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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455화 (454/1,590)

# 455

회귀자 사용설명서 455화

결과 및 평가(2)

객관적으로 보면 정하얀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최곤존엄이라 분류되는 희라 누나와 감히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충분히 볼륨 있는 몸을 가지고 있었고 아담한 체형과 커다란 눈망울 역시 확실히 귀엽다고 할 만했다.

마력이 외모의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처음 만났을 때보다 확실히 예뻐졌다.

조금은 무감각했던 예전에 비해 본인이 외모에 관심이 많아지기도 했고 최근 더욱더 하얗게 변한 피부와 분홍색 입술은 만화에서나 나올 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

이제는 얼굴도 흐릿해진 유석우라는 놈이 집적댈 만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는 거다.

종합해 보면 충분히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귀여운 여동생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

결코 이런 반응이 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나도 남자인 만큼, 육탄공세 아닌 육탄공세를 해오는 정하얀에게 가끔 두근거렸다는 건 부정할 수 없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현재 몸이 보내오는 신호는 이상하다 말할 만했다.

‘왜 이래….’

딱히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평소와는 다르다.

아침부터 신나게 뛰어왔는지 희미한 땀 냄새와 살결냄새가 자꾸만 후각을 자극한다.

흥분제라도 마신 것 같은 기분에 머리를 흔든 것은 당연지사.

아무 이상 없었던 몸이 자꾸만 움찔 거리는 상황은 확실히 반갑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리는 것은 물론 묘하게 호흡도 거칠어진다.

나를 꽉 껴안은 정하얀의 몸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할 만했지만 어쩐지 평소보다 더 익숙한 기분.

올라오는 신체적 반응에 몸을 엉거주춤하게 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나를 본 정하얀이 그 꼴을 두고 볼 수 있을 리 만무.

거머리처럼 몸을 딱 붙이고 하체를 최대한 가까이 하려 기를 쓰는 모습은 그 의도가 궁금할 정도였다.

입꼬리가 광대까지 올라가 있는 것을 보면 내가 자신을 의식하고 있다는 걸 눈치챈 모양.

은근슬쩍 흉부를 밀착해 오거나 하체를 최대한 앞으로 내밀고 있는 기행 자체도 문제.

평소였다면 코웃음도 안 나올 정도로 어색했던 정하얀의 유혹 타임이 지금은 서큐버스와 독대한 것은 아닐까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자극적으로 느껴진다.

뭔가 마법을 걸어온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의심을 해볼 정도였으니 다른 표현이 필요 없으리라.

‘얘가 미쳐가지고 매혹 마법이라도 외운 건 아니겠지.’

가능성은 낮다.

만약 매혹 마법이었다면 이런 사고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을 테니까.

정하얀이 연금술에 대해 약간의 조예가 있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미약 같은 거라도 뿌리고 온 건 아닌지 의심되기는 했지만, 그런 종류의 물품이라면 내가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정말로 요정 마법의 부작용은 아닌지 의심이 가는 상황.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들었던 만큼 일단은 정하얀을 밀어낼 수밖에 없었다.

정하얀이 조금 아쉬운 얼굴을 했던 것도 잠시.

이마에 살짝 입을 맞춰주고 등을 토닥거려주자 다시 한번 입가가 찢어지는 게 시야에 비쳤다.

‘단순해서 좋아요.’

“그동안 잘 지냈어?”

“네! 잘 지냈어요. 여기저기에 조정할 게 많아서요. 소, 소라 씨랑 같이 계속 움직였었거든요. 지난 며칠간은 정말로 너무 바빠서… 따로 다른 일을 할 시간도 없었어요. 마법이 들어갈 일이 생각보다 많아서, 공사도 전부 마법으로 했고….”

“한소라?”

“네. 소라 씨요.”

‘얘는 괴로웠겠는데.’

아직까지도 정하얀에게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파란의 병아리.

이제는 병아리라고 부르기에 민망할 정도로 성장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작업에 희망찬 미래를 그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균열 랜드에 파란길드의 지부가 생겨났으니 이쪽으로 전출하고 싶다는 커다란 희망사항을 품고 있으리라.

‘당연히 그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을 테고….’

그녀의 희망사항을 들어줄 수 없다는 게 가슴 아플 뿐이다.

‘연봉이라도 올려줘야겠네.’

본인은 연봉 따위에 관심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자신을 아껴주고 있다는 건 자각했으면 싶었다.

물론 본인은 내가 주는 총애를 최대한 피하고 싶겠지만 한소라가 대륙 유일무이의 흑마법 자원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아끼지 않을 수가 없다.

공화국과의 전쟁에서도 커다란 활약을 해준 것은 물론, 어쩌면 생각하고 있는 대륙 강화 계획에 써먹을 여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금 불안했다는 것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는 하다.

김현성이 오해 아닌 오해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의 존재는 폭탄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아니, 사실 그건 내 옆에 딱 달라 붙어 있는 정하얀 역시 마찬가지.

믿을 만한 아군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얘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정하얀이 뭣 모르고 입이라도 나불거리는 날에는 빛기영의 행복라이프는 거기서 끝.

물론, 정하얀이 내게 해를 끼치는 짓은 하지 않겠지만 성정 자체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만큼 각별한 취급을 요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더 친절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거다.

본래도 웃음기가 섞인 얼굴로 정하얀을 대하기는 했지만 귀여워 죽겠다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기 시작.

웃고 있는 내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하얀의 기분이 업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그동안 힘들었겠네. 쉬지도 못하고….”

“조, 조금 힘들었어요. 그래도 해야 되는 일이니까.”

‘키야. 대견스러운 거 봐라. 하얀이가 이런 말도 해주고 내가 기뻐서 눈물이 다 나오네….’

“아무리 그래도… 외롭지는 않았어?”

“조, 조금은? 사실 많이 외로웠어요.”

“그럼… 같이 아침이라도 먹고 갈까? 여기도 천천히 둘러보고. 대충 둘러보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네! 네! 네! 저는 당연히 좋아요!”

조금 돌아가기야 하겠지만 곧바로 일터로 달려가는 것보다는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즐겨도 괜찮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정하얀의 입장에서도 굉장히 잘 참아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최근에 결혼 문제로 한 번 폭발 할 뻔하기는 했지만 그것 외에는 딱히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다.

며칠 떨어졌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지도 않고 갑작스럽게 난입해 나를 곤란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동안의 교육의 성과가 비로소 나타나고 있는 것 같기도 했지만 일차적으로 본인이 잘 참아주고 있다는 사실이 유효했다.

특별한 상을 주는 것도 아님에도 이 정도로 참을 수 있다는 것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

짜투리 시간을 내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

천천히 짐을 챙긴 이후에는 곧바로 정하얀과 함께 밖으로 나가기 시작.

팔짱을 끼고 가슴을 최대한 밀착시키는 자세 때문에 다시 한번 몸을 움찔 거리기는 했지만 문제는 없다.

이제는 유명인으로 분류할 수 있는 만큼 시선이 집중되기는 했지만 정하얀은 오히려 보란 듯이 몸을 곧게 펴고 거리를 걸었다.

마치 영역표시라도 하는 것 같은 모양새.

뜻밖의 데이트에 쉴 틈 없이 재잘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저거, 저, 저것도 제가 만들었어요.”

“그래?”

“저, 저것도요. 저기 있는 다리도 제가 만들었고요. 소라 씨가 도움을 주기는 했는데 거의 혼자 했어요!”

우리네 아버지들이 한강대교를 자신이 만들었다고 중얼거리는 것처럼 자신의 위업을 자랑하기도 했고.

“그, 그래서요. 그때 막 사람들이 찾아와서 조금 깜짝 놀라기는 했는데 괜찮았어요. 몇 명이 저한테 말도 걸고 그랬는데 대답도 안 했어요. 다른 남자들이랑은 눈도 안 마주쳤고요.”

“꼭 그럴 필요는 없는데….”

자신이 얼마나 조신한 현대판 열녀인지에 대해 주장하기도 했다.

기본적으로는 영양가 없는 대화였지만 조금 지친 정신을 쉬게 해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하는 게 가장 적절하리라.

‘날씨도 좋고.’

전체적으로 평화로운 분위기.

이런 평화를 즐기는 건 나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려 있고 각자의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도 보인다.

테라스에 나와 식사를 한다거나 분수대 주변에서 잡담을 나누고 잡화점이나 무기점에서 쇼핑을 하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이런 분위기에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만하기는 했지만 어제 든 생각 때문인지 마음이 편치 않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원래는 목숨을 걸고 싸움터에 있어야 할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 더욱더 그렇다.

마음의 눈으로 한 번씩 둘러봐도 딱히 인상적인 사람이 있다고 하기는 힘들다.

그나마 교국이나 공화국, 이종족 연합은 상태가 조금 좋다.

지난 전쟁에 참가하지도 않았던 왕국 연합이나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던 외국인들은 마치 소풍이라도 나온 모양새.

위협이 있다고 공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모양이다.

평화로운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너무 평화로운데….”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올 정도였다.

“네?”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혼잣말이었어.”

“고, 고민이라도 있으세요?”

“고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고… 나중에 생각이 정리되면 이야기해 줄게. 그럼 슬슬 길드 하우스로 돌아가자. 지부도 하얀이가 만들었어?”

“…….”

“하얀아?”

“네? 아… 네. 뼈대만 제가 만들었어요. 아, 안쪽은 전부 김미영 팀장님이 해주셨어요. 가구도 린델에서 주문제작 해서 가지고 왔고…. 아! 길드 하우스 1층은 상점가로 이용하고 있어요. 포션 상점이랑 아영 씨 대장간으로…. 2층부터 파티원들이 이용하는 길드 하우스고 린델에 있는 것보다도 더 커요. 연무장도 크고 연금공방도 크고 그, 그리고 방도 커요.”

“그럴 만하네. 린델에 있는 건물은 기존부터 있었던 건물이니까. 단순히 너비로 치면 이쪽이 더 넓기도 하고… 다른 클랜들도 많이 들어오겠는데.”

“유력 클랜 몇 개는 벌써 토지 매입도 고려해 보고 있대요. 검은 백조랑 붉은 용병은 벌써 들어와 있고요.”

“똑똑하네.”

몇 가지 쓸데없는 대화를 나누면 계속해서 거리를 거닐자 익숙한 엠블럼이 눈에 띄기 시작.

정하얀이 말했던 파란 길드의 지부에 도착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확실히 규모가 있다.

파란의 길드 하우스보다 훨씬 더 커다랗고 세련됐다.

1층의 상가에는 유아영이 만든 무구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 옆에 있는 포션 상점에는 모험가들이 벌써 모여 있었다.

길드 하우스로 들어가려면 다른 입구를 통해 가야 하는 모양.

천천히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시야에 비친 것은 익숙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인형이었다.

“부길드마스터.”

“아, 혜진 씨.”

“오신다고 말씀하셨으면 마중을 나갔을 텐데…. 오늘 도착하신 겁니까?”

“네. 잠깐 여기저기 둘러보고 왔습니다. 그런데….”

커다란 건물의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김현성의 부관이자 내 하나뿐인 친구.

꽁지머리를 한 채 커다란 건물의 앞을 서성거리고 있는 모습은 평소답지 않게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 역력했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아뇨. 딱히.”

“그런데 왜 밖에서….”

“길드마스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성 씨요?”

“네.”

“같이 나가지 않으신 겁니까?”

“그… 자세히는 듣지 못했지만 사람을 조금 찾아보신다고…. 혼자서 다녀오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상이 맞았네.’

대충 어디로 향했는지는 당연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알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답은 뻔하니까.

왠지 모르게 불안으로 가득 찬 조혜진의 얼굴은 가관.

나라라도 잃은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어오는 모습에는 나도 모르게 기침을 콜록거릴 수밖에 없었다.

“저, 부길드마스터. 갑작스럽게 죄송합니다만….”

“네?”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뭘요?”

“길드 마스터가 여, 연애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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