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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397화 (396/1,590)

# 397

회귀자 사용설명서 397화

회귀자 사용설명서(3)

‘이게 가능한 건가. 이런 게… 정말로 가능하다고?’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찝찝했던 것이 사실.

전쟁터의 한가운데, 지령을 받고 움직인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투가 일어나는 곳은 언제 어디서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

시시각각 상황이 변화하는 것은 물론, 지휘관이 상정한 예측범위 밖의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목적지였던 A포인트에 변수가 나타나 위치를 옮겨야 할 수도 있고, 좌표로 찍힌 곳에 눈 먼 화살이나 마법이 떨어질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대회전이나 대규모 전투에서에서 병력을 부대 단위로 움직이며 진영을 세우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개인에게도 그런 상황을 부여한다는 것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탐탁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리 여신의 거울을 이용해 넓은 시야로 전장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한들 갑작스러운 변수에 대응해야 하는 것은 오롯이 내 역할이니까.

처음 작전에 들어간 이후에는 역시나 지지부진했고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약간의 시간이 지난 이후, 막상 상자를 까보니 내 상상이상이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말도 안 돼.’

단순히 루트나 장소의 좌표를 찍어주는 것까지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휘통제실에서 적재적소에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나라는 무기를 집어넣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목표물 설정이나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 써주는 것은 또 다른 문제.

인간이 시각적으로 받아들이고 판단할 수 있는 뇌의 용량에는 한계가 있다.

전부 다 볼 수도 없을 뿐더러 받아들인 정보를 정리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거다.

만약 내 움직임이 느리다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이 정도 속도에 반응한다는 건, 일반인으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저는 조금 특별한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성 씨.’

그가 이전에 말했던 것이 바로 이걸 뜻하는 것일지도 모른겠다.

그 말 그대로, 이건 평범한 인간이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책사나 군사도 이런 걸 실행할 수 없으리라.

계속해서 내부 평가가 올라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

처음 만났을 때는 제법 쓸 만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평범한 인상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지금은 없어서는 안 될, 자신을 이끌어 주는 친우가, 형제가 되어 있다.

이런 천재가 1회 차에는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궁금할 지경.

튜토리얼 던전에서 검을 놀려 그를 구한 일은 1회 차와 이번 회 차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적!’

눈앞에 화살을 당기는 궁수들이 보이지만 딱히 움직이지 않는다.

어차피 곧바로 좌표가 찍힐 테니까.

예상대로 곧바로 신호가 들어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C포인트 321.12입니다.

“확인했습니다.”

방벽이 두텁지만.

‘뚫고 나갈 수 있어.’

거대한 방패와 도끼를 든 거한이 무기를 휘둘렀다.

검을 휘두르자 기분 나쁜 감촉이 느껴지며 피 분수가 뿜어져 나온다.

계속해서 발을 놀리며 움직이고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지령이 떨어지는 상황.

몸은 자연스레 목소리에 반응한다.

끊임없이 말을 하거나 좌표를 발신하는 것은 마치 바로 옆에 있는 느낌을 주었다.

등 뒤를 지켜주는 동료도 이것 보다 더 든든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이뿐만이 아니다.

‘버프가 끝나 가는데.’

-C포인트 321.69

“확인.”

마침 딱 장소에 도착하니 곧바로 몸에 신성력이 쏟아지기 시작.

내게 신성력을 넣어준 사제 역시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

저 사제가 받은 지령은 정확한 포인트에 신성력을 떨어뜨리는 것이 전부일 터.

아마 내 움직임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었으리라.

‘이해할 수 있어.’

저 사제가 현재 어떤 기분인지 이해할 수 있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 역시 아군이 느끼는 감정과 같다.

너무 황당해 기가 찰 지경.

이런 게 가능하리라는 건 상상도 해본 적 없다.

이건 마치 나를 위해서 만들어진 무대나 다름이 없다.

적을 베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일이 없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마법과 화살 따위는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왜.

어차피 해당 지점에 아군의 보호마법이 떨어질 테니까.

콰아아아아아아앙!!!

큰 소리와 함께 하늘 위에 펼쳐진 장막이 적군의 마법을 막는다.

방어 마법을 캐스팅한 아군 마법사는 멀찍이서 황당하다는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분명 몇 분 전 적군이 있던 곳에 실드 마법을 캐스팅하라는 어처구니없는 지령에 대한 결과물을 눈으로 직접 목도한 탓이다.

‘이건… 전장을 읽고 있는 거야.’

그 말 이외에는 이 상황을 표현할 길이 없다.

중간중간 어쩔 수 없이 생긴 상처는 이동하는 내내 곧바로 치료된다.

몸에 걸려 있는 버프는 절대로 끊어지지 않고 한계 유지시간이 없는 것처럼 유지된다.

지정한 포인트에 움직이기만 해도 가까운 아군 사제가 기다렸다는 듯이 신성력을 넣는다.

거리가 멀다고 느껴지거나 뚫어내기 애매하다고 판단하는 곳이 있다면 한발 먼저 마법이 떨어져 길을 열어준다.

주변에서 함께 병력을 밀어내고 있는 전사 역시 마찬가지.

그들이 적 병력을 밀어내는 사이 빈 공간이 열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적군의 얼굴이 보인다.

‘말도 안 돼.’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일종의 쾌감이다.

전투를 썩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손발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을 때나 느낄 수 있는 쾌감이다.

“죽어! 이 괴물 자식! 커헉!”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진 적군 뒤로 들려오는 아군의 목소리.

“현성 씨, 뒤!”

외침이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딱히 주의하라는 말이 없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커다란 비명이 들려왔다.

살짝 고개를 돌린 곳에 자리한 것은 이마에 박힌 채 뒤로 넘어가고 있는 적군의 얼굴.

화살을 쏜 아군 궁수는 지금껏 다른 이들이 보였던 표정을 선보인다.

아마 나와 내 주변에 있는 이들은 전부 이 감정을 느낄 수 있으리라.

아무런 법칙이 없는 것 같아도 아군은 거미줄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다음 위치로 이동합니다.

“확인했습니다.”

-다음.

“확인했습니다.”

-페이스를 늦춰주셔도 됩니다. 체력에 신경 써주세요.

“확인.”

‘이 사람은 천재야.’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거다.

“커헉!”

“이 미친 괴물이! 죽어! 막아! 저 새끼 올라오지 못하게 해!”

“마법이랑 화살을 아끼지 마! 한 발만 맞히면 된다. 한 발만!”

“하지만!”

“닥치고 시위 당겨! 저 새끼 올라오게 하지… 컥!”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잠깐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 다시 한번 신성력이 쏟아지며 버프가 교체된다.

뒤를 돌아본 이후에 보인 광경은 내가 생각해도 어처구니없을 지경이다.

지금의 성장치 역시 결코 낮다고 할 수는 없지만 거의 성장이 끝났었던 1회 차에서도 이렇게 만족스러운 전투를 해본 기억이 없다.

이건 전쟁이라고도 볼 수 없다.

과거의 내가 거친 오프로드를 달렸다고 한다면 지금은 포장된 도로를 무척 고급스러운 세단을 몰며 달리는 느낌.

가지고 있는 마력과 배기량은 비슷하지만 도로의 상태가 차원이 다르다.

괜스레 주먹을 꽉 쥐게 된다.

‘하루 종일 싸울 수도 있을 것 같아.’

물론 과장이다.

하지만 이런 상태의 전장이라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것 같다.

-주의. 12시 방향.

“확인.”

잠깐 한눈을 판 사이, 목소리에 반응하니 예의 그 창을 볼 수 있었다.

순식간에 이쪽으로 뻗어 나온 창은 틀림없이 조금 전 기영 씨를 노렸던 마법.

검을 들고 베어내자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 파편이 터져나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정확한 좌표 찍어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현성 씨를 목표물로 설정한 것 같습니다.

“네. 확인하고 있습니다.”

-갑니다.

“네.”

발을 떼려는 순간 다시 한번 쇄도해 오는 창.

곧바로 다음 좌표로 이동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적 병력 일부가 창에 맞아 바스라진다.

“아아아아악!”

막는 것인지 피하는 것인지 딱히 대답이 없는 것을 보면 개인의 재량에 맡기는 게 맞다고 판단한 모양.

잠깐 상황을 둘러보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곧바로 다음 공격이 쇄도해 오고 있었으니까.

‘막는다.’

검을 위로 휘두르자 다시 한번 쨍그랑 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막고.’

쨍그랑!

‘피하고.’

콰드드드드득!!

‘막는다.’

쨍그랑!!

병력이 밀집해 있는 곳에서 움직이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아군 병력이 계속해서 길을 열어준다.

지휘통제실에서는 최대한 안전하게, 최단 시간으로 움직일 수 있는 좌표를 전송해 온다.

아직까지는 창을 던지는 상대를 정확히 가늠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적의 위치야 지휘부 쪽에서는 제대로 확인하고 있을 것이다.

유리창이 어깨를 살짝 스치고 지나간 것은 바로 그때.

‘괜찮아.’

대미지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깊지는 않다.

‘집중.’

다시금 창이 날아들었고 다시 한번 베어냈다.

쨍그랑! 쨍그랑! 콰드드드득! 콰아아아아앙!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가고 주변은 엉망이 되고 있다.

상대가 상대이니 이런 상황이 펼쳐진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하지만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

적군에게 피해를 누적시키며 계속해서 목적지가 있는 곳으로 움직이고 있다.

아마 상대 역시 내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걸 파악하고 있으리라.

-속도 조금 올리겠습니다.

“확인.”

어째서 갑작스레 속도를 올리는 지는 뻔한 일.

아마 녀석이 움직이고 있는 게 틀림없으리라.

계속해서 날아들었던 창 역시 조금은 뜸해졌다.

변수가 많아지자 목적지가 계속해서 뒤바뀌지만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

아마 정상적으로 싸움이 진행됐다면 조금은 힘들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장 여기까지 올라오는 것에도 많은 시간을 써야 했을 테니까.

체력적으로 지쳤을 것이고 사방에서 몰려오는 병력을 감당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리 만무.

이미 창이 어디에서 날아오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고 심지어는 떨어질 위치 역시 상정해 주고 있다.

그 외에 공격들은 신경 쓸 필요조차 없다.

“묶어놔! 최대한 묶어놓는 거다! 거리를 벌릴 때까지 최대… 아아아아악!”

“미, 미친! 게니아!”

“최대한 묶…. 커헉!”

다시 한번 발에 마력을 불어넣고 최대한 땅을 박찬다.

주변 풍경이 바뀌는 것은 순식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한 남자가 바로 앞에서 창을 쏘아 보낸다.

“개자식! 죽어!”

-마지막 공격은 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확인.”

확실히 몸을 비튼다면 거리를 다시 내주게 될 것이다.

인파 사이로 모습을 감추기 전에 기회를 잡는 것이 옳다.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입술을 꽉 깨물었다.

창을 피하지 않은 채 검을 휘두르자 커다랗게 놀라는 남자의 동공이 눈에 들어왔다.

“미친 자식!”

파킹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빛난 것은 바로 그때.

몸으로 공격을 받았음에도 대미지가 없다.

검을 휘두르며 본능적으로 곁눈질을 하자 나 대신 데미지를 받고 있는 박덕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타인의 대미지를 대신 받는 특성을 발동시킨 것이 틀림없으리라.

‘끝을 알 수 없다니까.’

등 뒤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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