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9
회귀자 사용설명서 439화
균열랜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2)
대출? 대추울?
눈을 빛내고 있는 여관 종업원의 모습은 일순간 이지혜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니가 사람이냐 지혜야?? 넌 진짜 인간이 아니다.’
나 역시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기는 했지만 대출 시스템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균열랜드의 이익을 극대화시킬 작은 거인의 비장의 무기.
하지만 그만큼 효율적이기도 했다.
‘진짜 악랄하다. 이지혜 진짜 괜히 가면쓰레기가 아니구만, 이거.’
나 역시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느낄 때가 많았다.
물론 아주 가끔이기는 하지만 갑작스레 밀려들어오는 자괴감에 고민에 빠진 적도 있다.
지금 와서 이지혜가 하는 걸 바라보니 그간의 고민이 전부 해소되는 느낌.
이기영이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한 들 가면 여자 앞에서는 원자력 발전소 앞의 반딧불이요, 밀려드는 쓰나미 앞의 어린이용 풀장.
도를 넘은 악랄함에는 저도 모르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균열 랜드에 들린 모험가들을 모두 빚쟁이로 만들려는 심산.
대충 그림이 그려진다. 뭐가 됐든 이곳에 와서 돈을 쓰는 모험가들은 부푼 꿈을 안고 던전에 진입할 것이 분명.
예상하지 못한 지출은 쌓이게 마련이고 결국 생각지도 못한 커다란 돈을 소비하게 된다.
던전에 들어간 이후 공략에 성공하면 그동안 날렸던 것들을 복구할 수 있겠지만 단 한 번이라도 삐끗하게 된다면 그 시점에서 이미 통장 잔고는 마이너스.
이런 이들이 쉽사리 균열 랜드를 떠날 수 있을 리가 없다.
손해를 보는 원정만큼 비참한 것도 없으니까.
다시 한번 부푼 꿈을 안고 도전한다거나 최소한의 피해는 메우기 위해 치밀한 분석과 연구 끝에 던전에 진입하려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시 한번 던전에 가기 위한 소비를 시작한다.
숙박료, 보급품, 장비, 던전 입장 비용, 보험 비용, 식사 등등. 머무르는 것 자체가 돈이요, 소비 활동.
재도전한 던전에서 좋은 성과를 가두더라도 기존에 사용했던 것들을 퉁치기에는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하….’
결국에는 인간쓰레기 이지혜가 파놓은 덧에 개미지옥처럼 빨려 들어가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거다.
균열 랜드를 나온 이후에는 이미 빚쟁이가 된 상태.
평생을 벌어도 이자밖에 갚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대륙의 사냥터를 떠돌아다니게 되리라.
조금 가슴 아픈 결말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그 취지는 맞다.
모든 걸 잃기는 하겠지만 어쨌거나 그동안의 경험으로 녀석들은 강해질 거고 열심히 살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과거 나태했던 자신을 반성하고 온 종일 몸을 굴리게 될 거라는 거다.
조금 가슴이 아프기는 했지만 과감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프지 않은 주사는 없다. 정체되어 있는 대륙에 놓을 뜨거운 백신.
이 커다란 그림은 엘룬 쓰레기는 물론 베니고어마저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 것이다.
‘키야….’
혼자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눈앞에 있는 여관 종업원은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으로 우리 파티를 바라보고 있는 중.
‘그래. 그럴 만하지.’
저 여관 종업원이 우리에게 판매하는 모든 것이 성과일 터.
보험을 들게 하는 것은 물론 대출까지 땡기라고 유혹하는 눈빛에는 나 역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소비를 유혹하는 눈빛에는 그 어떤 이도 버틸 수 없으리라.
“대출도 있구나….”
“균열 랜드는 모든 게 모험가님들의 편의를 위해 마련되어 있으니까요. 고객의 편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자는 게 저희 균열 랜드의 모토입니다.”
‘입에 침 한 번 안 바르고 거짓말 하는 클라스 보소.’
“아무래도 불편하신 점이 많으실 테니까요. 모험가 분들은 원정에만 집중하실 수 있게 여러 가지 종류의 서비스가 아주아주 많습니다. 원정보험이나 대출 상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출은 조금 그렇고… 원정보험은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앞서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사실 원정 보험 같은 경우는 일반적인 모험가 분들은 기피하곤 합니다만… 통계적으로 봐도 영웅 등급의 파티의 던전 생환율이 높지 않다는 걸 생각해 보면 충분히 들어놓을 가치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사고가 난 이후에는 그 누구도 보상해 주지 않으니까요. 물론 경험이 많으신 모험가의 경우에는 실패했을 때의 매뉴얼을 충분히 숙지하고 계시겠지만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파티나 처음 호흡을 맞추시는 분들은 꼭 원정보험을 드신 이후에 들어가는 게 추세입니다. 더불어 파란 길드와 검은 백조 길드, 붉은 용병 길드에서도 원정 보험의 중요성에 대해 여러모로 강조하고 있고요.”
“으음….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파티….”
“네. 아무래도 그런 경우가 많으니까요. 사냥 중에 발생하는 사고뿐 만이 아니라 파티원들과의 마찰이나 분배 문제에도 모험가 분들이 직접 신경 쓰실 일이 없게 중재하는 역할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낚이지 마, 이 새끼들아.’
하지만 이미 낚여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생각해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지 않아요, 오빠? 저희끼리 왔다면 문제없겠지만 외부인도 하나 들어왔으니까. 호흡이 맞는지도 아직 확인하지 못했고….”
‘나 쳐다보지 마, 이년들아.’
아니나 다를까 득달같이 달려들기 시작하는 꼴은 가관.
물론 이 홈쇼핑 호스트 역시 마찬가지다.
“아! 마법사 분께서 새로 들어오신 파티원이신가 보군요. 확실히 불안하시겠죠. 물론 우리 아름다우신 마법사님을 무시하는 발언은 아닙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모인 파티가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경우는 많지 않으니까요. 한 사람당 몇 십 골드로 일어날 사고를 미리 예방할 수 있는 건 확실히 메리트가 있는 선택이라고 여겨집니다. 물론 선택은 여러분의 몫입니다.”
“끄응. 이런 건….”
“아냐, 태건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말씀대로 무슨 사고가 벌어질지 모르니까. 일반 등급의 보험으로 부탁드립니다.”
“탁월하십니다, 고객님. 계약서 잘 읽어보시고 사인해 주실 부분에 사인해 주시면 됩니다. 아! 그리고.”
“네.”
“혹시 균열박물관의 던전은 다른 던전과는 다르게 모든 방식이 랜덤으로 진행된다는 걸 알고 계신가요?”
“그게 무슨….”
“3종의 보스몬스터와 3종의 보상 아이템이 모두 랜덤으로 나오게 됩니다, 고객님. 무난하게 사냥을 마치고 귀환하는 분도 계시지만 뜻하지 않은 몬스터를 만나게 돼 고생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은데요? 예를 들면 독속성의 몬스터나 저주를 사용하는 몬스터를 만나 안타까운 일을 당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혹시나 해독제나 저주를 해주하는 아이템을 가지고 오셨는지요?”
“아, 아닙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리 모험가님들. 그런 일에 대비하기 위해 저희 균열 랜드에서는 특수몬스터 대응 패키지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빛의 연금술사 이기영 님이 직접 만드신 11종의 포션과 그에 상응하는 소비 아이템이죠. 가격도 무척이나 합리적이랍니다.”
‘작작 좀 해라, 이놈들아. 이 악마들아.’
“물론 그 하위 버전의 패키지도 판매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11종 포션을 추천해 드리고 있습니다. 유통기한이 있는 저급 포션과는 다르게 빛의 연금술사 이기영 님이 만드신 포션은 시간이 많이 지나도 그 효과가 변함이 없으니까요. 체온을 유지해 주는 온도 유지 포션 같은 경우에는 방한대책이나 방열대책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어 무척이나 효과적이랍니다. 화속성이나 빙속성 몬스터들에게도 효과 만점! 가격도 시중에서 판매되는 가격보다 훨씬 저렴하게 책정하고 있습니다.”
“이건 괜찮네.”
“생각하지도 못하는 돈이 너무 많이 나가는 것 같은데….”
“아니, 잘 생각해 봐라. 철우야. 이건 사 놓으면 좋은 거야. 만약에 이번 원정에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후에도 계속 사용할 수 있으니까. 패키지가 하나 정도는 있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생각해 보시고 결정하시면 됩니다. 파란 길드에서도 직접 구매하실 수 있는 상품이니까요.”
“필요하지 않을까? 너도 해독 주문에는 그다지 자신 있는 게 아니잖아. 영웅 등급의 독속성 몬스터라도 갑자기 튀어나온다면….”
“그건 그래….”
“천천히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싱글 벙글 웃는 여관 종업원의 모습은 가관.
‘얘 누구야?’
갑작스레 궁금증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왜 이런 능력자가 이런 곳에서 이러고 있었어?’
이런 능력자는 제대로 된 대우를 해줘야 한다.
프로 홈쇼핑 호스트처럼 구매욕을 일으키는 목소리와 완벽에 가까운 서비스 접대.
물건을 설명하는 낭랑한 목소리는 듣기 좋기까지 해 절로 지갑에 손이 가게 할 정도.
내 물건을 내가 사고 싶을 정도였으니 다른 표현이 필요 없다.
“현장에서 바로 구매해 주시면 고급 체력 포션 3종 세트를 사은품으로 드리겠습니다.”
“구입하겠습니다.”
“탁월하신 선택입니다, 고객님.”
균열 랜드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몇 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이 파티가 사용한 금액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
‘와, 진짜 제대로 벗겨 먹는 구나.’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파티 역시 종업원에게 붙잡혀 여러 가지 말을 전해 듣고 있다.
특수 몬스터 대응 패키지를 모두 품 안에 하나씩 끌어안고 있는 파티원들의 모습은 가관.
심지어 희귀 등급의 파티 역시 패키지를 소중한 보물처럼 끼고 있다.
‘희귀 등급의 파티는 저걸 살 능력도 없을 텐데?’
100% 확률도 대출 받은 것이 틀림없으리라.
저건 무조건 대출.
심지어 내 포션이 영웅 등급 이상의 몬스터에게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걸 생각해 보면 닭 잡으려고 소 잡는 칼을 산 셈이나 다름없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종류의 인간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벗겨지고 있다.
유아영이 만들어 놓은 장비 목록을 살펴보는 녀석부터.
‘저것도 무조건 대출이네.’
쓸데없는 소비 아이템을 구입하는 녀석들까지.
쉬러 온 건지 쇼핑을 하러 온 건지 알 수가 없을 지경이다.
‘이런 부분은 정말 좋네.’
일단 편의성이 좋다는 것 하나는 정말로 칭찬해 주고 싶은 부분.
이곳저곳 들릴 필요 없이 모든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여관에 진입하는 순간 던전 진입 신청과 원정 보험을 알아 볼 수 있고 심지어 대출이나 무기 구입까지 가능하다.
귀찮게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필요가 없고 원정 그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거다.
물론 돌아다니길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상가가 마련되어 있지만 굳이 나가지 않아도 이곳에서 모든 용무를 해결할 수 있다.
카탈로그의 뒤를 넘겨보지는 않았지만 누가 봐도 두꺼워 보이는 책에는 균열랜드에 대한 모든 서비스가 나열되어 있으리라.
하나의 컨트롤 타워로 상가 전체가 운영되고 있는 강점.
‘편의성.’
물론 가격단합이나 후려치기 같은 약간의 부작용이 있을 수는 있지만….
대륙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건 아주 사소한 문제나 다름이 없다.
‘보이십니까? 메텔 관리자. 당신의 박물관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모습을요.’
천국에 계신 막스의 어머니도 분명 함박웃음을 짓고 있으리라.
조금 문제가 되는 부분은 너무 심하게 벗겨 먹는 게 아니냐는 것.
조금 노골적인 상술에 불편해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한 것도 잠시.
식당에서 벌어진 광경에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크으. 오늘 아침에 들어와서 이걸 얻었다는 거 아니요?! 무려 전설 등급의 아이템! 진실의 여왕의 목걸이! 균열 박물관! 완전 혜자라니까!”
죽은 줄로만 알았던 민주투사 바크더쿠의 모습.
아니, 이번에는 러시아 출신의 이방인 바크 세르게이였다.
“여러분도 빨리 들어가쇼! 혜자도 이런 혜자가 없다니까!”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심지어 그 옆에 자리한 것은 안기모와 김예리.
‘너네 나 모르게 연기하고 다니지 마.’
“균열 박물관! 완전히 혜자 그 자체라니까!!!”
왠지 모르게 힘이 들어간 목소리는 나 역시 균열박물관을 혜자라고 느끼게 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