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1
회귀자 사용설명서 411화
기쁘다. 빛기영 강림하셨네(2)
입을 털기에 적절한 타이밍이기는 했다.
한차례 위기가 지나가기는 했지만 아군이 열세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으니까.
마법사들의 마력은 물론 디아루기아도 여유가 없는 상황.
준신화 등급의 마법에 둘러져 있는 마력을 깎아내기 위해 한계까지 브레스를 뽑아댔으니 지치는 것이 당연하리라.
아마 김현성도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녀석이 슈퍼맨이라고 한들, 전장에서 체력을 소비한 것으로도 모자라 그 커다란 마법을 받아냈으니 아무렇지 않을 리 없다.
정상이라면 이 이상 힘을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만약 그렇다고 해도 본인에게 안 좋은 영향이 있으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은 빛 폭탄도 한 병이고….’
아군은 여전히 적에게 둘러싸여 있다.
적의 마법사들도 한계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기에 완전히 불리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상황이 좋지 않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이 방법이 먹힐지 않을지는 미지수지만 일단 열심히 입을 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간만에 전장이 소강상태로 접어든 타이밍이었으니까.
‘심지어 그림도 좋고.’
빛 무리가 내리는 가운데 있는 신의 사자.
피아를 가리지 않고 하늘에서 떨어지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다.
다시 한번 천천히 뻗어나간 목소리. 일시적이지만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립니다! 여러분! 싸움을! 멈춰주십시오! 친애하는 공화국 여러분! 무기를 버려주십시오!
“베니고어의 재림이다.”
“베니고어 여신의 재림이다.”
“명예추기경님….”
“명예추기경님! 위험합니다!”
아군 갤러리들의 걱정스러운 목소리.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것은 공화국 측의 반응이다.
재빨리 눈치를 살 핀 것은 당연지사.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듯한 반응을 보인 이들도 있지만, 머뭇거리는 이들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전자의 경우가 더욱 많은 느낌.
사전에 교육을 받은 이들이니 내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는 것 역시 이해는 간다.
그럼에도 일단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기에 내 목소리는 분명히 전달될 것이다.
-무기를 버려주십시오. 더 이상의 싸움은 서로에게 무익합니다. 더 이상의 전쟁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힐 것입니다. 이 싸움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이 싸움은 여러분의 이익과 가족을 위해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 검을 들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그 자리에 서 있는 겁니까.
“…….”
-여러분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광기로 얼룩진 이 싸움은 공화국을 위해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교국은 결코 공화국을 침범한 일이 없으며, 이 사실은 그 누구보다 공화국의 지도자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베니고어와 엘룬의 선택을 받은 사자로서 지금 제가 하는 말에 거짓이 있다면 두 신이 저를 벌할 것입니다. 제가 거짓을 고하고 있다면 베니고어 여신께서 저를 용서치 않을 것입니다. 결코 교국은 먼저 공화국을 침범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알고 계신 내용은 결코 진실이 아닙니다. 눈을 뜨십시오. 눈을 뜨십시오! 눈을 떠 여러분이 진정으로 봐야 할 것을 바라봐 주십시오!
대응은 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힘을 모아 싸워야 할 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 상황을 바라보며 웃음 짓고 있습니다. 현 상황을 초래한 악마 소환사 진청은 공화국이라는 방패에 숨어 여러분을 전쟁터로 내몰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안위와 대륙의 혼란을 위해 공화국과 교국의 싸움을 조장하고 선동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로 검을 맞대고 있는 것이야말로 대륙에 뿌리내린 악의 세력이 바라는 일입니다. 우리의 적은 서로가 아니라 앞으로 이 대륙에 다가올 위협입니다. 언젠가 닥쳐올 그 위협을 위해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합니다.
“…….”
-모든 인류가 힘을 하나로 모으지 않는다면 앞으로 다가올 위협에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무기를 버려주십시오, 여러분. 더 이상의 싸움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음모와 선동으로 일어난 이 전쟁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어째서 아무런 대응이 없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쪽의 말에 대응하는 순간 말리고 말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물론 공화국 측 병사들이 내 말에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다.
실제로 신성력을 사용하는 사제들은 조금 더 말을 들어봐야겠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런 것 따위 상관없을 것이다.
방금까지 서로에게 검을 휘둘렀던 상황.
갑작스레 이런저런 말을 한다 해서 불씨가 꺼질 리가 만무하다.
만약 여신의 거울이 있었다면 확실한 선동이 가능했겠지만 팩트 없이 말로만 떠드는 것은 확실히 설득력이 없다.
계속해서 이 상태라면 아주 작은 신호탄으로 이 전쟁에 기름이 뿌려질 것이 분명.
악마 소환사 쪽은 굳이 내 말에 대응할 필요도, 가치도 느끼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리라.
하지만 계속 입을 열 수밖에 없다.
-국가와 그 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우리는 검을 내리고 손을 맞잡아야 합니다. 교국은 공화국의 우방으로서 결코 여러분에게 먼저 검을 들이밀지 않을 것입니다. 갈등의 역사는 이 전쟁 이후로 사라질 겁니다. 그렇게 노력할 것입니다. 검을 버려주십시오. 오늘 이곳에서 일어난 일이 첫 걸음입니다. 지속된 전쟁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큰 발걸음입니다. 싸움을 멈추십시오. 싸움을 멈춰주십시오!
문제는 그 기름이 무엇이냐는 것.
-우리는 더 큰 가치를 향해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무기를 버려주십시오!
계속해서 입을 열고 있었던 바로 그때.
이쪽을 향해 날아온 화살 한 발.
‘이 새끼.’
황급히 마력을 끌어올린 것은 순식간.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알 수 없지만 제법 힘이 실려 있다.
손가락을 튕겨 급하게 벽을 세우기는 했지만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뒤로 밀려난다.
한심하게 땅바닥을 구르지는 않았지만 아마 새로운 신호탄이 되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때마침 다시 한번 적 진영에서 폭음이 들려오기 시작.
주작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측에서 들려온 폭음을 시작으로 다시 한번 흥분한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제기랄!”
“멈추지 마! 함정이다!”
“명예추기경님! 이 더러운 자식들이!”
“마법사들은 뭘 하고 있어!”
“무기 들어! 무기! 전투 준비한다! 각 부대는 모두 전투 준비!”
“밀리지 마! 버텨! 버텨!”
“명예추기경님을 보호해! 남은 마력으로 보호 마법을 빨리!”
말은 길었지만 다시금 광기가 내려앉는 것은 순식간.
밀집된 병사들 사이로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는 적과 어떻게든 밀리지 않기 위해 버티는 아군.
‘이거 안 좋은데….’
확실히 좋지 않은 상황.
이대로 전투가 지속된다면 어느쪽이 이기더라도 큰 피해가 생겨날 것이다.
물론 아군이 불리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이대로 이긴다고 하더라도 서로에게 상처밖에 남지 않은 승리다.
주변국만 환호할 상황이 될 터.
물론 내가 원하는 바는 그런 상처뿐인 영광이 아니다.
“아아아아아아악!”
“더러운 악마의 하수인들이!”
“개자식들! 가만히 놔두지 마! 화살 퍼부어! 화살!”
-싸움을 멈춰주십시오! 더 이상의 싸움은 불필요합니다. 친애하는 공화국 여러분! 여러분은 속고 있습니다. 이 이상 악의 세력이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힘들 거라는 건 알지만 싸움을 멈춰주십시오! 증오와 분노를 버리고 광기를 떨쳐내야 합니다.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가야 합니다!
“죽여!!! 제기랄!!”
-싸움을 멈추세요! 여러분! 이 이상 무의미한 피를 흘려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밀리지 마!”
-싸움을 멈춰주십시오! 여러분! 싸움을!! 멈춰주세요!!
“이 더러운 공화국의 개들아!”
“교국의 꼭두각시들! 가만히 놔두지 마!”
목이 터져라 외쳐보지만 이미 한번 광기가 휩쓸고 간 전쟁터에 내 목소리가 들릴 리 만무하다.
의도적으로 끼어 있는 프락치들은 오히려 더욱더 커다랗게 목소리를 높이며 전장에 혼선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억지로 분위기를 끌어올리려는 이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지만 그런 이들을 다 잡아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똑똑하네. 시발.’
아마 내가 녀석들이었어도 비슷한 선택을 했을 것이 분명.
유리한 상황에 서 있는 만큼 대화 채널을 완전히 차단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느꼈으리라.
아쉽기는 한데.
조금만 더 전장의 분위기가 가라앉았었다면 전투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을 수습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수.
‘제기랄. 이거 잘 안 풀리겠는데….’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아마 더러운 악마 소환사 측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끝났다.’
라든지.
‘이대로만 가면 돼.’
라든지.
‘드디어 결정타야.’
등등 숨겨왔던 비장의 수가 무위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충분히 이득을 봤다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그럴 줄 알 거야. 분명.’
조금 이르지만 벌써부터 승리의 축배를 들고 있을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준비한 선물 하나를 받기 전이었다면,
충분히 그렇게 행동할 만하다.
-싸움을 멈추십시오!!
잠시 머리가 아프기는 했지만 멀리서 보이는 이지혜의 신호에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내 예상보다 빠르기는 했지만 충분히 기분 좋은 상황.
박장대소라도 하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게 천추의 한처럼 느껴졌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으리라.
지금 저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가 모르고 있어야 했으니까.
나는 전혀 모르고, 가면 쓰레기 진청이 알고 있어야 하는 일이다.
몇몇 이는 벌써부터 얼굴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 아마 사랑스러운 회귀자 역시 입술을 깨물고 있으리라.
“더러운 새끼들!”
“이 악마 같은 공화국 새끼들아! 네놈들이 어찌 인간의 탈을 쓰고 이런 짓을 할 수 있단….”
“이 더러운 자식들! 개자식들!”
“악마 소환사….”
“무슨 개소….”
-제길! 전투 준비! 전투 준비!!
갑작스럽게 변한 나의 태세전환에 적들도 어안이 벙벙해지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본다면 내가 어째서 이런 말을 하는지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저 멀리서 보이고 있는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병력.
안개의 숲에서 특별히 모셔온 지원군.
물론 내가 데리고 온 것은 아니다.
아! 비공식적으로는 내가 모신 게 맞지만 공식적으로는 악마 소환사 진청 쓰레기가 모셔온 지원군이 될 것이다.
“어, 언데드….”
“언데드?”
공화국의 갑옷을 걸치고 공화국의 깃발을 들고 있는 언데드들.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구나! 이 더러운 악마 소환사야!!
악마 소환사 진청이 안개의 숲에서 희생시킨 자신의 병력을 언데드로 만들어 끌고 온 것이다.
-신이 네놈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 더러운 악마야!!!
신의 이름으로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가면 쓰레기.
악마 소환사 진청.
갑자기 나타난 뜻밖의 언데드에 기존 병력들이 혼란스러워 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