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0
회귀자 사용설명서 400화
만약 적이라면(2)
“어떨 것 같아요? 만약에 김현성이 우리 적이라면.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농담으로 던진 말이 아니다. 아까부터 계속 고민 하고 있었던 게 이게 맞았던 모양. 대충은 이지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방금 본 광경이 그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리라.
다시 한번 표정을 확인하자 아니나 다를까 조금 불안해 하는듯한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평소답지 않게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고 심지어는 얼굴이 푸르죽죽해져있다.
‘이거 걱정하고 있는 거구나.’
높은 확률로 김현성이 적이 됐을 경우를 상상한 것이 분명. 솔직히 한 번쯤은 할 수 있는 생각이기는 하다. 나 역시도 생각해 본 적이 있었으니까. 저런 광경을 봤다면 더욱더 그렇다는 거다. 아마 이걸 본 다른 권력자들은 모두가 이지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녀석이 보여준 모습은 충격적이었고 경이로웠다.
한 인간이 어느 정도까지 위로 올라갈 수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 지표. 나 같은 경우야 빛과 함께해 그나마 위화감이 덜 하긴 하지만 김현성이 전장에서 보여준 모습은 온갖 견제를 받기에 충분한 모습이었다.
쓸데없는 걱정이 많은 그녀로써는 김현성이 적이 됐을 때의 모습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 게 이상한 일은 아니다.
“감당할 수 있겠어요?”
“글쎄.”
“…….”
“…….”
“이상하게 보지 말라고 했잖아요. 저는 당당하게 물어볼 수 있는 걸 물어본 거예요. 솔직히 저도 이 정도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다고요. 만약에 김현성이 적이 된다고 생각해보니까 갑자기 없던 불안함도 몰려 들어와서 그래요. 참고로 저는 자신 없어요. 난 저런 게 적이라면 깔끔하게 지지 쳐요. 뭐 오빠랑 같이 있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비빌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그것도 쓸 말이 있어야 가능 하죠. 맨몸으로 저런 거랑 부딪치는 건 무리예요.”
나 역시 마찬가지, 갑작스레 날아 들어와 검을 날린다면 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오늘의 친구가 내일의 적이 되는 세상인데…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현성이 오빠가 오빠를 밀어내려고 하면 방법이 없잖아요? 물론 저 사람이 무골호인에 바보 같이 착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또 호구나 손해 보는 짓을 하는 종류의 사람은 아니기도 하고… 그건 튜토리얼 이후만 봐도 답이 나오죠. 오빠가 현성오빠를 믿는 건 이해하지만 언제 변할지 모르는 게 사람 욕심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찢어질 가능성이 낮은 건 아니에요.”
“글쎄 사실 찢어질 것 같지는 않은데… 그리고 지금 상황에 이런 이야기가 왜 나와?”
“지금 상황이니까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그냥 대비 할 수 있을 때 대비하자는 거지. 나중에 일 터지고 나서 대비하면 무조건 늦어요. 쓸데없는 소리해서 죄송하기는 한데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미친 듯이 불안 한 거. 왜 모험을 끝낸 용사 일행을 숙청시키려고 하는 클리셰가 태어났는지 이해가 된다니까요? 너무 날카로운 검은 위험하잖아요?”
“그럴 일 없어.”
“장담할 수 있어요? 오빠 의심 많잖아.”
“…….”
“참고로 제 욕심 때문에 이런 말 하는 게 아니랍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걱정인거지. 내 남자가 1등 되고 싶은 걸 보고 싶어서 그 라이벌을 쳐내자고 말하는 건 절대로 아니에요. 내가 욕심이 조금 많은 건 맞지만 그 정도로 싸이코 패스는 저얼대, 저얼대로 아니라고요. 전 그냥 확답을 듣고 싶은 거예요. 찢어질 일이 없는지, 또 만약 적으로 만난다면 감당할 수 있는지. 만약 컨트롤 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그게 뭔지.”
천천히 고민에 빠진 것은 당연지사.
‘욕심이 없기는 개뿔이….’
솔직히 이지혜의 욕심이 1%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건 믿을 수 없다. 이지혜의 성향을 생각하면 더욱더 그렇다. 그녀로써는 나를 견제하거나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권력이 앞에 있다는 것 자체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으리라. 만약 이번 전쟁이 끝난다면 대륙은 평화의 길로 접어든 것이나 마찬가지. 물론 어떤 퀘스트가 더 남아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회 차를 알 리가 없는 이지혜의 눈에는 틀림없이 그렇게 비치고 있을 것이다.
싸움은 끝. 이제는 나누어 먹을 일만 남아있구나. 라고.
그렇게 생각해 보면 김현성의 포지션이 애매하기는 하다. 지금까지는 파란의 길드 마스터라는 것 정도가 끝. 가지고 있는 권력이 제한되어 있었지만 이번 전쟁이 끝나도 그렇게 되리라는 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당장 이번 전투에서 벌인 활약상 역시 점수를 받을 만 하다는 거다. 이미 대중은 김현성이 어느 정도로 강하다는 지에 대해 알게 됐다.
커다란 힘에 커다란 책임이 따른 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건 조금 다르다.
커다란 힘에는 커다란 권력이 따른다.
그 말 그대로. 김현성이 가지고 있는 힘은 필연적으로 권력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굳이 교국이 아니더라도 어딘가에서 자리하나 얻을 확률이 높다는 거다. 대외적으로도 명예추기경 이기영이 속해있는 길드의 길드마스터라고 알려져 있을 테니 그에 걸 맞는 자리를 받는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일. 여기에서 이지혜의 고민이 수면위로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감당할 수 없는 초월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가 권력을 갖는다는 게 달갑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녀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언제든지 우리들을 견제할 수 있고 우리들의 목을 칠 수 있는 존재가 성장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게 더 이상할 것이다.
물론 그녀가 이쪽을 걱정하고 있는 것은 맞다. 나 역시 그 건에 대해서는 몇 번은 생각해 본 적이 있었으니까. 괜스레 김현성의 얼굴을 떠올린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녀석이 내게 검을 겨누는 모습은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혹시나 이쪽을 1회 차의 가면쓰레기라 오해할 확률은 존재하지만 들어놓은 보험이 많으니 여기저기 잘 빠져 나갈 자신이 있다.
‘이번 것만 마무리 하면 일이 잘 풀릴 수도 있다는 거고….’
녀석이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나를 버린다는 것 또한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최소한 지금까지 봐온 김현성의 모습은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게 인간관계라지만…
‘그럴 리가 없지.’
생각을 정리하는 것은 순식간, 천천히 입을 열자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이지혜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찢어질 일은 없어.”
“정말이죠?”
“응. 절대로 갈라질 일은 없으니까 걱정은 붙들어 매 그리고 누나.”
“네?”
“너무 욕심 부리면 탈나는 거 알지?”
“제, 제가 뭐라고 했나요? 알고 있어요. 지금까지 행동하는 걸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이야기라고요.”
“누나 말대로 내가 야망 같은 게 없는 건 아니지만 나는 그만큼 내 주제나 한계도 잘 파악하고 있거든. 현성이 쪽에서 나랑 척지고 싶다고 해도 내가 그 쪽이랑 척질 생각이 없어. 조금 다른 쪽으로 생각해봐. 저런 게 내 편이면 우리 적들이 나한테 뭐라고 할 수나 있겠어?”
“흐음….”
“저런 사람이 우리 편 이라고… 장담하는 데 내 손가락질 한 번에 덜덜 떠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게 될 걸, 말하자면 나는 핵 단추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이 된다는 거야.”
“그렇게 단언 할 수 있어요? 오빠가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도 저쪽에서 그런 생각을 안 하리라는 보장은 없는데. 그리고 욕심 부리자는 게 아니잖아요. 가지고 있는 걸 뺏기지 말자는 거지.”
“지혜 누나.”
“네?”
“내가 가지고 있는 걸 뺏길 사람으로 보여?”
“…….”
“정말로 그렇게 보여?”
“아니요.”
“그럼 여기서 대화는 끝. 아무 문제없으니까. 앞으로 그런 말은 입 밖으로 내 뱉지마. 내 앞에서든 다른 사람 앞에서든. 절대로 이걸로 왈가불가 하지 말고. 만약에 그런 상황이 오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현 상황에서 괜한 분란 만들 필요 없다는 거 누나가 더 잘 알고 있다고 믿어. 지금은 악마 소환사 일만 생각해도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
“알겠어요. 그러니까 사람 좀 그렇게 보지 마요. 정말로 걱정 되서 한 소리니까. 오빠가 문제가 없다면 믿을게요. 네. 믿어야죠.”
“쓸데없는 생각할 시간 있으면 앞에 있는 전투나 마무리 해줘. 누나. 캐슬락으로 갈 병력 편성도 마찬가지고.”
“네.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대화는 이걸로 끝. 입을 꾹 다물고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지혜의 모습이 시야에 비치기는 했지만 입술이 삐죽하고 튀어나온 게 뭔가 불만이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뭔가 탐탁지 않아 하는 듯한 느낌. 혹시나 나 모르게 쓸데없는 일을 벌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하지 말라는 걸 할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쓸데없는 짓 하지마. 누나.”
“알겠다니까요. 그러니까 그만 해요. 아무 짓도 안 할테니까. 대신 나중에 뒤통수 맞고나서 후회하지 마요.”
밖에서 문을 똑똑 두드린 소리가 들린 것은 바로 그 때였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오네요.”
문을 두드린 사람이 누구인지는 뻔하다. 후다닥 뛰어나간 이지혜가 천천히 문을 여니 조용히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김현성이 시야에 비친다.
“아! 현성오빠!”
“갑자기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정말로 고생하셨어요. 정말 대단하시더라고요.”
순식간에 표정을 뒤바꾸고 환하게 웃는 이지혜의 모습은 조금은 무섭다.
‘여우가 따로 없네.’
그 말 그대로, 방금 전까지 감당 어쩌구를 말한 사람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태세전환이다. 나보다 더 빠른 전환러를 꼽자면 그 순위에 당당하게 이지혜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 장담 할 수 있다.
“바쁘실 텐데….”
“아니요. 전혀요. 마침 전투도 마무리 되는 중이고요. 그런데 무슨 일로….”
“딱히 이유가 있다기 보다는… 그저 어떤 식으로 상황이 흘러가는 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아… 네. 네. 앉으세요. 어떻게 차라도 준비해 드릴까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지혜씨.”
이지혜와 짧은 대화를 나누면서 안으로 들어오는 김현성이 이쪽을 힐끔 바라보는 것이 눈에 보인다. 어지간히 지휘통제실이 궁금했던 모양, 이유는 모르겠지만 조금 흥분 한 것처럼 보였다. 마치 놀이동산에 온 어린아이를 보는 듯한 느낌. 특히나 내가 앉은 자리를 기웃거리는 게 조금은 우습다.
“이 곳이로군요.”
“현성 씨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저보다는 기영씨가 더… 대단하군요. 이걸 전부 컨트롤 하고 계셨던 겁니까?”
“컨트롤 하고 있다라고 표현할 정도는 아닙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저 정보를 분석해 전달해 드린 것 정도에 불과해서….”
“뭘 그렇게 말씀하시고 그러세요. 기영씨. 코피도 흘릴 정도 였으면서. 저도 그런 건 처음 봤다니까요. 손이랑 눈을 한 번도 안 멈추고 전투가 지속되는 내내 마력 홀로그램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어요. 현성오빠도 그걸 한 번 봤었어야 했는데….”
“아….”
그 와중에 이때다 싶어 활약상을 전해오는 이지혜의 모습은 당황스러울 정도. 조금 민망하기는 했지만 나이스 어시스트였다. 갑작스레 걱정이 된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현성이 눈에 보였으니까.
“그렇군요.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네. 아무 문제없습니다. 잠깐 무리한 정도라… 굳이 이상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요. 지혜씨가 많이 도와주셔서… 말입니다.”
“다행이로군요….”
“에이. 그래도 결정적인 건 전부 기영씨가 했죠. 뭐. 저야 귀찮은 잡무 같은 걸 해드린 게 전부고요. 아. 그 팔에 들린 건 뭔가요?”
“아. 깜빡했군요. 사실 이걸 전해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이것 좀 보라는 듯이 이지혜를 바라보자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김현성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아주 작은 방패. 적 네임드가 가지고 있었던 전설등급의 방어구였다.
‘걱정 붙들어 매라 지혜야. 그럴 일은 절대 없으니까.’
입꼬리가 슬슬 올라가는 게 당연했다.
‘형은 널 의심한 적이 없다. 현성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