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438화 (437/1,590)

# 438

회귀자 사용설명서 438화

균열 랜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1)

‘하, 이 새끼들 이거 성향이랑 기벽도 완전 메이저에 정상인데.’

애초에 가장 평범하고 노멀한 놈들을 골랐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기벽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여성진들 역시 마찬가지다.

김현성이나 과거의 엘레나처럼 완전무결한 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일그러진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모양.

‘이 새끼들아, 좀 떨어져라. 가까이 오지 마. 말도 작작 걸고.’

귀찮을 정도로 말을 걸어오고 있는 것은 물론 호감을 얻기 위해 똥꼬쇼를 펼치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 역시 남자기 때문에 잘 알 수 있다. 간이고 쓸개고 다 떼어주려고 행동하는 것은 물론 발가락 사이에 낀 때라도 핥을 기세.

내 타입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지만 이기연이라는 인간이 생각보다 매력적인 인간이라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우정 클랜의 여성멤버 4인방은 더욱더 나를 노려보는 중.

나도 이 새끼들을 밀어내고 싶지만 도저히 밀어내지지가 않는다.

단순히 파티원이 받아야 할 친절 이상의 친절을 받고 있다.

배짱은 없는지 쓸데없는 짓을 해오지는 않았지만 움직이기 귀찮아졌다는 건 부정할 수 없으리라.

‘그래도 일단 도착하긴 했네.’

남정네들과 발악과 여편네들의 경멸어린 눈빛을 견디느라 힘들었지만 결국엔 마차 없이 이곳으로 오는 것에 성공했다.

‘이따 포션으로 마사지라도 해야겠다. 시바…. 다리 아파 뒈지겠네.’

대단한 것을 이룩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과의 도전이라고 봐도 무방한 거리를 행군했다.

튜토리얼 던전을 제외하면 이 정도로 걸어본 기억이 없다.

당시에는 필사적으로 움직이느라 몰랐지만 등 따시고 배부른 지금, 이만한 거리를 그냥 이동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이렇게 막상 도착하니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생각보다 잘해놨는데?’

그 말 그대로.

시간이 없어 대충 휘갈겼다는 이지혜의 말과는 다르게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 질이 좋아 보인다.

도로도 확실하게 깔려 있고 공사 중인 곳도 많이 보이긴 하지만 제대로 된 상가의 형태를 하고 있는 곳도 보인다.

공사되고 있는 규모는 거의 대도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그야 전 대륙에서 인간들이 몰린다고 생각하면 이 정도도 부족하긴 하다.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확실히 더 괜찮아지겠네.’

균열 랜드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도착했네요.”

“생각보다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하.”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것 같은데.”

“그러게 말입니다. 오늘 내로 입장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아마 충분히 가능할 거예요. 처음부터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고 들었던 터라…. 일단 신고부터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조금 늦어도 내일 안에는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조금 늦었네.’

파티를 구하는 것도 늦었고 걸어오는 것도 느렸다.

하지만 그리 나쁘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어차피 파티의 입장에서는 행군으로 지친 몸을 회복해야 했고 나는 이곳을 조금 더 둘려봐야 했으니까.

정확히 뭐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잘 알아놔야지.

‘오히려 좋고요.’

“일단 숙소부터 구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 상태로 계속 돌아다닐 수는 없으니까요.”

“네.”

클랜마스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발걸음을 옮긴 것은 당연지사.

천천히 걷고 있는 와중에 여러 종류의 모험가들이 보인다.

심지어 한참 전부터 냄새를 맡은 놈들도 있었는지 제법 고위 모험가들도 눈에 띈다.

인종도 다양. 백인이나 흑인들도 보이는 것을 보니 몇몇은 그리폰이라도 타고 날아온 모양인 것 같았다.

정신없이 길을 걷고 있는 와중에 파티의 움직임이 멈춘 곳은 커다란 주점.

숙박업도 겸하고 있는 곳이다.

뭔가에 홀린 듯이 안쪽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사방에서 인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균열 여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모험가님들! 혹시! 저희 여관은 처음이십니까?”

‘서비스 좋네.’

“네. 방금 막 도착했습니다만 혹시 남는 방이 있습니까?”

“네. 물론입니다. 모험가 여러분! 현재 각 호실 별로 딱 20개로 남는 방이 있고요! 저희 여관에서 서비스하는 룸은 네 종류로서 일반 등급, 희귀 등급, 영웅 등급, 전설 등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카탈로그를 보시면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으니 참조해 주시고요. 일반 등급은 하루에 1골드, 희귀 등급은 5골드, 영웅 등급은 20골드, 전설 등급은 50골드입니다. 1인 기준이고 서비스 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금액입니다.”

‘어우야….’

하루에 10만 원, 50만 원, 200만 원, 500만 원.

심지어 서비스 비용도 포함되어 있지 않단다.

‘지혜야, 씨바 니가 사람이냐. 가격이 무슨 씨바…. 실화야? 빼먹어도 적당히 빼먹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절로 그려진다.

나에게는 어린애 장난 같은 금액이지만 이제 막 성장하는 모험가들에게는 분명히 부담되는 가격.

예상대로 우정 클랜 여러분의 표정은 순식간에 썩어 들어가는 중이다.

돈을 벌러 왔다가 돈을 쓰고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클랜마스터는 대놓고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부클랜마스터는 카탈로그를 넘긴다.

“클랜마스터, 너무 비싼 거 아닐까요?”

“하지만 따로 방법이 없으니….”

나 역시 슬그머니 카탈로그를 펼친 것은 당연지사. 전설 등급에 랭크되어있는 룸을 보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키야. 내 방보다 더 좋은 거 같은데?’

으리으리한 게 아주 대궐이나 다름이 없다.

서비스 품목으로 나오는 것도 만만치 않다.

피로 회복 주문을 외울 수 있는 사제가 24시간 대기 중이란다.

메이드 바이 이기영 포션도 기본으로 지급되는 것은 물론, 나오는 식사도 고급 레스토랑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주고 있다.

장기간 투숙하고 있는 고객들을 위해 여러 가지 편의가 제공되는 것은 물론, 전설 등급 이상의 회원들만 따로 사용할 수 있는 연무장도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 평생 살아도 지장 없을 정도.

‘여기서 살고 싶다….’

영웅 등급도 그리 나쁘지는 않아 보였다.

예전에 내 방을 보는 느낌.

전체적으로 고급스럽다는 인상도 있고, 전설 등급의 방보다는 서비스의 질이 낮아졌지만 충분히 감안할 수 있는 수준.

물론 희귀 등급부터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마치 원룸을 보는 느낌.

그나마 있을 건 전부 있지만 솔직히 저런 곳에서 자면 편히 잘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마지막 일반 등급은 내 기준….

‘돼지우리나 다름없잖아.’

“일반 등급으로 잡아야겠죠?”

“네. 여기… 일반 등급으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올 정도였다.

“말도 안 돼. 이, 이런 데서 어떻게 자…. 하으.”

시선이 집중되는 것은 순식간.

괜스레 눈초리가 따갑다.

여성진들이 나에게 경멸의 눈빛을 보내는 것이 느껴진다. 실수했다는 걸 깨닫기는 했지만 이 발언을 한 것에 한 점의 부끄러움도 없다.

‘그만 좀 봐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이니까. 그리고 솔직히 니네도 여기서 자기 싫잖아. 시바…. 화장실도 공용이래. 얼마나 더러울지 상상이 돼?’

솔직한 것은 죄가 아니다.

내 표정이 그렇게 별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작스러운 한마디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덩치 큰 놈 쪽이었다.

“하루 정도는 조금 무리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철우야, 예산은 충분하잖아. 우리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새로운 장비 맞추느라 남은 돈이 많지는 않아. 클랜 하우스를 사려고 모은 돈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정말 건드리면 안 되는 돈이니 아무래도….”

“하루 정도는 편하게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일이면 던전에 들어가게 될 텐데 그때까지는 푹 쉬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봐도 일반 등급의 방은 오히려 컨디션을 망치게 할 것 같은데. 원정 전에 항상 100%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게 바로 너 아니야? 우리 좀 쓸 때는 쓰자. 막말로 너랑 나랑은 상관없겠지만 우리 여성 클랜원들은….”

“저는 괜찮아요.”

“저도요.”

“노숙도 많이 했는데요, 뭐.”

‘난 안 괜찮아. 이년들아. 착한 척하지 마.’

“…….”

저도 모르게 표정이 침울해진다.

“기연 씨도 몸이 많이 안 좋으신 거 아닙니까?”

“아니요. 그렇지는 않아요. 다리만 빼면….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푹 자면 나을 것 같아요.”

“봐라, 철우야. 어디 여기에서 발이나 뻗고 잘 수 있겠어? 최소한 희귀 등급에서는 묵어야 그나마 쉰 느낌이 날 것 같은데….”

‘잘한다, 덩치.’

“어차피 던전 공략을 완료하면 우리 나름대로 성과가 있을 테니까. 다시 채워놓는다는 생각으로 눈 딱 감고 한 번만 쓰자. 계속 여기서 이렇게 실랑이 하는 것도 부끄럽고. 안 되겠냐?”

“실패할 가능성은….”

“내가 노력할게. 부탁한다, 철우야.”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

‘그래. 바로 그거야.’

희귀 등급의 방으로 결정. 성에 차지는 않지만 기분 좋은 미소가 그려지기는 한다.

“희귀 등급의 방으로 하겠습니다.”

“탁월한 선택입니다, 모험가님. 현재 던전 공략을 위해 희귀 등급의 방을 찾아주신 여러분께는 오픈 프로모션으로 파란 길드에서 제조한 희귀 등급의 체력포션을 드리고 있거든요.”

“그,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개쓰레기 하위 라인이네. 줘도 안 먹는 거.’

하지만 우정 클랜 사람들의 얼굴이 그나마 밝아지는 게 보였다.

하룻밤에 50만 원이나 받는 주제에 쓰레기 저급 포션으로 생색내기.

전형적인 팔이피플의 상술이었다.

그나마 기분 좋으라고 던져준 것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지 접수원은 다시한 번 친절한 표정으로 모험가들의 등쳐먹을 준비를 하기 시작.

하나하나가 성과제일 테니 지금 부터가 중요할 것이다.

“박물관을 공략해 주실 모험가분들이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수속은….”

“방금 막 도착해서 아직 신청은 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만약에 신청서가 필요하다면 지금 바로 마치고 들어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니요. 모험가님들! 그럴 필요는 없으십니다. 저희 균열 여관에서 도와드릴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던전의 등급은 어떤 등급으로 하시겠습니까?”

‘모험가 친화적이야. 이건 마음에 드네.’

“영웅 등급입니다.”

“영웅 등급의 던전, 총 500골드 되겠습니다. 하지만 오픈 프로모션으로 300골드에 이용 가능하시고요!”

“네.”

“총 여섯 분 등록해 드렸습니다. 출발은 내일 오후에나 가능할 것 같고요. 체크아웃하신 다음에 곧바로 저희 안내원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혹시 원정 보험이 필요하시다면….”

“원정 보험이 뭡니까?”

“혹시나 원정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를 대비한 보험입니다. 소중한 모험가 여러분의 목숨은 단 하나뿐이니까요. 저희 균열 랜드에 소속되어 있는 실력자들이 24시간 특수한 상황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고위 사제 역시 포함되어 있는 보험이니 생존율이 올라가겠죠? 가끔은 고수분들이 사냥을 도와드릴 때도 있다고 하네요. 가격은 숙소와 동일합니다. 일반, 희귀, 영웅, 전설로 구별되어 있고요.”

“…….”

“…….”

“자금이 부족한 분들을 위해….”

“…….”

“대출 서비스도 진행해 드리고 있습니다.”

‘와…. 이지혜 진짜 너 너무 쓰레기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쓰레기다! 그런데! 사랑한다, 지혜야!’

마지막 대사에는 나조차도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대출 서비스입니다.”

방금까지 귀여웠던 종업원의 목소리가 악마의 목소리로 들리기 시작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