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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92화 (391/1,590)

# 392

회귀자 사용설명서 392화

우정과 사랑, 믿음의 힘(3)

“안개가 심하군요.”

“조금 쉬었다 가는 게 어떻습니까, 카티아 님. 본래 이 부근은 새벽에 안개가 심한 터라, 혹시나 적들이 매복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이라면 더욱더 그럴 겁니다. 더군다나 병사들 역시 굉장히 지쳐 있는 상황이니….”

“아니요. 계속 행군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속도를 조금 늦춰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계속 늦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에베리아군이 어느 쪽으로 움직였는지는 확인되었습니까?”

“정찰부대가 확인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오리무중입니다. 규모가 큰 병력이 라이오스를 지났다는 보고는 들어왔지만 안개가 들어선 이후에는….”

“공화국 쪽으로 향하고 있기는 한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혹시 캐슬락 쪽에서는….”

“아직 아무런 서신도 받지 못했습니다.”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다려야겠군요. 타 부대 쪽은 어떻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적의 군세와 정확한 위치가 파악되지 않아 일단 퇴로와 보급로를 끊고 있는 상황에 있습니다. 추가로 용이 목격됐다는 정보 역시 들어오고 있습니다.”

“드래곤….”

괜스레 허리춤에 달려 있는 검을 매만지게 되었다.

‘너무 조용해.’

전체적인 상황은 이쪽이 원하는 대로 잘 설계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범위가 넓기는 했지만 안쪽으로 들어온 적 병력을 포위한 상황이었고 실제로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보급로를 끊은 것은 물론, 증원군 역시 들어올 구멍이 없다.

동부 전선 전체에서 조금씩 차출한 병력이 전 방위에서 적을 조이며 주변을 견제하고 있으니 숨을 쉴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이곳에 들어온 적이 할 수 있는 일은 전진뿐이다.

‘퇴로가 막혀 있으니까.’

안개 때문이 아니다.

그러나 너무 조용해 적막만이 감돌고 있는 이 숲은 이상한 불안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병력이 이 근처를 배회하고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아니, 자신들을 추격하고 있는 병력을 최대한 떨쳐내기 위함인 것이 분명.

흔적도 잘 남지 않고 안개가 끼어 있는 이곳은 저들이 숨어 있기에 최고의 장소다.

하지만 그뿐이다.

조여 오는 포위망을 뚫을 수 없다는 걸 생각해 보면 단지 시간 끌기밖에 되지 못한다.

혹시 게릴라전을 펼칠 가능성도 염두에 두었지만 전투를 하려는 움직임이나 정찰하려는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상해.’

적이 가지고 있는 패를 생각해 보면 이렇게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

“잠깐 멈추겠습니다.”

순간 안 좋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기는 했지만….

‘아냐. 적은 이곳에 있어.’

결코 적지 않은 규모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는 정보는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다.

“뭔가 걸리는 게 있으십니까?”

“가장 가까운 아군은 어디에 있습니까?”

“근처에 춘위 님이 이끌고 계시는 병력이 있는 걸로 확인됩니다. 서남쪽에서 내려오고 계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합류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이곳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게 좋겠군요. 캠프를 차리도록 하겠습니다. 병사들을 쉬게 해주세요. 딱 다섯 시간입니다.”

“예.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변으로 정찰부대를 보내주세요. 혹시나 뭔가 이상한 징후나 다른 흔적이 보이면 곧장 보고하도록 합니다.”

“역시 마음에 걸리시는 게….”

“네. 없지는 않습니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력의 농도가 조금 높은 것 같습니다. 본래 이 지역은 이렇게 안개가 많이 끼어 있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오늘처럼 심한 날은 많이 없지만 보통 이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이상해.’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다.

자꾸만 온몸을 간질이는 느낌.

숨을 한 번 크게 들어 마시자 어딘지 모르게 텁텁한 공기가 들어온다.

갑작스레 머리가 핑 하고 돌 정도.

이유 없는 불쾌함이 몰려든다.

축축한 땅바닥이나 공기 때문이 아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이들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단순히 긴장감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몸은 계속해서 불쾌하다는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제길.’

“짜증 나.”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목소리.

입 밖으로 내뱉고 난 이후에 내가 더 놀랐다.

뒤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

하지만 딱히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이제는 저런 소란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입니까?”

“몬스터가 나타난 것 같습니다.”

“벌써 8번째인가요?”

“예.”

“이 지역 몬스터들은 비교적 온순한 걸로 알고 있는데…. 처리는, 아니, 제가 직접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요.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습니다.”

곧바로 몸을 옮겼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방 대열에 이르니 몬스터를 둘러싸고 있는 이들이 시야에 비쳤다.

물론 그것보다 눈에 띄는 것은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는 중형 몬스터.

눈이 붉게 충혈 되어 있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굉장히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녀석이 계속해서 괴성을 내지르며 저항하고 있었지만 많은 숫자의 인간에 대항할 수 있을 리 만무.

평범한 인간도 아니라 정예병이다.

영웅 등급 정도의 몬스터가 버틴다는 것이 어불성설.

막 검을 꺼내들려고 했던 바로 그때였다.

“나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직접 정리하겠습니다.”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시야에 비치는 것은 부관의 얼굴이었다.

왠지 모르게 붉게 충혈 된 눈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모두 조금씩 눈에 핏발이 서 있다.

‘뭔가 잘못 됐어.’

뭔가 잘못 됐다.

지금까지는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주변을 둘러보자 자꾸만 이상한 점들이 눈에 밟힌다.

순식간에 몸이 잘려 나뒹굴고 있는 몬스터의 비명을 뒤로한 채 입을 연 것은 당연지사.

“부관.”

“네.”

“잡은 몬스터를 조사하도록 하세요. 이후 혹시나 다른 몬스터들이 보인다면 곧바로 생포합니다. 어떤 마법이나 저주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꼭 조사해 주셔야 합니다. 신체나 정신에 문제가 생긴 병사가 있는지도 확인해 주시고요. 현재 저희가 먹고 마시는 식수와 보급품도 모두 체크합니다.”

“마법이나 저주의 흔적은 없습니다. 식수와 보급품 역시 모두 정상입니다만….”

“연금. 연금 지식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가 부대에 포함되어 있습니까? 누구라도 상관없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몬스터를 분석해 주세요. 최대한 빠르게요.”

“네. 그렇게 전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뭔가 이상해.’

미묘한 신체의 변화.

물론 아직까지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결코 웃어넘길 수 있는 종류는 아니다.

이기영 명예추기경이 연금술에 조예가 깊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알 수 없는 불안감은 증폭되기 시작.

혹시나 이게 함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적 병력이 만약 본대에서 빠져나온 분대들을 노리고 함정을 팠다고 가정한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분대를 잡아먹기 위해서 캐슬락을 버린다고?’

어떻게 생각해도 수지가 맞지 않은 교환.

현재 적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라고 해도 무방하다.

캐슬락 공성전은 이미 한참 전에 시작되었고 공성전이 끝난 이후에는 본대가 수도로 향할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건 시간 싸움이다.

동등한 교환이 되려면 적어도 공화국 내부에 타격을 주어야 수지가 맞다.

떨어져 나온 병력을 상대로 시간을 끄는 행위는 적이 아니라 우리가 해야 하는 작업.

시간이 끌릴수록 불리하다는 걸 그 누구보다 그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현재 이 숲 안에 들어와 있는 적의 행동은 마치 숲속에 남아 있는 걸 바라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들이 공화국 병력의 발을 묶으려는 듯한 동선.

적은 힌트를 조금씩 결합시키자 커다란 하나의 그림이 만들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미끼 병력이라고 하기에는 숫자가 많아.’

꽤나 커다란 규모.

조금 과장해서 말한다면 본대에 가져다 박을 수 있는 종류의 규모다.

인선이 화려하다는 걸 생각해 보면 더욱더 그렇다.

아직까지 정확한 숫자가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공성전에도 쓰일 수 있는 이 병력을 단순히 몇몇 분대의 발을 묶기 위해 사용한다는 건 결코 수지에 맞는 장사가 아니다.

‘의도가 도대체 뭐지. 도대체….’

“저… 카티아 님.”

“네.”

막 입을 열어오려는 마법사의 이마에 구멍이 뚫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저….”

“…….”

“전투 준비!”

“전투 준비이이!!!”

퓨슉 하는 소리와 함께 이마에 화살이 박혔다.

그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커다란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진다.

“전투 준비! 전투 준비!!!”

“화살은 어디서 날아왔습니까.”

“동북쪽입니다. 동북쪽입니다!”

“바로 전투를 준비합니다. 진영을 세우고 별동대를 꾸려 적 병력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합니다.”

“네.”

앗 하는 사이에 다시 한번 화살들이 날아와 아군 병사에게 꽂힌다.

“제길. 어째서? …빨리 움직입니다. 일단은 병력을 뒤로 물리겠습니다. 반대쪽으로 갑니다. 길을 잃는 병력이 생기지 않게 최대한 전파합니다. 계속해서 움직입니다. 최대한 빠르게!”

“후퇴! 후퇴!”

“실드 마법 캐스팅하도록 합니다. 이후에 있을 2차 공격에 대응….”

“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악!”

“주, 죽어! 이 더러운 악마의 하수인들!”

“개자식들이!”

“정화시켜 주마! 더러운 악마 놈들! 더러운 악마자식들!”

‘제기랄.’

옆쪽에서 터져 나온 비명.

적이 어왔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점점 더 진형이 무너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안 좋아.’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안개 속에서 적 병력과 섞이는 걸 바라는 지휘관은 없을 것이다.

숫자의 우위가 있다고 해도 그딴 걸 바라는 군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열을 유지합니다! 대열을 유지! 빨려 들어가지 않고 대열을 유지합니다. 방패로 밀집하고 대열을 만들어!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모여!”

“빨리 모여!”

“아아아아아악!”

옆에서 들려온 비명에 자연스럽게 땅을 박찬 것은 당연한 일.

검을 꺼내들자 바로 옆에서 하얀 안개를 뚫고 튀어나온 한 남자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핏발이 선 눈, 입에서는 침을 질질 흘렸다.

기괴하게 일그러진 얼굴은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것 같은 외관이다.

단검을 들고 무작정 달려드는 모습은 원초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더러운 악마 놈들! 히, 히이이익! 죽어! 죽어!”

“뭐?”

“네놈들을 크푸히히! 내버려 둘 것 같아!? 이 더러운 놈들! 시, 신이 네놈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미, 미쳤….”

“죽어어어어어어어어!!”

“개자식!”

검을 휘두르는 것이 당연.

너무나도 쉽게 머리와 목이 분리된 채로 쓰러진 인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뭐… 뭐야. 이게… 뭐야….”

사방팔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들려오는 잡음과 비명이 유난히 더 크게 들려온다.

“이게… 뭐야.”

하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목과 몸통이 분리된 인형의 외관.

“바리안의 신도….”

틀림없이 공화국의 사제들이 입고 다녔던 의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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