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4
회귀자 사용설명서 404화
마지막 전투(1)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말 그대로 장관.
오죽했으면 저들과 함께 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다른 표현이 필요 없으리라.
거대한 함성을 내지르며 창을 들고 평원을 달리는 이들의 모습을 보니 고양감마저 생긴다.
“돌격!!”
“돌겨억!!”
“우와아아아아아아아!!!”
“베니고어 여신님을 위하여!”
말을 타고 달리는 기마대 위로 신성력이 계속해서 떨어져 내린다.
땅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고 묘한 열기가 아군 진영에서 피어오르기 시작.
지휘 통제실로 향하는 것도 깜빡 잊고 멍하니 저 광경을 바라볼 정도였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적 본진에서는 마법들이 떨어져 내리고 우리 측 병력을 지키기 위한 방어 마법이 아군을 감싼다.
가지고 있는 마법 전력은 서로 엇비슷하다.
물론 적이 전력을 숨기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우리 병력이 적에게 도달하는 것 자체는 수월할 것 같은 느낌이다.
병력 전체를 감당할 수는 없었는지 군데군데 떨어진 마법이 커다란 소리를 내며 아군 병력에 피해를 주고 있었지만 이 정도 피해는 미비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방패를 들고 아군 병력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적 병력을 보니 녀석들이 확실히 이쪽을 기다려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돌진해 오는 기마대를 막기 위한 장치가 땅 위에서 솟아오르고 몇몇 기마병이 자신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땅바닥을 나뒹군다.
해당 지역에 곧바로 신성력이 떨어지지만 이미 나가떨어진 병력의 생사를 장담할 수 있을 리 만무.
‘아직까진 나쁘지 않아.’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며 주변 정황을 파악하는 것은 순식간, 이지혜의 판단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나 역시 전체적인 상황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미 진영을 갖추고 있는 적을 보니 확실히 우리가 당도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캐슬락은 미끼.
원하는 것은 대회전. 이를 테면 이 평원은 녀석이 만들어낸 무대.
원하는 정보를 취하고 원하는 타이밍에 원하는 싸움을 하기 위한 설계라고 봐도 무방했다.
병력의 질과 양은 딱히 어느 쪽이 우월하다 말할 수 없을 정도.
공성전 자체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는 걸 보면 어떻게 생각해도 내 판단이 맞다고 할 수 있으리라.
차라리 저쪽이 성을 먹고 있는 상태였다면 조금 더 여유를 가질 수도 있었으리라.
대형을 재정비하고, 캠프를 세우고 전선을 구축하고 여유 있게 증원군을 기다릴 수도 있었다.
물론 성이 아직까지 먹히지 않은 건 다행이라 할 수 있지만 이 상황 자체를 설계한 게 녀석이란 것 자체는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숨겨둔 수나… 보험이 있다는 것.
그 말 말고는 지금 현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전쟁을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었다면 조금 더 길목을 틀어막는 것에 집중했어야 했다.
질질 끌며 어떻게든 현 본대가 캐슬락에 도착하지 않도록 설계하는 것이 맞다.
악마 소환사의 지휘부에서 어떤 결론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저쪽 역시 이번 전쟁을 길게 끌고 싶진 않을 터.
어떻게 생각하면 서로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고 볼 수 있으리라.
차이점은 정보의 양.
이건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형님, 들어가지 않는 거요? 여기 있으면 위험하다니까.”
“아니. 바로 들어갈 거야.”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간이 통제실로 들어간 것은 당연지사.
여전히 마력 홀로그램을 부여잡고 병력을 컨트롤하기에 여념이 없는 이지혜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이쪽을 곁눈질로 바라보자마자 곧바로 입을 여는데, 약간의 짜증이 묻어 있었다.
“오래 걸렸네요. 뭐 하러 거기서 멍하니 있었어요? 빨리 와서 이거나 좀 도와주지.”
“누나가 알아서 잘하고 있겠거니 생각했어. 그것보다 상황은 어때?”
“나쁘지도 좋지도 않아요. 일단 우리 본대를 적 병력까지 밀어 넣는데 성공은 했지만… 아! 피해가 크지 않다는 것 하나는 마음에 드네요.”
“그럼 뭐가 문제야?”
“문제가 없는 게 문제예요. 그냥 불안할 뿐인 거지. 확실히 저쪽도 준비를 많이 하긴 했네요. 화면에 비치는 네임드들 보여요?”
슬쩍 여신의 거울을 바라본 것은 당연지사.
확실히 네임드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의 얼굴이 보였다.
러시아판 박덕구와 샤오 린, 진청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들과 비슷한 수준의 무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전투를 기다리고 있다.
“라이오스에서 봤던 얘들이 다 있네. 모르는 얼굴도 좀 보이고….”
“아직 전부 다 파악되지는 않았어요. 각 지역에서 이렇게까지 데려온 걸 보면 이 전투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봐도 될 거예요. 덕분에 타 지역은 여유가 생겼겠지만 지금 그거 좋아할 타이밍도 아니고… 아무튼 앞전에 창 던지는 놈을 잡아놓길 잘했네요. 저 라인업에 그 자식까지 합류했다고 생각하면 조금 불편할 것 같거든요.”
“캐슬락에서의 지원을 바라는 건 힘들겠지?”
“캐슬락은 지금 전투 중인 게 아니라 갇혀 있는 거예요. 예를 들면 마왕에게 잡혀간 공주님 같은 느낌이랄까. 이게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네요. 공주님을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가 없으니까.”
“예가 적절하네.”
“네. 그리고 이거 다시….”
“아. 전술 김현성.”
“아직 떨어뜨리지는 않을 거예요. 일단 오빠도 대기하고 있어요. 길이 열리거나 상황이 불리해지면 그때 투입할 테니까. 그전까지는 6, 7부대 맡아주시면 될 것 같아요. 지금 좌표 전송할게요.”
“응, 누나.”
전투는 이제 막 초입이다.
여신의 거울에서 비친 모습은 서로가 검과 창을 부딪치는 병력들은 악을 쓰고 상대방을 밀어내려고 하는 도중.
먼 곳에서 바라보면 각 부대가 확실히 진영을 유지하고 있지만 가까이서 보면 병력과 병력들이 조금씩 섞이고 있다.
‘이건 괜찮네.’
-이 더러운 악마의 하수인들아! 신이 너희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미친 자식들, 악마는 네놈들이다!
-난쟁이들 못 들어오게 막아! 난쟁이들!
-누구보고 난쟁이라는 게냐! 악마에게 영혼을 판 인간 놈들이!
이미 대열을 갖추고 있는 녀석들과는 다르게 이쪽이 지향해야 하는 바는 저 대열을 무너뜨리는 것.
그런 의미에서 대열을 찢고 들어가는 드워프들은 확실히 고개를 끄덕일 만 했다.
작고 단단한 몸, 질 좋은 갑옷으로 완전무장한 저 병력은 어떻게 생각해도 이런 전투에 유리하다.
커다란 도끼를 들고 휘두르며 방패를 든 적 병력을 뚫어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작아서 할 수 있는 전투가 있다.
인간이 중형이나 대형 몬스터를 상대하는 방법이 그렇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쳐 중심을 무너뜨리거나 집요하게 하체를 공격해 체력을 소모시킨다.
저들은 그런 방면의 스폐셜 리스트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
조금씩,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 길로 아군 병력이 물밀 듯이 밀고 들어가는 게 눈에 보인다.
‘옳지!’
한쪽에서는 거대한 정령들이 정령마법을 뿌려댔다.
커다란 한 방은 없었지만 지속적으로 상대의 신경을 긁고 있다는 건 칭찬할 만한 일이다.
일단 병력 자체가 뻥튀기 된다는 느낌이 좋다.
소환사 하나가 최소 둘에서 셋을 유지하고 있으니, 힘이 부족한 전선에 힘을 보태주기에 충분하다.
물론 상대적으로 밀리는 곳 역시 존재했지만 소강 상태를 맞이한 장소보다는 이미 뚫어낸 지역 쪽에 집중하는 게 낫다.
마치 람보르기니에 탑승한 운전자의 심정으로 김현성 전용 화면을 연결하자 이쪽의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는 녀석을 볼 수 있었다.
-출발하는 겁니까?
“네. 일단 좌표 찍어드리겠습니다.”
-네.
“처음부터 무리하시지 마시고 섞이기 시작한 병력에 힘을 보태주는 식으로….”
-네. 확인했습니다.
이미 한 번 해본 만큼 다음 작업은 조금 더 수월한 것 같은 느낌.
일단은 김현성이 포함된 아군 병력을 전략적 포인트에 안치시키는 게 목표다.
혼자가 아니라 병력이 갈 길을 열어줘야 하기 때문에 이전처럼 정신없는 느낌은 아니다.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꾸 뭔가 아쉬운 기분.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머리가 김현성의 움직임을 기억하고 있다.
녀석 하나를 움직일 때는 느끼지 못했던 답답함이 자꾸만 숨을 턱턱 찌르고 있었다.
‘그래도.’
김현성은 김현성.
함께 간 김예리나 조혜진을 비롯한 이들과는 당연히 시너지가 좋다.
질이 좋은 병력으로만 구성했으니 그럴 만도 하건만 지금 현재 보여주고 있는 모습 역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지원 요청! 원군 요청해! 최대한 빨리… 원군 요청!
-사제! 불러!
-지원이… 커헉!
이런 상황에서 발이 묶이면 안 된다는 건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계속해서 병력을 움직이며 안에서 깎아내리는 식으로 운용.
김현성을 중심으로 꾸역꾸역 밀고 들어가는 모습은 확실히 신의 군대라고 해도 위화감이 없어 보였다.
‘지금 꺼내도 괜찮지 않을까.’
상대 마법사, 사제 분대와의 거리가 조금 애매하기는 하다.
김현성을 따로 내보내도 될지 안 될지 판단이 잘 서지는 않지만.
‘수 틀려도 탈출할 수 있겠지?’
이쪽에서 계속해서 좌표를 찍어준다면 가능할 것이다.
조금 더 이득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여기서는 김현성의 능력을 믿는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드워프 부대에 병력을 맡긴 이후 사랑스러운 회귀자에게는 따로 명령을 하달.
수십 개의 마력 홀로그램이 내 시야 앞에 그대로 노출된다.
시작하기도 전부터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이 묘한 기분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다는 생각에 그대로 손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코에서는 다시금 코피가 흘러내렸지만 이런 것에 신경 쓸 여유는 없다.
“좌표 보내겠습니다. 단독 행동입니다. 멀리 떨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현성 씨.”
-확인.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김현성의 목소리도 조금 들뜬 느낌.
곧바로 김현성이 적 병력의 뛰어드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는 나 역시 조금 홀로그램에 집중했다.
마치 눈앞에 화면 속에서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은 감각.
두 번째임에도 불구하고 무척이나 신기하게 느껴졌다.
“목표 설정. 적 마법사 분대부터 처리하겠습니다.”
-확인.
아까보다 더 길을 찾기 힘들다.
적은 대열을 정비하고 있었고 길을 만들기는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주변 병력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길로 김현성을 밀어 넣는다.
투입되자마자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놀라울 지경.
검을 휘두르고 찌르고 몸을 돌리며 전진하는 모습은 역시나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마 적들이 보유하고 있는 네임드들 중에서도 이 정도의 움직임이 가능한 이들은 존재하지 않으리라.
이전에 있었던 전투와의 차이점은 김현성이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는 것.
‘그만큼 여유가 없는 거야.’
마냥 기뻐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사방팔방에서 마법이 쏟아지고 검과 창이 날아 들어와 꽂힌다.
어떻게든 전진하고는 있기는 하지만 아마 녀석 역시 평소보다 몇 배는 더 집중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계속해서 무기와 팔다리가 공중으로 치솟고 비명이 들려왔지만 규격외의 검사는 멈추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이동한다.
본대와의 거리가 조금 멀어진 느낌.
급하게 분대 하나를 안쪽으로 조금 더 투입한 이후 경과를 기다리는 것은 당연.
막 김현성이 적 마법사 분대에 앞에 섰을 때였다.
‘어?’
콰지지지지지지직!
하는 커다란 굉음과 함께 정체불명의 마력이 이쪽을 훑고 지나간 것.
“누나, 방금….”
“제길…. 제길! 오빠, 지금 여신의 거울 살아 있어요?”
‘시발.’
이지혜의 앞에 있는 마력 홀로그램이 단계별로 꺼지기 시작한 것이 눈에 들어온 것은 순식간.
사태를 파악하는 머리보다 입이 한 발 더 빠르게 움직였다.
“현성 씨! 후퇴!”
피융!
하는 소리와 함께 이쪽의 눈앞에 있던 마력 홀로그램 역시 암전.
“이 개새끼….”
악마소환사 새끼가 노린 게 무엇인지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