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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01화 (400/1,590)

# 401

회귀자 사용설명서 401화

만약 적이라면(3)

[완전하지 않은 아이기스의 방패 -전설등급]

[하늘의 신이 전쟁의 여신에게 내린 방패였습니다. 완전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던 예전과는 달리 이 방패는 몇 개의 조각으로 분리되었습니다. 방패에 담겨져 있었던 마력 덕분인지 뜯겨져 나간 부분에도 불구하고 방패는 그 힘을 잃지 않았습니다. 기본적인 항마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많은 마력을 사용하여 짧은 시간동안 아이기스 방패의 일부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소환된 아이기스의 방패는 치명적인 공격을 무조건 적으로 막아줍니다.]

‘키야. 명품이네. 명품.’

여신의 거울을 통해서 먼저 확인을 해보기는 했지만 사실은 명품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였다. 치명적인 공격을 무조건 적으로 막아준다는 설명만 봐도 이 아이템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 물건인지 말해준다. 사실은 탱커들에게나 어울리는 물건, 이런 물건을 나에게 준다는 건 녀석이 얼마나 나를 생각하는지 알려주는 지표나 다름없다.

“아… 이건….”

“얻은 물건입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현성 씨. 저한테 어울리는 물건은 아닙니다.”

“아뇨. 받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저도 여러 가지로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이건 기영씨가 가지고 있어야 할 물건 같습니다. 혹시나 앞전에 일어났던 사고 같은 게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까요.”

“앞전이라면….”

확실히 기억이 나긴 난다. 괜히 밖으로 나가 상황 좀 살핀다고 했다가 창 맞아 골로 갈 뻔 한 기억이 있기는 있다. 이쪽은 벌써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린 일. 이걸 신경 쓰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키야… 봐라. 지혜야. 이게 우리 현성이다. 누가 감히 현성이 앞에서 뒤통수 소리를 내었는가!’

“제게는 필요 없는 물건입니다. 애초에 저는 막으면서 싸우는 타입이 아니기도 하고… 기영씨가 보험용으로 들고 다니는 게 더 좋을 겁니다. 안 그래도 호위를 붙여드리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기영씨가 이걸 받아주셔야 저도 조금 안심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아무리 그래도….”

“꼭 받으셔야 합니다.”

“그…렇게 까지 말씀하신다면… 네. 감사히 받겠습니다.”

사실은 냉큼 받아들이고 싶은 심정이기는 했지만 적당한 거절은 한국인의 미덕이다. 어차피 이쪽에서 손사레를 쳐도 김현성은 기어코 내 왼쪽 팔목에 방패를 꽂아 넣을 것이다. 못이기는 척 방패를 받아들고 장착시키는 것은 순식간, 철컥하는 기분 좋은 소리와 함께 내 한 쪽 팔을 기분 좋게 감싸는 감각이 느껴진다.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몸을 보호할 수단이 하나 생겼다는 건 아름답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움직이기 편한 게 마음에 든다. 무식하게 커다랗고 무거운 방패가 아니다 보니 가지고 다니기 더욱 괜찮다.

‘이거 시바. 이제 나도 좀 강한 거 아닌가? 이제 좀 센 것 같은데?!’

근본이 없기는 하지만 나름 공격력도 보유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방어구까지 보유하게 된다면 근접 직군 몇몇도 상대할 만 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상상. 애초에 적 네임드가 이 방패를 들고도 김현성에게 털렸다는 걸 생각해보면 무구가 전부라고는 볼 수는 없다. 고마운 마음에 녀석의 얼굴을 바라본 것은 당연지사. 고개를 끄덕이는 얼굴에는 나를 향한 무한한 신뢰가 깃들어져 있었다.

“그… 다만.”

“네?”

“덕구씨에게는 비밀로….”

“아….”

“제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덕구씨 보다는 기영 씨에게 어울린다는 판단이 서서. 물론 개인 적인 판단 입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덕구씨가 섭섭해 하실까봐 걱정 됩니다.”

“하하. 네. 알겠습니다. 덕구에게는 비밀로 하는 게 좋겠군요.”

“다른 길드원 들에게도….”

“네. 다른 길드원 들에게도 비밀로 하겠습니다.”

‘이 새끼 왜 이렇게 귀엽냐.’

걱정하고 있는 표정은 왠지 모르게 깨물어 주고 싶다. 다시 한번 이지혜 쪽을 바라 본 것은 당연지사. 뭔가 수상하다는 얼굴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눈빛이 꽤 부담스러웠다. 일단 김현성에 대한 의심은 옅어진 것 같았지만 다른 의미의 의심을 하고 있는 듯 한 느낌. 심지어 얼굴에는 정체 모를 초조함 까지 느껴졌다.

“현성 씨는 조금 쉬는 게 좋겠네요. 다음 싸움은 더 길어질 테니까요. 현재 적 병력도 조금씩 후퇴하고 있는 도 중이고….”

“발목은 전부 잡았다는 건가?”

“저쪽 역시 다음 싸움을 대비해야 하기는 하니까요.”

“사…실은 그것 때문에도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기영씨에게는 저번에도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아직도 뭔가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해서….”

“아… 네… 말씀해 주세요.”

‘이 새끼 또 시작이네. 또 시작이야.’

너무 후려 맞아 뭉개질 대로 뭉개진 김현성의 뒤통수가 다시 한번 PTSD를 호소하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처음 보다는 덜 하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마지막 싸움을 앞둔 만큼 여러 가지 생각이 든 것 같았다.

“뭔가 함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너무 무난하다고 해야 할지….”

“함정이요?”

“네.”

김현성 후두부 현상을 처음 본 이지혜는 당연히 이게 무슨 소리냐는 반응. 뜬금없이 함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진지한 분위기로 대화를 이끌어 내려고 하니 당황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라 생각했다. 이 오빠 왜 이러냐는 듯 나를 바라보는 이지혜의 표정을 보니 그녀 역시 밑도 끝도 없는 김현성의 함정드립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고개를 끄덕이거나 놀랐다는 듯한 모션을 취하며 대화를 받아주고는 있지만 어서 빨리 이 이상한 아저씨 좀 떼어달라는 이지혜의 표정은 여러모로 압권이다.

‘이 사람 왜이래요?’

라는 표정을 쏘아 보내는 이지혜.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속해서 뒤통수 고통동반 현상을 호소하는 김현성. 사실 웃고 넘길 수 있는 해프닝이기는 했지만 계속해서 웃고 넘기기에는 아까 전 이지혜가 했던 말이 괜스레 신경 쓰였다.

‘확실히 악마 소환사가 잘 해주기고 있기는 하지만….’

뭔가 가면쓰레기 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문제. 놈은 더 악랄해야 했고 주도면밀해야 했다. 정공법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파괴력이 있기는 하지만 가면쓰레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정직하다. 김현성의 기억 속에서 등장한 가면쓰레기는 그야말로 악마의 화신이요. 인간쓰레기의 끝판왕이라 봐도 무방. 온갖 역겹고 변태스러운 짓을 일삼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였다.

현 전장에서는 김현성이 이야기하고 있는 더러운 짓거리는 크고 작은 전투가 일어나는 내내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녀석이 이걸 무난하게 넘어가 준다면 좋겠지만 만약 마음속 한 구석에서 일말의 의심이 생겨날 경우에는 정말로 이지혜가 말했던 차선책을 세워놔야 할 수도 있다는 거다.

‘손 많이 가는데….’

생각해보니 지금 이 상황도 굉장히 위험한 것 같은 느낌. 이렇게 세 명이 좁은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는 게 갑작스레 미친 듯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까 쟤도 가면쓰레기 였잖아…. 눈치 까는 건 아니겠지?’

어쩌면 나와 이지혜를 1회 차의 가면쓰레기 커플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괜스레 한 발자국 걸음을 떨어뜨린 것은 당연지사. 물론 가면에는 음성변조 처리를 비롯한 여러 가지 마법이 걸려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상한 오해를 받는 건 피하고 싶다.

“현성 오빠가 말한 것들.”

“네….”

“솔직히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는 말 할 수 없겠어요. 당연하지만 대륙전쟁법에서는 금기라고 불려 지는 일들이고… 심지어 몇 가지는 너무 잔인해서 전쟁법에서 조차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네요… 사실… 제 입장에서는 너무 황당한 이야기라… 만약 정말로 그런 함정을 파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그 사람을 인간이 아니라 쓰레기라 부를 거예요. 아니 인간쓰레기라는 말로도 부족하죠. 분리수거도 안 되는 오물이죠. 오물.”

“그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한 번 여러 가지 방향에서 생각은 해 볼게요. 현성 오빠. 돌다리도 두드려보면서 건너는 게 맞으니….”

이지혜의 말이 굉장히 가슴을 찌르기는 했지만 일단은 천천히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만약 준비된 것들이 있다고 해도… 아마 대놓고 사용하기는 힘 들 겁니다.”

“네?”

“현 공화국의 내부 상황과 전장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런 비인도적인 전술을 사용하는 것은 악마 소환사 진청에게는 독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그자는 아직도 본인이 라이오스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 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있으니까요. 명분도, 병사들의 사기에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공화국 내에서의 입지도 줄어 들테고…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을 테니….”

“음… 그렇군요.”

“아직 전쟁에 참가하지 않은 채로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 마저 적으로 돌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지, 지난 번에는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그런 부분에서는 안심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현성 씨.”

“하지만….”

“네.”

“만약 다른 상황을 고려할 여유가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려있다면… 혹시….”

어물쩡 어물쩡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에 주먹을 꽉 쥔 것은 당연지사. 그 와중에 갑작스레 입을 연 이지혜가 눈에 보인다.

“가능성이 없다고는 할 수 없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이 전쟁 역시 악마 소환사 진청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걸 놓지 못해서 벌어진 이유가 크다고 생각해요. 그런 종류의 사람이 궁지에 몰린다면… 음.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시죠? 원래 잃을게 없는 인간은 잔인해지는 법이니까요.”

‘이지혜 이 가면쓰레기 같은 년.’

여기서 박덕구 같이 판을 흐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김현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주먹을 꽉 쥔 모습은 가관. 얼굴에는 근심걱정이 들어서고 있었지만 악마 소환사가 그런 쓰레기 같은 짓을 해줄 거라는 보장은 없다.

‘준비를 하긴 해야 하나.’

보험으로 몇 가지 생각한 게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 실행시켜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고민할 수밖에 없는 부분.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곳에서의 전투는 끝나가고 있었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캐슬락에 당도할 테니까. 이야기를 나누던 이지혜가 여신의 거울을 보며 입을 여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퇴각하는 이들은 쫒지 않습니다. 병력을 최대한 빠르게 재정비 하고 곧바로 캐슬락으로 넘어갑니다. 각 부대로 새로운 편성을 전달, 선발대는 곧바로 이동합니다.”

-확인했습니다.

“부대 전체 전파 사항입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현상이나 조금이라도 수상한 부분이 있다면 곧바로 지휘 통제실에 보고 부탁드립니다. 아주 작은 사항도 전부 보고 합니다. 추가로 여유가 있는 레인저들과 마법사들로 구성된 정찰대를 따로 편성해 혹시 모를 상황과 변수에 대비할 수 있는 전담반을 따로 구성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확인했습니다.

“병력들을 다독여 주십시오. 마지막 싸움입니다.”

-네.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니 김현성을 이지혜의 전달 사항이 꽤나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불안함이 가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인 모양.

“그럼 저는 여기서 부관들이랑 준비좀 하고 있을게요. 기영씨랑 현성오빠는 밖에 나가서 바람이라도 좀 쐬세요.”

“아닙니다.”

“정말로 바람만 쐬고 돌아오라는 게 아니에요. 부대 전체가 지쳐있어요. 아마 두 분이 함께 계신다면 지친 병력들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겸사 겸사 피로회복 포션 보급도 부탁드릴게요.”

“네. 알겠습니다.”

“아. 특히나 여군들이 밀집한 쪽은 꼭 들러주세요. 그게 더 도움이 될 거예요.”

‘그게 왜 도움이 돼.’

뭔가 이상하기는 했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