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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40화 (439/1,590)

# 440

회귀자 사용설명서 440화

균열랜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3)

“기연 씨 표정이 조금 안 좋으신데….”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으레 모험가라면 파티를 구한 이후 친목도모를 위한 시간을 보내게 마련이다.

간단한 미팅을 넘어 회식, 대규모 원정일 경우 단합대회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만큼 파티원간의 호흡과 친분이 중요하다는 증거라 할 수 있으리라.

물론 사적으로 친해지는 걸 경계하는 집단도 존재하지만 적어도 린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출신의 이방인들은 이런 이벤트를 즐긴다.

내 입장에서는 그저 쉬고 싶었던 것도 사실.

하지만 이 클랜의 일원들은 이런 종류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짐을 풀고 균열 여관 아래에 비치된 주점에서 푸짐한 저녁식사와 함께 럼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당연지사.

나온 음식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오랜만에 서민이 된 기분에 나 역시 잔잔한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다.

갑작스레 등장한 바크 세르게이와 아르기르모를 보기 전까지는.

“크으. 오늘 아침에 들어와서 이걸 얻었다는 거 아니요?! 무려 전설 등급의 아이템! 진실의 여왕의 목걸이! 균열 박물관! 완전 혜자라니까! 여러분도 빨리 다녀오쇼! 이건 진짜 안 가면 손해 보는 장사요! 베니고어 여신의 축복이라니까!!”

‘저 새끼 진짜….’

“균열 박물관 고맙다!! 이것뿐만이 아니라니까! 고급 촉매들도 잔뜩!! 오늘 밤은 전설 등급의 방에서 한 번 잘 수 있겠구만!”

겉보기에는 백인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고 있는 내 눈에는 틀림없이 박덕구와 안기모로 보인다.

그 와중에 콘셉 잡고 분위기 있는 러시아인 연기를 펼치고 있는 예트니 코바의 모습은 가관.

이 주점이 모스코바의 지하주점으로 보일 정도의 흡입력이다.

‘연기하기 싫다더니….’

몸은 솔직한 꼬맹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시선을 즐기고 있는 모습은 이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라가 있는 여배우.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았었다면 틀림없이 연기자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 버렸다.

내가 이곳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좌중을 휘어잡은 바크 세르게이는 목걸이를 흔들며 입을 열기 시작.

“오늘 여기에 있는 술값은 전부 내가 계산할 거라니까!!”

‘그만해, 이 새끼야. 그런 것 좀 하지 마.’

틀림없이 사비로 해결할 거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물론 걸릴 가능성은 전무. 쓸데없는 걱정이기는 하다.

애초에 이곳에 들어와 있는 이들 중에 저 마법을 간파할 수 있는 이는 없다.

커다란 주점은 퀄리티가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래봤자 사회의 하층민들이 이용하는 공간.

전설 등급에 올라갔다고 하더라도 저걸 간파하기는 쉽지 않거니와 애초 이런 주점으로 올 리가 만무하다는 거다.

‘전부 다 프라이빗 룸에 있거나 프리미엄 어쩌구 붙어 있는 곳에서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겠지.’

이기연이 아니라 이기영의 몸으로 왔다면 나 역시도 이런 곳에는 발을 들이지 않았으리라.

우리 일꾼들 독려차원이라면 또 몰라도.

내가 자꾸만 저 반대쪽을 의식하는 것을 본 모양인지 눈앞에 있는 덩치가 말을 걸어왔다.

“아시는 분들입니까?”

“아뇨. 시끄러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에요.”

“저런 사람들은 꼭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신경 쓰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최근에 공화국 쪽에서 떠오르고 있는 신성들이 있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아마 그들일 겁니다. 저 덩치 큰 자가 바크 세르게이…. 근육으로 꽉 찬 덩치와는 다르게 직업은 마법사라고 하더군요. 사용하는 마법의 속성은 특이하게도 물리 속성이라고 합니다.”

‘나도 못들은 정보를 니네는 도대체 어디서 들은 거냐. 얘네 커뮤니티도 은근 잘 활성화 되어 있네…. 그리고 이 멍청한 새끼야. 물리 속성 마법이 이 세상에 어딨냐?’

“그 옆에 있는 전사는 버서커라고 불리는 아르기르모. 한 번 피 맛을 보면 쓰러질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저 무기에 쓰러진 자들만 수천이라고….”

‘쟤 사제야…. 전투사제기는 한데… 피 맛은 보지도 못할 거다.’

“그리고 저 여자는 그들을 이끄는 클랜 마스터 예트니코바. 특이하게도 무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치명적인 춤으로 남녀 가리지 않고 매혹시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치명적인 유혹기술은 개뿔…. 예리야, 희망사항을 연기에 집어넣으면 안 된다. 꼬맹이 주제에 발랑 까져가지고…. 현성이가 길드 사무실에서 통곡하겠다. 그딴 설정 좀 잡지 마. 제발 잡지 말라고.’

태클을 걸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다.

보통 저런 종류의 연기는 디테일이 중요하다.

빛기영이라는 감독이 빠진 저 연기집단은 이미 그 혼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칭찬하고 싶은 부분도 존재하기는 한다.

‘저런 건 괜찮아….’

득탬했다는 걸 동네방네 떠벌리는 건 확실히 지양해야 할 일이지만 그 목적이 균열박물관 홍보에 있다면 또 이야기는 달라진다.

사실 무엇보다 녀석이 건강하다는 게 가장 안심이 되는 부분이었다.

이미 이지혜에게 들어 몸 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오히려 평소보다 더 건강한 느낌. 처음부터 다치지 않았던 거 같았다.

‘돼지 새끼….’

여전한 모습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이쪽을 발견하지는 않을까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다른 곳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완전히 다른 것에 집중한 모습.

‘저 정도면 굳이 신경 안 써도 되겠네.’

저곳에서 일어나는 대화보다는 현재 이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대화에 집중하는 게 더 중요하다.

애초에 그게 목적이었으니까.

“예트니코바, 바크 세르게이…. 한 단계 더 올라가겠군요. 무슨 아이템인지 정확히 보이지 않지만 전설 등급의 아이템이라니 부럽습니다. 한 편으로는 저희도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도 들어 기쁘기도 하고요. 생각보다 확률이 나쁘지 않은 모양인 것 같습니다.”

“글쎄요. 그건 까봐야 아는 거지만… 그만큼 균열 박물관에서 준비된 콘텐츠가 많다는 거겠죠, 오빠. 저 사람만 본 게 아니에요. 여기저기에서 아이템 자랑을 하는 사람들을 꽤 봤거든요. 솔직히 너무 많은 골드를 투자한 것 같아서 조금 걱정했었는데… 우리 클랜도 저런 아이템이 하나 나와 준다면 소원이 없겠는데….”

“무조건 그렇게 만들어야지. 민지 네 말대로 생각보다 지출이 컸으니까. 최소 영웅 등급의 아이템이 나와 줘야 이번 손해를 복구할 수 있을 거다. 총 3번의 기회가 있다고 했으니 가능성은 충분할 거야. 만약에 실패했다고 하더라고 큰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면 되고….”

“포션을 산 건 잘한 일인 것 같아요. 안 그래도 빛의 연금술사가 파는 포션을 사용해 보고 싶었는데… 물론 이번에는 사용할 일이 없으면 더 좋겠지만.”

“내 말이 맞잖아. 그 포션을 사는 건 장기적으로 봐도 이득이라니까. 이번 한 번만 하고 모험가 생활 청산 할 거 아니잖아. 앞으로 계속 쓴다고 생각하면 백 번은 남는 장사야. 그나저나 기연 씨는 여기 음식… 입맛에 맞으십니까?”

“…….”

솔직히 별로 입맛에 맞지는 않는다. 어색하게 미소를 흘린 게 무언의 대답이 된 모양.

당황하는 녀석들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하체의 숙주가 된 멍청한 놈들은 허둥지둥했고 여성 멤버들에게는 다시금 경멸의 눈빛이 쏟아진다.

‘아, 이거 또 실수했네.’

내가 생각해도 미움 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다.

“아뇨. 아뇨. 맛있어요. 다만 속이 조금 안 좋아서요. 어떻게 이렇게 만난 것도 기념인데 저희 다 같이 짠 할까요?”

“그거 좋을 것 같군요.”

“균열 박물관 원정을 위하여!”

“위하여!”

“성공적인 원정을 위하여!!”

잔을 부딪칠 때는 슬쩍 국민지 쪽을 향해 시선을 보냈지만 아직도 분위기는 싸늘하다.

아무래도 찍혀도 제대로 찍힌 모양. 너무나 조신한 행동이 반감을 사버리고 만 것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뭐, 니네 손해지 어쩌겠냐.’

이 정도까지 했는데도 벽을 만들면 나로서도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

별 다른 미련을 두지 않고 꿀꺽꿀꺽 손에 들려있는 걸 목구멍으로 보낸 것은 당연.

“파하….”

오랜만에 마시는 시원한 감각에 나도 모르게 기분 좋은 소리가 새어나왔다.

‘다른 건 다 별론데. 이건 진짜 먹을 만한 것 같다.’

커다란 소시지.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먹다보니 정말로 맛있다. 특히나 겉에 발라져 있는 소스가 일품.

커다란 녀석을 한 입에 들어 넣고 싶지만 역시나 무리가 있다.

“으음. 흐음.”

일단 떨어질 것 같은 소스부터 처리.

그 이후에는 야금야금. 어느 정도 준비가 됐다 싶을 때 크게 한 입을 베어 문다.

“이건 정말로 맛있네요. 으으음.”

얼굴이 붉어져 있는 두 남자.

다시금 경멸의 눈빛을 뿌리고 있는 네 여자.

이쪽으로 다가오는 인형이 눈에 보인 것은 바로 그때. 커다란 덩치를 가지고 있는 4명의 남자.

‘니네 뭐야?’

빤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게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

쌍팔년도 무협소설에나 나오던 객잔 신이 튀어나올 것 같다는 예감이 들기는 했지만 정말로 그 예상이 실현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리랑 같이 한잔하는 게 어때? 이름이 뭐야, 아가씨?”

“그런 비실비실한 놈들이랑 놀지 말고 우리랑 놀자고.”

“거기 누님 이름이 뭐야?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린델에서 왔어?”

어떻게 된 게 이런 놈들은 항상 같은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우리 파티의 두 남정네는 완전히 무시하고 말을 내뱉고 있는 놈들은 딱 봐도 질이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우리 쪽 덩치 태뭐시기 역시 험악한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

“뭐?”

‘객기 부리지 마라, 태건아. 너보다 센 거 같은데….’

상태창으로 모든 싸움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눈앞에 있는 술 취한 개저씨들은 우리 파티보다 전력적으로 강하다.

막상 싸움이 시작되면 수적 우위로 비등비등하겠지만 솔직히 싸워야 할 이유도 없다.

괜한 소란을 일으키는 건 이쪽에서 사양.

여러모로 복잡해지는 것은 물론, 원정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옆에 있는 이철우는 나와 비슷한 생각이신지 최대한 중재시키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중재가 될 리 만무.

“이러지 마시고 잠깐 밖에 나가서 이야기하시죠.”

“철우야, 말이 통할 놈들이 아니다. 꼭 있지 이런 사회의 쓰레기 같은 놈들.”

“아니. 우리가 뭘 했다고 쓰레기라 뭐라 그래? 같이 놀자고 한 게 죄야?”

“우리 파티원이 불쾌해했으면 죄지.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말을 걸어오는 당신들이 잘못한 거 아닌가? 서로 터치 안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우리야 저 숙녀분이 불쌍해서 말 한 번 걸어본 건데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 아닌가 몰라.”

“뭐?”

“너희 같은 놈들이랑 있으면 고생할 게 뻔히 보이는 데 어떻게 가만있을 수 있겠어? 그렇지 않아?”

“이 개자식들이, 뭐?”

“태건아! 그만!”

“한번 해보려고? 그럼 해보든가.”

“밖으로 나와! 개자식!”

일촉즉발의 상황.

그래봐야 애들 장난이지만 나름대로 분위기는 진지하다.

희귀 등급의 파티는 혹시라도 불똥이 튈까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고 있었고 갑작스러운 소란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하…. 이거 진짜 피곤한데.’

빛기영으로 있을 때는 휘말리지 않아도 될 트러블에 휘말리니 심기가 불편한 것은 당연지사.

그래도 경비대가 도착하기 전에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적당히 달래고 돌려보내야겠네. 나중에 따로 민원도 넣고.’

막 입을 열려고 했을 때였다.

“물리 마법.”

“어?”

“백드롭.”

가장 가운데 있던 양아치 중 한 명이 바닥으로 처박히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박덕구 너 이 새끼!’

뜻밖의 히어로가 등장한 것이다.

“거, 조용히 술이나 마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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