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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91화 (390/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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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 391화

우정과 사랑, 믿음의 힘(2)

“지금 곧바로 움직이겠습니다.”

“네.”

“편성된 병력은 바로 출발합니다. 아마 늦지 않게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겁니다. 캐슬락 공성전 역시 정확히 두 시간 이후에 진행합니다.”

“그 말씀은….”

“삼 일 안에 캐슬락을 점령합니다.”

“네.”

“불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혹여나 변수가 있다고 해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힘들고 지친 시기라는 거 이해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사건에 머리가 아프기도 하고 의심하시는 분들 역시 분명 계시겠지요. 하지만 괜찮습니다. 우리 는 강합니다. 끌려 다니지도 쉽게 무너지지도 않을 겁니다.”

“…….”

“일어납시다. 싸워야 할 시간입니다.”

분위기가 조금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조용히 입을 열고 있는 군사님의 표정에서 알 수 없는 신뢰가 생겨난다.

별 다른 내용이 있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저 표정과 행동은 묘하게 사람을 고양감에 휩싸이게 한다.

저도 모르게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은 아마 저 눈빛에 담겨져 있는 신뢰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믿어주고 계신거야.’

나뿐만이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지휘관, 그 동안 함께 움직이고 동고동락했던 병력.

이건 일종의 자신감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이런 군대를 키워온 본인에 대한 자신감이기도 하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뽑은 이들에 대한 신뢰이기도 했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군사님을 따라 하나둘 몸을 움직이기 시작.

기왕이면 캐슬락 공성전에 함께하고 싶었지만 내 임무는 다른 곳에 있다.

“카티아.”

“네, 군사님.”

“혹시라도 좋지 않은 정황이 보인다면 곧바로 캐슬락으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군사님.”

“항상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하셔야 합니다. 모든 가능성을요.”

“네.”

“잘해내실 거라 믿습니다. 캐슬락 공략이 끝난 뒤에는 저 역시 들어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뒤 곧바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러 생각이 들었지만 깊게 생각할 시간이 없다. 출발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회의실에 바깥을 나오자 곧바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덤.

이미 출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지금 당장 움직인다. 빨리빨리 움직여! 보급 물자도 챙겨놔! 준비는 아직 멀었나?”

“…….”

“해가 떨어지기 전에는 목적지에 도착해야 한다.”

“출발 준비는 됐습니까?”

“네. 거, 거의 다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마지막 점검을 마치면 곧바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자 깃발을 들어 올리는 군대의 모습이 보였다.

발걸음을 옮기고 준비된 말에 올라타자 반대쪽 병력이 모여 있는 곳에서 커다란 함성이 들려온다.

아마 캐슬락 공성전에 진입하는 병력임이 틀림없으리라.

‘가능성은 있어.’

공성전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캐슬락 자체는 한계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안쪽에 있는 보급품도 바닥.

성벽에 내장되어 있는 마력 그리고 안에 있는 병사들의 체력.

많은 것을 고려해 봤을 때 오늘 안에 공략이 가능하다는 것은 결코 헛소리가 아니다.

병력을 일부 빼기는 했지만 캐슬락에 있는 전력은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지금까지 쌓아올린 인프라가 그걸 증명해 준다.

교국이 됐든 공화국이 됐든 이번 전투로 어느 한쪽은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어쩌면 종전을 바라볼 수도 있는 상황이라는 거다.

전력상으로 보면 아군이 유리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

하지만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겨야 해.’

그 말 그대로.

이번 싸움은 절대로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이다.

캐슬락에서의 전투도, 수도로 진격해 오는 에베리아군을 막는 일도 절대로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이다.

많은 아군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건 이미 예정된 이야기.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숲속에 펼쳐진 꿉꿉한 안개가 괜스레 더 음울하게 느껴졌다.

“출정합니다!”

* * *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 건지 궁금한데… 만약 잘못된다면 캐슬락은 물론이고 다완까지 위험해질 거다.”

“자꾸 그렇게 불평해야겠어? 이미 엎질러진 물이야.”

“내가 괜히 이런 소리를 하는 게 아니야, 위란. 캐슬락은 명백히 한계야. 카스가노 유노와 나 그리고 박연주가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던 거다. 교국 8좌 중 세 명이 모여 유지하고 있었던 균형이었어. 이기영 그자가 뛰어난 사람이라는 건 인정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도박이야. 그녀들에게는 더 이상 버틸 만한 여력이 없어. 하루, 아니, 이틀 동안 결계를 유지하지는 못할 거다. 다완 전선도 마찬가지야. 그나마 네가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밖에 밀려나지 않았….”

“그만 좀 쫑알거려. 남자가 쪽팔리게. 누군 도박이라는 걸 몰라서 이러는 것 같아? 그나마 현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으니까 따르는 거야. 어차피 다완 전선은 무너졌어. 거기에 있었던 내가 제일 잘 알아. 병력을 투자하는 것도 헛짓거리처럼 느껴졌던 타이밍 이었다고…. 개자식들….”

“하지만.”

“하지만은 또 무슨 하지만이야. 당신이 이렇게 쫑알거릴 때마다 당신이랑 손잡은 게 후회된다니까.”

“이하 동문이다.”

“솔직히 당신도 이기영 명예추기경의 능력을 의심하고 있는 건 아니잖아?”

“…….”

“성과가 말해주고 있으니까. 실제로 이기영 명예추기경이 원하는 대로 판이 움직이고 있고, 당신을 캐슬락에서 빼내온 것도 그렇고. 우리가 이렇게 현재 라이오스에 진입해 있다는 것도 그래. 폭주한 여왕님을 조용히 시킨 것도 그자가 준 페로몬 어쩌구 포션 덕분이었고. 같은 교국 8좌라고는 해도 꽁지 빠지게 도망치면서 버티기만 했던 우리보다는 생각하고 움직이는 저쪽이 100배는 낫다니까? 무엇보다.”

“…….”

“공화국의 병력과 함께 움직이게 될 줄은 누가 알았겠어? 이런 거 상상해 본 적 있어?”

“그래서 불안하다는 거야.”

“글쎄. 나야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공화국 쪽의 사제들은 이기영 명예추기경 쪽에 충성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상대가 악마소환사라고 하니 사제들 입장에서도 치를 떨 만하지.”

“그런가.”

“너무 많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우리는 주어진 일만 하면 되니까. 마력은 충분하지?”

“물론.”

“그건 다행이네. 혹시나 캐슬락에서 다 빨리고 왔을까 봐 걱정했는데. 최후의 저항을 펼칠 힘은 남겨 놨나 봐? 여전하다니까.”

“칭찬으로 듣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위란의 말이 맞다.

궁지에 몰린 상황에 활로를 찾은 것은 같은 교국 8좌인 이기영 명예추기경.

그가 나타나주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전쟁을 펼칠 수 없었으리라.

‘유능한 자식.’

절대로 적으로 돌리기 싫은 종류의 사람.

처음 봤을 때부터 그런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그자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자의 인격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치밀함과 대담함 때문이다.

에베리아 전선을 하루 만에 끌어들인 것으로 모자라 공화국의 사제들을 아군으로 만든 수완은 당황스러울 정도.

이 전쟁의 전황을 이렇게 바꾸어버린 것이 고작 말 몇 마디라는 게 믿겨지지가 않을 정도였다.

‘차희라 님이 목을 맬 만해.’

용병여왕이 이곳에 갓 들어온 신입과 함께 다니기 시작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는 당연히 헛소문으로 취급했다.

단순히 새로운 장난감을 발견한 것은 아닌가 싶었을 뿐.

자연스럽게 그 기억은 잊혔고 시간이 얼마 지난 이후에는 용병여왕의 정부에 대해서는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이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교국 8좌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기 전까지 말이다.

‘보통 수완이 아니야.’

용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

뛰어난 연금술사라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이 평범하다.

차라리 함께 있었던 마법사가 같은 교국 8좌였다면 신빙성 있게 느껴졌으리라.

본신의 무력은 최약.

주변에 강한 동료와 함께하고 있지만 어떻게 생각해도 무력을 가지고 있는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교황청과 황제 측의 입김이 들어갔다고 생각해서 당연히 그 결정에는 의문을 품었고 실제로도 반발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본 이후에는 입을 크게 벌리고 말았다.

그가 올린 성과나 업적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

이루어낸 일은 전부 나열할 수조차 없다.

순식간에 제국을 교국으로 만들었고 교국의 명예추기경의 자리에 올랐다.

그동안 반쯤은 겉돌고 있었던 이방인들을 교국이라는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였고 실제로도 일부 이방인을 위한 정책을 내밀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기득권을 위한 정치와 법.

어떻게 생각해도 자기 자신만을 위한 법이었다.

그자에 대한 불안감이 싹 튼 것은 바로 그 즈음이다.

적대한다거나 싫어하게 됐다는 의미가 아니다.

말 그대로 싹 튼 것은 일말의 불안이다.

그자가 뛰어난 사람이라는 걸 느끼게 된 것이다.

‘이자는 신의 사도 같은 게 아니야.’

교국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처럼 선하거나 신성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

철저하게 자신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고 자신 주변에 있는 것들을 위해 움직인다.

주변 상황을 모두 이용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내가 평가한 이기영 명예추기경은 악이라면 악.

물론 반신반의 하기는 했지만 캐슬락을 빠져 나온 이후에는 더욱더 확신할 수 있었다.

사람 하나 정도가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출구.

지금은 완벽히 무너져 내린 블랙마켓을 드나들 수 있는 유일한 출입구.

관계자가 아니고서야 알 수 없는 비밀 통로다.

내가 캐슬락을 빠져나올 수 있었던 이유.

다시 한번 생각해도 웃음이 튀어나올 만한 상황이다.

그가 이런 비밀 출입구를 알고 있었다는 건 모두의 추앙을 받는 교국의 명예추기경이라는 자가 블랙마켓의 주인이라는 것과 진배없었으니까.

눈앞에 공화국으로 가는 숲이 보인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자 괜스레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에베리아 전선의 지휘관이군. 우리 한 번 마주친 적이 있나? 아, 그러고 보니 명예추기경에게 들은 적이 있지. 예브 카리나라고 했던가? 그게 당신이었나 보군.”

“당신은….”

“…….”

“…….”

“날 알고 있는 건가?”

“이… 이제 알겠군요. 그자의 생각이 뭔지. 이제 알겠어요. 어, 어떻게 당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겁니까. 당신은 지금 캐슬락에 있어야 하는 게… 캐슬락에 있어야.”

“그전에 나를 알고 있냐고 묻지 않았나?”

“제길…. 개, 개자식…. 개자식! 분명 포로들은 손대지 않는다고!”

“다시 한번 묻겠다. 나를 알고 있는지 물어보지 않았나?”

“교국 8좌…. 안개 소환사 천관위.”

“정답이야.”

“무슨 짓을. 무슨 짓을 하려는 겁니까.”

“글쎄. 나는 명령에 따를 뿐이라… 이런 짓을 하는 게 별로 기분 좋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군. 이건 전쟁이니까.”

“당신….”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건지… 그 자식도 정말 미친놈이라니까. 아, 이기영 명예추기경이 전해주라고 하더군. 먼저 약속을 어긴 건 그쪽이라고. 사실은 아무것도 상관이 없었겠지만 말이야. 그냥 개한테 물렸다고 생각해. 내가 생각해도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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