한계치 전설 이상]

[총평-해치지 마라.]

원정대가 있는 쪽을 바라본 이후에는 잠깐 동안 깜짝 놀란 것 같지만 해를 끼칠 만한 사람들이 아니라 판단한 모양인지 신경 쓰지 않은 모습.

오히려 흥미가 동한 것인지 천천히 이쪽을 향해 걸어오기까지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들 입을 벌리고 녀석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솔직히 나 같은 경우엔 다른 것들이 눈에 더 들어온다.

‘저게 다 얼마야….’

아니, 돈이 문제가 아니다.

신성력을 담은 것 같은 찬란한 갈기. 어떻게 봐도 저건 촉매 그 자체나 다름없다.

꼬리나 털, 가죽, 심지어는 눈물이나 혈액까지.

머리 위에 달려 있는 뿔을 조금만 긁는다면 준신화 등급의 촉매로의 정제도 가능할 것 같다.

침이 꿀꺽 넘어가는 반응이 이상한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달려가 토벌해 버리고 싶은 심정.

하지만 분위기를 보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어떻게 보면 신수로 분류할 수 있는 동물, 심지어 이쪽에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아 보이기까지 하니 어떻게 손을 대기가 힘들다.

세계수의 연못을 마시고 살아간다 했으니 커다란 문제를 해결해 준 우리에게 호감을 느끼는 모양.

디아루기아 수준의 지성을 가지고 있는 만큼 그 정도의 상황 판단은 가능한 것 같았다.

“엘레나, 한번 가보는 게 어떻겠느냐.”

“네? 오라버님… 저….”

“다가가도 되는 거요? 엘프 양반?”

“하하. 유니콘과 관련된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아마 문제는 없을 겁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전해 듣기로는 유니콘은 순결한 사람들을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아아. 그 처녀를 좋아한다는 그… 전설 같은 걸 말하는 거요?”

“성별은 관계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희 할아버님께서도 어릴 때 유니콘의 등 위에 올라 탄 적이 있다고 말씀하신 걸 들은 적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순결하고 순수하다는 것 역시 어떻게 해석하기 나름이라… 정확히 유니콘이 좋아하는 이가 어떤 이들인지는 아직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애초 유니콘을 실제로 본 이는 손에 꼽을 만큼 적으니까요.”

“아아아아. 뭐, 그런 거구만.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 같은데? 크으… 형님이라도 보고 뛰어오는 거 아니요?”

‘절대 그럴 일 없다. 이 돼지 새끼야.’

장담컨대 저 뿔에 박히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유니콘의 등장에 파란 길드원 일동은 왠지 긴장한 것 같은 느낌.

그 와중에 엘리오스는 계속해서 자신의 여동생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엘레나, 어서 가보는 게 좋을 것 같구나. 하하.”

“아뇨. 오라버님, 저는….”

“하하하.”

엘프의 얼굴에 점점 당황스러움이 들어서고 있었다는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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