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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44화 (443/1,590)

# 444

회귀자 사용설명서 444화

선즙필승(1)

따돌림이라니….

아마 어젯밤에 있던 사건이 결정적이었으리라.

그동안의 조신한 이미지를 전부 말아먹을 정도로 큰 사건이었으니까.

솔직히 나라도 그녀들 같은 행동을 취했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저들 입장에서 이번 원정은 클랜의 향후 방향을 결정할 정도의 커다란 이벤트일 터.

푹 쉬고 힘을 비축해도 모자랄 판에 굴러들어온 돌이 밤새 술판을 벌였다.

어떻게 봐도 지탄받아 마땅한 행동이기는 하다.

조금 일을 크게 벌리면 당장 파티에서 제명시키고 여러 가지 단체에 찔러 공론화시켜도 할 말이 없는 사건.

만약 내가 우정 클랜원이었다면 높은 확률로 짤리거나 그에 걸맞은 패널티를 받았으리라.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개념 없다는 꼬리표를 달기에는 부족함이 없다는 거다.

‘슈바….’

하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적의를 드러낼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 특히나 대놓고 비웃는 얼굴이 그랬다.

무슨 계획이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에 빅엿이라도 먹일 생각에 행복해하고 있는 얼굴들.

솔직히 마음에 드는 얼굴은 아니었다. 빛기연은 엿을 먹는 데는 익숙하지 않았으니까.

“풉.”

“푸흡.”

“킥킥.”

몸이 휘청거리기가 무섭게 고막을 강타하는 비웃음 소리.

“후우.”

애들 장난에 장단 맞춰주기는 싫지만 자꾸만 짜증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다.

‘이 계집애들….’

전방을 바라보자 벌써 멀찍이 떨어져 수다를 떨고 있는 이들이 시야에 비쳤다.

그 와중에도 막스는 계속해서 박물관에 대한 설명을 진행하고 있는 중.

아버지가 여기에서 어깨 빵을 당하고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눈치챌 만도 한데….’

아마 천천히 구성원들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본다면 충분히 내가 이기영이라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녀석이 김현성이 특이하다는 것과 내가 특별한 눈을 가지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간파할 만하다.

하지만 엄청나게 많은 인원을 한꺼번에 케어하려다 보니 그렇게 살펴볼 시간은 없는 모양.

누가 봐도 정신없게 느껴질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 이해해 줄 만했다.

‘조금 흥분한 것 같기도 하고….’

자기 할 말만 쏟아내고 있고 박물관 탐험가들도 호응을 잘해주니 신이 난 모양이다.

마치 공부라도 하는 것처럼 막스가 하는 말을 필기하는 녀석도 있는 것은 물론 박물관 전시관에 있는 몬스터나 아이템을 스케치하는 녀석까지 등장하기 시작.

앞으로 한 번이 아닌 만큼 이 장소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습득하려는 의도이리라.

물론 이렇게 공부하는 녀석들만 있는 건 아니다.

정말 박물관이라도 온 것처럼 이곳저곳을 기울이고 있는 놈들 역시 꽤나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다.

보상을 미리 알려주는 던전은 없다. 던전의 네이밍이나 등급에 따라 어떤 종류의 아이템이 나올지 예상할 수는 있지만 균열 박물관처럼 대놓고 전시해 놓는 곳은 없다는 거다.

안 그래도 제삿밥에 관심이 많은 모험가들이 흥미진진하게 주위를 둘러보는 게 당연했다.

“저기 봐요.”

“이런 건 구하기 힘들 텐데….”

“대륙 양식의 무기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한번 써보고 싶네요. 특수능력으로 뭘 갖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잘 팔리지는 않을 것 같은데…. 노릴 만한 게 있는지 조금 더 알아보자고.”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진지한 목소리들.

박물관이 한순간에 호황을 맞이한 만큼 막스의 입이 찢어지고 있었다.

진지한 관람객들의 반응에 힘을 얻은 것이다. 약간 크게 들려온 혼잣말에도 반응하는 꼴은 가관.

평소대로의 막 아들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것들이 전부인가?”

-물론 여기 있는 아이템이 전부는 아닙니다. 저희 균열박물관에서는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다고 말할 수 있는 아이템들 역시 계속해서 수집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대륙 곳곳에 퍼져 있는 유물급 아이템들 말입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물건은 거의 대부분 박물관에서 보관 중에 있습니다. 당연히 그런 물건들 역시 보상목록에 포함되어 있고요. 아마 여러분이 놀라실 만한 물건도 있을 겁니다.

“그렇구나….”

-부족한 아이템의 물량 역시 저희 박물관에서 특수 제작한 아이템으로 충당하고 있으니 다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혹시나 다른 질문이 있으십니까?

“정확한 확률은 어떻게 되는지….”

-정확한 확률은 공개해 드리기 어렵습니다. 그건 균열수호자님들이 직접 지정하신 것들이라…. 다만 모든 것이 무작위로 이루어지며 여러분이 원할 시에 추가 기회를 부여해 드리고 있다는 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아! 슬슬 박물관 탐험을 시작해야 될 시간이 찾아왔군요. 마음 같아서는 여러분과 함께 하루 종일 박물관을 둘러보고 싶지만 시간을 조금 더 지체한다면 이후에 들어올 분들께서 피해를 보는 터라…. 박물관에 오신 모든 탐험가는 골렘의 통제에 맞춰서 움직여주시기 바랍니다. 파티원을 잃어버리시거나 섞이지 않게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통제에 따라주지 않으면 강제퇴장 조치 될 수 있습니다.

“기연 씨, 이쪽입니다.”

“네, 철우 씨.”

“빨리빨리 움직입시다.”

“길 막지 마요! 전설 등급 던전 파티 먼저 지나갑니다.”

강제퇴장 조치 당한다는 발언이 결정적이었는지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고 있는 이들이 눈에 보인다.

몇 백 골드를 쏟아 부어 들어온 던전일 테니 쫓겨나고 싶을 리 만무.

마력골렘의 인도에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모험가들의 모습은 영 적응되지 않는다.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던 파티원들이 속속들이 모이고 각각의 자리로 안내되기 시작.

물론 우리 파티도 예외는 아니다.

멀찍이 떨어져 전사용 아이템을 구경하고 있었던 김태건과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은 국민지 4인방 역시 이철우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민지야, 아이템 목록은 정리해 놨지?”

“네. 시간이 없어서 전부는 아니지만 쓸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전부 체크해 놨어요. 근데 크게 의미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아요. 보니까 메인 전시관에 전시된 아이템들은 쉽게 뽑을 수 없는 것들인 것 같고…. 몬스터들도 마찬가지예요. 혹시나 전설급 몬스터나 신화급 몬스터가 나오면 어떡하나 하고 걱정했는데 그럴 확률은 없거나 희박한 것 같았어요.”

“그래. 수고했다.”

“아니요. 당연한 일인데요. 뭐.”

“아마 이쯤에서 대기인 것 같은데. 어제 들은 이야기로는 여유시간이 조금은 있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전투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속에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로 요깃거리를 해도 괜찮고 음. 들어가기 전에 장비들 미리 점검해 두고. 이미 아침에 모두 확인했겠지만.”

“시간이 없어서 확인하지 못한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이런 시간이 있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그렇죠. 기연 씨?”

힐끔 날 바라본 이후에 입을 연 것을 보니 다분히 날 저격한 말처럼 들렸다. 아니, 애초에 내 이름을 불렀으니 나를 저격한 것이다.

‘시간이 없기는 했지.’

하지만 굳이 이런 타이밍에 입을 열어왔다는 의도가 궁금했다. 본격적으로 박물관 안으로 진입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시바… 혹시….’

여전히 김태건과 이철우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있지 못하는 상황.

하지만 최대한 웃음을 참고 있는 4인방을 보자 저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사탄도 울고 갈 년들… 니들이 날 쫓아내려고 하는구나.’

눈엣가시였던 이쪽을 진입 직전 밀어내려고 계획한 것이 분명.

‘마법사 필요 없어?’

정확히 말하면 내가 필요 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저들의 입장에서 빛기연은 무임승차자처럼 보일 테니까.

어제 바크 세르게이에게 이야기를 듣고는 6명이서 공략이 가능하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모험보험을 믿고 있을 수도 있다.

따로 마법사를 구해놨을 수도 있지만 결론은 일이 틀어져도 비빌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

어처구니가 없어 당황스러울 지경.

굳이 여기까지와 간을 보기 시작한 저의가 뭔지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개고생시키고 싶다, 이거네.’

4명이 함께 입을 모아 이철우와 김태건에게 입을 털지 않은 이유가 바로 이거다.

조금 더 결정적인 순간에 엿을 먹이고 싶었을 테니까.

프로 엿 제조사라면 당연히 생각해 봄직한 행동이다. 별건 아니지만 기분이 나쁜 것은 당연했다.

‘니들이 사람이냐.’

선량한 모험가를 이런 식으로 대우해서는 안 된다.

다시 한번 국민지가 입을 열어온 것은 내가 막 입을 떼려고 했을 때였다.

“그런데 오빠들… 어디서 썩은 해산물 냄새나지 않아요?”

“무슨 냄새?”

“저도 잘 모르겠는데 뭔가 썩은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이상한 비린내 같은데…. 그렇게 말하기에는 조금 더 지독한 그런 냄새요. 오징어 썩은 냄새 같은데… 으… 정말 더럽고 역겹네요. 이거 저밖에 안 나요?”

“저도 나요.”

“저도요.”

“우웩. 우우웁….”

“…….”

김태건과 이철우는 얘들이 뭘 잘 못 먹은 건 아닌지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아마 이 발언의 목적이 뭔지는 금방 알게 될 것이다.

“오빠들.”

“무슨 일인데 그래? 자꾸?”

“글쎄요. 저 여자한테 물어보는 게 좋으실 거예요. 아무래도 이상한 냄새는 저 사람한테서 나는 것 같으니까.”

“뭐?”

“민지야,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내가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제가 괜한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니에요. 철우 오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니까요. 애초에 저거 모험가도 뭣도 아니에요. 무임승차하려는 꽃뱀이지. 굳이 같이 진입할 필요? 없어요. 저 사람 구하느라 허비한 시간이 조금 아깝기는 하지만 차라리 없는 게 도움이 될걸요?”

“민지야!”

“처음부터 이기연 저 여자한테 이번 원정은 진지하지도 않았어요. 어떻게든 오빠들 꼬셔서 신분세탁 하려는 것 목적밖에는 없었다니까요? 몸 팔고 영혼 파는 사람이랑 던전에 들어가 봤자 힘들어질 뿐이에요.”

“당장 사과해.”

“아뇨. 사과 못 해요. 저 여자한테 직접 물어보세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뭐?”

“어제 새벽에 미정이 언니가 봤거든요.”

“뭘 봤다는 거야. 도대체.”

“바크 세르게이랑 아르기르모. 두 사람이 저 여자 방에서 나오는 거.”

“정말입니까?”

“네. 제가 눈으로 직접 확인했어요, 철우 오빠, 태건 오빠. 저 여자랑은 눈까지 직접 마주쳤고요.”

“…….”

“…….”

“저, 그러니까 그건 오해….”

“야심한 밤에 남녀가 뭘 하고 있었을라나? 원정 앞두고 있다는 자각은 있으셨던 거죠? 기연 씨? 아니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건가? 몸도 튼튼하셔라. 행군할 때는 그렇게 질질 짜더니 남자 둘이랑 놀아날 체력은 있었나 봐. 얼마 받으셨어요? 그렇게 하는데 얼마 받았냐고요? 아니, 애초에 접선은 어떻게 한 거지? 몸 파는 사람들끼리의 커뮤니티라도 있는 건가? 저도 웬만하면 참으려고 했어요. 분위기 좋았고 굳이 이렇게 산통 깨고 싶지는 않았는데 해도 해도 너무한 것 같아서요. 참다 참다 못해서 말씀드린 거예요. 이런 던전은 모험가들을 위해서 있는 거지 당신 같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곳이 아니에요.”

“아니….”

“어떻게 할래요? 당신 발로 직접 나가실래요? 아니면 제가 직접 끌어내 드릴까요?”

‘슈바.’

슬쩍 주변을 살펴본 것은 당연했다.

대충 여론이 어떤지 파악하는 게 먼저였으니까.

일단은 힘이 되어줄 남자 둘.

하지만 이철우와 김태건의 표정이 조금 미묘해 보인다.

국민지는 모르겠지만 미정인지 뭔지 하는 여자가 거짓말을 할 성격은 아닌 모양이다.

무언가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눈빛.

정치인생 27년.

이런 곳에서 정치질을 당해 궁지에 몰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물론 타개책은 존재.

하지만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이미 안구는 활발한 활동을 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거의 무의식에 가깝게 펼쳐진 행동.

“히끅. 흐그윽.”

평소와 다른 울음소리가 내 귀에 직접 들려온 것은 당연지사.

‘선즙필승….’

0.5초도 지나지 않아 악어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히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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