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3
회귀자 사용설명서 423화
위쪽에서 생긴 문제(6)
“그게 뭐 어때서?”
[아무리 너 같은 쓰레, 아니, 사람이라도 그런 이야기를 듣게 해서는 안 됐는데….]
‘도대체 뭐라는 거야. 아무렇지도 않은데.’
솔직히 아무렇지도 않다.
지구에서도 뭔가 일이 있었고 지구를 관리하는 이들이 우리를 떠넘겼다는 사실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그걸 슬퍼하고 딱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 내 관점에서는 조금 이해하기 힘들었다.
막말로 체감이 오지 않는다.
부모한테 버림받았다고 한다면 눈물깨나 흘릴 만하겠지만 부모님도 아니고 지구한테 버림받았단다.
스케일이 너무 커 어디서부터 슬퍼해야 할지 액션을 잡기가 힘들다는 거다.
‘신은 신인 모양이네.’
인간과 생각하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처음 발광을 떨었을 때와 분위기를 비교해 보면 매우 조용해진 느낌.
내 질문에 진지한 대답을 하는 것을 보니 눈앞에 있는 여신상이 조금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천천히 생각에 빠져 있었을 때 다시 한번 베니고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한다면 다행이지만…. 아무튼 그렇게 됐어. 우, 우리 입장에서는 조금 슬픈 이야기거든.]
“난민이라도 받아준 거라고 보면 되는 거네. 음… 고마워하면 되는 거지?”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니까.]
“음…. 그럼 네 말은 지금 지구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건가?”
[그곳은 항상 문제가 있었어. 이곳도 마찬가지지만…. 뭔가 평소와 다른 문제가 생겼다고 묻는 거라면 정답. 하지만 자세한 상황은 이야기해 줄 수 없어. 애초에 그곳은 내 관할도 아니니까. 게다가 그곳은 자신들을 감추고 하고 싶어 하거든….]
“흠….”
[음…. 잠깐만. 네 여동생을 걱정하는 거라면 안심해도 돼. 오히려….]
율하야 남극에 혼자 떨어뜨려놔도 살아남을 성격이니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아니. 율하 이야기는 됐어.”
[그럼 질문은 여기에서 끝이야?]
“하나 더 있는데.”
[뭔데?]
“김현성. 이것도 보안이야?”
[일부는 보안. 내가 모르는 부분도 있고. 하지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부분은 있어. 정확히 뭐가 궁금한 거야? 1회 차?]
“김현성이 회귀한 이유. 그리고 김현성을 회귀시킨 알타누스라는 건 도대체 뭔지.”
사실상 메인이라고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가장 궁금했던 이야기니까.
잠깐 동안 조용해진 것을 보자 이것 역시 말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는 모양.
천천히 여신상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자 한참이 지나서야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귀한 이유는 알타누스가 그걸 원했기 때문.]
“…….”
[알타누스는 우리와 같은 신이자 관리자야. 그리고 김현성의 담당자이기도 했고.]
“예상대로네. 알타누스는 어디에 있지? 내가 만날 수 있는 건가?”
[아니. 불가능해.]
“왜?”
[알타누스는 이제 없거든.]
“아….”
[그녀는 죽었어. 아니, 소멸했다는 표현이 조금 더 어울리겠네. 시간을 되돌린 대가를 치른 거지. 하지만 그 의지는 우리가 이어받고 있어.]
‘역시 그런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강제 퀘스트를 돌리고 직업을 내리는 것 또한 신성이 든다.
만약 회귀 같은 비상식적이고 말도 안 되는 기적을 실행한다고 했을 때 얼마큼의 신성이 들지에 대해서는 가히 상상도 할 수 없으리라.
단순히 하늘 아래에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니라 시간 자체를 완전히 되돌려 버린 거니까.
아마 알타누스는 베니고어보다 상위 신일 가능성이 크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다.
여신상 안에 자신의 일부를 숨기고 있는 베니고어가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쯧.’
[알타누스는 그 남자를 사랑했어. 그리고… 그의 삶에 공감하기도 했고. 수많은 고민 끝에 자신을 희생해서 다시 한번 이 모든 걸 되돌리겠다고 생각한 거야. 물론 그때의 나는 그녀를 말렸던 것 같지만… 나는 그녀를 존중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신은 아마 없을 거야. 그 감정은 우리 사이에서 통용되는 가치거든.]
“1회 차가 어땠는지는 이야기해 줄 수 있어?”
[이미 대충 알고 있잖아. 카스가노 유노라는 특별한 인간을 통해서. 나도 자세히는 몰라.]
“너희도 1회 차를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모든 걸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알타누스의 의지는 기억하고 있지.]
“나는 그 알타누스의 의지가 뭔지도 개뿔 몰라, 이 양반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카스가노 유노도 볼 수 있는 검은색 세계를 너희가 보지 못한다고?”
[인간의 가능성을 우습게 보지 마. 그녀는 특별해. 정하얀이라는 인간과 차희라라는 인간도 마찬가지고. 인간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해. 당장 너만 해도 그 마음의 눈이라는 건… 아니, 아니다. 물론 우리 중에서도 네가 말하는 검은색 세계를 볼 수 있는 이들은 존재하지만 그것 역시 제한이 존재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차원을 관리하는 건 훨씬 복잡하고 어려워. 만약 우리가 정말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다면 알타누스가 김현성을 회귀시킨 일도 없었을 거야.]
“가능성?”
[그래. 가능성. 알타누스도 그걸 본 거겠지.]
“너희도 완벽하지는 않구나.”
[맞아. 완벽하지 않지. 그걸 잘 기억해. 나의 자랑스러운 이기영 명예추기경. 우리도 완벽하지 않아. 불완전하지. 대륙 위에 있는 이들과 서있는 위치가 다를 뿐,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아. 너는 그걸 잘 기억해야 해. 우리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그렇게 강조할 필요는 없는데. 그건 너만 봐도 알 것 같고. 그보다 질문 하나를 애매하게 피해간 것 같은데. 베니고어 여신님, 내가 궁금한 건 김현성이 회귀한 이유야. 알타누스의 의지라는 대답이 듣고 싶은 것이 아니라. 정확히 어떤 위협이 있었고 무엇 때문에 회귀했는지야. 까놓고 말하면 실패한 이유야.”
[그건 보안에 걸려 있지 않아. 하지만 이야기해 줄 수 없어. 카스가노 유노, 혹은 김현성을 통해 듣거나 보는 게 좋을 거야. 한 가지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네 생각이 맞다는 거야.]
“뭐?”
[위협은 존재해. 김현성이 대비하고 있는 건 그 위협이야. 그리고 이, 인정하기는 싫지만 너, 너는 지금까지… 자, 잘해주고 있고….]
“으음. 역시 그랬네. 칭찬은 고맙게 받을게. 그런데… 생각보다 별로 들은 게 없는 것 같은 기분인데….”
[어, 어쩔 수 없어. 정말로 어쩔 수 없다고…. 나라고 말해주기 싫은 줄 알아? 나도 좀 편해지고 싶다고!]
“아, 하나만 더 물어볼게.”
[끄으윽. 끄으으윽. 궁금한 게 많네. 이제 나도….]
“그게 당연한 거지. 영문도 모르고 끌려와서 영문도 모르는 일에 휘말렸는데 너 같으면 안 그러겠어? 아무튼 질문 간다. 우리는… 음… 지구로 되돌아갈 수 있는 건가?”
[되돌아가고 싶어?]
“아니 별로.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거야.”
[불가. 너희는 이제 이곳의 주민이야. 다른 곳으로는 갈 수 없어.]
“막상 대놓고 들으니까 조금 섭섭하긴 하네.”
물론 딱 그 정도다.
애착이 없냐고 하면 거짓말.
하지만 이미 일이 벌어진 거 뭐 어쩌겠는가.
대놓고 지구로 되돌려 달라고 생 때를 쓸 수도 없다.
전부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지구는 우리를 내쳤고 베니고어를 비롯한 이들이 우리를 받아준 것 같으니까.
슬쩍 여신상을 올려다보니 아직까지도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베니고어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이,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야. 징조 같은 거라…. 나도 누, 눈물은 그쳤다고.]
“무슨 징조? 대륙의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징조?”
[비… 슷해.]
‘슈바.’
“아무튼 신성을 회복하면 모든 게 정상으로 되돌아온다는 거지?”
[기본적으로는 맞아. 아, 아무튼 이번에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아. 말해봐. 뭔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심각해?”
[조금 심각한 이야기야.]
‘도대체 뭐야.’
뭔가 걱정하고 있는 말투.
하지만 이후의 목소리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기 시작했다.
[호, 혹시 말이야. 알 수 없는 이유로 퀘스트 생성이 중지됩니다. 라는 거… 들은 적 없어?]
“뭐? 들어본 것 같은데….”
[그, 그거에 관련된 이야기야.]
“네가 이 모양이니 당연히 생성이 중지되는 거 아니야? 그건… 아니… 시발….”
[미, 미안해. 나의….]
“지, 지랄하지 마. 시발.”
순간적으로 입술을 꽉 깨문 것은 당연지사.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튀어나올 정도였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추론 가능한 이야기다.
신성이 없어서 퀘스트를 내릴 수가 없단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어차피 대충은 예상했던 이야기였으니까.
문제는 현재 저 상태를 겪고 있는 게 베니고어뿐만이 아니라는 것.
다른 이의 경우에는 쟤보다는 상황이 좋기야 하겠지만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다.
모두 다 가라앉고 있는 배에 탑승한 한 가족이라는 거다.
불안감에 입술을 깨물었을 때 다시 한번 베니고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일단 직업이나 튜토리얼 던전 같은 최소한의 시스템은 유지되겠지만… 전설 등급의 던전과 일부 영웅 등급의 던전도… 막힐 거야. 그, 그리고 잠들어 있던 레이드 몬스터들도 전부 보, 봉인될 거고….]
“그건 왜 막아? 그건 왜 막냐고… 그건 왜 막냐고….”
[일부 던전은 위험하니까. 박물관 같은 경우를 생각해 봐. 그, 그러니까 그런 종류의 던전들은… 너희 말로는 모니터링하는 신들이 꼭 필요해. 우리가 던전화시켜 놓은 곳도 존재하지만 그렇지 않고 자연적으로, 혹은 균열 때문에 생긴 곳도 많거든. 들어간 인간도 위험해질뿐더러 만약 공략에 실패하거나 문제가 생긴다면 수습이 불가능해지니까. 우리도 막긴 싫지만 이건 해야 하는 일이라….]
‘시발….’
문제가 조금 더 심각해졌다.
현재 상황을 보자면 더욱더 그렇다. 인류가 하나로 힘을 모은 것은 아주아주 박수를 치고 싶은 이야기.
하지만 그게 끝이라면 최악으로 치닫는 것은 마찬가지다.
얘들은 치고받으면서 강해진다.
그건 부정할 여지가 없다.
1회 차에 인간 전력이 그나마 강해질 수 있었던 것도 서로 치고 받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를 깎아냈던 그 시절에 멍청함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다.
그 갈등으로 인해 발전할 수 있었다는 걸 이야기 하는 거다.
김현성이 대비하고 있던 위협이 실존한단다. 예상하고 있지만 베니고어에게 이걸 막 들은 타이밍이다.
‘던전을 막아 놓을 수밖에 없다고?’
성장하는 길이 막히는 거나 다름이 없다.
특히나 특수 인력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 들락날락거리는 영웅 등급과 전설 등급의 던전.
이딴 걸 막아 놓았을 때의 혼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터.
심지어 레이드 몬스터까지 막아놓는다면 사태는 더욱더 심각해진다.
몬스터 사체로 생산하는 모든 가공 공장이 문을 닫을 거고 남아도는 인력은 길거리를 돌아다니게 될 것이다.
무력뿐만이 아니라 경제에도 커다란 타격을 받는다 봐도 무방하다는 거다.
던전이 있기 때문에 보급품이 팔린다.
던전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돈을 버는 이들이 생기고 쓰는 이들이 생긴다.
이미 자리 잡은 이 시스템은 이미 너무 깊숙한 곳에 들어와 자리 잡아 버렸다.
조금 과장한 비유지만 현대 사회에 석유가 없어진 거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라는 거다.
‘완전 개털 되겠는데 이거….’
물론 메이드 바이 이기영 포션의 판매량 또한 바닥을 칠 것이다.
‘기영코인 떡락.’
“제기랄….”
‘기영코인 떡락!!’
“제길.”
‘거울 호수 가즈아!!!’
과장된 반응이기는 하지만 상상하기도 싫은 상황이 자꾸만 연상된 것은 당연지사.
혼란스러운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한번 이쪽의 속을 긁는 베니고어에게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 그리고… 당분간 전 대륙에 퀘스트 생성이 중지될 거야. 어, 언제 재개될지는 잘 몰라….]
“…….”
[…….]
“야 이 미친 트롤러년아!!!!!”
진심을 담은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