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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37화 (436/1,590)

# 437

회귀자 사용설명서 437화

re: 제로부터 시작하는 저 세계 생활(6)

“검은 백조? 파란? 붉은 용병? 아니면 다른 쪽인가? 무조건 대형 길드라고 생각했는데. 중견 이상은 되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

“다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시치미 떼지 않으셔도 돼요.”

“그러니까 지금 무슨 말씀을….”

“누구한테 스폰 받았던 거예요?”

‘얘는 도대체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순간적으로 붉은 용병의 단장 차희라의 이름이 생각난 것은 당연지사.

이기영이 차희라에게 스폰을 받아 성장했다는 건 사실이지만.

이기연은 아니다.

‘뭐 이상할 게 있었나?’

어째서 갑자기 스폰 이야기가 나오는지 궁금한 것이 당연하리라.

뭔가 켕길 만한 행동을 한 기억은 없다.

적어도 이번 원정을 진행하는 동안은 내가 이기영이라는 사실을 걸릴까 굉장히 조심스럽게 행동했고 대형 길드 이야기는 꺼낸 적도 없다.

파란이나 붉은 용병, 검은 백조와의 연관성을 찾을 수가 없게끔 행동했다는 거다.

‘혹시 가방 떠넘긴 것 때문에 그래? 나 지금 텃세 때문에 견제당하고 있는 거야? 아니, 그럼 슈바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어떡해?’

어지간하면 참고 갔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어깨가 빠지는 줄 알았다.

고급화 되어 있는 빛기연의 몸뚱아리에 이런 육체노동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이를테면 이 모든 게 단순한 텃세라는 추측.

이 추측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니 린델의 고인물들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외지인이 싫으면 지인팟으로 가든가…. 왜 받아놓고 지랄이야, 지랄은…. 던전 문화 한번 그지 같이 만들어놨네. 니네가 이끼야 뭐야?’

간혹 이런 문제가 터지는 경우가 있다고 들은 적 있다.

인원이 부족해 보여 파티원으로 받곤 이후에는 나 몰라라.

지인끼리 단합해 한 명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분배 자체도 본인들에게 유리하게 설계하는 방식의 비매너 플레이.

교국법상으로 문제는 없지만 그래도 엄연히 대중에게 배척당하는 행위다.

이 여자도 그런 부류가 아닐까 생각하니 조금은 머리가 아파올 수밖에 없었다.

‘아냐. 그렇다고 하기에는 남자애들이 너무 협조적인데….’

너무 세상 물정 모르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바로 그때.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대형 길드의 후원을 받은 마법사가 장난삼아 원정을 나왔다는 그림으로 비춰질 만도 하다.

계약서가 처음 튀어 나올 때도 의아한 표정을 보였었고, 무엇보다 3년 차에 영웅 등급이라는 성장치는 후원받는 마법사가 아니면 이루기 어려운 일이다.

재능을 가지고 있는 마법사가 대형 길드나 중견 클랜으로 오퍼를 받지 못했다면 정답은 뻔할 뻔 자.

‘후원이지, 뭐.’

솔직히 질문 자체가 달갑지는 않았다.

파티에 합류해야 하는 건 대형 길드의 후원을 받는 이기연이 아니라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이기연 이었으니까.

어떻게 변명을 하는 게 좋을까?

잠깐 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을 때 다시 한번 앞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 모르는 척 하는 것 좀 봐. 뭘 그렇게 순진한 척을 굴어요? 이미 뻔한데. 얼굴에 다 쓰여 있어요, 기연 씨.”

‘일단은 잡아떼자.’

“정말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는데요? 갑자기 후원이라뇨?”

“후원? 그래. 그것도 후원이기는 하지. 네 몸 팔아서 받는 후원. 그게 스폰이지. 안 그래요?”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아니, 도대체 무슨 말을….”

“나도 다 알 거 아는 년이에요. 린델 바닥에서 구르고 굴렀다고요. 들어온 지 4년 차면 이 바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다 안다고요. 어떻게 3년 차에 영웅 등급을 찍을 수 있었는지도. 아무것도 없다는 당신이 왜 그런 명품들을 걸치고 있는지도. 기본적인 원정에 대한 상식이 없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기연 씨 행동거지가 너무 뻔하게 보이잖아요? 개 버릇 남 못 준다더니 원정 와서도 그딴 식으로 하고 싶어요?”

‘왜 이래, 너? 내가 뭘 어쨌다고. 내가 뭘 했는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것 같은데. 이제부터라도 새 삶 찾으려고 발악하는 거라면 더 이상 그딴 식으로 살지 마세요. 눈웃음 치고 엉덩이 살랑살랑 흔들면서 아부 떨고 살면 즐거워요? 자기도 부끄러울 거 아니야.”

“…….”

“괜히 순진한 오빠들 꼬드기지 말라고요. 어디서 우정 클랜이 유망하다는 소리를 주워듣기는 들었나 봐요? 노린 거… 맞죠? 알고 접근한 거면 진짜 소름이다, 소름.”

‘무슨 개소리냐, 이년아. 우정 클랜이고 사랑 클랜이고 나발이고 듣지도 못했는데. 니 생각이 더 소름이다.’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저희 같은 진짜 모험가들도 욕을 먹는 거예요. 철우 오빠예요? 태건이 오빠예요? 취집해서 신분세탁 할 생각은 집어 치우라고요. 어차피 철우 오빠 같은 사람은 당신 그 더러운 몸뚱이에는 관심도 없겠지만… 제가 보는 게 불편해서 그래요. 원정 중에 이러는 건 아니죠. 저기요, 기연 씨. 이건 경고예요.”

“경고?”

“네. 경고요. 일이 이렇게 됐으니 원정이 끝날 때까지는 함께 움직일 테지만 눈에 띄는 행동은 하지 말라는 경고요. 신분세탁 하려고 마음먹었으면 실력으로 보여줘요. 같잖게 가슴 내밀고 신음 흘리면서 분위기 흐리지 말고. 아니면 제가 아는 인맥 총 동원해서 이 구역에서 완전히 묻어버릴 테니까. 알아듣겠어요?”

‘뭐, 인맥을 총동원해?’

“별로 예쁘지도 않으면서… 어중간하게 생긴 것들이 더하다니까.”

“…….”

‘그래도 너보단 내가 더 예뻐. 호박같이 생긴 게….’

“쓸데없는 데 집중하지 말고 공략에나 집중하자고요. 화장도 좀 지우고.”

“화장 안 했….”

“아, 진짜!”

“…….”

“…….”

아, 진짜! 얘를 어떻게 해야 되지?

무언가 켕기는 게 있다면 조금 덜 억울했을 것이다.

눈웃음은 물론 엉덩이도 흔든 적이 없다. 가슴을 내밀었다는 건 또 무슨 개소리인지 알 수 없을 지경.

단언컨대 절대로 그런 여자로 비칠 만한 행동을 한 기억이 없다.

차라리 대형 길드의 정식 후원을 받고 있다는 게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해도 될 만한 수준이다.

옷도 제법 수수하게 입었고, 샤넬리아 에르메스를 들고 있기는 하지만 장비 수준 역시 딱 평균.

‘조신 그 자체였잖아. 조신 그 자체!’

현모양처의 정석이요, 조신의 여왕이었다.

그러나 꽤 노력했는데도 대중의 평가는 싸늘.

당황스럽지 않은 것이 이상하리라.

밀려드는 억울함에 뭐라 말을 하기 전에 국민지는 한마디 더 내뱉고 시야에서 사라지기 시작.

“창녀같이 살지 말아요.”

나름 명대사를 친 줄 아는지 의기양양하게 발걸음을 옮기고는 있지만….

‘내 복장보다는 니 복장이 더 심하지 않아?’

그 말이 딱 맞다.

적어도 나는 로브로 전신을 가린 편. 눈앞에 있는 여자는 도적이랍시고 몸에 딱 달라붙는 타이즈를 입고 있다.

도대체 가슴 부분은 왜 파였는지 알 수 없지만 적나라하게 가슴골이 보일 정도.

아직도 노출도가 곧 방어력이라고 생각하는 모지리가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쉽게 말하면 라인이 전부 다 드러날 정도라는 거다.

누가 누구 보고 창녀라고 하는지 모르겠지만 누가 봐도 조신녀는 이기연.

몸을 함부로 굴리는 쪽은 국민지다.

괜스레 거울을 바라보자 다시 한번 전체적인 얼굴이 시야에 비친다.

어떻게 봐도 조신한 그 얼굴.

이건.

‘질투? 정말로 텃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잠깐 동안 정의의 철퇴를 내릴지 고민해 본 것은 당연지사.

상황정리는 빠를 것이다.

이기영이라는 사실을 밝힌 이후 곧바로 뚝배기를 사정없이 연타.

우정 클랜 같은 소규모 클랜은 말 한마디로 대륙 내에서 완전히 지워 버릴 수도 있다.

그뿐인가.

말실수의 대가로는 조금 심하지 않나 싶기도 하지만 악마의 졸개들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문제는 현 상황에 나 스스로가 마법을 풀 수 없다는 것.

물론 믿고 안 믿고는 저들의 자유지만 괜히 다른 구설수에 휘말릴 수도 있을 가능성을 생각하니 지금 나서는 게 오바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끌리는 게 없네.’

사실 조금 귀찮기도 하다.

파티를 구해 원정을 떠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여기서 한 번 뒤집으면 기분은 조금 나아지겠지만 다시 한번 파티를 구해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

내가 이 나라의 명예추기경이라 외쳐봤자 미친년 취급받지 않으면 다행.

‘별일은 없겠지, 뭐.’

빛기영이었다면 참지 않았을 모욕적인 언사.

어떻게든 저 깨어 있는 시민의 뒤통수 때리고 싶었지만 내게 머물고 있는 현자의 기운은 내가 흥분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번 일 끝날 때까지만 조용히 있자, 기연아.’

확인할 것만 한 이후에 응징은 천천히 주면 된다.

일단은 저 파티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니 그것만 얻은 이후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이성의 끈을 부여잡으며 발걸음을 옮기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파티원들이 시야에 비친다.

바보 같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남성들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고소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여성 4명.

아마 국민지가 나머지 떨거지들에게 방금 무용담을 전한 것이 틀림없으리라.

‘한 방 먹였다고 신났네.’

불 보듯 뻔하다.

‘그래 많이 웃어둬라. 많이 웃어둬. 이젠 귀엽다, 이년들아.’

얌전하고 순수한 것은 물론 조선시대로 돌아가도 조신하다는 소리를 들을 이기연을… 어째서 그런 여자로 모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여성군단들에게는 아까 일어난 사건 아닌 사건이 통쾌한 일처럼 비춰질 터.

그녀들의 표정이 조금 달라진 것은 이철우와 이태건이 내게 접근한 이후였다.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아. 제가 기다리게 했나 봐요. 죄송해요, 철우 씨.”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도 이제 막 자리에서 일어난 참이라.”

“여러 가지로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당연한 일입니다.”

“마음 편하게 함께 다녀오시면 됩니다, 기연 씨. 안 그래도 지인 팟에 끌려오시니 분위기 자체가 불편하셨을 텐데…. 저희 쪽에서도 최대한 배려해 드리는 게 맞죠. 그렇지 않냐? 철우야?”

“그래. 네 말이 맞다.”

“도움이 필요하시면 부담 갖지 마시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걷기 힘드시면 업혀서 가셔도 되고요. 하하. 농담입니다.”

“후훗. 클랜 분위기 좋네요.”

“만약 소속되어 있는 곳이 없으시다면 가입이라도… 이것도 농담입니다.”

“태건 씨도 참….”

내가 생각해도 형성되어 있는 분위기는 훈훈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두 남정네들과 대화를 하는 동안 점점 더 썩어가고 있는 갤러리의 얼굴을 보니 어째서 갑자기 나를 찾아와 극딜을 넣은 뒤 사라졌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하….’

너무 뻔해서 오히려 눈치채기가 힘들다.

‘키야. 너네 진짜로 질투하는구나?’

클랜의 중심인 두 남정네들이 내 발이라고 핥을 기세로 달라붙어 오는 걸 부러워하고 있음이 분명.

이 조신한 매력은 따로 작업을 치지 않아도 나 스스로를 여왕벌로 만든다.

‘여왕벌 그 자체!!’

저 두 놈을 나에게 뺏겼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다.

철우 씨를 어지간히 신경 쓰고 있었는지, 국민지의 얼굴은 특히나 가관.

평소의 정하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다른 여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통쾌함이 머물었던 아까의 얼굴은 이미 없다. 푸르죽죽한 얼굴은 썩고 있다 가정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

어떻게 할까 고민한 것은 당연.

하지만 여기에서는 일보 후퇴. 살짝 한 발 떨어지자 안심하는 듯한 표정들이 눈에 띈다.

‘나도 고추들한테는 관심 없다, 이년들아. 우리 사이좋게 지내야지. 응?’

원활한 진행을 위해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

하지만 이 미친 남정네들은 뭘 잘못 처먹었는지 하루 종일 나에게 접근하며 스몰톡을 날려대고 있었다.

현 시점부터.

균열 랜드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뭐야. 시바. 이 새끼들 왜 이래? 왜 이렇게 앵겨? 왜 이렇게 앵기는 건데?’

발정이라도 한 모양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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