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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20화 (419/1,590)

# 420

회귀자 사용설명서 420화

위쪽에서 생긴 문제(3)

눈길을 사로잡는 풍경도 매번 보다보면 질리게 마련.

수도로 가는 광경이 딱 그랬다.

산과 도시, 산과 마을, 산과 강, 끊임없이 펼쳐져 있는 풍경은 아름답기보다는 물린다.

수도로 도착했을 때 봤던 광경이 더 훈훈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다른 표현이 필요 없으리라.

“명예추기경님!”

“여신님의 대리자!”

“베니고어 여신의 축복을!”

멀리서 환호를 보내고 있는 교국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준 것은 당연지사.

입구에서 내려 한 명 한 명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게 조금 아쉬울 지경이었다. 서둘러 움직일 수밖에 없는 현 상황이 괜스레 아쉬워졌다.

“꽉 잡으세요. 곧 도착입니다.”

“네. 혜진 씨.”

“너무 꽉 잡으시면 부담스럽습니다. 과한 신체적 접촉은 최대한 지양해 주세요.”

‘어쩌라는 거야.’

“죄송합니다.”

“…….”

“…….”

아쉬운 맘을 품은 채 그리폰이 착륙한 곳은 구 황성, 현재는 교국의 지도자 오스칼이 기거하고 있는 장소였다.

벌써부터 마중 나와 있는 이들의 얼굴이 눈에 보였다.

카트린 의원과 엘리제 의원. 마를린과 오스칼을 비롯한 소중한 아군 여러분.

이런 표현이 맞을 줄은 모르겠지만 이기영 명예추기경의 사교계 복귀 같은 느낌.

실리아에서 한발 먼저 출발해 도착해 있는 카스가노 유노도 보였고 그 외에 자리 잡은 소중한 인맥들이 시야에 비친다.

“명예추기경님.”

“오랜만입니다, 오스칼 님. 이렇게 마중 나오지 않으셔도 되는데….”

“아닙니다. 당연히 마중 나와야지요. 대륙을 구한 영웅이시니까요.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완전히 회복이 되었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닙니다. 늦게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아니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도리어 제가 죄송합니다. 차라도 먼저 대접해 드리고 싶지만….”

“일이 끝난 이후에 들리겠습니다.”

구 아리스 시녀, 현 오스칼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지는 게 보였다.

일이 끝난 이후 한번 들리겠다는 말이 제법 달콤하게 들려왔던 모양.

‘얘도 여전하네.’

남자처럼 짧았던 머리가 어느새 조금 길어 단발이 되었다.

차를 대접하고 싶다는 말이 단순한 접대용 멘트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한껏 미소가 지어졌다.

만약 일이 터진다면 황성 쪽에서도 주도적으로 움직임을 취해줘야 하는 만큼 미리미리 좋은 인상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

‘사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없지만….’

그만큼 오스칼과 이쪽은 돈독하다.

애초에 그녀를 저 자리에 올려놓은 게 나라는 걸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

물론 나와 사이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건 그녀뿐만이 아니다.

“카트린 의원님. 그리고… 엘리제 의원님. 마를린 영애도 오랜만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얼굴보기가 힘들어 지는 것 같네요. 명예추기경님은. 후훗.”

“하하. 농담에 뼈가 있는 것 같습니다, 카트린 의원님.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아시다시피 최근 시간이 없었던 터라….”

“뼈가 있다니요. 명예추기경님이 교국을 위해 큰일을 해주시고 있다는 걸 그 누구보다도 저희가 잘 알고 있답니다. 그리운 마음에 한 실언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만큼 뵙고 싶었으니까요.”

“저도 여러분과 함께하는 티타임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릅니다. 병상에 누워 있는 동안에도 얼마나 생각이 나던지.”

“정말인가요? 명예추기경님?”

“네, 마를린 영애. 정말이고말고요.”

“아마 그건 마를린 의원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명예추기경님. 저희와 만날 때마다 명예추기경님에 대한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라니까요.”

“정말입니까?”

“카, 카트린 의원님!”

“지금 얼굴 붉어진 거 보이시죠?”

“하하.”

아직까지도 쌍팔년도 러브코미디물의 액션을 보여주고 있는 마를린 영애.

그리고 그에 전력으로 호응해 주고 있는 카트린 의원과 엘리제 의원의 모습도 여전하다.

이전과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귀족의 예법을 거의 생략했다는 것.

변화하는 시대에 제대로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나 스스로도 제법 뿌듯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 뒤로 고개를 돌려 인사를 나눈 것은 카스가노 유노를 비롯한 실리아 사람들.

“또 뵙는군요.”

“네. 주, 아니, 이기영 명예추기경님.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그 외에 다른 인물들과도 형식적인 인사를 마친다.

어깨를 두드려주거나 덕담을 나누는 쓸데없는 스몰톡을 하는 건 인맥관리의 연장선.

함께 온 차희라 역시 반가운 얼굴들을 향해 인사를 건네고 있다.

그 와중에 정하얀은 카스가노 유노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마 오래전에 있었던 사건이라도 떠오른 모양.

괜스레 목구멍으로 침이 넘어가기는 했지만 잠시 후 위풍당당하게 콧대를 올리는 정하얀을 바라본 이후에는 참았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나저나 명예추기경님, 갑작스레 수도에는 무슨 일로….”

“하하. 실은 교단에 볼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교단 말입니까?”

“네. 정확한 이유는 말씀드리기 힘들지만….”

“뭔가 문제가 생긴 모양이군요.”

“아마 사소한 문제일 겁니다, 오스칼 님. 아직은 크게 신경 쓰실 정도는 아닙니다.”

“안 그래도 최근에 교황청이 조금 어수선하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교단 내부의 일이나 제가 크게 간섭할 수는 없지만 분위기가 썩 좋지는 않은 것 같았습니다. 바젤 교황 성하도 최근에 근심이 많으신 얼굴이었고…. 뭔가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셔도 된다고 전해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아마 바젤 교황님 역시 기쁘게 받아들이실 겁니다. 어쩌면 오늘 내로 공식적인 발표 같은 게 있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네.”

‘얘한테도 비밀로 하고 있는 건가?’

어느 정도 납득은 된다.

어차피 교국은 정치와 종교의 개념을 거의 완벽하게 분리하고 있으니까.

‘얘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겠네.’

함께 움직이고 있었던 파트너가 갑작스레 발을 동동 구르고 있으니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심정이 어떨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도 없다.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고는 있었지만 아마 속은 타들어 갈 것이 분명.

내가 아직은 신경 쓸 일이 아니라 못을 박아두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찝찝해하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렇게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을 때였다.

저 멀리서 다가오는 인원들이 시야에 비친 것.

누구인지는 뻔한 일이다.

신성기사단에게 둘러싸여 있는 바젤 교황이었다.

‘인원이 꽤 많네.’

물론 일반적인 호위 병력이기는 하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는 저 신성기사단에게도 의심의 시선이 머물게 된다.

기본적으로 별일 아닐 거라 생각하고 있는 마음이 컸지만 항상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이놈의 멘탈 때문인지 별 쓸데없는 걱정들이 휘몰아친다.

물론 당장 걱정할 이유는 없다.

만약에 사건이 터지더라도….

‘전력은 충분해.’

굳이 초조한 모습을 보여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거다.

지금 당장은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게 더 유리한 것이 당연.

눈에 띄게 입꼬리를 올리자 저 멀리서 나를 본 바젤 교황 역시 입이 찢어지듯 미소를 보내오는 게 눈에 보였다.

거짓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의심의 씨앗이 조금은 사그라진다.

현재 바젤 교황이 연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교단에서 나를 제거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바젤 교황님!”

“이기영 명예추기경!”

깜짝 놀랄 정도로 커다란 목소리가 튀어나온 것은 순식간이다.

어미 새를 기다리던 아기 새 같은 통한의 외침.

줄리엣의 죽음을 바라본 로미오의 목소리도 이처럼 격정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목소리에 들어선 것은 안도감과 그리움. 여기 자리한 다른 이들처럼 얼굴 본 지 꽤 됐으니 그럴 만도 했지만 예상보다 더욱 좋은 반응에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좋아.’

성큼성큼 다가오니 함께 자리한 신성기사단의 발걸음도 덩달아 빨라지기 시작.

조금 더 가까이서 바젤 추기경의 얼굴은 확실히 눈에 띄게 수척해 보였다.

평소처럼 깔끔한 모습은 여전했지만 잠도 자지 못하고 밥도 먹지 못했는지 살이 많이 빠진 모습.

진청쓰레기를 수도로 옮길 때 보였던 모습이 불과 일주일 전 이건만 그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눈물이 고이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알려주는 대목.

다 늙은 할아버지의 약해진 모습을 보자 손을 꽉 잡은 손에 괜스레 힘이 들어갔다.

내 손을 잡은 채 오스칼을 비롯한 의원단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가관이다.

물론 격식에 어울리는 행동은 아니다.

바젤 교황이라면 하지 않을 실수였지만 그가 얼마나 심적으로 힘들었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대목인 것 같아 마음이 찡해졌다.

“정말 큰일을 해주었네, 이기영 명예추기경. 린델로 찾아가지 못해 얼마나 신경이 쓰이던지….”

“신경 쓰실 정도는 아닙니다, 바젤 교황님. 주변에 알려진 것보다 몸 상태는 훨씬 괜찮습니다. 오히려 정말로 린델로 오셨다면 제 마음이 더 불편했을 겁니다.”

“그런가…. 아암. 그렇지. 자네라면 분명 그렇게 생각했겠지. 잘 와주었네. 아주 잘 와주었어, 명예추기경.”

“교단의 일입니다. 제 일이기도 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많이 심란하시겠습니다.”

“그렇지…. 명예추기경, 혹시 최근에 베니고어 여신님에게서 들려온 목소리는 없었나?”

“네. 최근에는…. 하지만 이런 일이 생기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럴 것이 아니라 빨리 상태를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바젤 교황님.”

“그렇지.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지. 빨리 움직이세.”

“예.”

짧게 대답한 이후 서둘러 이동.

물론 소중한 내 호위 군단과 함께다.

바젤 교황의 반응 때문에 경계심이 조금 풀어졌지만 기왕이면 함께 움직이는 게 훨씬 좋으니까.

신성기사단에도 딱히 제지를 하고 있지 않은 것을 보면 아무래도 내 사람들이 함께 들어가는 걸 용인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만큼 나를 신뢰한다는 거네. 나쁘지는 않아.’

“바젤 교황님, 이상 현상이 생긴 시기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물론이네. 정확히 그저께 새벽 2시 즈음이라고 알고 있네. 여신상에 기도를 드리던 일반 사제가 최초로 발견했고 10분 이후에는 나 역시도 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베니고어 님을 볼 수가 있었지. 면목 없지만 아직까지도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 이단심문관들과 주교 이상 사제들이 최선을 다해 움직이고는 있지만….”

“…….”

“별다른 차도가 없네. 여신상이 있는 본당은 현재 주교급 사제만 출입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고 혹시 모를 소문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최대한 조심하고 있지만 어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겠는가.”

‘그럴 수밖에 없겠지.’

갑작스레 본 예배당의 출입을 제한하는 것은 물론 주교급 이상의 사제들의 얼굴이 푸르죽죽해졌다.

그 이하의 사제들에게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한 상황이다.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표정을 굳히고 있는 사제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

본당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어두워지는 분위기는 괜스레 식은땀을 흘러내리게 했다.

바젤 교황을 선두로 천천히 본당의 문을 열자 시야에 비치는 모습은 가관.

‘왜 또 울고 난리야.’

그 이질적인 괴기 현상에는 입을 벌릴 수밖에 없으리라.

물론.

‘근데 저거 촉매로 쓸 수는 있는 건가….’

마음의 눈에 들어오는 정보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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