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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15화 (414/1,590)

# 415

회귀자 사용설명서 415화

기쁘다. 빛기영 강림하셨네(6)

용 숨결 물약은 복용이 불가능한 물약이었다.

브레스를 쏟아내는 기관과 비슷한 형태의 유리병을 제작하고 디아루기아의 마력과 혈액을 촉매로 비슷한 폭발을 일으키는 원리의 물약.

연금술의 정수라고 보기보단 여러 복합적인 기술이 사용된 폭탄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했다.

터지기 위해서 만들어진 물건이니 복용이 불가능한 것은 당연.

애초 그녀의 혈액은 마실 수도 없다.

아직도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강화의 혈청 이 설명해 주듯이 혈액을 마시는 것 자체가 위험을 동반한다.

하지만 새로 들어온 녀석은 그렇지 않다.

존경해 마지않는 베니고어 여신과 엘룬 쓰레기가 직접 선물로 내려주신 이 따끈따끈한 녀석은 적과 아군을 확실하게 구분한다.

빛 폭탄 물약은 단순히 터지기만을 위해 제작된 물약이 아니라는 거다.

[빛 폭탄 물약-준신화 등급]

[빛의 연금술사 전용 소비 아이템-일일 사용량 제한(3/3)]

[준신화 등급의 직업, 빛의 연금술사만이 연성할 수 있는 고유의 물약입니다. 베니고어 여신의 배려와 엘레나의 희생으로 인해 만들어진 이 물약은 사용자의 신성력을 주입한 직후 사용자의 적과 아군에게 반응하는 거대한 빛 폭발을 일으킵니다. 아군은 중상을 즉시 회복하게 되지만 적군은 폭발의 영향에 그대로 노출됩니다. 하루에 세 번 사용 가능합니다. P.S 쓰레기 같은 놈.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이다. 나도 더 이상은 한계야.]

말 그대로 거대한 빛 폭발을 일으키는 물약.

이걸 마시면 어떻게 될까.

그런 궁금증이 생기지 않을 리가 없다.

물론 답은 금방 나온다. 굳이 여러 가지 가정을 만들 필요조차 없다.

나 이전에 이걸 복용한 녀석이 있었으니까.

‘살라트가 그랬었지.’

정확히 말하면 복용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녀석은 이걸 체내로 받아들인 적이 있다.

놈의 경우에는 괴로움에 몸부림쳤지만 당시 놈의 몸을 뚫고 나간 빛은 아군 원정대에게 까지 닿았고 실제로 그 효과를 입증했다.

마신다고 하더라도 효과에는 변화가 없다는 거다.

적군에게는 대미지를, 아군에게는 회복을.

제한된 범위, 심플한 능력, 심플한 기능.

다른 말이 필요할 리가 없다.

복용한다고 해서 초월적인 힘을 얻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극적인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당연하지만 신이 강림하는 것도 아니고 신성력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기능은 같다.

그래 기능은 같다. 겉모습이 조금 달라진다는 것만 빼면.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실눈을 뜨자 순식간에 사방으로 뻗어나간 빛이 시야를 가득 메운다.

몸속에서 계속 화아아악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느낌.

뱃속이 조금 부글거린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이상은 없다. 오히려 기분이 조금 좋다고 느껴질 정도.

상처를 모조리 회복시키는 것으로 모자라 피로마저 날아가게 한다.

나를 밝히고 있는 빛이 계속해서 병력을 휘감고 있는 모습은 장관.

쓰러져 있던 이들 역시 몸을 일으키고 있었고 화살이나 마법에 휩쓸린 이들 역시 자신의 몸을 매만진다.

엘룬과 베니고어의 합작으로 만들어낸 이 커다란 기적에 공화국 교국 가릴 것 없이 모두 다 커다랗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눈멀겠다. 슈바.’

천천히 퍼져나간 빛이 보여준 모습은 내가 봐도 자랑스러울 정도의 광경.

순간적으로 전쟁터를 환하게 비친 빛 때문인지 일순간 전투가 마비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늘만 벌써 세 번째.

운석이 떨어졌을 때, 언데드가 나타났을 때 그리고 현재.

일순간 전장에 정적이 찾아온 것은 그들과 마주하고 있던 언데드들 마저 빛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리라.

“강림하셨다. 베니고어 여신님께서 강림, 강림하셨다.”

개뿔.

강림한 것도 아니지만 저렇게 생각해주길 바란 것은 당연지사.

슬쩍 고개를 돌려 여신의 거울을 바라보니 완전히 빛 그 자체가 되어버린 빛기영이 시야에 비쳤다.

환한 빛이 몸을 빛내고 있는 것은 물론 환한 빛이 계속해서 주변을 맴도는 중.

눈에서 쏟아지는 안광은 당연히 신성해 보인다.

얼마 남지 않은 신성력으로 부유마법을 중얼거리자 내 몸이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

입을 벌리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조금 귀엽게 느껴졌다.

사전 작업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생각하기도 했지만 극적인 순간에 터뜨린 효과인지 눈물까지 흘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은 가히 가관이라 할 수 있을 정도.

“베니고어 여신님…. 베니고어 여신님!”

-그대들의….

“흐으으윽.”

‘그만 좀 울어라. 이놈들아. 말 좀 하자. 그만 좀 울어.’

-그대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입을 연 순간 곧바로 조용해지는 장내.

계속해서 들려오던 진청의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상황.

언데드들은 일순간 움직임을 멈춘다. 뭔가 초월적인 힘에 방해를 받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단순히 정하얀이 병력들을 컨트롤 하고 있는 것뿐이었지만 언데드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었다.

눈앞에 벽이라도 있는 것처럼 쳐져 있는 것처럼 마임을 하고 있는 모양새는 가관.

눈으로 봐도 이해할 수가 없다.

수많은 이들이 그 광경을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만족스럽게 입을 열자 다시금 이쪽을 바라보는 이들의 얼굴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알고 싶은 것이 많을 겁니다. 어째서 저, 베니고어가 이 자리에 자리해 있는지. 어째서 몇 천 년 동안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던 제가 이렇게 모습을 드러냈는지 말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이야기해 드릴 수는 없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현재의 대륙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뿐입니다.

“…….”

“…….”

-여러분이 바라보고 있는 일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 세계를 위협하는 세력은 아직도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지금 보고 있는 수많은 저주받은 존재들과 현재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있는 악마의 하수인. 이 위협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모든 고난은 앞으로의 역경과 비교하면 아주 작은 것들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좋고요.’

아무리 나라도 이정도의 사기를 치면 조금은 떨리게 마련.

혹시 말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불안하기는 했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쉽게 입이 열리기 시작한다.

-엘룬의 아들딸들이여. 바리안의 아들딸들이여. 그리고 이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이의 아들딸들이여. 제가 오늘 이 신성하고 순수하며 그 어떤 이들보다 깨끗한 이 인간의 몸을 빌린 것은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번 이 메시지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천천히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면서.

-대륙을 안전을 위협하는 이들은 실존합니다.

숨을 한 번 멈춰주고.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대륙을 그들의 색으로 물들이려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몸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 여러분들이라면 이겨내는 것이 가능 합니다. 하나 되십시오. 이 세계에 살아가는 모든 이가 힘을 모은다면 우리는 충분히 이 위협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빛의 이름 앞에 하나 되어 모든 고난과 역경을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한번 강한 어조로 대사를 마무리.

-부디 마음을 굳게 먹으십시오.

악마소환사 진청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계속해서 녀석을 언급하는 건 굳이 할 필요가 없다.

악마의 하수인이라는 단어로 끝.

아마 이 정도만 해도 우리 사제님들께서는 일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눈치챌 수 있으리라.

“아아. 베니고어 여신이시여….”

“베니고어 여신님. 베니고어 여신님!”

애타게 베니고어 여신의 이름을 부르는 이들에게는 침착한 미소로 화답.

내 역할은 끝이다.

천천히 손을 들어 저주받은 언데드들에게 손을 뻗자 벌써부터 괴로워하는 저주받은 이들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케에에에에엑!”

“끄르르륵. 끄르르륵.”

-그대들은 구원받을 것입니다.

손을 천천히 젓자 주변에 있는 언데드들이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기적….”

“여신이시여….”

“케에에에에에에에엑!”

-…….

“크르르륵.”

화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남은 한쪽 손으로 원을 그리자 역시나 언데드들이 허물어진다.

물론 신성력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다.

눈속임용으로 빛이 나아가고는 있었지만 저 빛은 고등 언데드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하지 않다.

아마 따끔한 수준 정도.

그럼에도 언데드들이 도미노처럼 풀썩풀썩 쓰러지고 있는 이유는 당연히 정하얀에게 있다.

손을 뻗음과 동시에 술식을 해지하면 끝.

잘 짜인 대 사기극이지만 여기까지 온다면 당연히 결과는 그럴 듯해 보인다.

마치 이러기 싫다는 듯 눈물 한 방울 정도 떨어뜨리는 것도 필수.

베니고어 여신님은 언데드를 무로 되돌리면서도 눈물을 흘리신다.

당연하지만 빛 폭탄 물약을 삼켜 버린 지금은 눈물마저 밝게 빛나고 있다.

전장을 가득 메웠던 언데드들이 파도타기를 하는 것처럼 무로 돌아가는 모습은 내가 봐도 신성해 보일 정도.

조금 오버하는 것 같지만 이정도는 되어야 기적이라 부를 만하다.

어느새 너나 할 것 없이 사제들은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만 봐도 대충 분위기가 어떤지 예상할 수 있으리라.

-고통 받았던 모든 이가 축복받을 것입니다.

이쯤 되면 손을 움직이는 것도 조금 힘들다. 하지만 계속해서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

‘끝났어.’

단언컨대 끝난 거나 다름이 없다. 아니, 확실히 끝났다.

지금 보이는 모습에 그 어떤 변명이나 말이 들어올 리가 없다.

진짜 베니고어가 강림해도 베니고어를 가짜라고 몰아낼 수 있을 정도의 믿음.

나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빛은 그 정도의 감정이 들어서 있었다.

교국 공화국 가릴 것이 없다. 바리안의 신도들은 혹시나 내가 바리안을 다시 언급할까 바라보고 있었고 엘룬을 모시는 엘프들 역시 신에 대한 존중을 내보이고 있다.

-이후의 일을 이 땅 위의 주인인 여러분에게 맡기도록 하겠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허락도 받지 않고 몸을 빌렸군요. 이 신성한 인간 또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을 보는 것은 어렵겠지만, 항상 기억해 주십시오.

“베니고어 여신님….”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저희는 언제나 항상 여러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항상 기억해 주십시오.

“…….”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마지막 말을 마친 이후에 타이밍 좋게 머금었던 빛이 사라지기 시작. 당연히 하늘에 떠 있던 내 몸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

물론 당황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았다.

어차피 누군가가 나를 캐치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조용히 떨어지는 내 몸을 받아낸 것은 김현성도 박덕구도 아닌 일반 병사들.

마치 콘서트에서 관객석으로 뛰어내린 가수를 받는 것인 양 앞다투어 손을 뻗는다.

차이점이 있다면 제법 경건하게 느껴졌다는 것.

의식이 없는 나는 단순히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지만 흐느끼는 소리와 함께 땅바닥으로 무기를 떨어뜨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흐으으윽….”

“어머니….”

전쟁은 끝났다.

그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는 이는 없었지만 아마 모두가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천천히 눈을 뜨니 하늘을 가렸던 구름이 지나가며 빛이 쏟아지는 것이 보인다.

전쟁은 끝났다.

“끝났구나.”

“네. 명예추기경님… 끝났습니다.”

혼잣말에 대답해오는 경비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살짝 웃음 짓는 것은 당연지사.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기억나지 않으시는 겁니까?”

“네. 빛에 휩싸인 것까지는 기억하지만, 아니, 그 이후에도… 기억은 나지만… 정말로 있었던 일인지. 정신이 몽롱합니다.”

“아마 곧 아시게 될 겁니다.”

바닥에 내려온 이후에 고개를 든 순간 보이는 것은 나를 향해 인사를 올리고 있는 교국과 공화국의 병사들.

뭔가 멍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표정이 재미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느낌.

어쩌면 모두가 내가 말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전쟁은…. 전쟁은 끝났습니다.”

커다란 환호성이 들려왔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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