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1
회귀자 사용설명서 441화
균열랜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4)
물리마법 백드롭.
‘무슨 물리 마법이야. 그냥 잡아서 뒤로 넘긴 거구만….’
어처구니없었던 것이 사실.
하지만 그 위력만큼은 나쁘지 않다.
물리마법 백드롭을 정면에서 받은 양아치 한 놈은 이미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직전.
로브를 입은 것은 물론 지팡이를 등에 메고 있는 박덕구는 그야말로 물리 마법사 그 자체였다.
‘이렇게 보니까 세긴 세네.’
박덕구가 1회 차에 비해 많이 강해졌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아래의 시선으로 올려다보니 녀석이 실제로 얼마나 강해졌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클리셰의 희생양들은 별것 아닌 놈들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영웅 등급에 오른 강자들이다.
1회 차의 박덕구를 상회하는 이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거다.
그런 이들을 한 번의 캐스팅으로 땅바닥에 꽂아버리는 위용에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파란의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기도 했다.
괴물이 많은 파란에서의 박덕구의 위치는 잘 쳐줘야 고기방패.
파티 플레이에서는 충분히 유용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대인전에서는 전투력 측정기라고 라고 불릴 정도로 약한 모습을 보인다.
유니콘을 얻고 괴물이 된 조혜진이나 가늠할 수 없는 재능을 지닌 김예리를 포함한 다른 격수에 비해 한참이나 딸리기는 하지만….
말도 안 되는 내구 수치는 양민 학살에 완벽하게 들어맞고 있었다.
약한 자에게는 그 누구보다 강한 남자 박덕구, 아니, 바크 세르게이.
“꼭 이런 놈들이 있다니까.”
그 묵직한 목소리에 우정 클랜의 여성 한 명이 입을 커다랗게 벌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물리 마법의 위용을 목격한 장내에는 이미 커다란 침묵이 가라앉았다.
이쯤이면 양아치들이 도망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지만 스펙이 상위에 다다른 녀석들이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넌 또 뭐야!”
“물리마법. 아이언 스킨.”
“아아아아아악! 내 손!”
“물리마법. 아이언 스트롱 암.”
“이 돼지 새끼가!”
심지어 아무렇지도 않게 공격을 튕겨 낸다.
마법도 튕겨낼 것 같은 물리마법의 위용에 양아치들의 얼굴은 당혹으로 물들기 시작.
결국에는 한 녀석이 허리춤에 걸린 검을 빼 들기 위해 손을 가져다 댄다.
막 검집에서 검을 뽑아 휘두르려는 계획이었겠지만 바크 세르게이의 옆에 있는 파티원들이 그걸 두고 볼 리 만무.
결국에 검 집은 검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왜.
피에 미친 광전사.
버서커, 아르기르모가 녀석의 손잡이를 붙잡고 있었으니까.
“경고하지. 뽑으면… 죽는다.”
‘무게 잡지 마….’
병신 같지만 멋있다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이 미친놈들이! 우리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 거!”
다시 한번 커다랗게 들려오는 목소리.
클랜마스터인 예트니코바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은 바로 그때.
“매혹의 춤.”
저게 무슨 매혹의 춤인지는 모르겠지만 공중에서 대여섯 바퀴를 빙글빙글 도는 움직임이 화려하기는 하다.
“모두! 매혹당하기 싫다면 눈 돌리는 게 좋을 거요.”
마무리는 평범한 발차기.
목이 뒤로 돌아간 게 아닌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헐떡헐떡 숨을 들이 쉬는 걸 보니 일단은 살아 있는 모양.
매혹의 춤의 효과를 알고 있는 장내의 모험가 모두 고개를 돌렸지만 매혹이고 유혹이고 나발이고 전부가 개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나는 평범한 발차기가 정확히 관자놀이에 빨려 들어가는 걸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최대한 섹시한 포즈로 자세를 취하고 있기는 했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이는 김예리의 모습은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나올 정도.
‘예리야… 너 커서 뭐가 되려고 그래…. 진짜 아저씨가 눈물이 난다야.’
팜므파탈에 알 수 없는 로망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너무나도 손쉽게 정리된 장내.
균열 여관의 가드들이 달려오기도 전에 끝나버린 쓰레기 청소에 주점 안이 조용해졌다.
모두 놀랍다는 표정이다.
대충 상대방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수준에 오른 만큼, 이 쓰레기 양아치들의 능력이 딸리지 않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을 터.
공화국에서 새롭게 등장한 3명의 신성을 본인들의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니 저런 얼굴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구석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몇몇 강자는 바크 세르게이를 예의주시 하고 있다.
아마 오늘이나 내일 안에 접선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여기 돌아가는 것도 이렇게 보니까 재미있기는 하네.’
작은 규모의 클랜들이 서로 연합하고 갈라지거나 치열하게 눈치싸움을 하는 모습이 특히나 인상적.
스카우터처럼 보이는 몇몇이 귓속말을 하거나 마법으로 대화를 차단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자신들이 하는 대화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기를 원하고 있음이 분명.
틀림없이 이 공화국의 신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리라.
폭풍의 중심이 된 예트니코바가 앞으로 클랜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갈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내가 신경 쓸 바는 아니다.
그것보다는 지금 이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먼저.
때마침 입을 열어오는 바크 세르게이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거, 뜻하지 않게 소란을 일으켜서 미안하게 됐소.”
“아닙니다. 오히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라도 할 것도 없다니까. 내가 쓸데없이 끼어든 건 아닌지 걱정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마찰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던 터라….”
“아하! 원정을 앞두고 있었구만.”
“네. 그렇습니다.”
“하긴 원정 전에 이런 사고에 말렸다가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혹시나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 아니요. 내일 일정에 지장이 생길지도 모르고. 정말로 방해한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이거 다행이구만. 그래서 어디에서 온 거요?”
‘이 새끼는 왜 이렇게 말을 붙이려고 그래?’
적당히 이야기 끝내고 얼른 지 자리로 돌아가면 좋으련만 계속해서 말을 건다.
박덕구가 수다 떠는 걸 좋아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처음 만난 파티에게도 이렇게 사근사근 말을 걸어올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우정 클랜 역시 녀석의 이런 인성이 나쁘게 보지는 않은 모양.
결국에는 입을 여는 클랜마스터 녀석이 시야에 비쳤다.
“린델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공화국…. 아니 아니, 이럴 게 아니라 잠깐 합석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식사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은데.”
‘이 새끼 나름 똑똑하네.’
우정 클랜의 마스터 이철우.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아니,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우정 클랜이 영웅 등급으로 분류할 수 있는 클랜인 것은 맞지만 녀석들 같은 경우에는 이제 막 올라온 병아리에 가깝다. 예트니코바를 비롯한 이 공화국의 신성들은 전설 등급을 목전에 두고 있는 클랜으로 보일 터, 인맥을 쌓아서 나쁘지 않으리라.
‘겸사겸사 균열 박물관에 대한 정보도 듣고 싶은 거겠지.’
물론 나에게 반가운 상황이 아니다.
혹시나 의심의 눈길이 쏟아지지는 않을까 불안했던 것도 사실.
하지만 예트니코바를 비롯한 그 일당들은 나를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아… 꼭 그럴 필요는 없는데.”
“이 주점의 술값을 모두 계산하신다고 하셨으니 안주 정도는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아… 거,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면 이거 어쩔 수 없겠구만.”
“감사합니다.”
“일단 통성명부터. 바크 세르게이요. 여기는 아르기르모. 또 여기는 우리 클랜마스터인 예트니코바 님.”
“반갑군.”
“…….”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콘셉질을 하는 안기모와 대꾸조차 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김예리.
조금 당황스러울 만도 하건만 이철우는 고개를 끄덕인 이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린델, 우정 클랜의 클랜마스터 이철우입니다.”
“음….”
“여기는 저희 클랜의 부클랜마스터 김태건. 이쪽은 암살자인 국민지. 또 여기는….”
계속해서 파티원들의 소개를 해주고 있던 녀석의 눈동자 어느 순간 내 쪽에 머물렀다.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난처한 거겠지.
아마 직접 나 자신을 소개하는 게 맞으리라.
“이번 원정에서 우연치 않게 우정 클랜 파티에 합류한 이기연이라고 합니다.”
“…….”
“…….”
순식간에 시선이 집중된다.
특히나 빤히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박덕구의 시선은 가관.
안기모도 천천히 내 얼굴을 살펴보고 있다.
걸려도 상관은 없지만 기왕이면 모른 척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한 순간 박덕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 어디서 본 적 있지 않소?”
“네?”
“아, 어디서 본 것 같은 사람인데…. 끄응. 분명히 본 것 같은데….”
“착… 각이실 거예요. 저는 린델 밖을 벗어난 적이 없는 터라.”
“킁킁.”
‘뭐야, 얘 왜 이래?’
“익숙한 냄샌데…. 정말로 본 적 없었나?”
‘네가 개야?’
이렇게 되니 분위기가 꽤나 묘해진다.
갑작스레 우정 클랜의 주축 여러분들이 바크 세르게이를 경계하는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자신의 행동이 실수라는 걸 깨달은 녀석은 조용히 앞에 있는 소시지를 주워 먹기 시작했다.
물론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은 덤.
어느새 균열 박물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이들이 정보를 얻기 위해 여러 가지를 물어보는 동안에도 녀석은 나를 살폈다.
‘이 새끼는 이상하게 눈치가 빠르다니까.’
다행히 강원도 연애박사가 나에게 개수작을 부려오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어떻게 봐도 기분 좋은 상황은 아니다.
“그래서… 균열 박물관은 좀 어떻습니까?”
“아마 괜찮을 거요. 우리는 희귀 등급의 검 하나. 영웅 등급의 방어구 하나가 나왔는데 솔직히 이 정도만 됐어도 본전은 쳤다고 생각했거든. 그런데 전설 등급의 목걸이라니…. 솔직히 상상도 못했다는 거 아니요.”
“실례가 아니라면 난이도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 그러고 보니 영웅 등급으로 신청하셨겠구만. 내 말이 맞소?”
“네. 그렇습니다. 아직 초입이지만 경험을 쌓기에 이만한 장소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난이도는 그리 나쁘지는 않을 거요. 우리에게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으니까. 사실 우리도 전설 등급으로 진입하고 싶었는데… 전설 등급으로 찾아 들어갈 수준은 아니라…. 그래도 다음부터는 아마 들어갈 수 있게 되겠지. 오늘 얻은 이 아이템을 바탕으로 한층 더 강해질 수 있을 테니까.”
녀석의 역할은 확실히 바람잡이가 맞다.
맥락도 없이 목걸이를 흔들면서 강해질 수 있다며 말하는 모습이 딱 그렇다.
아마 이지혜에게 전설 등급의 아이템을 자랑하고 오라는 미션을 받았으리라.
엄연히 자랑질이기는 하지만 우정 클랜 여러분들의 시선에는 부러움이 감돈다.
영웅 등급의 던전에서 전설 등급의 목걸이가 나왔다는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이미 홍보로 듣기도 했었지만 자신들의 눈으로 실제로 확인한 셈.
한참 전에 준신화 등급의 아이템을 가지게 된 나는 이제는 전설 등급이라는 네이밍이 슬슬 물리지만, 이 세계에서 전설 등급이라는 건 절대로 무시할 만한 게 아니다.
파란 길드에서도 보유하고 있는 전설 등급의 아이템은 그리 많지 않다.
당장 안기모나 선희영 같은 이들도 전설 아이템 보유자가 아니다.
값으로 따질 수 없는 지고의 보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강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치트.
로또에 열광하는 건 지구에 있는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아마 균열 박물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아이템은 수천 종일 거요. 어째서 그런 것들을 보관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아이템의 수량이 정해져 있다는 거겠지.”
“아….”
“수가 제한되어 있다는 뜻이 뭔지 알겠소? 균열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전설 등급의 아이템은 먼저 가서 먹는 사람이 임자라는 거요. 물론 확률이야 낮겠지만 충분히 할 만한 가치가 있는 도박이라는 거지. 보통 모험가는 영웅 등급의 벽에서 콱 하고 막혀 버리거든. 더 이상 내가 성장할 수 없다고 한계가 느껴질 때. 그럴 때 도움이 되는 게 이런 아이템이지.”
“그렇군요.”
“우리 같은 일반 서민 모험가들이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그 것만으로도 균열 박물관은 가치가 있다니까?”
‘설득되는데? 자식, 말 잘하네.’
“그리고… 이곳에서 치러지는 비용은 모두 이후를 대비한 군자금이라고 합디다.”
“네?”
“지금 우리가 소비하는 모든 것이… 사실은 대륙을 위해 싸우기 위한 자금들이라는 거요.”
“아….”
“아마 들어본 적이 있을 거요. 위협이라는 거 말이요.”
“확실히 들어본 적이 있지만 그건….”
“헛소문이나 헛소리가 아니오. 대륙을 위협하는 존재는 실존한다니까.”
한 치의 거짓도 느껴지지 않는 묵직한 목소리.
무척이나 커다란 짐을 지고 있는 듯한 표정.
‘너 진짜 3회 차 아니냐.’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해볼 정도였다.
‘이 돼지새끼 도대체 몇 회 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