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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48화 (447/1,590)

# 448

회귀자 사용설명서 448화

우정 클랜 우정에 금가는 소리(3)

“철우야, 그래도 나는 너만 믿고 있었는데… 버프가 너무 안 들어오더라.”

별것 아닌 대사이긴 했지만 본래 모든 문제는 저 별것 아닌 것에서 시작된다.

이미 많은 이가 알고 있으리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교훈… 최소한 한국에서 온 모험가라면 이 말의 뜻을 모를 리가 없다.

사실 딱히 이철우를 노렸다고 하기에는 어려운 말투였다.

아쉬운 소리에 한 번 내질러 본 대사.

푸념하듯이 중얼거린 것을 보면 책임을 회피하거나 정치질을 시작하기 위해서라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어째서 갑자기 저런 아쉬운 소리를 지껄였는지는 뻔했다.

‘부끄러운 거겠지.’

방금 전 형편없었던 자신의 모습을 변명하기 위해 지껄이는 것에 불과하리라.

지금 이 순간에도 얼굴을 붉히고 있는 김태건은 방금의 모습이 진짜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고 여기는 듯했다.

허둥지둥 대며 몬스터와도 마주하지 못했던 꼴사나운 행태는 지금 떠올려도 내 얼굴이 다 붉어질 정도.

일반인들은 그게 뭐가 문제냐 말하겠지만 최소한 영웅 등급 전사의 행동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1회 차 박덕구가 던전 안에서 보였던 트롤짓보다도 더 꼴불견이었다.

하물며 몇 년이나 칼밥을 먹었던 사건의 당사자가 얼마나 부끄러워할지에 대해서 굳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일 터.

말을 마친 뒤에도 힐끔 힐끔 이쪽을 바라보는 것을 보니 나에게 잘 보이고 싶다는 이유도 지분이 있을 것 같았다.

‘지 잘못 아니라 이거여. 저런 놈들이 문제야. 저런 놈들이.’

이철우 역시 당황한 것처럼 보이기는 마찬가지.

갑작스레 화살이 자신에게 날아올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모양이다.

“미안하다. 근접 검사한테 조금 더 투자한다는 판단이었는데… 기연 씨도 그렇게 이야기했었고….”

말끝을 살짝 흐린 이철우의 시선이 머문 것은 예의 그 검사가 자리한 곳.

미안하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은근슬쩍 책임을 회피하는 솜씨가 정치인 못지않다.

“은혜 씨가 너무 무리하게 들어간 것도 있죠. 어그로를 잡기가 힘들었으니까.”

“저는 기연 언니 말대로… 했어요. 목숨을 걸고 움직였다고요. 중상을 입을 각오로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섭섭해지죠.”

“그것도 전부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지. 그냥 막 들어간다고 능사가 아니잖아?”

“아니, 애초에 처음 문제는 카사라크의 눈에 화살이 박히면서부터였어요. 거기서부터 꼬인 거니까.”

‘처음부터 꼬인 거였다. 이 새끼들아.’

하지만 이들 중 몇몇은 그 의견에 공감하는 모양인 것 같았다.

사실 굳이 명장면을 꼽자면 몬스터를 광폭화시킨 그 공격이 베스트3 안에 들어갈 만하다.

국민지 당선 유력.

방금 전 형편없었던 싸움의 책임이 폭탄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 떠넘기는 꼴은 가관.

꼼짝없이 당선될 거라고 생각했던 국민지 역시 유연하게 상황을 빠져나간다.

“스왑 과정에서 박히게 된 화살이라서 어쩔 수 없었어요.”

이렇게 되면 김태건과 서브탱커의 당선이 유력해진다.

스왑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건 부정할 여지가 없었으니까.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접전에 누가 이 던전의 트롤러가 되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

계속해서 돌아가기 시작하는 화살표는 마치 균열 박물관에 돌림판을 보는 듯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민지야. 하… 백업이 없는 상태에서 스왑하는 게 얼마나 부담되는데….”

‘여기서 미정이가 치고 들어오네.’

클랜명과 어울리지 않게 떠넘기기가 계속되고 있는 중.

하지만 이 정도라면 아직 수습해 볼 만하다.

아직은, 아직까지는 모두의 태도가 미적지근하고 굉장히 소극적이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다. 처음 봤을 때부터 이들은 사이가 꽤 좋아보였고 서로에게 싫은 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몇 차례에 걸친 국민지 포함 4인방들의 트롤짓을 웃으며 받아줬던 이철우만 봐도 그건 답이 나온다.

물론 불안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아마 비치기연 오해사건.

이 커다란 사건이 이들이 목소리를 내게 된 계기라 단정 지어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끈끈한 믿음으로 구축된 관계에 펼쳐진 아주 작은 균열.

여성 파티원들의 가슴 속 한편에 남성 파티원들에 대한 섭섭함이라는 마구니가 침투하고 만 것.

지금만 봐도 이철우를 바라보는 이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이철우 바라기인 국민지는 아직까지 호의적인 눈빛을 보내고 있지만 최소한 다른 이들은 확실하게 불만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클랜 마스터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녀들뿐만이 아니라는 것.

자신의 불알친구를 바라보는 김태건의 눈빛에 미묘한 감정이 실려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이 새끼 질투 하나보네.’

명백한 질투심.

차희라를 바라보는 정하얀처럼 대놓고 속내를 드러내지는 않고 있는 것 같았지만 틀림없이 이철우를 바라보는 시선에 질투심이 섞여 있다.

무엇에 대한 질투심인지 고민했던 것도 잠시.

계속해서 발정 난 것처럼 달려들던 두 녀석이 떠오른 것은 당연지사.

어쩌면 녀석이 보내는 질투의 원인이 빛기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철우의 품에 안겨 아양 아닌 아양을 떤 게 바로 첫 번째 이유.

클랜 마스터랍시고 조금 더 많은 정성을 쏟은 게 두 번째 이유다.

‘브리핑 때도 잘하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했었나?’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클랜 마스터로서의 체면은 구겨지지 않게 조심조심 말했던 기억이 있다.

아무래도 클랜원들 앞에서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권위에 스크래치가 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니까.

어쩌면 그게 김태건을 자극했을 수도 있으리라.

이철우가 자신보다 더 유능하고 능력 있는 남자로 비춰지는 게 갑작스레 아니꼬와 진 것이다.

그 와중에 자신은 전위로서 온갖 추태를 부리며 커다란 똥을 쌌으니 민망함이 배가 됐을 터.

확실히 이런 경우에는 서포터 같은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유리하다.

대놓고 똥 싸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으니까.

아무튼, 지금의 사단이 만들어진 원인은 수컷의 질투라고 봐도 무방.

점점 더 목소리가 커져가는 우정 클랜에게 내가 취해야 할 조치는 간단했다.

일단 싸움을 말리고, 패배했다고 생각하는 김태건의 기를 살려주자.

“그러니까 거기서 왜! 몬스터가 광폭화 상태로 들어간 것도 제대로 확인 못 한 거야? 이런 싸움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잖아.”

“조금 더 집중할 곳이 있다고 이미 말했잖아. 네가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는 알겠는데, 그게 온전한 내 잘 못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것 같다.”

“그렇지. 너는 항상 그런 식이지.”

여기서 개입.

“아뇨. 아뇨. 다들 잘하셨어요. 제가 처음인데 조금 무리한 주문을 드린 것 같기도 하고… 파티마다 사냥 방식은 다른 법인데, 제가 너무 아무렇게나 말한 것 같네요. 기존의 여러분 방식으로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아요.”

‘이 개노답들아. 대륙의 미래가 어둡다. 진짜 어떻게 하냐.’

“아닙니다. 기연 씨. 기연 씨가 말씀해 주신 부분들은 저희도 항상 느끼고 있었습니다. 숙련도가 부족했다고 말하는 게 오히려 맞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요. 첫 몬스터는 굉장히 무난한 흐름이었던 것 같았는데… 어떻게 봐도 제가 쓸데없는 말을 드리는 바람에 혼란만 가중된 것 같네요. 파티 플레이라는 게 하루 이틀 손발을 맞춰서 되는 일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으셔도 돼요, 태건 씨.”

“…….”

“태건 씨가 재능 있는 전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몬스터를 상대하는 호흡이나 거리를 벌리는 것만 봐도 얼마나 경험이 많으신지 다 보인답니다.”

‘입 찢어지네. 입 찢어져. 이 새끼. 딱 그거 두 개만 볼만했다.’

“못난 모습을 보여서… 부끄러울 뿐입니다.”

“아니요. 전위로 보여주실 수 있는 건 전부 보여주셨어요. 태건 씨 잘 못이 아니니까 자책하지 마세요. 버프가 없는 상태로 광폭화된 네임드 몬스터를 잠시나마 붙잡을 수 있다는 건 다른 전위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죠.”

싱긋 웃어주는 것으로 마무리.

그제야 조금 진정하는 녀석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기연 씨 말이 맞습니다. 버프만 있었으면 더 잘 상대할 수 있었을 겁니다.”

‘거기서 그런 이야기는 왜 해, 미친놈아.’

김태건의 뒤끝어린 한마디에 순간적으로 이철우를 바라본 것은 당연지사.

얌전한 녀석답지 않게 눈썹이 꿈틀 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얼굴이 달아오른 게 흥분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했잖아, 태건아.”

“아니, 내가 뭐 다른 말을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아쉽다고 한 건데…. 혼잣말 하듯이 한 거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철우야.”

“어떻게 신경이 안 쓰이겠어? 그리고 나도 신성력을 관리해야 되는 사람인데. 애초에 네가 그렇게 무식하게 달려가지만 않았어도….”

“뭐? 네 신성력이 부족한 게 내가 파티원들을 지키려고 달려갔기 때문이라는 건 아니지?”

“하…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그런 의미가 아니긴. 그런 의미로밖엔 안 들리는데.”

‘그만해. 이 새끼들아.’

이대로라면 이철우의 당선이 유력하다.

불알친구마저 등을 돌려 버렸고 앞전의 국민지에게 커다란 노호성을 내질러 비호감으로 찍힌 상태였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국민지 외 여성 3인방이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

대놓고 디스하는 건 아니었지만 제대로 된 정치공작이라 할 만했다.

태세전환을 하는 속도가 심상치 않아 이런 종류의 싸움에 강할 거라 생각은 했었지만 은근슬쩍 물어뜯는 포지션은 마치 사냥에 임하는 늑대무리를 연상케 할 정도.

이 상태라면 10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당선이 확정될 것이다.

‘그건 막아야지.’

사실 어찌되든 상관은 없긴 하지만 이 모든 게 내 선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자 일말의 책임감이 느껴진다.

어찌됐건 이들을 이쪽으로 끌어 들인 것은 나였으니까.

최소한 쑤셔놓은 상처에 소독약 정도는 뿌려도 되지 않을까.

“다들 잘하셨어요. 딱히 누구의 탓도 아니니까. 모두 열 내지 않으셔도 돼요. 이러니까 제가 너무 죄송하네요. 괜한 말씀을 드린 것 같고…. 다들 표정 푸세요. 모험가 분들은 종종 이런 경우 많이 겪으시잖아요.”

‘그래 딱히 누구의 탓도 아니지. 니들 전부가 문젠데.’

“…….”

“…….”

“원정 진행해야죠?”

“네. 마저 진행해야겠죠.”

“그래요. 그렇게 합시다.”

“그러고 보니까 보상도 확인을 안 해봤네요.”

이미 커다란 상처를 떠안게 된 파티.

그래도.

‘반전의 여지는 있어.’

영웅 등급 이상의 아이템이 나와 준다면 다시 한번 파티원의 분위기를 끌어올릴 수 있다.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파티원들의 얼굴이 그나마 나아진다.

보상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보물 상자를 여는 것처럼 두근거리는 이들의 얼굴은 누가 봐도 크게 기대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는 게 좋겠지.”

“일단 진행부터 하는 게 좋겠어요. 오빠들.”

“그래….”

“아까 전은 희귀 등급이었죠. 영웅 등급만 나와줘도 괜찮을 것 같은데. 아니, 꼭 영웅 등급이 나와야겠네요. 2번째 몬스터는 촉매로 쓰기에도 애매하니까….”

“끄응. 확실히 제한적이겠네.”

“일단 돌려보면 알겠죠. 시작하죠.”

“그럼 돌릴게요.”

“베니고어 님, 제발….”

여성 몇몇이 손을 꼭 감고 기도를 드리는 게 시야에 비쳤다.

베니고어의 신성을 오르게 하는 뜻밖의 박물관 효과.

‘이거 은근히 효과 있겠는데.’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박물관은 베니고어를 비롯한 신들에게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간에 짧은 기도회 이후에는 과감하게 여성 한명이 돌림판을 돌리기 시작.

[돌림판이 돌아갑니다.]

‘가즈아!’

“보라색! 보라색!!”

[돌림판이 돌아갑니다.]

“영웅 등급! 영웅! 아니면 전설!”

[돌림판이 돌아갑니다.]

“제발! 제발!”

[돌림판이 멈췄습니다.]

“영웅 등급! 영웅 등급 떠!”

“제발….”

‘가즈아! 베니고어의 힘으로 가즈아!’

띠링!

[일반 등급의 아이템, 천재검사와 연금술사가 사랑하는 법 원고판(무삭제-19세 미만 구독불가)가 선택되었습니다.]

“…….”

“어?”

“…….”

김태건이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방패를 집어 던지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시부랄!”

원정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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