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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32화 (431/1,590)

# 432

회귀자 사용설명서 432화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저 세계 생활(1)

기력이 쇠약해 죽는다는 게 어떤 건지 잘 알 것 같다.

삼 일 동안 내리 잠만 자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 당연.

수차례 위기에도 불구하고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았던 템플러가 이번에 나를 찾아온 것을 생각해 보면 이게 단순 코미디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차희라까지는 버틸 수 있지만 그 이후에 벌어진 엘레나의 죄책감 넘치는 도둑질은 빛기영의 몸을 완전히 아작 내버렸다.

콧노래를 부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는 이지혜는 오랜만에 기분이 좋은지 리듬까지 타고 있는 상황.

홍조가 띈 얼굴과 땀으로 촉촉한 얼굴이 묘하게 섹시하게 느껴졌다.

물론 2회 차를 시작할 여력은 없다. 악마의 저주를 받은 몸이 이러할까.

벌써 몇 차례 포션을 들이켰음에도 불구하고 몸을 움직이기가 힘들다.

최소 준신화 등급의 쇠약 저주를 아무런 아티팩트 없이 몸으로 때려 맞은 것 같은 느낌.

농담이 아니라 정말 이 예가 딱 들어맞는 것만 같았다.

“삼 일 동안 꼼짝 없이 잠들어 있었다고?”

“네. 몸이 너무 피곤해서 그렇다고 하던데…. 전문가들은 크게 이상은 없다더라고요. 포션을 수액으로 내보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요. 오빠가 만든 물약 말고도 세계수의 어쩌고 하는 것도 동시에 들어가고 있으니 이번 기회에 건강하나는 제대로 챙기셨을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다. 지혜야.’

“템플러도 한 번 둘러본 이후에는 뭔가 착각이 있었던 것 같다고 중얼거리고 밖으로 나갔어요. 그 이후에도 내리 잠만 잔 건 조금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만큼 몸이 피곤했잖아요? 정신적으로도 많이 힘들었고. 근데 표정이 왜 그래요? 이상해요? 사제라도 불러올까요?”

“아니. 아직도 피곤해서. 미치겠네…. 세계수의 어쩌고 맞은 거 맞아? 잠만 잤는데 뭐가 이렇게 힘들지. 정말로 몸이 병신이 된 건가. 누가 나한테 에너지 드레인 같은 마법 걸고 간 거 아니지?”

“슬슬 나이 먹는 거죠. 뭐, 오늘 보니까 아직 팔팔한 것 같지만. 아니면 내가 그만큼 매력적이었던가.”

“…….”

“우리 궁합 좋잖아요. 안 그래요?”

이지혜의 쓸데없는 소리에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는 손으로 괜스레 침대 옆 책상을 더듬거리자 곧바로 무엇인가가 툭하고 떨어져 내렸다.

[면회자 명단]

[이지혜] AM 08:43-AM 09:50

[차희라] AM 11:00-AM 12:14

[정하얀] PM 15:03-PM 15:10

[엘레나] PM 18:05-PM 20:02

[차희라] PM 22:23-PM 23:03

[차희라] AM 05:02-AM 06:04

[이지혜] AM 08:23-AM 09:10

[정하얀] AM 09:21-AM 09:29

[정하얀] AM 10:55-AM 11:05

[정하얀] PM 12:11-PM 12:22

[정하얀] PM 15:42-PM 15:52

[엘레나] PM 18:05-PM 20:02

[#   #   #   #   #   #]

‘이건 또 뭐야.’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나올 지경.

면회를 주기적으로 와줘서 정말로 고마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걸 금방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나를 이렇게 생각해 주니까 정말로 눈물이 나오네?’

그래도 개인적인 시간과 쉴 수 있는 시간은 필요하다 생각했는지 중간 중간 여유를 준 것도 눈에 띈다.

정하얀의 용무는 굉장히 빨리 끝나는지 조루인 양 10분 간격으로 단타를 치고 있었고 차희라는 1시간, 엘레나의 이름은 많이 보이지는 않지만 규칙적인 성격에 걸맞게 연속이나 같은 시간에 들어와 2시간을 채우고 돌아가셨다.

심지어 눈앞에 있는 이지혜 역시 단골. 유기적으로 시간을 조정해 들렸다 간 것이 그녀의 성격을 잘 표현해 주는 것 같다.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자 괜스레 헛기침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중간중간 다른 이들의 모습도 보이기는 했지만 삼 일 동안의 면회 내역은 거의 다 이 사인방.

그만큼 나를 생각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절로 감사의 눈물이 흘러나온다.

혹시나 무언가 엄한 짓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아니. 그럴 리가 없겠지.’

아무리 이 사람들의 정신이 이상해도 나름 환자인 내게 그런 돌발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괜스레 고개를 흔들 수밖에 없었다.

마음을 가다듬은 이후에는 아무 말 없이 포션 한 병을 까 목구멍으로 들이밀기 시작.

다시 한번 생명수와도 같은 녀석이 안쪽으로 쏟아져 내리는 걸 느꼈다.

‘내가 이러려고 연금술사를 선택 했나. 자괴감 들어.’

“포션 엄청 많이 마시네요.”

“피로회복제 비슷한 거야. 원기회복겸. 진짜로 몸이 쇠약해진 게 느껴지거든.”

“많이 달려오기도 했으니까요. 솔직히 조금 쉴 때도 됐잖아요? 몸이 정상이 아닌 게 이상한 거죠. 그래도 별문제는 없다는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다행이네.”

“그래도 며칠간은 무리하지 말라는 지령이 떨어질 거예요. 오빠 몸이 어디 홀몸인가요. 그 삼 일 사이에 교국, 아니, 대륙도 난리가 났었고…. 아, 이건 이미 오빠가 알고 있는 내용이려나?”

“퀘스트가 없어졌다는 거? 추가로 던전도 사라지고. 그거 내가 가장 처음 들은 게 맞아.”

“으음. 바젤 교황 말이 맞았네요. 본래는 오빠가 발표했어야 되는 것 같았는데 아시다시피 병상에 누워 있던 관계로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요. 바젤 교황이 직접 대륙에 그 뜻을 전파하셨어요.”

“잘하셨네. 대중들 반응은 어때?”

“어떨 것 같아요?”

“으음.”

“그야말로 난리였죠. 뭐, 안 나는 게 이상하지. 그동안 대륙을 유지해온 시스템을 한꺼번에 뒤집혀 버렸으니까요. 그나마 이방인들이 할 일이 있어서 다행이었죠. 잘 아시겠지만 악마 소환사 진청이 대륙의 퍼져있는 악마관계자들에 대해 증언했잖아요? 덕분에 모험자 길드에서는 뿔뿔이 흩어진 악마의 던전을 향해 원정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고. 그리고… 균열 랜드도 있으니까요.”

“그건 아직….”

“이제 오픈 앞두고 있어요, 오빠.”

“뭐? 그게 완성이 됐다고?”

“오빠 기절한 날 차희라 님이 직접 찾아와서 말해줬거든요. 이거 지금 진행해야 된다고. 오빠가 대충 그림을 어떻게 그릴지 예상이 돼서 그냥 진행시켰는데, 이거 괜찮은 거 맞죠? 김미영 팀장님이 많이 도와줬고요. 아, 그 사람 능력 좋더라고요.”

“아끼는 인재지. 연봉이나 더 올려줘야겠네.”

“그렇게 해주세요. 기왕이면 포상금도 두둑하게 넣어서. 자금은 파란에서 30%, 붉은 용병에서 60% 대줬고요. 검은 백조에서 5%, 카스가노 유노가 따로 5% 정도…. 자잘한 건 전부 제한한 이후에 말씀드리는 거예요. 드워프랑 막스 그리고 린델 내 마법사들과 인력 노동자들을 활용해서 유통망 설치하고 최소한의 것만 올렸어요. 사실 시간이 없어 상권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수준이긴 해요. 직접 가셔서 체험해 본다면 더 좋으실 걸요.”

“빠르면 좋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건 너무 빠른데?”

“딱 모양만 갖춰진 정도예요. 원래부터 막스가 계속해서 준비는 하고 있었으니까요. 외부적인 부분은 가다듬을 게 많지만 막상 박물관 안쪽은 아무 이상 없어요.”

‘그럴 만하지.’

이제야 실체가 드러났을 뿐인지 하루 이틀 준비한 게 아니었으니까. 이지혜를 바라보자 괜스레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 네가 혜자다. 역시 우리는 영혼의 단짝이 맞아.’

어떻게 이렇게 가려운 곳을 벅벅 긁어주는지 알 수가 없을 지경.

다시 한번 그녀가 사랑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다시금 이지혜가 입을 열어온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만족한다는 표정이네요.”

“그렇지. 고마워, 누나.”

“그럼 저도 이제 받아도 되는 거 맞죠?”

“어?”

“차희라 손가락이랑 정하얀 손가락에 있었던 인X니티 스톤… 아니, 그 반지요. 저도 줘요. 세 번째라는 게 짜증 나기는 하지만 나도 충분히 자격 있으니까. 평소에는 안 끼고 다닐 테니까 안심하고.”

“아. 응….”

딱히 안 된다고 하기에도 말하기 힘든 타이밍이다.

‘안 줄 이유도 없고.’

애초 이지혜가 지금까지 해준 걸 생각하면 충분히 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상태라 모양은 나지 않았지만 커다란 노란색 보석이 박힌 반지를 꺼내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 넣기 시작.

무표정으로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던 이지혜였지만 막상 손가락에 자리한 모습을 보자 기분이 좋았는지 쿡쿡 웃어댔다.

“일어나실 수 있으시면 식사라도 하러가죠.”

“못 일어날 정도는 아니야. 그런데 누나는 계속 여기 있었어?”

“균열 랜드 오픈 준비로 바빠서 계속 바빴으니까요. 저희 길드로 못 돌아 간지도 꽤나 됐네요. 누가 보면 파란 길드인 줄 알겠네.”

“음….”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키자 의외로 제 기능을 하는 신체가 놀랍게 느껴졌다.

막상 걸으니 건강한 것만 같은 기분.

밖으로 나서자 나를 바라보고 인사를 해오는 이들까지 시야에 비친다.

대부분 깜작 놀랐다는 표정으로 다가와 허겁지겁 이것저것을 챙겨주기는 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당연 엘레나.

이쪽으로 쉽사리 오지 못한 채 먼발치에서 자꾸만 주저하는 모습.

재미있게도 얼굴에는 지독할 정도의 죄책감이 서려 있다.

‘쟤는 진짜 뭔 짓을 했길래 저래?’

고개를 푹 숙이는 것은 물론 귀를 붉히고 있는 모습은 평소의 그녀의 모습과는 약간 다르게 느껴진다.

현재의 몸 상태에 대한 이야기라도 나눠보려고 했건만 일단 후다닥 반대쪽으로 뛰어가는 모습에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이상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딨지?’

“파란 길드원들은 다 어디 갔어?”

“어디 갔겠어요. 박물관 가 있지. 말했잖아요. 마무리 준비 중이라고. 덕구 오빠도 이틀 전에 깨어나서 바로 합류했고. 붉은 용병 단원들도 아마 많을 거예요. 사실 오늘 아침에 떠난 거였는데, 아쉽게 됐네요.”

“홍보는 때리고 있고?”

“네. 계속해서요. 어차피 사라진 던전의 대체재라 먹힐 수밖에 없어요. 뭐, 이건 오빠가 더 잘 알고 있겠지만….”

식당에 도착하자 간단한 요깃거리를 내놓은 채 우물거리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설계도면이라 할 것도 없지만 도면은 한번 봐주시면 될 것 같고….”

나 역시 숟가락을 움직인 뒤에 균열 랜드의 정확한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

‘나쁘지 않은데.’

김미영 팀장과 이지혜의 합작이라면 충분히 믿을 만한 느낌.

자세한 건 직접 체험해 봐야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현재의 시장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지는 예상할 수 없었지만 기본적인 구성은 박수를 보낼 만하다.

‘생각한 그대로야.’

전형적으로 서민 등골 빼먹는 구조다.

“굳이 볼 필요도 없을 것 같은데….”

“아뇨. 봐야 해요. 오빠 의견을 반영한 게 아니니까. 아니면 직접 체험해 보는 게 나으려나?”

“방법이 있어?”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질문이에요? 오빠가 관리하고 있는 곳이잖아요? 그냥 들어가기엔 조금 그렇기는 한 데. 이참에 한번 변장이라도 하고 서민체험 해봐요. 기분 전환도 할 겸. 초급자 코스, 중급자 코스, 상급자 코스로 나뉘어져 있으니까요. 등급으로는 희귀, 영웅, 전설.”

“그게 좋으려나….”

몸이 찌뿌둥하기도 하고 딱히 바쁜 타이밍도 아니다.

린델에 온 뒤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낼 거라고 예상했건만, 주변 인물들의 캐리에 의해 균열 랜드의 오픈을 앞두고 있는 상황.

무엇보다 현재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조금 벗어나고 싶은 타이밍이다.

‘던전에 들어가는 게 차라리 덜 위험할 거야.’

목구멍으로 다시금 피로회복 포션을 밀어 넣으며 비슷한 생각을 해버렸다.

“그렇게 하는 게 좋겠는데.”

“진심이에요?”

“물론.”

“그냥 한 번 던진 소리였는데, 이상하게 받아버렸네요. 그럼… 어떻게 파티는 따로 준비를 할까요?”

“아니. 그럴 필요 없어. 광장에 파티 많은데, 뭐. 내가 직접 구해서 가지.”

균열 랜드가 얼마나 일반인들의 고혈을 빨아먹을 수 있는지는 서민의 시선으로 봐야 비로소 정확하게 느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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