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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25화 (424/1,590)

# 425

회귀자 사용설명서 425화

승자와 패자(1)

디테일한 부분을 수정하긴 해야겠지만 기본적인 틀 정도는 안고 가도 상관없다.

고민해 볼 부분이 존재하지만 대략적인 기틀은 잡은 상태.

이지혜와 사랑스러운 내 아들, 박물관 관리인 막스가 마지막으로 점검을 했던 게 몇 달 전이었으니 베니고어의 멍청한 짓거리가 대륙에 영향을 주기 전에는 충분히 오픈 준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긴 것은 당연지사.

천천히 문을 열자 불안한 얼굴로 서성이던 이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모이는 게 느껴졌다.

가장 처음에 들어온 얼굴은 역시나 바젤 교황.

제이나 대주교와 헬레나 이단심문관도 함께 위치해 있었는데, 그 둘을 제치고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내 손을 잡는 모습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게 만들 정도였다.

물론 지금은 기분이 좋으니 어느 정도는 받아줄 수 있다.

“명예추기경! 어떻게. 베니고어 여신님의 목소리는… 들었는가?”

‘네, 들었습니다. 그 멍청한 년이 아주 여기 전부 다 말아먹으려고 작정했습니다. 베니고어를 믿지 마세요, 교황님.’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 리 만무. 일반적인 이야기를 꺼내도 상관없으리라.

“네. 확실히 들었습니다. 실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어렴풋이 그분과 교감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게 참인가?”

“네. 사실… 저로서도 이런 방식으로 신탁을 받게 된 것은 처음인지라,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바젤 교황님.”

“아니, 아닐세. 여신님과 함께한 시간이 아닌가. 그보다 뭐라…. 뭐라고 하시던가? 건강하시던가?”

“사실….”

“안 좋은 소식인가 보군.”

“네. 좋은 소식은 아닙니다.”

“허… 허…. 여신님께 무슨 일이 생겼다, 이 말인가?”

“하지만… 걱정하실 정도는 아니기도 합니다. 여신님은 아직 무사하십니다. 하지만 이걸 시작으로 대륙 곳곳에 이상 현상이 생길 수 있음에 대한 경고를 해주셨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베니고어 님을 비롯한 대륙의 신들께서 현재 무척 약해진 상태라고 들었습니다. 바젤 교황님이라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그 이유는… 대륙 곳곳에 뿌리내린 악마의 세력이 대륙의 정기를 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악마의 하수인들은 대륙 곳곳에 자리를 잡고 신성한 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 이… 쳐 죽일 놈들….”

부들부들 떨며 경련을 일으키는 바젤 교황을 보니 어느 정도 이야기가 맞아 떨어지면 당장에라도 신성기사단을 이끌고 돌진할 것처럼 느껴졌다.

‘나쁘지 않은데?’

바젤 교황이 나를 신뢰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 일전의 여신강림 사건이 결정적이었던 모양.

‘이상하지는 않지.’

베니고어 여신이 직접 내 몸에 들어와 빛기영과 소통하고 있다는 걸 몸소 증명했다.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는 걸 믿지 못하는 게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리라.

‘이것도 써먹을 수 있겠어.’

생각해 보니 박물관을 급하게 움직일 필요도 없다.

대부분의 던전이 막히기는 했지만 대륙에 영웅 등급의 던전과 전설 등급의 던전은 많다.

악마 관계자들이 똬리를 틀고 있는 장소가 모조리 던전.

시스템상으로는 던전 판정을 받지 못한 곳이기는 하지만 뭐 어떤가.

인간을, 아니, 악마를 죽여도 경험치는 오른다.

보상과 경험치, 아이템과 명성, 악마관계자 메디리브가 거주하고 있는 악마의 첨탑은 전설 등급의 던전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들어갈 수 있는 인원도 한정되어 있고 군대가 아니라 파티 단위로 움직여야 하는 장소다.

그 외 수많은 악마 관계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던전 역시 마찬가지.

하루에 수십, 아니, 수백 개의 던전을 만들 수도 있는 게 현 대륙의 상황.

인류가 하나가 되는 걸 방해하는 잡놈들은 모조리 악마새끼들이다.

심지어 각자가 모시고 있는 신들을 위해 싸우는 성전이기도 하니 신성 역시 얻을 수 있는 것은 당연지사.

이 정도라면 베니고어를 비롯한 다른 신들 역시 발 뻗고 편하게 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키야…. 완벽하다. 완벽해. 베니고어야, 이게 운영이다.’

조금 애매한 부분도 확실히 존재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이야 이후에 끼워 맞춰버리면 그만이라는 거다.

잠시 바젤 교황을 바라보고 있었을 때 다시 한번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이 뿌리를 내린 곳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는가. 이기영 명예추기경.”

“확실하게는… 듣지 못했습니다만 꼬리를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젤 교황님.”

“든든하네…. 든든하구만. 과연 이기영 명예추기경이야. 이기영 명예추기경이야말로 진정으로 베니고어 여신께서 내려주신 사자일세. 수많은 전장을 발로 뛰어다니고 수많은 위협과 함께하면서도 이렇게 버젓이 서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뭐겠는가. 이기영 명예추기경이 아니었다면 교단도 지금처럼 왕성하게 성장하지는 못했을 게야. 명예추기경에게는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하고 있네. 자네 같은 사람이 여신님의 곁에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야. 참으로….”

“아닙니다, 바젤 교황님. 오히려 베니고어 여신님은….”

“…….”

“베니고어 여신님께서 항상 지켜보고 계시다고,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허….”

이건 베니고어밖에 모르는 바보를 위한 서비스.

단순히 흘리는 말로 한 마디 했을 뿐이었지만 내 손을 맞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 이후에 보인 모습은 더더욱 가관.

“그, 그게 참인가.”

“예.”

주책없게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다 늙은 할아버지가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은 확실히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비록 거짓말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이런 서비스를 해주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여신이시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베니고어 여신이시여.”

“…….”

“베니고어 여신님만을 섬기던 내 지난 세월은 결코 틀리지 않았던 게야.”

“예. 아마… 전부터 쭈욱 지켜보고 계셨을 겁니다. 그분은 항상 저희와 함께하시니까요.”

물론 정말로 보고 있었을지는 모르겠지만 바젤 교황이 기분이 좋다면 그걸로 됐다.

뒤에 병풍처럼 서 있는 다른 갤러리들 역시 이 훈훈한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아마 교단의 고위 인력들은 나보다 더 기분이 좋으리라.

그동안 바젤 교황의 분노를 받아내느라 힘들었을 것이 분명.

그의 기분을 풀어준 나에게 감사의 눈빛까지 보내는 녀석도 있을 정도였다.

“머, 먼저 들어가겠네. 명예추기경.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오늘은 하루 종일 여신님께 기도를 올려야겠어.”

“잘 생각하셨습니다, 교황님.”

“그리고 대륙에 뿌리내린 더러운 악마 하수인들의 소재가 파악되는 즉시 교단 측에 알려줄 수 있도록 해주게나. 직접 신성기사단을 보낼 터이니.”

“예.”

“감히 여신님을 해하려고 들어? 이단심문관 헬레나.”

“네.”

“헬레나 심문관은 오늘 악마 소환사 진청에게서 대륙에 퍼져 있는 다른 끄나풀에 대한 심문을 시작하게. 한 시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네. 교황 성하.”

‘아. 진청 새끼 오늘 이거… 힘들어지겠네.’

진청이 고통 받는 것까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재판이 얼마 남지 않아 비교적 몸이 편할 타이밍이었건만 뜻밖의 모진 고문을 받게 될 녀석에게는 잠깐 동안 묵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로서도 기왕이면 진청의 입에서 악마들의 소재지가 나오는 게 편하기는 하다.

언제 한번 접선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하리라.

비교적 귀찮은 협상 과정이 있기야 하겠지만 뭐, 어떤가.

누가 강자고 누가 약자인지는 이미 정해져 있는 상태.

이쪽이 뭔가를 제안하면 저쪽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했으니까.’

기왕 하는 거 지금 들려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제가 직접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젤 교황님.”

“그렇게 해주겠는가?”

“예. 저 역시 베니고어 여신님이 걱정되어 참을 수 없습니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를 한번 설득해 보겠습니다.”

“이기영 명예추기경이 그리 말해준다면 든든하지. 아암!”

“여신님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자네만 믿겠네.”

‘그래. 나도 너만 믿는다.’

한차례 포옹을 한 이후에 멀어지는 바젤교황의 모습을 보자 괜스레 입꼬리가 올라갔다.

드디어 일이 끝났다는 걸 깨닫자, 적당히 거리를 두며 서성거렸던 정하얀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왔다.

조혜진과 카스가노 유노는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걸러오고 있었고 엘레나는 여전히 눈치를 보고 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데려온 이 전력이 잉여전력이 되어버렸다.

물론 휴가 같은 목적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겠지만 서로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 문제.

희라 누나 역시 빠르게 다가올 줄 알았건만 그녀는 조금 다른 게 궁금한 모양이다.

“자기.”

“응?”

“베니고어의 목소리… 정말로 들은 게 맞아?”

“못 믿겠어?”

“하도 구라를 치고 다니다 보니…. 뭐, 자기 업보지 뭐.”

“…….”

“…….”

“정말이야, 누나. 솔직히 나도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일이 잘 풀렸지. 아마 누나가 궁금할 질문도 내가 전부 했을 것 같은데…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해 줄게. 그보다 중요한 문제도 있거든. 들으면 놀랄걸?”

“뭔데?”

“퀘스트 생성이 당분간 중지될 거야. 전 대륙적으로. 물론 각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직업 관련이나 튜토리얼 던전을 제외한 퀘스트는 없어.”

“농담이지?”

“전설 등급 이상의 던전도 출입이 제한될 거고. 알아보니까 저기 위에 무슨 일이 생긴 게 맞더라고.”

“기분… 좋은 소식은 아니네. 그리고 상당히 신기하기도 하고…. 자기, 정말로 신들이랑 교감하는구나?”

“운이 좋았다니까.”

“아무튼… 상당히 시끄러워지겠는데…. 이거, 해결할 수는 있는 거야? 아니 그전에 그 당분간이라는 시간이 어느 정도야?”

“삼 년. 물론 줄이려고 하면 줄일 수도 있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는 대충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어. 진청한테 가보는 이유도 바로 그거고. 원래 그 얼굴을 별로 보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렇게 또 보게 되네.”

“흐음.”

“저, 저는 그 사람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나도 마찬가지야, 하얀아. 근데 어쩌겠어. 필요한데. 아, 그리고 여기서부터는 따라올 필요 없어. 다들 적당한 곳에서 쉬고 있어주면 될 것 같아. 일 끝나고 저녁이나 같이 먹자.”

“그렇게 하지. 뭐, 안 그래도 나도 수도에 볼일이 있었거든.”

“네….”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잠깐 대화나 나누러 가는 거니까요.”

정하얀이 자기도 데려가 달라는 듯 눈빛으로 호소해 왔지만 한 명을 데려가면 모두를 데려가야 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시간도 얼마 걸리지 않을 만큼 깔끔하게 혼자만 왔다 갔다 해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잘 지내고 있으려나….’

사실 조금 늦기는 했다.

감옥에 쳐 넣은 이후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으니까.

‘이 새끼도 참 명줄이 길단 말이야.’

교단 내에 위치한 지하 심문실로 발걸음을 옮기자 곧바로 어둡고 축축한 실내가 나를 반겼다.

빛기영과는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다는 건 언급할 필요도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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