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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13화 (412/1,590)

# 413

회귀자 사용설명서 413화

기쁘다. 빛기영 강림하셨네(4)

-빛이 함께할 겁니다! 빛이 여러분과 함께할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커다란 위협 앞에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전 병력은 들어라! 절대로 교국의 간사한 거짓말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

-눈에 보이는 것을 믿으십시오!

“이걸 담아둘 수 없다는 게 천추의 한이네….”

그 말 그대로였다.

눈앞의 상황을 기록할 수 없다는 게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이번 전쟁의 끝에 이런 광경을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느 정도 언질을 받기는 했지만 실제 광경은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던 것 이상이었다.

“이런 걸 담아둬야 되는 건데….”

“이지혜 님, 방금 뭐라고….”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 네.”

“그보다 여신의 거울 복구는 아직 인가요?”

“네. 사실 아직까지는 차도가 없습니다만… 곧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에 떨어진 마법의 영향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통신체계를 틀어막고 있는 마력의 힘이 약해진 것 같습니다. 어쩌면 자연스럽게 회복할 수도….”

“최대한 서둘러 복구해 주세요. 최우선 사항입니다.”

“네. 노력해 보겠습니다.”

“단순히 노력하겠다는 말로 끝나면 안 돼요. 최대한 빨리. 부탁드립니다.”

“네!”

‘진짜로 쓰레기라니깐….’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사기를 쳐도 이렇게 스케일이 크게 치는 쓰레기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멀찍이 떨어진 이곳에서 보기에도 공포스러운 위압감을 뿜어내는 언데드 무리.

아군 병력을 공격하는 그 모습은 대륙의 인간들을 도륙하기 위해 지옥에서 올라온 악마의 군대라 봐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이 정도 숫자의 언데들을 본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리라.

그들과 몸을 부딪치고 있는 빛의 군대 역시 묘사할 필요가 없다.

커다란 빛 무리에 둘러싸인 아군 병력들이 똘똘 뭉쳐 어둠을 막아내는 모습은 숭고해 보일 지경.

이게 조작이라는 걸 알고 있는 나도 울컥할 정도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으니 다른 표현이 필요할 리 만무하다.

잘 짜인 각본처럼 진행되는 일련의 상황은 실제로 공화국 측에도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고 있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 빛이고 어느 쪽이 어둠인지, 상황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었으니까.

아마 티를 내지 않을 뿐, 본인들의 머릿속에 있던 것들이 와장창 무너져 내리는 기분일 것이다.

아직까지 저들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결정적인 계기가 없기 때문.

모두 마음속으로는 어떤 행동이 옳은지 깨닫고 있음이 분명.

그렇기 때문에 현재 타이밍은 무척 중요하다.

공화국 병력이 악마 소환사의 감언이설에 영향을 받기 전에 최대한 믿음을 심어줬어야 했다.

‘이건 역사적인 장면이야.’

대륙의 역사가 천 년, 아니, 만 년이 지난 이후에도 모두가 기억할 만한 장면.

라이오스 사태 때부터 현 시간까지 이어진 이 이야기는 이기영 명예추기경의 영웅담으로 영원히 남아 기억 될 것이다.

‘그리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부르르 떨려올 정도.

괜스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전장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옆에서 다시 한번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지혜 님, 병력들은 이제 어떻게….”

“아뇨. 더 이상은 의미가 없을 것 같네요. 이 이상 명령을 내리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고…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했습니다. 이제는 그들의 몫이에요. 이겨내고 이겨내지 못하고는… 그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현 시간 부로 지휘부에는 최소한의 인원만 남기겠습니다. 후방 부대를 비롯한 모든 병력은 곧바로 전장으로 내려가 아군을 지원합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당장 눈앞에 있는 부관들 역시 최대한 손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보인다.

그만큼 현재 상황에 막중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얼굴에 들어선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책임감.

‘숭고한 인간들이 많아서 다행이야.’

나 역시 저 파티에 함께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지만,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신의 거울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게 하는 것이다.

언데드가 여기 있다는 건 정하얀이 귀환했다는 뜻. 어쩌면 이곳으로 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여신의 거울이 정상적으로 작동되게 할 수 있으리라.

-교국의 이기영 명예추기경은 사기꾼이며 기만자다. 전 병력은 흔들리지 말고 교국의 병력을 막아라! 절대로 흔들려서는 안 된다!

‘더럽게 말 많네.’

정상적이지 않았던 시스템이 갑작스레 돌아온 것은 바로 그때.

“이, 이지혜 님.”

“지금 저도 보고 있어요.”

“더 이상 이걸 유지할 마력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분 좋은 소식.’

“바로 띄워주세요.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을 여신의 거울에 최대한 많이 담아야 합니다. 아직 디테일한 상황을 파악할 수 없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공화국의 병력만으로도, 교국의 병력만으로도 이겨낼 수 있는 싸움이 아닙니다. 두 집단이 힘을 합쳐야 이겨낼 수 있는 싸움이에요. 지금 곧바로 부탁드립니다.”

“네.”

만약 언데드들이 교국의 병력과 공화국의 병력을 구분하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상황이 쉬워질 수도 있었겠지만, 악마 소환사 진청을 제대로 옭아매기 위해서는 아군 병력을 적으로 설정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떠밀리듯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먼저 움직이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으리라.

기존에 있는 사실을 어떻게 연출하고 편집하느냐에 따라서 그림이 달라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지금 그가 가장 원하는 그림이 무엇인지는 당연히 알고 있다.

곧바로 제어장치에 손을 대는 것은 순식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에서 여신의 거울이 크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군 후방 진영에 선전용으로 크게 자리 잡은 메인 홀로그램에서 나오는 장면은 고군분투 중인 아군.

이기영 명예추기경이나 김현성 같은 영웅들을 담는 것이 아니다.

카메라에 담은 장면은 어디까지나 일반 병사. 공감을 자아낼 수 있고 자신들과 같은 처지인 소시민들의 모습이었다.

‘이게 맞아.’

-막아! 제임스! 제임스!! 신성력을!! 들어오지 못하게 해! 명예추기경님을 보호해야 한다!

-신이시여. 신이시여!

-버틸 수 있어. 계속 버티면 지원군이 올 거다.

-부상자는 뒤로 빼! 치료를!

-신성력에는 더 여유가 없는 건가?

-이 더러운 자식들…. 이런 짓을 하고도 용서 받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방패 들어! 창을 내리지 마! 대륙의 존망이 걸린 싸움이다. 절대 밀리지 마. 절대로 밀리지 마라!! 뒤에 가족이 있다. 여기서 밀리면 모든 게 끝장이야!

-마리아!!

연출된 화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현실이다.

개인적인 이기심과 이득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밀려드는 어둠에 저항하고 있는 일반 병사들의 모습은 조금은 찡하게 느껴질 정도.

피를 흘리며 계속해서 사제를 부르짖는 이도 있었고 동료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방패를 드는 전사들도 있었다.

큰 상처를 입은 이들은 물론 피를 토하며 신성력을 운용하는 사제들도 눈에 보인다.

모두가 빛의 장막에 둘러싸인 채로, 각자의 모습을 가지고 고군분투 하고 있다.

‘이건 먹힐 여지가 있어.’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이의 모습이 아니다.

현재 여신의 거울에서 나오고 있는 장면은 다름 아닌 그들 자신의 모습이다.

정말로 검을 겨누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누가 옳고 그른지.

본인들의 모습을 투영한 장면들이 계속 지나간다.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당연지사. 현재 상황에 동조하기는커녕 머뭇거리고 있는 공화국 병력을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움직여.’

물론 지금까지 칼을 맞댄 이들이 함께 싸운다는 것 자체는 무리수.

아군과 적군의 구분을 없애는 게 더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움직여!!’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으리라.

이 장면은 서로가 하나 되는 그림을 위해 만들어진 장면이다.

‘움직여!!’

-막아! 제기랄!! 최대한 버텨!

-신성력이….

-최대한 버티면서 응수한다. 지휘부에서 아마 곧 지원군을….

-방패 들어. 포기하지 말고… 방패 들어!!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함께 싸워주십시오! 함께! 함께 싸워주십시오!

-이 더러운 시체들이!!

그의 판단이 틀릴 리가 없다.

‘움직여!!’

“움직여! 이 멍청한 공화국 놈들아!! 아직도 진짜 적이 누군지 모르겠어! 교국이 당하면 그걸로 끝날 것 같아? 그 다음은 너희 멍청한 공화국이라는 걸 왜 모르는 거야! 칼 들고 싸워! 멍청한 놈들! 저 시체들을 보고도 고민하고 있는 놈들은 도대체 뭐 하는 놈들이야? 칼 들어!! 스스로를 지키라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라고!!! 이 꼭두각시 새끼들아!”

크게 소리치며 괜스레 앞에 있는 테이블을 주먹으로 내리친 바로 그때였다.

외곽에 잡혀 있는 영상에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장면이 모습을 드러낸 것.

갑작스런 외침에 주변 부관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미지를 챙길 때가 아니다.

현재 여신의 거울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확인한다면 그 누구라도 이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기랄….

-제길. 검을… 검을 들어라! 일단은 언데드들을 몰아낸다. 일단 언데드들을 몰아내는 것부터 시작한다!

-교국을 도와!

-그건….

-바리안 님을 위한 일이다.

-신성력을, 신성력을 지원해야 합니다. 여유가 있는 바리안의 신도들은 모두 저를 따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싸움은 나중입니다. 언데드를 정화합니다. 바리안의 성기사들은 왼쪽부터! 움직인다!

-바닥에 깔아! 바닥에!

-제길…. 나도….

“그래, 그거야. 그거라고!!”

주먹을 꽉 쥔 것은 당연하다.

바리안의 신도들과 성기사의 비율이 높은 구역에서 퍼져나간 작은 도움은 순식간에 후방에 있는 커다란 거울로 송출된다.

아직은 작은 그림이다.

여신의 거울로 송출하기에는 아주 작은 그림이다.

하지만 그만큼 필요한 그림이기도 하다.

어쩔 줄 몰르는 이들을 다루는 데 가장 적절한 것.

군중심리만큼 저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도 없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듯한 화합의 물결이 천천히 전장에 자리 잡히기 시작.

송출되고 있는 영상은 계속해서 이 아름다운 장면을 홍보하며 적군과 아군의 화합을 종용한다.

저쪽에서도 기가 막히게 타이밍을 재고 있었는지 때마침 언데드들 역시 공화국의 병사들에게도 검을 내 뻗었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인류와 인류가 아닌 빛과 어둠의 전쟁이 시작된다.

쌍팔년도 만화영화에서도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구역질나는 클리셰.

하지만 그만큼 효과적이기도 하다.

“클리셰가 괜히 클리셰겠어?”

사실 더 이상은 볼 필요도 없다.

남은 문제는 이 큰 그림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대한 것뿐이니까.

물론 너무 손쉽게 끝내버리는 그림도 좋지만은 않다.

이후의 역할은 내 역할이 아니지만 오빠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본래 위기에 빠진 이들에게 따라오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후대들이 공부하게 될 역사책에 적힐 내용은 조금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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