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1
회귀자 사용설명서 421화
위쪽에서 생긴 문제(4)
[베니고어 여신상의 통한의 피눈물-준신화 등급]
[준신화 등급의 촉매로 분류되는 여신의 눈물입니다.]
‘쓸 수 있겠는데?’
어떻게 쓸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지 않아 뭐라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지만 일단 사용할 수는 있다.
혹시나 신화 등급은 아닐까 기대했지만 시스템에서는 저 물건을 여신의 눈물이 아닌 여신상의 눈물로 분류하고 있는 모양.
쩨쩨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신화 등급을 얻으려면 베니고어라도 족쳐야 한다는 거네.’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이 장소에서 저런 물건을 만난 것 자체가 행운이다.
아직까지도 뺨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는 촉매를 채취하고 싶어진 것은 당연지사.
바젤 교황과 다른 이들이 함께 있지 않았더라면 일단 저 석상에 달라붙었을 것이다.
“신이시여….”
다시 한번 여신상을 살피기가 무섭게 바젤 교황의 탄식이 들려왔다.
계속해서 이곳에 자리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슴이 미어지는 모양이다.
물론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바젤 교황은 교단 내에서도 믿음이 가장 확고한 신자들 중 하나였고 실제로도 가장 순수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여러 가지 정치싸움과 알력싸움이 있기야 했지만 괜히 저 자리에 올라가 있는 게 아니다.
여신상의 외관과 더해진 그 모습은 확실히 숙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아마 그녀가 조금 덜 억울하게 생겼더라면 저렇게까지 슬퍼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으리라.
베니고어의 전체적인 외관은 미형이다.
물론 저 여신상의 모습이 실제 하늘에 있는 베니고어의 모습과 일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그녀는 어디에 놔도 꿀리지 않을 외형을 가지고 있다.
조금 특이사항이 있다면 왠지 모르게 억울하게 생겼다는 것.
틀림없이 미형이긴 하지만 얼굴 곳곳에 억울함이 묻어나 있었다.
저런 얼굴로 피눈물까지 쏟아내니 정말로 여신이 슬퍼하는 모습처럼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거다.
“흐으으윽. 여신이시여….”
바젤 교황뿐만이 아니다.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주교급 이상의 사제들 정체모를 탄식을 내뱉는다.
기도를 하는 척했지만 주변을 살피는 것은 순식간.
저 석상에서 무언가 다른 이상 현상이 터지지는 않을지 걱정된 탓이다.
‘베니고어 여신님, 우리 사이 아직 그대로죠? 제 뒤통수를 노리고 있는 건 아니죠?’
여전히 대답은 들려오지 않는다.
다시 한번 신전 쪽 인사들의 눈치를 살폈지만 그들 역시 뭔가 움직이려는 낌새는 느껴지지 않는다.
나를 낚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것도 아니고 베니고어 여신에게 언질을 받은 것이 아니다.
저들도 이 이상 현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판단해도 될 것 같다.
아직 결론을 내리기는 이른 시기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베니고어가 타락해 미쳐 버렸다는 뇌내망상은 내려놔도 괜찮을 것 같았다.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
“어, 어떤가, 명예추기경. 여신님의 목소리가….”
“음….”
‘이걸 뭐라고 해야 돼?’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있게 구라파티를 열고 싶기는 했지만 일단은 고개를 젓는 게 당연.
하지만 뭔가를 깨달았다는 언질을 해준다면 교단 측의 반응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흔드는 액션을 한 번 보인 것은 당연지사.
나라를 잃은 것 같은 표정을 유지하는 건 빛기영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일.
입을 열자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들리지 않습니다. 여신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허….”
“사, 사실… 어째서 베니고어 여신님께서 이런 모습을 보이시는지 예상이 가는 부분이 있기는 있습니다. 물론 제가 경솔하게 입을 열기에는 이른 시기인 것 같지만….”
“그게 뭔가!”
‘득달같이 달려드는데?’
사막을 수십 일 동안 헤매던 여행자가 오아시스를 발견한 듯한 표정.
‘얘 이거 연기 아니네.’
아까부터 계속해서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어서 말하라는 듯한 바젤 교황의 표정을 보자 어느 정도 확신이 든다.
아직 베니고어는 타락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만 바젤 교황님.”
“어서 말해보게, 명예추기경.”
“…괜찮으시다면 잠깐 자리를 피해주시겠습니까. 여신님과 단 둘이….”
“아암. 그, 그렇게 하겠네. 그렇고말고! 뭣들 하는 게야. 어서 나가지 않고! 이기영 명예추기경이 여신님의 상태를 살펴보신다고 하지 않은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본당에서 나가게! 시, 시간은 어느 정도면 되겠는가. 명예추기경.”
“조금 오래 걸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편하게 기다려 주십시오, 바젤 교황님. 여신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게 무엇인지 제 모든 것을 걸고 꼭 밝혀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네, 명예추기경. 잘 좀 부탁해.”
‘알겠으니까 손 좀 놔. 아프다….’
“혹시라도 필요한 게 있으면 무엇이든지 말하게나. 무엇이든지!”
“네. 꼭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명예추기경이 와줘서 정말로 다행이야. 정말로….”
“아닙니다, 바젤 교황님.”
‘알겠으니까 빨리 나가라. 나도 머리 아프다.’
“꼭 좀 잘 부탁하네. 꼭!”
‘좀 나가….’
두 손을 꽉 붙잡은 채로 신신당부 하고 있는 모습은 가관.
결국에는 한참이나 지나고 나서야 바깥으로 나가는 이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하얀과 차희라를 비롯한 이쪽의 보험 역시 정말로 괜찮겠냐는 듯 나를 바라보기 시작.
조금 불안하기는 했지만 괜찮을 것 같다 듯 고개를 끄덕이자 교황과 함께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도 보였다.
저 여성 군단이 따로 어떤 시간을 보낼지 궁금하기는 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 급한 것은 저쪽이 아니라 이쪽.
‘당연히 내 할 일은 해야지.’
생각이 복잡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하는 게 맞다.
항상 가지고 다니던 연금키트를 꺼낸 이후에는 곧바로 피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위치에 셋팅.
‘좋아.’
뚝뚝 떨어지고 있는 피눈물을 받아내는 빈 유리병이 괜스레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한두 시간 정도만 기다려도 가득 채워지리라.
“선물이나 하자고 뜬금없이 울고 있지는 않을 테고…. 얘 진짜 뭐 문제 생겼나?”
어떻게 생각해도 문제가 생길 여지는 없다.
‘악마와 전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닐 테고….’
“어디에 감금된 것도 아닐 테고.”
내가 떠 안겨준 수많은 업적이 전부 베니고어 여신의 공적치로 쌓여있다는 걸 가정하면 오히려 행복에 소리를 질러야 하는 게 맞다.
어쩌면 이건 슬픔의 눈물이 아닌 기쁨의 눈물일 수도 있다.
인류를 하나로 만들어 대륙을 위기에서 벗어난 기쁨의 피눈물.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할 없다.
우스갯소리지만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 이유 또한 파티를 하느라 정신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는 거다.
‘직무유기고 직무태만이야.’
물론 방금 가정이 들어맞았을 경우의 확률은 확연히 낮다.
하지만 계속해서 목소리가 들리지 않고 저 피눈물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나로서도 어떻게 할 수 있는 변명이 존재하지 않는다.
원인을 파악하지는 못했으니 결과를 멋대로 파악하고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일단 바젤 교황을 비롯한 교단 고위직들을 진정시키기 위한 변명은.
‘악마를 한 번 더 팔아먹으면 될 것 같은데….’
구시대적인 발상이기는 하지만 이것만큼 좋은 게 없다.
곳곳에 숨어 있는 악마 하수인들을 빠르게 처리하라는 신탁.
그 악마의 하수인들로 인해 대륙의 정기가 훼손되고 있기 때문에 하늘에도 문제가 생겼다고 둘러대면 적절하리라.
안 그래도 악마 소환사 진청 말고도 처리해야 될 놈들을 몇 놈 솎아낼 참이었다.
이쪽에 비협조적이었던 인물들은….
“전원 악마 관계자니까. 대륙의 미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거고….”
교국과 마도 왕국, 공화국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 멀뚱멀뚱 구경만 하고 있었던 개자식들 역시 마찬가지다.
‘중립이 제일 병신이다’라는 명언처럼 녀석들 역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모두를 적으로 만든다는 소리는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이전의 생쇼가 전부 무의미해지는 만큼 핵심 인물 몇 명만 추려내도 될 것 같았다.
마도 왕국의 원로 마법사 메디리브.
세상의 균형 어쩌고저쩌고 지껄이는 이 개자식이 기거하고 있는 마법사의 탑은 사실….
“악마의 첨탑이었던 거지…. 정말 큰일 날 뻔했어. 하마터면 악마한테 당할 뻔했네.”
전쟁을 일으키는 데 가장 앞장섰던 공화국의 대장군.
“악마 72군단장의 하수인, 72군단장들의 쉼터. 기회를 줄 수야 없지.”
아무것도 가담하지 않았던 왕국 내에서도 솎아낼 이들이 많다.
악마의 협곡에 기거하고 있는 악마 협곡 관리자. 바다를 오염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는 악마 하수인 총괄 해협의 군주.
한 개인이 아니라 단체 단위로 조져야 되는 이들이 많다.
물론 싸울 수 있는 병력들이 사라진다는 건 가슴 아프기는 하지만 어차피 이런 놈들은 있어도 도움이 안 되는 놈들이다.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이들이기도 했고 가만히 놔두기에는 세상에 위협이 되는 존재들이라는 거다.
명분도 있겠다. 이유도 있겠다.
이번 기회에 싹 한 번 쓸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당연지사.
내가 생각해도 나쁘지 않은 변명이다.
대륙에 퍼져 있는 악마 관계자를 전부 처리하는 과업이 순식간에 완료되지는 않을 테니 시간을 질질 끌다.
다른 이유를 생각해 놓으면 된다.
바젤 교황이라면 충분히 내 생각에 공감해 줄 것이다.
벌써부터 악마 관계자 여러분들의 리스트를 하나둘 머릿속으로 정리하게 된다.
‘정보는 진청한테 받았다고 하면 되겠네.’
녀석이 악마 관계자들을 전부 밀고했다고 조작하면 충분히 그럴듯한 내용을 완성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아. 괜찮아.’
하늘에서는 문제가 생겼을지 모르겠지만 땅에는 문제가 없다.
오히려 너무 잘 풀리고 있어 행복해질 정도.
괜스레 고마운 마음이 들어 저도 모르게 여신상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을 때였다.
“진짜 억울하게 생겼네.”
[제발. 흐으으윽. 제발… 주신이시여…. 제발….]
“뭐?”
[내 목소리 들려? 내 목소리 들려? 이기영 이 개자식아! 허어어어엉….]
“뭐야?”
[내 목소리 들리냐고!]
“들리는데….”
[살았다…. 살았어. 다행이다. 정말… 정말로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기영 명예추기경. 우, 우리 사랑스러운 이기영 명예추기경! 나 배신한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은 한 적도 없어. 절대로 한 적 없다고. 전부 다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야. 천천히 설명해 줄 테니까. 허튼짓 하지 마. 이상한 짓 하지 말고 우리 지금처럼만 가자. 허튼 짓 하지 마. 절대!!]
‘뭐야 이건….’
잠깐 석상에서 손을 떼자마자 들려오지 않는 목소리.
편한 방법 놔두고 어째서 이런 방법으로 접선을 하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살포시 손을 올려놓자 다시금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너 좋아해. 한 번도 배신한다거나 그런 생각은 한 적도 없어. 으응. 그렇고말고. 쓰레기라거나 나쁜 새끼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 우리 사이 좋았잖아. 그러니까 우리 서로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말자. 타락한 신 베니고어. 그거 아니야. 나는 타락한 적도 없고 대륙을 적으로 돌린 적도 없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폭포수처럼 쏟아져 오는 말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참이나 타락한 신 계획에 대해 떠들고 있었던 베니고어가 결론을 이야기 한 것은 바로 직후였다.
[나… 파산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