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3
회귀자 사용설명서 443화
균열박물관 리모델링(1)
[무 등급 던전 균열 박물관에 입장하셨습니다.]
[인원 제한 ‘없음’을 확인했습니다.]
[무 등급의 강제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퀘스트-박물관 탐방(0/1)]
솔직히 들어오기 전까지가 고역이었다.
‘시바…. 돼지 새끼. 수습도 안 하고 튀었어.’
사실은 시간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정신없이 박물관으로 뛰어와야 했으니까.
여성 4명의 경멸어린 눈빛에 절로 주눅이 들 정도.
어제의 일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조차 없었다.
마치 더러운 벌레라도 보는 양 의식적으로 이쪽을 피하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
이철우와 김태건도 이 소식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접근해 오는 것을 보면 믿지 않거나 듣지 못한 모양.
아니면 딱히 상관없다는 느낌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듣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녀석들이 이쪽에 친절하게 대하면 대할수록 경멸의 눈빛은 더욱 심해지는 중.
기분 좋은 상태에서 시작하고 싶건만 그리 순탄하게 진행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거 아니라고…. 빛기연이지, 비치기연 아니라고….’
속으로 중얼거려 봤지만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
그야말로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박물관 입성은 좋은 돌파구가 되어주었다. 파티원 모두가 새로운 환경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익숙한 상태창, 익숙한 배경이었다.
하지만 미묘하게 달라진 느낌.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다.
무 등급 던전이었던 균열 박물관은 완전히 익숙한 듯, 새로운 장소로 재탄생 되었다.
칙칙했던 지난 장소와는 다르게 정말로 박물관다운 모양새를 갖춘 것이 첫 번째.
인원제한이 없어진 것이 두 번째다.
넓은 장소에 모여 있는 이들만 해도 수백 파티는 족히 넘을 것 같은 느낌.
다른 방에서 시작한 파티를 생각해 보면 아마 박물관 안에 들어서 있는 인원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곧바로 전투를 시작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도 사실.
하지만 균열 박물관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막스는 그런 형식을 채택하지 않았다.
안쪽에 있는 콜렉션이 얼마나 대단한지 자랑하는 게 바로 우리 아들내미의 소소한 취미니, 자신의 콜렉션을 구경시켜 준 이후에야 전투가 시작될 것이다.
바크 세르게이와 아르기르모에게 들었던 그대로.
사전 정보가 없었던 파티는 깜짝 놀란 표정이지만 대부분 알고 있었다는 듯 익숙해 보인다.
이미 소문이 퍼질 대로 퍼진 것이리라.
커다란 동공의 안.
감상에 빠지기가 무섭게 이철우가 말을 걸어왔다.
“대단하군요. 확실히… 정말로 대단합니다.”
“네. 저도 그렇게 느껴지네요. 솔직히 이런 광경을 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공을 들이긴 했어.’
멋들어진 전시관 안에 전시되어 있는 아이템과 몬스터.
비교적 사람들의 시선이 잘 모이는 곳에서는 메인이라고 불려도 될 정도로 멋진 전시물을 장식해 놨다.
국민지를 포함한 4인방 역시 정신없이 박물관을 둘러보는 중.
잠깐이지만 어제의 사건은 전부 잊은 것처럼 보였다.
멍하니 그 모습을 구경하던 모든 파티원의 시선이 한곳으로 집중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균열박물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모험가 여러분. 던전 관리인 막스입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리니 오랜만에 보는 아들내미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던전 관리인 막스의 정보를 확인합니다.]
[전설 등급의 특성 마음의 눈으로 던전 관리인의 더미를 간파합니다.]
[관리인 막스의 더미]
[관리인 막스에 의해서 만들어진 마력의 응집체입니다. 실체가 없는 허상이기 때문에 상태창과 정보창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박물관에 제한적인 정보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똑같네.’
더미라지만 반갑다.
우리 똘똘이와 함께 헤어지기 싫다고 찡찡거렸던 녀석의 모습이 기억났으니까.
여기에서는 이토록 근엄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어떻게 보면 굉장히 귀엽게 느껴질 지경이다.
-오늘도 많은 모험가 분이 찾아와 주셨네요. 박물관 탐험이 시작되기 전 주의사항과 함께 여러분이 숙지하셔야 할 몇 가지 사항을 공지하겠습니다. 여러분이 그토록 원하시는 탐험은 이런 전반적인 숙지사항을 거치며 박물관을 둘러보신 이후에 진행됩니다. 전시물 관람이 끝난 이후에는 각 파티로 흩어져 직접 박물관을 경험하게 될 예정이니 관람 중 파티원을 잃어버리는 것에 유의해 주세요.
-아! 참고로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전시관에 함부로 손을 대시면 패널티를 얻게 됩니다.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퇴장조치를 하는 등의 강경조치를 취하고 있으니 꼭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진행 시원시원하다.
박물관 관리인이라고는 하지만 마치 가이드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실.
억지로 근엄한 척했던 예전의 막스와는 다르게 아주 약간의 귀여움 마저 느껴졌다.
-본격적인 설명을 드리기 전에 저희 박물관의 역사에 대해 알아봐야겠죠? 균열박물관은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것보다 더욱 오래된 장소입니다. 균열 수호자분들이 균열을 봉인하기 위해 만드신 곳이고, 또 기억하기 위해 만든 장소입니다.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는 기나긴 세월 동안 균열 수호자님들은 이곳에 스스로를 가두시고 오롯이 봉인에만 집중하셨지요. 균열 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는 물품이나 존재는 모두 균열을 통해 흘러들어온 것들입니다. 물론 그 이후에 들어온 것들이나 박물관에서 직접 만들어진 아이템이나 키메라들도 존재합니다만 기본적인 균열 박물관의 성격은 이렇습니다.
“신기하군요.”
-균열 수호자 분들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바쳐 균열을 봉인하는 데 성공하셨지만 그 이후에도 항상 균형이나 보이지 않는 위협에 대해서 걱정하셨습니다. 때문에 항상 균열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박물관을 만드신 겁니다. 박물관 탐험의 보상 대부분이 보물이라고 불리는 무구들로 이루어진 이유 또한 동일하겠죠?
모두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
아마 저런 표정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륙에 살아가는 동안 균열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고 있었던 놈들이 대부분일 테니까.
균열 수호자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시간도 전에 이 대륙을 보호하고 있었다는 것과 여기에 있는 것들이 전부 세상에 풀리지 않았다는 것.
모두 놀라운 일일 것이다.
물론, 한 번 와본 것으로 모자라 균열 박물관 4급 관리자의 칭호를 달고 있는 나는 전부 알고 있는 내용. 굳이 놀랄 필요조차 없다.
하지만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게 하는 새로운 구조물에 등장에는 나 역시 커다랗게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잠깐 왼쪽을 바라봐 주시겠습니까? 박물관 탐험가 여러분, 부끄럽습니다만 소,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이 세상에 있게 해주신 어머니와 아버지입니다.
‘내가 왜 저기 있어.’
균열 수호자 메텔과 내가 착 달라붙어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은 가관. 심지어….
‘메텔 수호자는 왜 임신하고 있는 건데?’
입이 떡하고 벌어졌다.
“저거 명예추기경 아니야?”
“닮은 사람이겠지. 감히 헤아릴 수 없는 시간도 전이라는데… 복장도 다르잖아. 양식도 완전히 다르고.”
“그런가.”
“균열 수호자 뭐시기라잖아. 닮은 사람이겠지 뭐.”
-지금은 존재하지 않으시지만.
‘멋대로 죽이지 마라, 아들.’
-제 가슴속에는 살아계시는 분들입니다.
-메텔 수호자님, 어머님과 아버님은 균열 박물관의 발전과 관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셨습니다. 이분들이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의 저도, 균열 박물관도 없었을 겁니다. 물론 지금의 대륙도 없었겠죠.
당황스러워 실소가 나왔다는 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특히나 메텔 수호자가 임신해 있는 부분이 압권.
내 모습을 한 동상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그 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심지어 배에 입까지 맞춰주신다.
배에 귀를 가져다주는 둥 아주 메텔에게 지극정성이라 할 만했다.
‘골렘이구나.’
조각품들이 서로 사랑스러운 눈길을 주고받는 모습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애정이 느껴질 정도.
‘막 아들… 누가 이런 거 만들라고 했어. 누가… 영혼결혼식 시켜달라고 했어…. 막 아들! 아빠도 사람이야! 사람!’
손 한 번 만진 적 없건만 메텔을 임신시킨 게 되어버렸다.
얼굴도 한 번 본 게 전부다.
정하얀이 저 모습을 보고 있다면 대뜸 캐스팅을 외워 동상을 폭발시켜 버릴 것이리라.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해지기도 했다.
막 아들이 어떤 심정으로 저런 걸 만들었는지 대충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끝나고 한 번 안아줘야겠네.’
진한 부자 간의 시간을 가져줘야겠다고 다짐해 볼 정도.
슬쩍 막스의 더미를 보니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고 있는 꼴은 가관.
아마 실제로도 부끄러워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못난 아버지를 둔 아들에게 미안하네….’
-그, 그럼 다음으로 넘어가 볼까요? 옆에 놓인 아이템들이 바로 전설 등급의 아이템입니다.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봐주세요. 노파심에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전시되어 있는 아이템은 모두 시스템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오해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스스로의 행동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와아.”
“이것 좀 보세요. 이거…. 철우 오빠!”
“기연 씨, 이리 좀 와보시죠. 이런 지팡이도 있습니다.”
“아, 네.”
‘난 이미 전부 다 봤다, 철우야. 그러니까 너한테 말 거는 얘들도 좀 상대해 줘라.’
“전설 등급의 지팡이입니다. 정말로 전설 등급의 아이템도 보유하고 있는 거였군요. 박물관 카탈로그에도 나와 있는 아이템입니다.”
-전설 등급의 아이템의 경우는 영웅 등급의 난이도에서 아주 낮은 확률로, 전설 등급의 던전에서는 낮은 확률로 뽑으실 수 있습니다. 영웅 등급의 아이템은 희귀 등급의 난이도에서 낮은 확률로, 같은 영웅 등급의 던전에서는 일반 확률로 뽑으실 수 있으시고요. 더불어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양산형 영웅 등급의 아이템도 있으니 이 점 유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 좀 보세요! 신화 등급의 망치예요. 태건 오빠, 이런 건 값으로도 따질 수 없겠죠?”
“기연 씨, 여기 로브 한 번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영웅 등급의 난이도에서도 등장하는 아이템인데 제법 확률이 좋은 것 같습니다.”
‘너도 마찬가지야. 김태건 이 자식아.’
-여기에 있는 이들이 전설 등급의 몬스터입니다. 신화 등급의 존재 역시 3종을 보유하고 있지만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신화 등급의 몬스터를 제외한 2종은 현재 극도의 주의를 요하는 상태라 감상하기 힘든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얘도 오랜만이네….’
저번에 한 번 봤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는다.
무기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있는 녹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는 괴물.
거대한 뿔과 거대한 꼬리 그리고 주변을 떠다니는 일곱 가지의 무기.
저번에 봤던 모습 그대로다.
녀석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인간들은 모두가 침을 삼키는 중.
아마 내가 녀석을 처음 봤을 때 한 생각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리라.
‘이딴 걸 어떻게 이겨….’
그 말 그대로.
이건 압도적인 존재다.
평범한 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괴물.
심지어 이 괴물이 진품이 아니라 잘 만들어진 모조품이란다.
웅성거리는 인간들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막스가 미소 지었다.
-아마 여러분이 신화급 존재를 상대하실 수는 없으실 겁니다. 큼큼. 지난번에 조금 사고가 있었던 터라…. 본래는 신화 등급도 여러분의 탐험에 넣어야 하지만 그… 양해 부탁드립니다.
박물관 4급 관리인의 권한으로 녀석들을 완전히 봉인시켜 버렸다.
이딴 건 세상에 나오면 안 되는 놈들이라는 거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왔을 때는 마음의 눈으로 저 녹색의 괴물이 보이지 않았었다.
‘격이 부족하다고 하지 않았나? 지금은 될 것 같은데….’
마음의 눈도 성장했고 직업도 준신화 등급 판정을 받았으니까.
어떻게 보면 비등비등한 존재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게 마음의 눈을 발동시키려던 때였다.
어깨에 통증이 느껴진 것.
심지어 몸도 앞으로 밀린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자 시야에 비친 것은 국민지 패거리.
사과는커녕 모르는 척 지들끼리 재잘대고 있는 모습은 가관.
‘인성 나오게 하지 마라…. 이 계집애들아.’
조금씩, 조금씩 인내심이 끊어지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