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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70화 (369/1,590)

# 370

회귀자 사용설명서 370화

운수 좋은 날(1)

“그러니까… 그런 게 아닙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

“…….”

누군가가 그녀를 향해 무어라 말을 꺼낸 것은 아니었지만.

왕성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내내 혼자 변명하고 있는 조혜진의 모습은 뭔가 짠해 보일 정도였다.

자신의 완전무결한 순수함을 외면하기 위한 그녀의 행동은 어찌 보면 사실 조금은 슬퍼 보인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걸어가면 차라리 낫겠지만, 본인이 저렇게 제발을 저려주니 이쪽에서 뭔가 반응을 보여주기가 어렵다.

물론 이해는 간다.

존경스럽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엘룬 나이트들의 눈빛을 견디기 힘든 것이 틀림없으리라.

이쪽을 향해 확실히 말을 걸어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본인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것 정도는 들려온다.

‘대단한 인간입니다.’

‘완전무결한 순결함. 존경할 만한 인간인 것 같습니다.’

‘유니콘의 선택을 받다니….’

따위의 중얼거림.

내가 들었던 것은 조혜진이 듣지 못할 리가 없다.

“하… 하하.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운이,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정말 특이하기도 하죠. 지, 지구에 있었을 때는 인기도 제법 많았으니까요.”

‘거짓말.’

물론 외관은 충분히 예쁘다고 할 수 있지만 단언컨대 조혜진에게 먼저 다가간 남성은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이 유니콘이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할 겁니다. 네. 틀림없이요.”

하지만 칭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칭호-완전무결의 순결한 처녀]

도대체 저 완전무결의 타이틀은 어떻게 하면 얻을 수 있는지 궁금할 지경.

조혜진 인생에 김현성을 제외하고 이성과의 접전이 없다시피 한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니 그녀가 조금 측은해 보였다.

지구에 있을 때도… 대륙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

심지어 둔감한 김현성은 자신이 조혜진과 썸을 타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느낌이다.

머리가 백발이 돼서도 유니콘 위에 앉아 있는 조혜진의 모습이 곧바로 떠오른다.

‘불쌍해….’

물론 그녀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연애박사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박덕구는 어째서 조혜진이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미 눈치챘는지 조용히 말을 걸어오고 있는 중.

사실 녀석의 조언이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조혜진이 완전무결의 순결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것이 맞다.

“거, 부끄러운 일이 아니요.”

“…….”

“물론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 느리기는 하지만 언젠가는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라니까. 누구한테나 다 짝이 있다는 거요.”

“그러니까 저는… 그런 게 아니라고 몇 번이나.”

“상담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니까. 물심양면으로 도와줄 자신 있소. 형님도 마찬가지고. 그렇지 않소? 형님?”

“물론입니다. 친구 좋다는 게 뭡니까.”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닙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네. 평범하게 지냈습니다. 평범하게요….”

“거 그렇게 변명할 필요 없다니까. 혜진 누님한테 문제가 있는 게 아니요. 이건 누구나 다 겪을 수 있는 일이라. 일단은 받아들이는 게 첫 번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소. 계속해서 회피하다가는 정말로 연애하기 힘들어 질 거요. 이것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관계의 연장인데… 너무 자신한테만 채찍질 하는 것도 안 좋은 버릇이라니까. 절대 그렇지 않다니까.”

‘이 새끼 정말인가. 생각보다 진지한데.’

“딱 보면 척이라니까? 정말이요. 자기 눈을 조금 낮추는 것도 방법이 될 수도 있고… 아, 그리고 무엇보다 혜진 누님은 그 동안 엄청 바쁘게 지냈던 거 아니요. 시간이 부족했던 게 당연하지.”

“네…. 확실히 시간은 부족했지만.”

항상 김현성과 붙어 다녔던 걸 생각해 보면 결코 시간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지금 당장은 뭐 하기 힘들지만 언제 시간이 날 때 이야기하면 적절히 코치해 줄 수 있을 것 같다니까. 형님도 같이해 줄 거요. 그렇지 않소?”

사실 무슨 코치를 해야 할지는 감이 잡히지 않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혜진의 뒤를 따라오는 유니콘을 생각하면 일단 말이라도 이렇게 해 놓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촉매가 필요한 나야 조혜진이 완전무결 어쩌구를 유지하면 기분이 좋은 것이 사실.

만약 정말로 김현성과 그녀가 연애라도 하는 날에는 저 유니콘이 어느 날 훌쩍 떠나버릴지도 모른다.

‘그건 절대로 안 될 말이지.’

친구한테는 미안하지만 한 7년에서 10년 정도는 독수공방하며 지내줬으면 좋겠다.

저 유니콘에게서 뽕을 뽑을 수 있을 때까지는 말이다.

“덕구 씨의 말이 맞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중에 한번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기영 씨의 이야기도요….”

“거, 잘 생각했소.”

“정말로 잘 생각하신 겁니다.”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건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 천추의 한.

기분이 좀 꾸리꾸리 하기는 했지만 아무튼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그냥 꽁으로 얻은 것 같은 기분인데….’

물론 내가 유니콘을 얻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길드원 건데… 내 거나 다름없지 뭐.’

니 것도 내 것. 내 것도 내 것.

어떻게 생각해도 소리를 지를 만한 상황이다.

뿔 달린 말은 거기까지는 생각이 닿지 않은 것 같았지만 그런 건 내 알 바가 아니다.

빛의 연금술사로 전직하고 나서 첫 번째로 얻은 물건이 빛 폭탄 물약.

앞으로 두세 개의 포션이 개발 가능해진다 가정하고, 그 물약의 성능 역시 빛 폭탄에 뒤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면 준신화 등급이라는 직업에 어울리는 힘을 얻었다고 봐도 될 것 같았다.

부족한 마력으로 창질이나 하고 지냈던 지난 시간이 떠오른다.

내가 줄을 제대로 섰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물론 나만 기쁜 것이 아니다.

원정대원들에게도 이번 원정대의 입장에서 봐도 이번 원정은 대 성공이나 다름이 없다.

일단은 살리트의 사체.

나로서는 가공이 불가능한 물건이지만 파란 길드에는 나 말고도 생산직이 한 명 더 있다.

‘유아영.’

녀석의 외피는 김현성이나 정하얀의 공격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하다.

물론 마력과 뒤틀린 연못에 영향을 받고 있어 상향 판정을 받았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단단했던 외피가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다.

박덕구와 유아영을 풀 무장 시킬 수 있는 것은 물론 녀석의 뼈로 무기의 가공도 가능하다는 거다.

가장 큰 성과인 이기영의 치료는 두 말할 것도 없고 동맹국의 완벽한 신뢰도 얻어냈다.

피해는 사망한 엘룬 나이트 둘.

가슴 아프기는 하지만 이쪽과는 별다른 접전이 없는 녀석의 죽음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소를 희생해 대를 얻었다고 봐도 된다.

‘아암. 그렇고말고.’

그것뿐인가.

던전에 들어와 있는 동안 자신을 혹사시켜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씩 성장한 모습들이 보인다.

유아영, 한소라, 김창렬이 성장 측면에서는 이득을 많이 봤지만 기존 파란 길드원들도 다르지는 않다.

무난했던 안기모는 조금 더 무난해졌고 애초에 재능충이라고 말할 수 있는 김예리의 경우에는 한 번 더 벽을 뛰어 넘었다.

‘조혜진은 뭐, 말할 필요도 없지.’

선희영이야 가만히 놔둬도 혼자 무럭무럭 자라나 있고 박덕구의 스펙업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이야기다.

김현성은….

[플레이어 김현성의 상태창과 잠재 능력을 확인합니다.]

[이름-김현성]

[칭호-알타누스의 회귀자, 이 회 차를 시작하는 검사, 이겨내지 못한 자, 희생을 등에 업은 자. 깨달은 자. 검의 축복을 받은 검사. 정상을 오르고 있는 무인. 대륙 수호자. 듀렌달의 주인. 세계수의 수호자.]

[나이-23]

[성향-선의의 중재자]

[직업-검의 좌-고유 전설 등급]

[직업효과-기초 검술 지식 습득]

[직업효과-중급 검술 지식 습득]

[직업효과-고급 검술 지식 습득]

[직업효과-고급 마력운용 지식 습득]

[능력치]

[근력-95/성장 한계치 전설 이상]

[민첩-103/성장 한계치 전설 이상]

[체력-101/성장 한계치 전설 이상]

[지력-75/성장 한계치 영웅 이하]

[내구-95/성장 한계치 영웅 이하]

[행운-99/성장 한계치 영웅 이상]

[마력-97/성장 한계치 영웅 이상]

[특성]

[특성-신-전설 등급]

[특성-검-전설 등급]

[특성-합-전설 등급]

[특성-일-전설 등급]

[장비]

[마법 저항의 망토-영웅 등급]

[발망의 촘촘한 마력갑옷-전설 등급]

[세레나의 민첩한 바람장화-전설 등급]

[12기사단의 검-듀렌달-신화 등급]

[총평-뒤통수치지 마라. 진짜 뒤통수치지 마라. 정말 뒤통수치면 나 죽고 너 죽는 거다. 한 번 경고했다. 절대로 뒤통수치지 마라.]

‘키야… 든든하네.’

안 본 사이에 더욱더 성장한 모습이 눈에 띈다.

‘직업은 언제 바뀌었데?’

분명히 기존 직업은 전설 등급이었던 걸로 기억.

잠깐 체크 안 한 사이에 고유 전설 등급을 얻은 것을 보니 확실히 성취가 있기는 있는 것 같았다.

본래 영웅 등급이었던 검술전문가는 사라지고 그곳에 자리 잡은 것은 전설 등급의 특성 4개.

평범한 플레이어가 하나의 전설 특성도 가지기 힘들다는 걸 고려해 보면 충분히 박수를 보낼 만하다.

능력치는 또 어떠한가.

말이 필요 없는 민첩 104, 체력은 101, 그 외 다른 능력치도 절대 낮은 것이 아니다.

‘봉인은 아직 못 푼 건가….’

듀렌달이라는 신화 등급의 검을 아직 살리지 못하는 것 같다.

저 검은 충분히 명검.

애초에 김현성은 순수한 검사를 지향하는 만큼 상태창 자체가 굉장히 담백하다.

여러 가지 복잡한 것 없이도 충분히 강자라는 거다.

녀석이 가지고 있는 경험이나 시스템으로 판단이 불가능한 검술을 생각해 보면 본래의 상태창보다 가지고 있는 것이 더 많다고 봐도 무방하다.

만약 언젠가 저 12기사단의 봉인을 푼다면 어쩌면 단신으로 살리트를 상대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능력치가 더 성장해야겠지만.

‘알타누스 베니고어 버프 같은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차희라가 김현성보다 더 강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 적은 있었지만 확실히 이렇게까지 성장하니 지력을 최대한으로 깍은 차희라와 비벼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 시작.

누가 더 강하냐 같은 가십에 관심은 없지만 어찌됐든 가장 든든한 이들이 이쪽의 아군이라는 사실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여러모로 완벽한 원정.

살짝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본래의 성별으로 되돌아온 김현성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아… 저거 끝났네.’

위험한 발상이지만 이상하게도 왠지 모르게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드디어 돌아왔군요.”

“축하해, 오빠.”

“고맙구나, 예리야.”

“축하드립니다. 길드 마스터.”

“감사합니다, 혜진 씨.”

얻은 건 많고 잃은 건 적다.

설렁탕이라도 사들고 집으로 복귀하는 기분.

너무나도 좋은 운수에 왠지 모를 불안감이 계속해서 피어오르기는 했지만 겨우 열흘하고 며칠이 지난 시점에서 바깥이 개판이 되어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기쁜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벅차다.

저 멀리서 먼저 튀어나갔던 레인저가 허겁지겁 뛰어오는 것이 눈에 보인 것은 바로 그때.

“잠시 대기합니다.”

‘제기랄.’

항상 그렇듯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뭔 일 터진 거 아니야?’

본래는 레인저가 아니라 원정대의 무사 귀환을 축하하는 이들이 마중 나왔어야 했다.

단신으로 뛰어오는 엘프의 얼굴은 어떻게 봐도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다.

다친 것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까지 계속해서 쉬지 않고 뛰어온 모양.

그만큼 빠르게 전해야 할 소식이 있는 것이다.

제발 별것 아닌 소식이었으면 하는 기도를 했지만, 점점 더 녀석이 가까워질수록 내 희망 사항이 무너지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저거… 무슨 일이라도 난 거 아니요? 왜 갑자기.”

역시 운수 좋은 날에는 안 좋은 일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무슨 일입니까?”

입을 연 것은 엘리오스.

한참이나 숨을 헐떡거리던 전령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후우… 전쟁. 전쟁입니다.”

“시발.”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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