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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93화 (392/1,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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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 393화

우정과 사랑, 믿음의 힘(4)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순간적으로 깜짝 놀란 것은 당연지사.

어째서 공화국의 사제가 게거품을 문 채 달려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탓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봤지만 뿌연 안개 덕에 시야가 잡히지 않는다.

눈에 마력을 한계까지 집어넣어도 달라지는 게 없다.

의아한 일 투성이다.

한계까지 마력을 끌어올렸지만 그럼에도 흐릿한 시야는 돌아오지 않았다.

“함정! 함정이다! 최대한 밀집해!”

“아아아아아악!”

“밀집해서 대응한다! 떨어지지 마!”

‘어디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어디로 밀집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사방팔방이 전부 안개에 휩싸여 있었으니까.

아군과 적군이 섞이고 있다는 것만 간신히 인지할 수 있는 상태.

현재 병력을 둘러싼 안개가 평소와 조금 다른 것 같다는 걸 깨달았다.

마치 몸을 짓누르는, 기분 나쁜 느낌은 지금까지와는 명백히 달랐다.

‘마력의 농도가 높아.’

그 말대로.

지금까지는 그 어떤 마력의 흔적도 느낄 수 없었지만 현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안개는 어떻게 봐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듯했다.

마치 던전 안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마법. 마법인가.’

떠오르는 사람은 있다.

하지만 그자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다.

캐슬락에서 수성전을 하고 있어야 할 안개 소환사가 이곳에 있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

안 그래도 사방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 캐슬락에서 중요 네임드를 빼낸다는 것은 어떻게 봐도 무리한 일이다.

아니, 애초에 어떻게 나올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

분명히 캐슬락은 아군 병력에 둘러 싸여 있었고 개미 새끼 한 마리 빠져나올 수 없도록 단단히 틀어막고 있었으니까.

그를 비롯한 일부 병력이 캐슬락을 빠져나갔다면 틀림없이 아군의 레이더망에 잡혔어야 했다.

괜스레 호흡이 가빠지고 머릿속이 붉어지는 느낌이다.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되뇌고는 있지만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다.

사실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하는 것.

그렇지만 이미 복잡해진 머릿속은 다른 종류의 생각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 더러운 악마! 히히히히힉! 더러운 악마아아아!!!”

무차별적으로 무기를 휘두르는 저들은 어떻게 생각해도 제정신이라 보기 힘들었다.

한 발 뒤로 물러선 다음 검을 휘두르자 피가 튀어 얼굴을 적신다.

내장이 쏟아지고 비명이 계속해서 귀에 들어와 꽂힌다.

“아아아아악!”

한쪽 팔이 완전히 날아갔음에도 거품을 물고 달려오는 모습은 마치 광인이나 좀비를 연상케 했다.

입술을 꽉 깨물며 다시금 목을 날리자 그제야 축 늘어진다.

바로 옆에서 달려 들어온 이 역시 상태는 마찬가지.

다시 한번 검을 휘두르자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허물어지는 인형이 시야에 들어왔다.

앗 하는 사이에 뒤쪽에서 안개를 뚫고 나온 적군 한 명.

막 검을 들어 목을 날리려던 찰나 들려온 목소리에 황급히 검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접니다! 접니다, 카티아 님!”

“미… 미시카!”

“여기에 계셨군요.”

“다른 이들은, 아니, 그전에 현재 정황이 어떤지 파악할 수 있습니까?”

“죄, 죄송합니다. 사실 제대로 파악할 수 없습니다. 저도 어쩌다가 이곳에 닿은 터라. 그, 그보다 일단은 입과 코를 가릴 수 있는 뭔가를 준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나 눈치채셨을지 모르겠지만….”

“안개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아마 천관위일 겁니다. 이 정도나 되는 지역 전체에 안개를 뿌릴 수 있는 이는 그밖에 없을 테니까요. 어떻게 그가 캐슬락을 빠져나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건 틀림없이 그의 작품입니다. 아마 기존에 깔려 있는 안개에 촉매를 이용해 자신의 마력을 덮은 것 같습니다만 이전과는 다르게 마력의 농도가 무척이나 노골적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알아낸 사실이 더 있습니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진위여부는 상관없습니다. 말씀해 주세요.”

“네… 다, 단순한 추측일 뿐이지만 아마 이 안개 마법이나 특이한 종류의 약물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혹은 저주일 수도 있고요. 저도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만… 사제의 정화 마법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면 다른 수단이 사용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지옥에 떨어져라!! 히히히히힉!”

“조심!”

“가, 감사합니다. 카티아 님.”

“계속 말씀하세요. 길은 제가 뚫겠습니다.”

“네, 네.”

“다른 수단이라는 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겁니까?”

“개인적으로는 연금술로 이루어진 물약의 한 종류라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아마 흥분제나 각성제, 일부 환각증상을 유도하는 종류일 겁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 안개에 노출되면 노출될수록 더 큰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겁니다. 앞서 부대를 습격했던 몬스터 역시 아마 이 안개에 영향을 받았을 확률이 큽니다. 물론 말씀드렸다시피 전부 제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합니다. 마법이나 사제의 정화 주문이 듣지 않는다면 그 정도밖에는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없으니…. 큰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충분히 도움이 됐습니다. 네. 충분히요. 아마 미시카의 추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저 역시 조금씩이지만 신체가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이건 정신 마법과는 조금 다른 종류입니다. 만약 그런 마법이었다면 지금까지 효과가 지속되지는 않았겠죠. 아마 저항력이 낮으면 낮을수록 빠르게 효과를 받을 겁니다. 그리고 효력이 유지되는 시간 역시 마찬가지겠죠.”

“네. 맞습니다. 보유 마력이나 체력이 낮으면 낮을수록 더욱더 치명적인 것으로 판단합니다. 아마 이기영 그자가 만든 물약을 천관위가 안개로 만들었을 확률 역시….”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군요.”

“제가 추측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가 전부입니다. 카, 카티아 님. 혹시 지금부터는 어떻게 하실지….”

“일단은 병력을 재정비합니다. 마법사들을 찾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안개를 몰아냅니다. 그게 첫 번째입니다. 다른 타개책은 없습니다.”

“예.”

“조금 더 빠르게 움직이겠습니다. 미시카, 딱 달라붙어서 따라오세요.”

“네!”

사실 큰 성과라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최소한 일이 어떻게 터지고 어떤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는지에 의의가 있다.

문제는 그다음.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느냐가 가장 큰 문제다.

“죽어! 죽어! 죽어라! 바리안 신이 네놈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 이거 놔!”

“개자식들! 개자식들! 죽어! 이 미치광이 새끼들!”

“죽는 건 네놈들이 될 것이다. 저주받을 악마의 자식들아!”

안개를 해치고 나가면 나갈수록 보이는 모습은 가관.

무기를 든 이들이 병사 하나를 둘러싸고 계속해서 찍어 내리고 있었고, 어느 한쪽에서는 손으로 얼굴을 뭉개버리는 광경도 눈에 들어왔다.

움직이고 싶다.

당연히 움직여 저들을 구하고 싶었지만 어느 쪽이 아군이고 어느 쪽이 적군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이 문제.

바리안의 사제복을 입고 있는 이들 뿐만이 아니다.

공화국의 군복을 걸치고 있는 이들부터 휘장을 달고 있는 이들까지.

심지어는 민간인들로 보이는 이들까지 섞여 있다.

이미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상황이 가속화 되고 있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죽어어어어!”

“아군이다! 아군이야! 휘두르지 마!”

“죽어! 꺼져! 가까이 오지 마! 아무도.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마! 개자식들!”

“이 미친 자식!”

“가까이 오지 말라고오오!”

“뭉쳐! 뭉쳐!”

“밀집 대형으로! 밀집 대형으로 방어한다! 밀집대형으로!”

“가까이 오지 마! 이 미친 자식들아! 아아아아악!”

“신이 네놈들을 벌할 것이다!”

“더러운 악마 새끼들이! 저리 사라져라! 죽어!! 베니고어 여신과 바리안 신이 함께하실 것이다. 이 천벌을 받은 놈들!”

“죽여! 전부 죽여!”

“아군이다. 휘두르지. 아아아악!”

“아군이다! 아군이야! 게브! 나야! 나!”

“아아아아아악!”

‘제기랄….’

“제길….”

‘제기랄!’

“카티아 님.”

“꽉 붙으세요. 아마 후위 병력은 마법사를 중심으로 대형을 유지하고 있을 겁니다.”

“예… 예.”

지옥이라는 말보다 이 광경을 더 잘 설명해 주는 단어는 없을 것이다.

피가 튀고 끈적끈적한 바닥에서는 자꾸만 역한 냄새가 올라온다.

몸이 점점 축축해지고 머리카락은 땀에 젖는다.

비명과 고함이 귀를 찌르고 살려달라는 목소리와 흥분한 목소리들이 머릿속에 자꾸만 울려 퍼진다.

숨을 들이마실수록 점점 더 어지러워진다.

아마 나 역시 눈이 붉어졌을 터.

약의 효과를 받고 있다는 걸 인지하게 될 정도였다.

물론 영향을 받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잔뜩 흥분한 아군 병력은 이미 이쪽을 덮친 적군 병력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서 자리한 이들은 모두 적으로 비치고 있으리라.

겁에 질려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다 아군을 베는 이들이나 이미 적에게 둘러싸여 처참하게 난도질당하고 있는 이들, 시간이 지날수록 광기가 안개 안을 잠식한다.

비명과 정신 나간 웃음소리만 들리는 이곳은 이미 전장이라고 할 수조차 없다.

‘뭐와 싸우고 있는 거지. 도대체….’

“죽어!!!”

“살려. 살려줘…. 살려!! 나는 아니, 나는 아니야! 커허어어억.”

“네깟 놈들이 공화국을 넘보게 할 것 같….”

“이러지 마. 가까이 오지 마! 내가 잘못했어. 내가 전부 잘못했으니까 가까이 오지 마. 제발 이러지 마. 내가….”

“살려주세요. 제발. 엄마….”

“죽여! 죽…. 히이이이익!”

“죽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살려줘.’

“…….”

‘살려줘. 카티아… 도와줘. 나를… 구해줘.’

“언니….”

안개 때문이 아니다.

점점 더 시야가 이상하게 변하는 느낌.

환청이 들려오고 환각이 보인다.

검을 계속해서 휘두르자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이들의 얼굴이 악마처럼 일그러진다.

‘환각이고 환청이야.’

모든 게 환각이고 환청이다.

그걸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데도 점점 더 정신이 마모된다.

마치 마법. 아니, 마치 저주처럼 느껴질 정도.

“미시카… 제대로 따라오고 있습니까.”

살짝 뒤를 돌아봤지만 안경을 쓴 사내는 시야에서 사라진 뒤다.

입술을 꽉 깨물어 봤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런 상태에서 그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카티아 님!”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순간 시야에 비친 것은 커다란 덩치를 하고 있는 괴물.

“지, 지금.”

“죽어….”

“네?”

“죽어… 죽어버려! 이 괴물 새끼!”

“그게 무슨… 커헉.”

괴물의 목이 떨어지는 것은 순식간.

하지만 눈을 똑바로 뜨자 이름 모를 병사의 머리가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점점 더 숨을 쉬기가 어려워지고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점점 표정이 일그러진다.

사방이 붉게 변해 빙글 빙글 돌아가고 있는 느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자꾸만 눈에서는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자꾸만 정신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구해줘… 카티아.’

“너희는 정화되어야 한다! 정화되어야 해.”

‘카티아.’

“구원을 내릴 것이다. 빛의 구원을! 빛의 군대가 너희를 몰아낼 것이다.”

‘살려줘, 카티아!’

“빛의 구원을!”

“닥쳐! 닥쳐!! 닥쳐어어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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