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4
회귀자 사용설명서 394화
우정과 사랑, 믿음의 힘(5)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군. 이런 장치를 쓰는 건 처음이라. 아무튼 보고하도록 하지. 상황은 거의 마무리 되고 있다. 적 본대는 혼란에 빠졌고 주요인물에 대한 생포에 대한 부분은… 음. 가능하다고 확답을 내릴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일단은 최대한 신경 써보도록 하지. 준비가 되는 대로 곧바로 이들을 캐슬락으로 보낼 예정이다. 시간에 맞출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이쪽이 아니라 그쪽에서 신경 써야 되는 부분일 테고. 그쪽에서의 전투는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 아마 문제 없을 거다.
“괜찮게 진행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기왕이면 자료화면 같은 것도 준비해 주면 좋을 텐데. 이 사람도 참 융통성 없다니까. 자기 할 말만 하고 끝이야.”
-혹시 궁금해할 것 같아. 전체적인 상황을 보내도록 하지.
“아, 보내려나 보네요.”
-빛의 구원을 받을 것이다! 누가 감히! 누가 감히! 악마 소리를 내었는가!
-커허어어…. 아아아아악!
-우웨에에에에엑….
-그 입 다물어라! 이 더러운 교국의 앞잡이들아!
-아군이다! 공격하지 마! 아군이야! 멈춰! 아아아아악!
-더러운 악마의 하수인들! 저주 받을 악마들아! 바리안 님이 네놈들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불지옥에 떨어져 죽어서도 영원히 고통 받으리라!
-미친 사이비 교도 새끼가! 죽어! 죽어어!!
-신의 사도는… 죽지…. 나는… 죽어서도 싸울….
“…….”
“…….”
“생각보다 끔찍하네요.”
“그러게.”
-내가 보고할 내용은 이걸로 끝이다. 네 말대로 이건 보낸 이후에 곧바로 폐기할 예정이고. 아, 추가로 여기 아가씨가 할 말이 있다고 하더군. 본래는 안 된다고 했지만 나보다는 네가 그녀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 테니 이 정도는 이해해 줬으면 좋겠군.
-오, 오빠. 자, 잘 지내시죠? 저…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소라 씨도 마, 마찬가지고요. 벌써 얼굴을 못 본 지 이틀이나 지났네요. 이… 이틀이나요. 보, 보고 싶어요. 히끅. 너무 보고 싶어요. 잘 지내는지도 너무 걱정되고…. 몸은, 몸은 괜찮으신 거죠? 매 끼니 꼬박꼬박 챙겨 드시고 치료도 매일매일 받으셔야 해요. 꼭이요! 최대한 빨리 마무리 하고 돌아갈게요. 기다려주세요! 쪽! 쪽! 쪽!
“…….”
“…….”
-사, 사랑해요. 히힛.
“우웩. 못 볼 걸 봤네요.”
“너무 그렇게 반응하지 마. 귀엽기만한데 어때서.”
“귀여운 건 사실이지만 같은 동성의 눈으로 보면 그렇게만은 보이지 않네요. 누구는 저런 거 못해서 안하는 줄 아나. 제대로 된 애교 한번 보여줘요?”
“아니…. 누나한테 잘 어울릴 것 같은 행동은 아니니까.”
“외관 자체는 내가 더 귀엽지 않나? 하얀 씨보다는 내가 조금 더 작고 앙증맞은 편 아니에요? 저쪽은 은근히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가서 귀엽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고요. 어딜 보더라도 저런 콘셉은 제가 가져가야 하고 하얀 씨 외관에는 오히려 방해, 아니, 사람이 말하는데 귀는 왜 이렇게 자꾸 후비적거려요? 무시하는 거 아니죠?”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왠지 모르게 귀가 간지러워서.”
“누가 오빠 욕하고 있나 보죠. 뭐. 욕먹을 짓을 하도 하고 다니니까. 이상하지도 않은 일도 아니지.”
“말이 심한 것 같은데, 누나.”
“틀린 말은 아니니까. 풉! 특히나 이번 건 조금 악랄했다는 거 알고 있죠? 그쪽 작전에 투입된 애들은 입단속 확실하게 해야 할 거예요. 만약 알려지더라도 제가 손을 썼다고 발표하기는 하겠지만 괜히 이미지가 손상되면 안 되죠. 성스러운 군대잖아요?”
“아암. 그렇지. 성스럽지. 그렇고말고. 뭐, 사실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거기서 일어난 일은 어디까지나 불운한 사고로 처리될 거고 죽고 죽이는 전쟁에서 윤리 따지고 드는 것도 우습지 않아?”
“대륙법으로도 정신을 뒤흔드는 저주나 마법 같은 건 엄연히 금기예요. 흑마법도 마찬가지고요.”
“내 건 마법이나 저주가 아니니 세이프. 흑마법 역시 교국이 사용한 게 아니게 될 테니 세이프.”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신다니까.”
“칭찬으로 들을게.”
과장스럽게 박수를 보내는 이지혜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내 인성에 감탄한다는 표정을 보내고 있었지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꼴이다.
계획에 적극 찬성하는 것으로 모자라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 써준 숨은 공로자가 이제 와서 양심 운운하는 모습을 보여주니 우습다.
물론 그녀의 진심은 아니다.
반쯤은 놀리는 표정이었고 무엇보다 본인이 기분 좋아 보였으니까.
계속해서 방금 영상을 돌려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꼴은 가관.
함정에 빠진 적군.
지휘관으로서는 당연히 기분 좋을 만한 일이기는 하다.
아군의 피해는 전무, 쓸모없는 포로들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하기에는 성과가 좋다고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콧노래 흥얼거리는 건 좀 오바지….’
“흥…. 흐으으흥….”
심지어 고개도 까딱까딱 움직이며 리듬을 타고 있다.
이지혜를 보면 항상 하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쟤보다는 내가 덜 쓰레기라는 위안이 된다.
“진짜 이런 걸 보면 오빠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든다니까요? 제가 조금 덜 악랄하다는 걸 깨닫게 해주잖아요? 진짜 악랄하다니까. 악마가 소환되면 오빠를 형님으로 모실 거라니까요. 아, 이미 한 번 모셨나?”
“…….”
아무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
왠지 모를 자괴감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굳이 티를 내지는 않았다.
더 이상 영혼에 상처를 받기 전에 말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진지한 주제로 입을 열자 성실히 대답해 오는 이지혜의 얼굴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도착은 언제지?”
“슬슬 됐어요. 아마 지금쯤이면 적군에게도 우리 병력이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갔을 거고요. 조금 더 은밀하게 움직이고 싶기는 한데 역시 우리 악마 소환사는 공성전을 치르는 와중에도 정찰대를 돌리는 걸 소홀하지 않네요.”
“기왕이면 깜짝 놀래주고 싶었는데. 이거 아쉽게 됐네.”
“놀라 뒤집어질걸요? 정찰대는 계속 잡아내고 있으니까 정확한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적도 파악하지 못할 거예요. 기껏해야 구색만 맞춘 지원부대라고 생각하는 게 고작이겠죠. 공화국 쪽으로 우리 부대가 들어갔다는 건 다 알고 있는 사실일 테고. 여기저기에서 남은 병력 끌어 모았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물론 전부 간파하고 있을 가능성도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간파?”
“그냥 추측이에요. 하지만 대비해야 될 문제이기도 하고요. 원래 이런 큰 병력을 이끄는 입장에 있다 보면 모든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거든요. 사실 전체적으로 상황이 무난하기는 해요. 아니, 너무 무난해서 문제죠.”
“정확히 어떤데?”
“일단은 병력의 움직임. 정확히 파악은 되지 않지만 곳곳에서 차출된 병력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게 신경 쓰이네요. 말 그대로 보험이란 거죠. 이를 테면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는 병력. 전장을 유지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되는 잔존 병력이라고 하는 게 맞겠네요. 전장에 사람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니까요. 보급도 생각해야 하고 실드 마법으로 보호할 수 있는 근접 직군의 비율을 생각해 보면 더욱이요. 본대에서 분대가 분리되기는 했지만 분대가 빠져도 저언혀 상관없다는 거예요.”
“…….”
“아직까지도 타 전선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건 바로 그런 이유라고 할 수 있겠죠? 타 전선에서 숨이 트이기야 했지만 말 그대로 숨이 트였을 뿐이에요. 이전에 손해 본 걸 메우려면 조금 더 강력한 한 방이 필요하고요.”
“다른 정황은?”
“있죠.”
“…….”
“거의 모든 동부전선이 먹혔다는 것 역시도 생각해 봐야 될 문제예요. 린델 쪽으로 움직이는 저희 동선을 적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건 환호할 만한 일이지만 다시 말하면 저희 역시 동부 전선의 바깥쪽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말과 다름없는 거잖아요. 서로 최대한 신경 쓰고 있기는 하지만 적 병력이 바보도 아니고. 지금 안개 소환사가 있는 곳에 들어와 있다는 그 병력들, 그 병력들의 정확한 소재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것도 문제예요. 일부는 훌륭히 함정에 걸려들기는 했지만 그 나머지는 어디에 있을까요? 안개의 숲에서 길을 헤매고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흠….”
“오빠가 예전에 넘긴 전략 시뮬레이션 데이터에서의 악마 소환사는 정석으로 상대방을 조이고 물고 늘어지는 성향이 강하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실전과 게임은 다르니까요. 오히려 그런 성향일수록 한 번의 기습이 효과적으로 다가올 수 있거든요.”
“누나 말이 만약 맞다면….”
“네. 현재 숲에 있는 병력들 역시 버리는 패였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너무 간 것 같기는 하지만 애초 예브 카리나는 개뿔 신경도 안 쓰고 있었을 수도 있고요.”
“…….”
“표정 풀어요. 그래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니까. 적 병력의 일부를 안개의 숲에 불러올 수 있다는 것 만해도 대단한 성과예요. 최대한 많은 숫자가 덫에 걸려들었으면 싶지만 그걸 바라는 건 너무 날로 먹겠다는 도둑놈 심보고….”
“만약 누나가 진청이라면 어떻게 할 건데?”
“글쎄요? 오빠랑 똑같지 않을까요? 오빠는 어떻게 할 건데요?”
“수도를 핑계로 나불거리며 먹기 좋은 미끼를 안개에 숲으로 보내고….”
“방심한 사이에 본대를 친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짓이랑 똑같은 짓.”
‘이 쓰레기 새끼.’
왠지 모르게 스스로를 욕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가능성이 있다는 부분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지혜의 말은 당연히 납득 가능한 설명이다.
현재 안개 소환사 천관위가 있는 곳에 정확히 얼마만큼의 병력이 들어갔는지 확인할 수 없다.
심지어 모든 분대가 안개의 숲으로 들어갔는지에 대해서도 의심을 해볼 만한 부분.
일부 병력은 안개의 숲으로 보내고 나머지 병력을 뒤로 돌렸을 가능성 자체를 배제할 수 없다.
이지혜가 꼼꼼히 바라보는 지도에 시선을 두었다.
어느 한 지점을 손가락으로 툭툭 치고 있는 이지혜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맞아요.”
“만약 이 추측이 맞다면 캐슬락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이곳에서 마주칠 확률이 높아요. 정확히 말하면 기습을 당한다고 말하는 게 올바른 표현이겠네요. 우리에게는 불리하고 적들에게는 좋은 지형. 캐슬락에 있는 본대도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한참 공성전에 정신이 없기는 하겠지만 자기한테 빅 엿을 먹인 상대가 코앞에 있는데 눈이 안 돌아갈 사람이 있겠어요? 그리고 제 입으로 말하기엔 조금 죄송하지만 오빠가 도발 할 때 표정이 워낙 띠꺼웠어야죠. 장담컨대 부처가 봐도 빡칠 만한 표정이라고요.”
“그건 좀 상천데… 아무튼 누나가 여기까지 읽었다면… 대책은 있는 거 맞지?”
“일단은 적들이 함정을 파 놓지 않았다고 기도하는 게 첫 번째. 만약 파 놓았다고 한다면 뚫어내는 것 밖에 답이 없어요. 여기서 부터는 전술의 영역이죠.”
‘전술.’
말은 쉽다. 하지만 악마 소환사가 이런 부분에 수완이 좋다는 건 그녀도 인정하고 있는 부분. 앞전에 얻은 데이터베이스를 토대로 한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이지혜는 악마 소환사를 이긴 적이 없다. 실제로 이지혜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말해왔을 정도. 물론 그 이후로 그녀가 얼마나 칼을 갈아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악마 소환사는 확실히 강하다. 초조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병력들은 계속해서 진군하기 시작.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굉음이 들려온 것은 순식간. 왠지 모르게 이럴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괜스레 더 기분이 더러워 진다.
“씨발….”
“…….”
“대책은 있는 거지?”
“물론이죠.”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기는 모습이 보이기는 했지만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저도 자존심이 많이 상하기도 했고 게임과 실전은 다르다는 걸 보여줘야하니까요.”
하지만 이후에 들려온 목소리에는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준비한 전술이 있기는 있다는 거네?”
“준비 했다기 보다는 원래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게 맞죠.”
“그러니까 그게 뭔….”
“전술 김현성.”
“어?”
“전술 김현성이요. 그게 제가 준비한 전술이에요.”
“아….”
“오빠가 저보다 더 잘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꼭꼭 숨겨 왔던 거고.”
“푸흐하하하핫. 아. 그렇네… 키야… 그걸 깜빡 하고 있었구만! 내가 우리 현성이를 깜빡 하고 있었어!”
이것도 전술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파괴력은 전술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 괜스레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은 내가 조증에 걸렸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신들의 아집으로 만들어낸 불세출의 괴물. 알타누스에 의해 회귀한 존재이자 베니고어 여신의 총애를 얻고 있는 진짜 신의 사자. 신화등급의 무구, 가지고 있는 스텟 자체만으로도 이미 괴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그 말 그대로 자잘 자잘한 전술이 필요할 리가 없다.
전술 김현성 자체가 바로 이쪽이 가지고 있는 전술이다.
“전술 김현성 투하해!!”
“이미 준비 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