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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36화 (435/1,590)

# 436

회귀자 사용설명서 436화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저 세계 생활(5)

“아으. 하아.”

“…….”

“하아. 하아. 하으윽.”

“…….”

“하읏으으으읏.”

“…….”

‘하….’

이기연이라는 여자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같은 여자가 들어도 얼굴이 붉어질 정도였다.

기가 차서 한마디 하려고 했지만 예의 있게 행동하라는 철우 오빠의 엄포를 들은 이후라 쉽사리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덕분에 흘러나오려는 욕을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보고만 있으니까 진짜 가지가지 하네. 진짜 미친 거 아냐? 저거 일부러 그러는 거 맞지?’

100%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던 게 사실.

혹시 하는 생각은 해봤지만 역시나 예상이 맞았다.

얼굴은 화장으로 떡칠하고 명품 가방을 든 채 근처에 서 있었던 것을 보면 무조건이다.

물론 본인은 화장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분명히 했어.’

했어야 했다.

‘어딜 구라를 쳐?’

남자들이 보기에는 모르겠지만 같은 여자의 눈은 못 속인다.

원정 준비보다 이성에게 잘 보이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틀림없다. 아니, 차라리 그런 타입이면 양반.

단순히 여우짓을 한다거나 은근슬쩍 얄미운 짓을 한다면 그나마 참을 수 있었으리라.

저런 타입이 어떤 타입인지는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흔하지는 않지만 린델에서는 생각보다 저런 종류의 여자를 많이 찾아볼 수 있었으니까.

‘싸구려 같은 년. 아니, 같은 게 아니지. 싸구려니까.’

그 말 그대로. 다른 표현이 필요 있을 리가 없다.

‘3년 차에 영웅 등급에 진입해? 그게 말이 돼? 지가 무슨 파란 길드 정하얀 후계자야?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왜 오퍼를 받지 못하고 있을까아?’

거짓을 추궁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치를 속일 정도로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을 테니 아마 영웅 등급에 진입하긴 했을 것이 분명하다.

스탯과 직업만.

문제는 그녀가 영웅 등급을 진입한 방법에 있다.

전투의 흔적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다리와 손. 흉터 하나 없는 몸은 그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아주 잘 말해준다.

심지어 아주 기본적인 지식도 탑재되어 있지 않다.

임시 파티 계약서도 처음 본 듯한 얼굴이었고 마법사가 기본적으로 해줘야 할 일도 모르고 있다.

던전에 들어가기는 했을 것이다.

‘싸워본 적이 없어서 문제시겠죠.’

이쯤 되면 답은 뻔하다.

아무런 재능도 연줄도 없는 여자가 이런 푸시를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이거 스폰이네. 그것도 대형 길드 간부급한테.’

정확히 말하면 스폰을 받았던 여자가 틀림없으리라.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있다.

몸을 바치는 대가로 여러 가지 생활의 편의를 제공받는 것은 물론, 중․소규모 원정에 데리고 나가 억지로 경험치를 먹여 현재의 능력을 얻었을 거라는 건 저 여자의 행동거지만 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동안 미심쩍었던 행동들이 다 설명이 된다.

‘소환마법사는 개뿔.’

1차 직업으로 마법사를 선택하기는 했지만 머리가 딸려 적응하지 못하고 소환수와의 친화력도 별로라 허공에 붕 뜬 케이스.

억지로 경험치를 먹으니 전직은 해야겠고 결국에는 시스템에서도 그 어떤 선택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게 맞다.

몸이 편하니 수박 겉핥기식으로 이것저것 건드려 본 것에 불과.

이름은 번지르르 하지만 직업 고유의 기술은 거의 없을 거라고, 지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딱 보면 척이지.’

심지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도 눈에 그려진다.

‘버려진 게 분명할 테고요?’

자신을 총애해 주던 대형 길드의 간부에게 버림을 받고 거리로 내 몰린 것.

스폰서와 저 여자 사이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와중에도 아득바득 명품 가방은 챙겨 보겠다고 용쓰는 모습은 비굴하기까지 하다.

아마 몸만 덩그러니 거리로 내 몰려 당장 잘 곳과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처한 것이리라.

환락가에 들어가는 대신 선택한 것이 원정이라는 것도 우습다.

처음부터 저 여자는 원정 따위 관심도 없었다.

관심이 있는 건 괜찮은 남자를 물어 적당히 자리를 잡는 것.

철우 오빠나 태건이 오빠를 물어보려는 거다.

행동거지를 보면 더욱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조금 도와드려도 되겠습니까?”

멍청이.

“하아. 흐으응. 네? 네? 그래도 될까요? 너무 민폐 끼치는 것 같아서….”

“이런 행군이 익숙해 보이시지는 않으셔서 안 그래도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짐은 이쪽으로 주셔도 됩니다. 굳이 거절하지 않으셔도 되요. 파티원끼리 돕는 건 당연하니까요.”

“그렇지만… 정말로 이대로 넘겨드리기가 너무 죄송한데….”

“괜찮습니다, 기연 씨.”

“아니, 정말 이러지 않으셔도 돼요, 철우 씨. 염치가 너무 없는 것 같아서….”

‘이러지 않으셔도 된다는데 입은 웃고 계시네요?’

“공략 중에 쓰러지는 것보다는 오히려 이게 더 낫습니다. 기연 씨는 체력에 신경 써주세요.”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감사합니다, 철우 씨. 그 호의 감사하게 받아들일 게요.”

“그리고 너무…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법사가 체력적으로 힘들어 한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알고 있을 테니까요.”

“네. 배려해 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결국에는 가방을 지는 것은 철우 오빠와 태건 오빠.

이제야 살았다는 듯이 기지개를 쫙 펴는 행동은 굉장히 익숙해 보인다.

그 와중에 샤넬리아 에르메스를 꽉 손에 드는 모습은 가관.

속에서 뭔가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마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것은 나뿐만은 아니리라.

같이 길드에서 생활하고 있는 3인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저 여자….”

“본 적 있어요? 언니?”

“아니. 최소한 우리 숙소 근처에서는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근데 뭐, 안 봐도 뻔하지 않아?”

“네. 뻔하죠. 참… 사람은 역시나 안 변하나 보네요. 쪽팔리지도 않은가? 그렇게 얻은 힘이 자기 힘인 줄 알고 있는 것 같고. 기본도 모르는 주제에….”

“내 말이. 왜 갑자기 여기까지 와서 저 지랄을 하는지 모르겠네. 기존 스폰한테 버려지기라도 했나 봐.”

“적당한 남자 하나 물어서 사모님 행세하려고 하는 거 아니겠어요? 요즘 그걸로 과거세탁 많이들 하잖아요. 어디서 소문은 들었는지 몰라도 우정 클랜에 이철우 김태건 정도면 요즘 주가도 올라가고 있고. 솔직히 오빠들 괜찮잖아요. 직업도 한 명은 전위에 한 명은 사제고. 대형 길드를 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사람들. 미래가 유망하다고요. 저거 꽃뱀이 공사 치고 있는 거랑 비슷한 거예요. 완전히 들러붙으려고. 아까 언니랑 만나기 전에도 가관이었어요. 눈웃음 살살 치면서 멋있다, 듬직하다. 이딴 소리가 지껄이고. 속 보이게. 순진한 철우 오빠는 또 그냥 웃더라고요. 사람이 착해도 너무 착해서 탈이지. 어떤 사람이 저런 여자한테 홀라당 벗겨지는지 그동안은 이해가 안 됐었는데 철우 오빠 보니까 너무 이해되는 거 있죠?”

“조금 억울해 보이는 목소리네. 이야기는 해봤니?”

“네. 출발하기 전에 은근슬쩍 이야기 해봤는데… 그렇게는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이상한 의심은 하지 말라고 꾸중까지 들었어요.”

“어머어머. 웬일이니.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이는데. 딱 봐도 엄청 밝히게 생기고 은근히 싼 티 나지 않아? 밤일 하는 애들 중에 저렇게 생긴 애들 널리고 널렸어. 신음 소리 일부러 내는 것 좀 봐. 속이 딱 보이잖아. 요즘에도 저런 게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천박해가지고….”

“더 웃긴 건 뭔지 아세요?”

“뭔데?”

“이번 원정이 잘 풀리면 저 여자 클랜원으로 받는 그림도 생각해 보고 있나 봐요. 말도 안 되죠. 진짜.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정말로 저런 사람이랑 얼굴 맞대고 살 거 생각하면 벌써부터 심각해져요.”

“어머어머. 정말이니? 그건 아니다. 얘.”

“제 말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것 같다니까요.”

“네가 가서 이야기해 보는 건 어때?”

“뭐라고요?”

“그냥 협박 미스무리하게 갈 수도 있고. 선택은 네 몫이지만, 경고 한번 해주는 것 정도는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정말로 저 여자가 스폰 받아서 큰 거라면 무서워서 원정 진행은 할 수 있겠니? 벌벌 떨기 급급할 텐데….”

“그것도 그렇네요. 그, 근데 그러다 중간에 원정 진행 취소되면 어떻게 해요? 철우 오빠, 이번 원정 엄청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그러네. 근데 나는 저 꼴 계속 못 볼 것 같아. 저런 애들 때문에 다른 여자들도 싸잡아 욕먹는 거야. 원정을 할 거면 모험가처럼 행동해야지, 어? 무겁다고 징징거리고 툭하면 티내고. 애초에 이 대륙에서는 여자라고 보호의 대상이 되는 것도 아니잖아? 차희라 님 같은 사람들 봐. 본받지는 못할망정 꼭 저렇게 자기가 여자인 걸 티내고 이용하는 애들이 있다니까? 그래서 문제야. 문제.”

“그러니까요. 짜증 나, 정말.”

조용히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바로 그때였다.

“잠깐 쉬었다 가겠습니다.”

“벌써?”

“네. 아주 조금만요. 제가 조금 힘들어서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미안하다, 태건아.”

“아니야. 마침 나도 조금 쉬고 싶은 참이었는데. 캠프를 차리는 것 까지는 오바인 것 같고, 적당히 자리 잡고 식사라도 합시다. 요깃거리 있으면 그거라도 좀….”

‘정말… 착해서 탈이라니까.’

잠깐 동안 휴식시간을 가지는 이유가 철우 오빠 때문이 아니라는 건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마 이기연인가 뭔가 하는 여자를 배려한 것이 틀림없으리라.

굳이 자신이 힘들다는 걸 어필하면서 그녀를 감싸준 것은 보면 정말로 무골호인인 모양.

조용히 철우 오빠를 바라보자 물을 떠 그 여자에게 건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진짜 바보라니까.’

눈웃음을 살살 치며 물을 받아드는 이기연의 모습도 눈에 잘 들어온다.

심지어 물을 받아들 때 손을 스친 것 같아 보인다.

무척 붉어진 철우 오빠의 얼굴을 보니 거의 확실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

그 다음에 보인 모습은 가관.

“아, 이런….”

“괜찮으십니까?”

저 물컵은 하필이면 왜 저 불여시의 가슴 쪽에 엎질러졌을까?

“자꾸 칠칠치 못한 모습만 보이는 것 같네요. 사실 어젯밤에 조금 피곤한 일이 있어서…. 평소에는 그렇지 않은데…. 정말 죄송해요.”

밤에는 항상 힘드시겠죠.

“그보다 손수건 같은 게 있으면 잠깐 빌려 주시겠어요?”

“네… 아, 알겠습니다.”

“이건 제가 시간 날 때 빨아서 돌려드릴게요. 땀도 닦아도 괜찮나요?”

“네, 네, 괜찮습니다.”

‘하.’

괜스레 눈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은 심정.

“그럼 잠깐만….”

“네.”

“저도 잠깐 다녀올게요, 언니.”

“응. 적당히 해.”

천천히 뒤를 밟는 것은 당연지사.

방금 대화처럼 협박이나 다른 걸 하려고 하는 게 아니었지만 한마디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파티원들과을 지나 이기년이 지나왔던 곳을 성큼성큼 걸어가자 때 마침 이쪽을 바라보며 활짝 웃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시야에 비친다.

“민지 씨,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세요?”

“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네. 대답해 드릴 수 있으면….”

“혹시 누구였어요?”

“네?”

“검은 백조? 파란? 붉은 용병? 아니면 다른 쪽인가? 무조건 대형 길드라고 생각했는데… 중견 이상은 되죠? 아직도 그런 거 해요? 대형 길드나 되가지고? 진짜 쓰레기 같은 남자들 많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

“다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시치미 떼지 않으셔도 되요.”

“그러니까 지금 무슨 말씀을….”

“누구한테 스폰 받았던 거예요?”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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