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9
회귀자 사용설명서 399화
만약 적이라면(1)
“이건 정말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네요. 제대로 싸우는 건 처음 보는데 이건 뭐라고… 어떻게 이런 사람이….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할 수 있죠?”
입을 벌린 채 중얼거리는 이지혜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조용히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걸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 광경이 납득되지 않는 모양이다.
하물며 정신없는 전쟁터 한가운데에 있는 이들은 어떨까.
전체적으로 맵을 살펴볼 수 있는 우리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을 것이다.
‘전술 김현성. 전술 김현성.’
이지혜의 입장에서는 농담으로 던진 단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력 홀로그램에 비친 맵 곳곳에 전술 김현성이 떨어진 흔적들이 보인다.
심지어 마구잡이로 때려죽인 것도 아니다.
죽이기보다는 깔끔하게 전투불능으로 만든 것이 대다수.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저렇게 얼이 빠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거다. 저런 상태로 살려 놓는 게 죽이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는 건 지나가던 개도 안다.
물론 나 역시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녀석이 강하다는 건 이해하고 있었지만 개인이 이 정도로 전장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게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네임드들이 전황을 뒤집을 수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김현성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규격 외의 존재들이 보여주는 모습 중에서도 격이 다르다.
물론 여러 상황이 맞물리기는 했지만 착실하게 지령을 완수하는 놈이 조금은 낯설어 보일 정도였다.
검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화면으로 바라보자 괜스레 등 뒤로는 쭈삣쭈삣 소름이 돋기 시작.
온몸에 털이 전부 곤두선 것 같은 기분의 정체는 바로 경외다.
마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용사 같은 느낌이었으니 다른 표현이 필요 없으리라.
‘그래. 현성아, 니가 최고다. 키야.’
아마 이지혜의 경우는 내가 느끼는 것보다 더 할 것이다.
그나마 가까이서 녀석의 활약상을 봐 왔던 나와는 달리 김현성의 본 실력을 목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 테니까.
녀석의 스텟창도 들여다 본 적이 없으니 느끼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아직도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은 가관.
지휘하던 부대에 지령을 넣은 이후에 저런 표정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대단하지? 마지막에 검 휘두르는 거 봤어? 아니 그전에 마법사 잡는 건?”
“그런 걸 제가 어떻게 봤겠어요. 그리고 저게 대단하다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는 거예요? 지금까지 봐온 네임드 모두 괴물이라고 생각했지만 저 괴물은 그중에서도 이해할 수 없어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특별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요. 인간이 맞는지도 의심스러운데, 겨우 대단하지라니. 현성 씨 정말 사람 맞아요?”
“그럼 뭐겠어?”
“글쎄요. 다른 건 몰라도 특별하다는 것 하나는 알겠네요. 생각해 보면 튜토리얼도 그래.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물론 옛날 기억 같은 건 지금 제가 느끼고 있는 심정이랑은 비교도 안 되지만 그때부터 사람이 묘하긴 했죠.”
“푸핫. 그래?”
“물론 이번 작품은 오빠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아니, 오빠도 제 눈에는 똑같아 보이긴 하네요. 조금 덜 할 뿐이지. 그래도 저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세상 정말로 불공평하네요. 오빠가 왜 죽자 살자 현성 오빠한테 매달리는지 대충은 알겠어요. 네. 정말로… 지금 꿈꾸고 있는 거 아니죠?”
“아니야. 사실 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대충 예상은 했지만. 우리 길드 애들 반응 보면 이해가 가지?”
“꼭 오빠 길드뿐만이 아니라 주변 병사들 표정만 봐도 충분히 이해돼요.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저런 게 마음먹고 한 명 죽이자고 달려들면 장담컨대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아무도요.”
“그렇긴 하겠지만…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 누나. 어차피 저런 종류는 우리랑 종족이 다르다고 보면 되니까. 그나저나 부대는?”
“괜찮아요. 지금은 타 지휘관에게 승계한 상태니까. 위기가 되는 구간은 지났고 적 네임드도 생포했으니 아주 약간은 여유가 생겼어요. 물론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일단 지금은 최대한 빠르고 안전하게 전투를 마무리해야 해요. 그런 다음 부대를 재정비하고 캐슬락으로 향해야죠. 여기서 시간이 끌리는 건 악마 소환사 그 사람이 가장 바라는 일일 거라고요.”
이지혜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인 것은 당연지사.
적 지휘관을 잡았을 뿐 전투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물론 현재 상황을 판단해 본다면 승자와 패자가 정해졌다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궁지에 몰린 쥐도 가끔은 고양이를 문다.
아무리 낙관적인 상황이라고 한 들, 마음 편히 있을 수는 없다는 거다.
아마 아직도 캐슬락에서는 공성전과 수성전이 진행되는 도중일 터.
이 전투의 목적이 본대의 진입을 지연시키기 위해서였다면 진청의 입장에서도 반 정도는 성공이라 할 수 있으리라.
‘생각보다는 빠르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느려.”
전투가 끝난 이후 사후처리, 병력의 컨디션 상태 등등을 고려해 보면 대승이지만 대승이라고 할 수 없는 싸움.
적군의 피해가 크기는 하지만 아군의 피해도 결코 적은 수준은 아니다.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다음 싸움을 무리 없이 펼칠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나마 김현성이 자리해 있어서 다행이다.
만약 사랑스러운 회귀자의 활약이 없었다면 지금보다 상황이 꼬였으리라.
아무튼 작금의 상황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두 가지.
조금 더 무리해서 병력을 이끌고 캐슬락에 도달하느냐.
아니면 조금 느리더라도 온전한 컨디션을 유지하느냐.
‘답은 정해져 있지만….’
그래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슬쩍 고개를 돌려 이지혜를 바라보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건지 곰곰이 생각에 빠져 있다.
책상과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는 모습은 누가 봐도 무언가를 고민하는 모습.
하지만 어떤 게 현명한 선택인지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귀환입니다, 현성 씨.”
‘어쩔 수 없지.’
-전투가 끝나지 않았습니다만, 이대로 괜찮은 겁니까.
“일단은 귀환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 한 번으로 전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네. 확인했습니다. 생포한 적과 함께 귀환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캐슬락 공성전을 펼치고 있을 적과 마주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이후에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른다는 걸 생각해 보면 전력을 최대한 유지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리라.
특히나 네임드의 체력 관리는 필수 요소 중 하나다.
중간에 회귀자가 퍼지기라도 한다면 여러모로 상황이 불행해진다.
내가 입을 열자 이지혜도 다시금 여신의 거울을 바라보며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모습.
하지만 여전히 얼굴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근심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쟤 왜 저래?’
“누나, 뭔 일 있어?”
“아니요. 잠깐 생각할 게 있어서요.”
“지금 이대로 가는 게 맞겠지?”
“아, 네. 병력 컨디션을 걱정하시는 거네요. 저도 불안하지만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캐슬락도 아직은 무너지지 않은 것 같고, 물론 위태롭다는 건 알고 있지만 조금 더 버텨주기를 바라는 게 맞죠. 만약 잘못 들어갔다가 이쪽까지 피해가 오면 거기서 전쟁은 끝이니까. 아마 저쪽에서 가장 원하고 있는 상황이겠죠.”
“만약 진청 손에 캐슬락이 넘어간다면….”
“그럼 다시 한번 상황이 복잡해지는 거겠죠. 그때는 대륙법이고 국제사회고 전부 무시하고 생화학 병기라도 풀어야 되지 않나 싶어요. 그게 아니라면 피해가 막심할 거예요.”
그 말 그대로 단순히 복잡해진다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거점을 잃는 것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사실상 이번 전투로 어느 한쪽은 회생 불가능한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
그야말로 전쟁을 끝낼 수 있을 정도, 서로 투자한 게 많으니 무리는 아니리라.
교국이 소모한 병력과 보급은 숫자로 셀 수 없을 정도.
물론 그 정도의 물량을 소비한 것은 공화국 쪽 역시 마찬가지다.
다음 싸움에 전쟁이 끝난다는 건 과장이라 할 수도 있지만, 만약 전쟁이 끝나지 않더라도 팽팽한 전세가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현 전황이 그렇다.
악마 소환사도 동부 전선에 있는 모든 병력을 불러 모았고 교국 역시 여유가 없다.
최소한의 방어 군대를 제외한 이종족 연합을 전부 데리고 왔으니 다른 말이 필요 없으리라.
녀석 역시 이 상황을 인지하고 있음이 분명.
필요한 것이 거점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음이 틀림없다.
여신의 거울을 바라보자 아직도 전장에 머물며 조금씩 도움을 주고 있는 김현성과 적 병력과 투닥거리는 아군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귀환하라고 했음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는 모양.
하지만 이쪽으로 계속해서 향하는 것을 보니 말 그대로 한 손 거드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 그래. 무리하지는 마라, 현성아. 푹 쉬어야지.’
그 와중에도 적은 끈질기게 아군을 물고 늘어지는 중.
충성심이 강한 놈들로만 구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등바등 대는 꼴이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그냥 저걸 쓸어버려야 하나….”
전형적인 발목 잡기에 조금 마음이 초조해진 것은 당연.
말 그대로 현 캐슬락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먹겠다고 소리를 지르는 꼴이니 이런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 이상하리라.
‘디아루기아를 먼저 보내는 게 좋을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곧바로 길을 뚫어야 하는 건가.’
체력에 여유가 있는 이들을 1차로 보내기엔 위험 부담이 있지만 한 시가 급한 만큼 도박을 감행할 필요는 있다.
어떤 것을 생각해도 협의가 필요한 타이밍.
살짝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굳은 얼굴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리는 이지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누가 봐도 심각한 얼굴은 마치 세상 근심을 모조리 떠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벌써 세 번이다.
보통 그녀가 일을 할 때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걸 떠올려 보면 확연히 다른 모습.
전투에서 승리한 군사의 표정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두워 괜스레 나 역시 불안해질 정도였다.
‘슈바. 뭔 일 터진 거 아니야?’
혹시라도 내가 읽지 못하는 걸 읽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누나, 왜 그래?”
“네?”
“뭐 문제라도 있어?”
“아뇨. 딱히 그런 건 아니에요. 전황도 나쁘지는 않고요. 그냥 혼자서 망상 한번 해봤어요.”
“무슨 망상.”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생각이요.”
“…….”
“예를 들면.”
“예를 들면?”
“쟤가 만약 적이라면 어떻게 할까. 이런 생각?”
고개를 똑바로 들어 이지혜를 바라본 것은 당연지사.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나를 바라보는 작은 여자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어떨 것 같아요? 만약에 김현성이 우리 적이라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얘 봐라….’
농담으로 던진 소리라고 하기엔 무척이나 진지한 표정과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