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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14화 (413/1,590)

# 414

회귀자 사용설명서 414화

기쁘다. 빛기영 강림하셨네(5)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대화합에는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조금은 불안했던 것도 사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아름다운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아마 악마 소환사로서는 가장 보기 싫었던 그림일 터.

솔직히 내가 녀석의 입장에 있어도 현 상황을 어떻게 뒤집어야 할지 고민 했을 것이다.

‘답이 없겠지.’

외통수를 때려도 제대로 때려 버렸다는 거다.

살인사건의 현장에서 흉기를 든 채로 형사들과 마주친 거라 봐도 무방하리라.

라이오스 때와 큰 차이가 없다.

모든 증거와 정황이 녀석을 악마소환사로 가리키고 있었고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은 완전히 틀어막았다.

물론 녀석을 위해 준비한 선물은 이게 끝이 아니다.

‘인정해.’

당연히 인정할 수 있다.

녀석은 뛰어난 군사다.

전쟁 도중에는 녀석에게 몇 번이나 뒤통수를 맞았고 실제로도 위험했던 적이 많았다.

여러 가지 머리를 써봤지만 대부분 간파당했고 심지어 준비한 연막에도  놈의 함정에 제 발로 기어들어가게 됐을 정도였다.

만약 오늘 현장이 아니라 지휘부에 있었다면 몇 번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었으리라.

그 정도로 궁지에 몰렸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확신할 수 있다.

녀석은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없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은 전쟁이나 전투와는 관계가 없다.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는 수많은 지식이나 병법 같은 것들을 현 상황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거라 생각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

분위기는 녀석의 손을 완전히 떠났다.

대화합의 물결이 일어나 모두가 하나 되고 있었고 공통의 적을 상대로 인류가 손을 잡고 언데드들을 몰아내고 있다.

이 상황에서 지휘권이고 진영이고 신경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선택지는 두 가지.

하염없이 멍 때리며 현재 상황을 바라보든가. 지난번처럼 최선을 다해 도망치든가.

물론 후자의 경우에는 도망칠 수 있는 수단이 있을 때의 이야기.

더 이상 음성증폭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녀석의 목소리에는 대응할 필요도 열을 낼 필요도 없다. 현재의 상황에 충실하고 주어진 역할을 대중 앞에 선보이는 것. 그것 외에 내게 주어진 미션은 없다.

‘잘 마무리해야 돼.’

클라이막스인 만큼 그 무엇보다 마무리가 중요하다.

후방에서 안전하게 상황을 지켜볼 수 있기도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 리 만무.

그 누구보다 열심히 싸우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는 나 같은 놈도 창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정치인들이 간혹 보여주는 보여주기식 똥꼬쇼.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건 확실하게 효과가 있다.

“대륙을 위하여!!!”

“빛을 위하여! 베니고어 여신님과 엘룬, 바리안 님을 위하여!!”

“깃발을 들어 올려라! 대륙에 아직까지 빛이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하자! 베니고어의 아들딸들이여!”

“화살을 멈추지 마!”

틀림없이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계속해서 저항하는 인류의 모습은 희망찬 메시지를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아마 밝은 미래를 떠올리고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창을 들고 전선에 서자 얼굴을 마주하기도 싫은 흉악한 언데드들의 모습이 눈앞에 드러났다.

뭔가 날 보고 움찔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녀석들 역시 충실히 자신들의 역할을 이행하는 도중.

일반 병사들과 함께 힘겹게 녀석들을 막는 장면은 동상으로도 만들어 질 만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은 땀과 오물로 범벅이 된다.

그림은 충분히 만들어졌다.

아! 물론 주변 인물들을 걱정시키는 장면 역시 빠져서는 안 된다.

“명예추기경님! 안쪽으로 가셔야 합니다. 위험합니다!”

“하아. 하아. 가만히 구경만 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괜찮습니다.”

“명예추기경님!”

“모두가 함께 싸우고 있습니다. 심지어 공화국의 병사들까지도요. 만약 제가 몸을 숨긴다면 많은 이가 저를 비난할 겁니다. 후우. 제게 주어진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저도 언데드들과 싸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듣지 않겠습니다. 한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네, 네….”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습니다. 모두 힘을 내주세요.”

사실 내가 이 전선 앞에 나와 있는 것 자체가 커다란 민폐. 내가 괜찮다고 말한들, 주변에서 괜찮을 리가 없을 테니까.

당장 나를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이들의 활동범위가 제한된다는 것 자체가 그렇다.

하지만 이런 홍보 효과를 놓칠 수는 없는 노릇.

내 장단에 맞춰준다는 듯 여신의 거울은 이쪽을 비추고 있다.

조금 더 극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게 가슴 아플 지경.

하지만 계속해서 신성력을 뿜고 있는 모습은 충분히 신의 사자라고 할 만하다.

“명예추기경님께서 함께하신다!”

“명예추기경님이 함께하신다! 검을 들어!”

사기를 높여주는 게 긍정적인 효과라면 긍정적인 효과.

징그러운 언데드들과 뒤엉켜야 한다는 게 기분이 조금 나쁘기는 하지만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뭔가 새로운 장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즈음 거대한 녀석 하나가 이쪽으로 달려오기 시작.

녀석이 나를 해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다.

‘이 자식이랑 조금 놀아주면 되겠는데….’

눈물 콧물 다 뺄 만한 감동 상황을 연출할 생각에 입꼬리가 찢어지기는 했지만 순식간의 녀석을 둘러싸는 아군 병력이 눈에 보인다.

이쪽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는 모양.

김예리와 안기모, 박덕구가 없는 이곳에서 감동 상황을 연출하기란 쉬운 게 아니라는 걸 다시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주작질이 쉬운 게 아니야.’

조금은 현실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미적지근하게 마무리가 된다면 조금 찝찝해지는 것이 사실.

아군 병력은 물론 인류 전체가 위험에 빠졌다는 인상을 줘야 김현성도 납득할 수 있는 마무리가 될 것이다.

슬쩍 여신의 거울을 보자 눈에 보이는 것은 얼굴을 굳히고 있는 사랑스러운 회귀자.

자세히 얼굴을 바라보니 제법 피곤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만도 하지.’

무사하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것은 물론 마력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 놈을 보니 가슴이 괜스레 찡해졌다.

조금 쉬어도 되건만 아직도 초조함이 가시지 않은 얼굴은 가관.

이미 예상하고 있는 상황인 듯 아직도 불안해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이거 어느 정도는 들어맞은 건가.’

당연히 언데드 대란을 일으키기 잘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언데드들은 진청을 위한 선물이기도 했지만 김현성을 위한 선물이기도 했다.

가면쓰레기가 너무 맥없이 쓰러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한 작업.

문제는 우리 사랑스러운 회귀자가 이걸로 만족하는가.

악마소환사의 경우에는 충분히 만족시킨 것 같지만 아무래도 아직도 불안해하는 김현성을 보니 뭐가 더 남아 있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걸로도 모자라?’

이 정도면 충분히 가면쓰레기답다고 생각했지만 아군을 언데드로 만들어버리는 간악한 술수도 워밍업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다른 걸 새로 준비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준비할 시간도 아이디어도 없다.

‘슈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건 조금 더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는 것.

그 이상 뭔가를 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안게 되리라.

아주 약간의 찝찝함이 남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전쟁이 끝난 이후에 대충 얼버무린다면 충분히 커버칠 수 있다. 아니, 준비한 묵직한 한 방으로도 충분히 의심 자체를 지워버릴 수 있다.

다시 한번 창을 든 것은 당연지사.

최대한 병력들과 함께 언데드들에 대항하는 그림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그림.

하지만 무언가 위기감이 부족하다.

‘여기서 일어나는 애들도 있어야 더 실감날 것 같은데….’

알아들을지는 모르겠지만 신호를 보내자 기다렸다는 듯이 숨이 끊어졌던 공화국 병사들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

그래봤자 하급 언데드지만 안 그래도 지쳐가는 병력에게 부담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하리라.

“적이….”

“그래봤자 하급 언데드다! 전선을 무너뜨리지 마!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틴다!”

“지친 병사는 후방으로! 체력이 남아 있는 부대가 앞을 지킨다!”

“베니고어 여신이시여!”

점점 더 탄력을 받은 언데드들은 비명을 지르며 사방팔방을 점령하고 있다.

아무래도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좀 다르게 받아들인 것인지 정하얀과 한소라가 본격적으로 힘을 쏟기 시작한 것이다.

어딘가에서는 전설 등급의 언데드라도 튀어나온 듯한 느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전선 자체가 밀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다.

‘이거 슈바. 너무 셌나. 진짜 버티기 어렵겠는데….’

천천히 무너지고 있는 전선.

체력적으로 지친 이들이 유지하고 있던 대열이 무너지고 그 사이로 언데드들이 꾸역구역 밀고 들어오는 모습 역시 눈에 들어왔다.

“지원을! 신성력으로 지원해!”

“하지만….”

“무너지고 있는 쪽부터 지원한다. 공화국 병력들은 최대한 교국을 돕는다.”

“아아아아아악!”

“지지 마! 버텨!!”

내가 생각한 것보다 전선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조금 더 굳건히 버텨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아무래도 모든 병력이 체력적으로 여유가 없는 것 같았다.

‘당연한 건가.’

교국과 공화국이 전력으로 부딪친 바로 이후다.

김현성도 마찬가지였지만 각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네임드들 역시 어마어마한 부담을 느끼고 있음이 분명.

일반 병사들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이미 충분히 위기라고 할 수는 있었지만 김현성이 상상하고 있는 위협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여기서 조금 더 조여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엔 이미 많은 병력에게 맡겨진 부담이 너무 크다.

‘조금 더 극적일 때….’

“제길! 제길!! 버텨!!”

“13부대가 무너진다! 13부대 지원해! 지원!”

“공화국 병력이… 언데드 부대에.”

“아직 살아 있어. 지금 당장 부대를 구성해서 구하러간다.”

“여유가 없습니다.”

“제길! 제길!! 신이시여!!”

“베니고어 여신이시여! 진정 저희를 버리나이까! 베니고어 여신이시여!”

‘조금 더 극적일 때….’

“엘룬이시여! 힘을! 힘을!! 대륙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조금 더, 조금 더….’

“엘룬이시여!!”

주변 진영을 구성하고 있는 부대의 대열이 하나둘 뚫리기 시작.

좁은 틈새를 꾸역구역 밀고 나온 언데드들이 사제와 마법사들을 덮치고 있다.

심지어 공화국의 일부 병력들은 완전히 언데드에 휩쓸리는 중.

계속해서 신을 찾는 상황이 어색하지 않다.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고 싶어 고개를 든 순간 여신의 거울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박덕구의 모습이 보였다.

공화국 병사를 공격하고 있는 언데드를 방패로 뭉개는 녀석을 본 순간 자연스럽게 품에 있던 것을 들이켰다.

찔려오는 양심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

사방에서 여러 가지 목소리들이 들려오는 소리가 일순간 삼켜지기는 듯한 느낌.

나를 중심으로 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은 순식간.

화아아아아아악!

일순간 세상이 밝아진다.

시선이 집중된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상처받은 양심 때문인지 나를 보는 병사들의 눈을 제대로 쳐다 볼 수가 없다.

최대한 시선을 피하기 위해 눈을 감은 순간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탄성.

“현신이다… 현신.”

“베니고어 여신께서… 강림하셨다.”

‘바로 요거죠?!’

계산하고 있었던 그대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만들어놨던 두 번째 카드는 확실히 제 역할을 해주고 있었다.

‘베니고어 강림 코스프레.’

빛 폭탄 물약의 복용으로 딸려오는 효과였다.

‘내가 바로 베니고어 그 자체다! 이 새끼들아!’

[희귀 등급의 강제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너… 진짜 이 새끼. 이거 놔! 이거 놔! 말리지 마! 엘룬 너 이 새끼 이거 못 놔? 이 개새끼들아! 저 새끼가 지금! 나도 더 이상은 못 참아!(0/1)]

[알 수 없는 이유로 희귀 등급의 강제 퀘스트가 취소됩니다.]

희망이 없는 전선.

어둠이 군세에게 밀리고 있는 빛의 군세. 모든 빛이 어둠에 삼켜질 때 등장한 가장 커다란 빛.

기술명.

‘여신강림.’

물론 단순한 개구라.

하지만 몸이 빛으로 휩싸이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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